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생존 확률 제로
도수는 매디 보웬을 난민촌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난민촌에는 아직도 병마나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UN군 지휘소를 지나고 있는 그때.
소란스러운 군인들이 보였다.
“의료진들 불러 모아! 의사든 간호사든 붕대라도 감을 수 있는 사람은 전부!”
“예, 알겠습니다!”
“빨리 빨리 움직여! 시간 없다!”
매디 보웬은 기자답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멈춰 섰다.
“무슨 일이죠?”
그녀가 분주한 군인을 붙잡고 묻자.
군인이 다급한 얼굴로 대답했다.
“시내에서 폭탄이 터졌답니다!”
“포, 폭탄이요? 사상자는요?”
“아직 파악된 게 없습니다! 그럼……!”
군인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눈으로 좇던 매디 보웬이 툭 뱉었다.
“쫓아가자.”
도수가 고개를 돌렸다.
“어딜?”
“못 들었어? 붕대 감을 줄 아는 사람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다잖아?”
폭탄테러라면 그 예후가 좋지 못하다.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도수는 두 말 없이 대답했다.
“가죠.”
두 사람은 의료진들이 탑승해 있는 차로 갔다. 이미 시동이 걸린 상태. 의료진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도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응급처치 정돈 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김광석이 의료진들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겸손은… 얼른 타게.”
고개를 끄덕인 도수와 매디 보웬이 비좁은 자리를 비집고 올라탔다. 그리고 차량이 출발하자 도수가 먼저 입을 뗐다.
“저를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줄 알았는데요.”
김광석은 부정하지 않았다.
“자네가 불안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는 창밖을 향해 애가 타는 눈길을 던졌다.
“폭탄이 터졌다면 상황은 끔찍할 테지. 정말 한 사람의 손이 아쉬울 정도로… 혹시 몰라서 피도 이만큼이나 챙겼다.”
김광석은 끼고 앉은 박스 뚜껑을 슬쩍 열어 내용물을 드러냈다. O형 피 주머니가 가득하다.
그때, 지금 상황을 메모하고 있던 매디 보웬이 물었다.
“폭탄에 당한 환자를 보셨어요?”
“봤소.”
김광석이 덧붙였다.
“…딱 그만큼의 죽음도 봤고. 폭발에 제대로 휘말린 환자가 살아남는 건 못 봤어요.”
도수는 그의 어깨너머 창밖을 응시했다. 저 멀리 치솟고 있는 시커먼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거의 다 왔군요.”
“한 가지만 확실히 하지.”
김광석은 도수를 향해 못 박았다.
“현장 책임자는 나야. 이번엔 너무 나서지 말고 내 통제에 따르도록 해.”
“전…….”
차창 밖. 참혹한 지경의 사상자들이 보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제멋대로 굴어야 할 것 같은데요.”
도수가 나지막이 읊조렸지만.
사건 현장을 마주한 김광석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
사건 현장은 지옥이었다.
부분부분 시커멓게 타버린 시체들.
매캐한 탄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끼이익, 차량이 멈추자 현장에서 인원 통제를 하고 있던 군인이 박스 문을 열어젖혔다.
“어서 오십시오.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김광석이 내리며 물었다.
“사상자 수는?”
군인이 고개를 저었다.
“사망자건 부상자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사망 열두 명, 부상 서른한 명입니다.”
그때 부상자를 보고 있던 병사가 크게 외쳤다.
“숨을 안 쉽니다!”
“…부상 서른 명. 사망자 열셋이 됐네요.”
“바로 움직이지.”
김광석은 서둘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환자 분류.
하지만 이런 매뉴얼을 모르는 도수는 이미 부상자 옆에 가 있었다.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부상자다. 사망자들과 구분이 안 될 만큼 숯덩이가 되어버린.
“…….”
도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의 뇌리로,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이 오버랩됐던 것이다. 배와 가슴에 폭탄 파편이 박혀 죽어가던…….
‘살린다.’
두 눈이 번뜩였다.
샤아아아아아.
부상자는 아프리카계 흑인. 투시력으로 본 그의 상태는 겉보기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허벅지, 복부, 흉부에 스무 개가 넘는 파편이 박혀 있었다. 출혈이 심해 혈압도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운이 안 좋았다.
허벅지에 박힌 파편 조각이 넙다리동맥과 접다리정맥을 찢고 들어가 대량출혈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흉부에서도 출혈로 혈흉(흉막강 안에 혈액이 괸 상태)이 생기고 복부 역시 소장과 콩팥에 크고 작은 파편들이 박혀 있었다.
그가 어떻게 손써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어느샌가 곁에 와 있던 김광석이 입을 열었다.
“안타깝지만 이 환자는 가망이 없다. 다른 환자부터…….”
“살릴 겁니다.”
도수가 말을 잘랐다.
엄마, 아빠를 잃었던 그날처럼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땐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한 속내를 모르는 김광석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파편이 박힌 환자가 생존한 케이스는 없다.”
단정 지은 그가 모르핀 주사를 꺼냈다. 고통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그 순간.
턱.
도수가 손목을 잡았다.
김광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할리 무어 장군처럼 생존률이 희박한 게 아니라, 인력으론 불가능한 영역이란 말이다. 고통을 덜어주고 다른 환자를 보는 게 맞다.”
지금 환자는 쇼크 상태.
하지만 곧 깨어날 터였다.
도수 또한 알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김광석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건물 안으로 옮겨서 수술하겠습니다.”
도수는 아직도 손목을 잡고 있었다.
김광석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놔.”
“쓸데없는 짓 마세요.”
“뭐? 쓸데없는 짓?”
참다 못한 김광석이 쌍심지를 켰다.
“그렇게 아무 때나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자네 욕심만 생각하나? 가망이 없는 환자한테 피 주머니 몇 개씩 들이부을 바엔 다른 가망 있는 환자부터 치료하는 게……!”
“책임은 제가 집니다.”
도수는 투시력을 끌어 올렸다.
샤아아아아아.
동시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환자들을 보았다. 그러자 피부 위로 반투명하게 빛나는 혈관들과, 그 안을 돌고 있는 혈류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응급처치 시 수혈해야 할 양이 대략적으로 파악되었다.
“피 주머니는 넉넉해요. 이송이 가능한 환자들은 지혈한 후 이송하면 되고, 출혈이 심한 환자들도 수액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걸 어떻게 판단하나? 충분하게 챙겨 왔다곤 해도, 아직 환자들 상태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도수의 능력을 모르는 김광석으로선 당연한 의문이었다. 더 정확하려면 일일이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수혈할 수 있는 피 주머니 개수를 따져서 생존 확률이 높은 환자부터 수혈해야겠지만.
그 시간이면 눈앞의 이 환자는 백 퍼센트 사망이다.
도수는 김광석의 손을 놓고 지혈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 낭비할 여유 없습니다. 이 환자도, 다른 환자들도 빨리 손써야 돼요.”
김광석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실랑이를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그래, 한 번쯤은…….’
어차피 경험해야 하는 일이었다.
환자의 죽음.
만약 그 죽음에 익숙해지지 못한 의사라면 아직 환자 목숨이 붙어 있는 이상, 쉽게 포기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인턴이나 레지던트들도 겪는 과정.
어쩌면 아무리 비범하다 해도 아직 열아홉 살에 불과한 소년에게 너무 노련한 의사의 기준을 뒤집어씌우려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판단한 김광석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그게 환자에 대한 예의니까.”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매디 보웬 기자의 입장은 달랐다.
“잠깐만요! 지금 모험을 하겠다는 거예요? 닥터 킴은 이걸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거고요? 만약 환자가 사망하기라도 하면… 그럼 우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요! 도수, 넌 아예 추방되거나 다시 투옥될 거야.”
“그딴 게 중요해요?”
도수가 눈을 부라렸다.
“지금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요.”
그는 군인들을 향해 벼락같이 외쳤다.
“실내로 옮겨요! 당장!”
군인들이 눈치를 보며 주춤거리자, 도수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말고도 환자가 사망할 경우 책임질 분이 또 계십니까?”
“……!”
그제야 군인들이 움직였다.
환자를 이송하는 그들을 보며 매디 보웬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네가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고 해도 모두를 살릴 순 없어.”
“닥쳐요, 매디.”
냉정하게 말한 도수는 혈액을 챙긴 뒤 군인들의 뒤를 쫓아갔다.
뒤에 남겨진 매디 보웬은 김광석을 쏘아보며 말했다.
“방금 들었어요? 지금 나보고 닥치라고…….”
“닥치고 쫓아가요, 미스 보웬.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거요.”
그 말을 남긴 김광석은 혈액가방을 매고 다른 환자를 보러 떠났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매디 보웬이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
“후우.”
피 주머니를 매단 도수는 한숨을 뱉었다.
어시스트도 못 받는 상황.
혼자 환자를 감당해야 했다.
그 순간.
찰칵!
플래시가 터졌다.
매디 보웬이 사진을 찍은 것이다.
“아… 나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해. 난 내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니까.”
닥치라는 소리까지 들은 마당이라 변명이 줄줄 나왔다. 그리고 이내,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도수가 입을 열었다.
“아뇨. 신경 쓰입니다.”
“그건 미안하…….”
“거기 카메라 내려놓고 이리 오세요.”
말을 끊자, 매디 보웬은 떨떠름하게 물었다.
“…뭐? 왜?”
“이리 오라고요.”
반협박조.
매디 보웬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한 대 맞는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왜?”
“거기 애바가드(Avagard: 최근에 개발된 소독약의 일종. 물과 브러시가 필요 없어 빠르고 간편하다)로 손 소독해요. 손톱 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 빈틈없이.”
“응?”
매디 보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무슨…….”
“어려울 거 없어요. 어차피 수술은 제가 해요.”
“난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빨리! 환자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이에요?”
“……!”
매디 보웬은 뭐라 반발하지 못했다. 환자 상태가 최악이라는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쩔 줄 모르고 머릿속이 하얘져선 손을 소독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무리 소독해도 빈틈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도수는 침착했다.
“그만하고 앞에 와서 서요.”
그녀가 마주 서자 도수가 메스를 빼 들었다.
“출혈부터 조절해야 합니다. 먼저 다리 쪽 동맥, 정맥을 복구할 거예요.”
샤아아아아.
투시력을 쓰자 일회용 젓가락 두, 세배쯤 되는 허벅지 동맥과 정맥이 시야에 들어왔다.
“절개 시작합니다.”
압박붕대를 풀기 무섭게.
촤악!
피가 솟구쳤다.
“피, 피가……!”
매디 보웬이 당황해 외쳤지만 도수는 이성적이었다. 그의 두 눈에는 잘린 혈관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혈압 떨어집니다. 두 손으로 피 주머니 잡고 짜요.”
“아… 응!”
매디 보웬 역시 전쟁터를 전전하며 사진을 찍었던 여자라 그런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아마 이런 장면이 처음인 일반인이었더라면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한 채 넋 놓고 있었으리라.
그녀가 피를 짜자, 빠지는 피와 들어가는 피의 혈액량이 조절됐다.
물론 출혈로 빠져나가는 피를 완벽히 충당하진 못했지만 출혈을 멈출 때까지 시간을 번 것이다.
“잘했어요.”
샤아아아아.
도수의 눈이 다시 한번 빛을 머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혈관 지나는 곳까지 손상된 피부와 근육 조직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최대한 빨리.’
거침없이.
도수의 메스가 움직였다.
석, 서걱!
출혈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게 손상된 조직을 제거하는 도수.
너무도 손쉽게 혈관 위치까지 파고든 그는 메스를 던져놓고 혈관의 손상된 부분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턱!
그리곤 물 흐르듯 잘린 혈관을 묶었다.
“출혈을 멈추는 겁니다.”
“아……!”
“메스 소독해서 다시 준비해주세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 매디 보웬이 메스를 소독하는 사이, 일단 혈관을 묶어서 출혈량을 조절한 도수는 집게를 빼 들고 깊게 파고든 파편들을 떼어냈다.
텅, 터엉!
쟁반에 올려진 파편들.
“이… 이게 몸을 뚫고 들어간 거야?”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칼.”
매디 보웬이 메스를 건넸다.
“혈관을 봉합할 거예요. 일시적인 출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당황하지 마세요.”
그는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손상된 혈관의 단면을 메스로 평평하게 잘라낸 뒤 묶여 있는 혈관을 풀었다.
파악!
피가 튀었다.
도수가 외쳤다.
“피 짜요!”
이미 한번 경험이 생긴 매디 보웬이 피 주머니를 짰다.
그사이 도수는 수술실로 혈관을 봉합했다.
다시 한번 신기에 가까운 타이기술이 빛을 발했다.
‘와…….’
매디 보웬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실제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수술 장면을 목격한 적이 없는데, 도수의 봉합 솜씨는 어떤 장인 재단사가 와도 울고 갈 정도로 빠르고 정교했던 것이다.
‘피가 멈췄어.’
정말 분수처럼 솟던 피가 멎었다.
도수는 최소한의 출혈만으로 끔찍하게 파편이 박혀 있던 허벅지를 복구한 것이다.
짧은 생각을 하는 동안 이미 그는 혈관을 봉합한 뒤 수술 부위를 거즈로 감았다.
“왜 수술 부위를 봉합하지 않는 거야?”
매디 보웬의 질문에 도수가 대답했다.
“아직 자잘한 파편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파편들까지 제거하고 있을 시간 없어요.”
말하는 와중에도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눈부시게 빠르고 능숙한 손놀림.
수술을 잘하는 척도가 속도라면 도수는 우사인 볼트급이었다.
“긴장 풀지 마세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샤아아아.
도수의 눈에 비친 환자 상태는 좋지 못했다.
생존 확률이 제로라는 김광석의 말처럼, 환자는 장시간 이어진 어마어마한 출혈을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