소설리스트

레저렉션-10화 (10/152)

# 10

고비를 넘다

도수는 겨드랑이 아래서부터 가슴 아래까지 절개 부위를 바라봤다.

수북한 털 때문에 면도가 필요한 상황.

그는 털을 밀고 절개할 부위를 소독했다.

“아직 수술해야 할 곳이 두 곳이나 남았습니다. 긴장 늦추지 마세요.”

“응……!”

매디 보웬이 대답했지만.

실은 도수 자신한테 하는 말이었다.

이미 큰 수술을 한 차례 끝낸 상태.

그럼에도 두 번의 고비가 더 남아 있었다.

만약 이 수술의 연장선에서 조금이라도 밀린다면 환자는 사망할 터였다.

“칼.”

메스를 건네받은 도수는 소독한 절개 부위를 갈랐다.

출혈은 폐 자체가 아닌, 갈비뼈 사이의 혈관이 다쳐 발생한 것이었다.

“거즈.”

매디 보웬이 거즈를 찾아주자 그가 소리쳤다.

“더 많이!”

한 뭉텅이, 두 뭉텅이…….

쉴 새 없이 거즈를 때려 박은 도수는 피가 충분히 스며들자 도로 빼냈다.

촤악!

피가 튀었다.

철퍽거리는 거즈를 바닥에 던진 도수의 두 눈이 번쩍였다.

터억!

그는 단번에 혈관을 찾았다.

만약 전문가가 이 장면을 봤다면 기겁했을 것이다.

어떤 서전이라도 손상된 혈관을 찾는 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은 어시스턴트가 없는 상황.

급한 대로 집게를 이용해 고정시켰지만 가슴을 완전히 열어젖히진 못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수술을 한다면 시야확보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도수는 혈관을 찾는 과정도 없이 곧바로 혈관을 찾아낸 것이다.

물론 매디 보웬은 방금 자신이 본 장면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도수의 거침없고 재빠른 움직임이 귀신같다고 생각할 뿐……!

그야말로 순식간에 출혈점을 파악한 도수는 두 혈관을 묶었다.

다리, 가슴의 출혈을 잡자 혈액의 흐름이 좋아졌다.

‘혈압이 올라가고 있어.’

정확한 혈압수치를 파악할 순 없었지만 투시 능력과 경험적 감각으로 환자 상태를 파악한 그는 매디 보웬에게 말했다.

“피 새로 달아주세요. 짤 필요는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매디 보웬이 튜브에 새로운 피 주머니를 연결했다.

구구절절 설명해 주지 않아도 도수가 하는 걸 본 것만으로 척척이다.

‘똑똑한 여자야.’

그렇게 생각한 도수는 다시 시선을 내렸다.

이제 환자의 배를 열어야 하는 상황.

샤아아아…….

투시력을 쓰자 조각조각 잘린 소장과 손상된 콩팥이 반투명으로 보였다.

그것만으로 앞에 벌어질 상황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엉망이다.’

환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검토를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 배 속 상태는 최악이었다. 안 그래도 연속된 두 번의 수술로 환자 컨디션이 나쁜 상태에서 수술을 감행한다면…….

‘정말 닥터 킴의 말처럼… 죽을 수도 있어.’

도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배를 가르면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눈에 빤히 보이는데 메스를 움직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환자는 백 퍼센트 사망한다.

이미 손을 댄 이상, 환자를 죽음의 문턱에서 끄집어내는 것만이 그의 사명인 것이다.

“절개.”

도수는 메스로 환자의 배를 내리그었다.

고요한 폭풍전야(暴風前夜).

“스읍.”

숨을 들이쉰 도수는 배를 벌렸다.

그와 동시에.

촤악!

피가 솟구쳤다.

얼굴에 그대로 뒤집어쓴 피.

그러나 도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아……!”

매디 보웬은 피 주머니를 잡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전까지보다 훨씬 더 출혈이 심했던 것이다.

“어, 어떡하지? 피가……!”

“정신 차려요!”

정신이 번쩍 들 만큼 큰 소리로 외친 도수가 말했다.

“거즈.”

매디 보웬이 거즈를 한 뭉텅이 건넸다.

“거즈! 더!”

도수는 계속해 거즈를 쑤셔 넣었다.

“혈압 떨어집니다. 피 짜세요.”

철퍽, 철퍽.

거즈를 빼낸 도수는 물을 잔뜩 먹은 것처럼 호흡을 내뱉었다.

“후아……!”

투시력을 이용해 미리 봤던 것처럼.

소장이 조각나고 콩팥이 손상을 입었다.

배만 보면 장기가 다 녹아내리거나 산산 조각나서 늘러 붙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중태였다.

문제는 수술이 길어지고 수혈받는 혈액량이 늘고 있다는 것.

환자의 몸에 자신의 피보다 다른 사람의 피가 더 많은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는다.’

그래야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수술방도 아닌 곳에서 무균 복장도 갖추지 않고 하는 수술.

수술을 성공한다 해도 생존률이 크지 않다.

조금이라도 생존률을 올리기 위해선 배를 열고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밖에 없었다.

‘일단 콩팥부터.’

도수는 파편이 뚫고 지나가 찢어진 콩팥을 봉합했다.

스슥, 슥!

봉합은 빠르게 끝이 났다.

‘진짜 잘한다…….’

매디 보웬은 바느질을 해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소질이 없어선지 할 때마다 꽤나 애를 먹는다. 따라서 그녀는 도수의 손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정도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든 오직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해 봉합을 마친 도수가 고개를 들었다.

“가위 주세요.”

도수는 수술실을 잘랐다.

컷(Cut).

원래 어시스트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수 혼자 모든 걸 하고 있었다.

실도 이물질이다. 괜히 매디 보웬을 시켰다가 환자 몸에 이물질을 많이 남겨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싹둑.

타이가 풀리지 않을 정도로만.

아슬아슬하게 실을 자른 도수는 다음 소장을 주시했다. 세 조각으로 나눠진 소장.

손상된 부분을 잘라낸 뒤 이어 붙여야 했다.

문제는 손상된 부분만 자르는 게 아니라 손상된 세 곳을 전부 포함하는 넓은 면적을 자르고 이어 붙여야 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더 깊게 들어가서 소장이 둘러싸고 있는 장간막까지 함께 잘라야 했다.

잘라내는 범위가 크면 클수록 환자한테는 좋을 게 없었다.

“혈압 떨어집니다. 피 짜주세요.”

도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수술이 늦춰질수록 환자의 생존도 멀어진다.

뿐만 아니라 그는 투시력의 과용으로 인해 이미 머리가 붕 뜬 것처럼 어질어질해지고 있었다.

‘수술실에선 닥터 킴이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다.’

버텨내야 한다.

도수는 이를 악물고 환자 뱃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턱!

이번에도 실수는 없었다.

장간막을 지나는 동맥을 낚아챈 그는 미끄러운 혈관을 놓치지 않고 묶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출혈이 줄었다.

“후우.”

소장을 이어 붙이는 건 이제부터 시작이다.

도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말했다.

“칼.”

턱!

메스를 받은 도수는 소장의 손상부위와 그에 해당하는 장간막을 함께 잘랐다.

서걱, 서걱……!

“으으.”

매디 보웬은 결국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피 냄새는 익숙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 장기를 통제로 잘라내는 모습을 보는 건 단순히 끔찍한 부상을 당한 대상을 보는 것과는 달랐다.

툭.

절제를 마친 도수는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는 매디 보웬에게 말했다.

“손 좀 줘 봐요.”

“뭐?”

매디 보웬이 화들짝 놀라자 도수가 말을 이었다.

“소장을 이어 붙이려면 잡아줘야 됩니다.”

“아…….”

망설이는 그녀를 보며 도수가 외쳤다.

“빨리!”

“……!”

그녀는 이번에도 할 수 없이 손을 뻗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눈 떠요.”

매디 보웬이 말을 듣지 않자 도수가 소리쳤다.

“눈 뜨라고!”

“으…….”

매디 보웬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눈을 떴다.

도수는 그녀에게선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여기로 손 넣어서 제가 잡고 있는 소장을 받으세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고.”

“후우,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한 매디 보웬이 배 속으로 손을 넣었다. 미끌미끌한 이질감.

도수는 그녀의 손에 소장을 쥐여주었다.

“잘 잡아요. 이대로 움직이지 말고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

극도의 긴장 상태.

실수 한 번에 환자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무 꽉 잡지 말고.”

“아…….”

그녀는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다행히 소장은 미끄러지지 않았다.

“느낌은 흙탕물 속 미꾸라지를 잡는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 보니, 혈관을 순식간에 잡아버리던 도수는 맨 손으로 물속에 노니는 미꾸라지를 잡는 것과 같은 일을 단번에 해낸 것 아닌가?

정신이 없으니 별에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 그녀를 힐긋 본 도수가 말했다.

“정신 차려요.”

“응……!”

도수는 소장과 장간막을 꿰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의 손놀림은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러면서도 빼곡하게 타이를 했다.

“거의 다 끝났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췌장이 다치지 않았다는 거예요. 췌장액이 샜다면 장기들이 다 녹아버렸을 겁니다.”

매디 보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말이었다.

적당한 긴장감은 필요하지만, 너무 과부화되면 예기치 못한 실수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환자의 경우 단 한 번의 실수만 범해도 사망이다.

적당히 주의를 빼앗은 도수는 그 사이 봉합을 끝냈다.

귀신 같이 빠른 솜씨였다.

무려 세 곳이나 되는 신체 부위를 수술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고비 넘긴 도수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놔도 돼요. 가방 안에 보면 세척액 있을 겁니다. 계속 부어주세요.”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매디 보웬은 고분고분 지시를 따랐다. 세척액을 꺼내 이리게이션(Irrigation)을 시작했다.

촤악!

세척액을 붓자.

도수는 급한 대로 석션기 대신 거즈를 집어넣어서 세척액을 제거했다. 세척액과 피, 장이 손상되면서 복강을 오염시킨 내용물들이 걸러져 나왔다.

“다시, 이리게이션.”

촤악!

거즈를 쑤셔 박고 다시 뺀다.

철퍽, 철퍽.

한참 동안 같은 작업을 반복한 끝에.

도수가 말했다.

“…이래도 감염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 그렇겠지.”

그사이 도수는 치열했던 수술을 마무리했다. 모든 과정이 끝나자, 그는 매디 보웬의 두 눈을 마주 응시했다.

“우리가 여기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여기까지입니다. 수고하셨어요.”

두근, 두근……!

도수의 귀에는 환자의 심장 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누가 봐도 생존률 제로에 가까운 엄청난 수술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환자는 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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