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8화 (8/152)

# 8

히든카드

수술을 마친 김광석은 도수가 누워 있는 의무대로 갔다.

“괜찮나?”

도수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끝났습니까?”

여전히 환자 걱정부터 하는 그.

김광석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덕분에 잘 마쳤다. 회복하실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회복하실 겁니다.”

도수는 이번에도 확신했다.

어떻게 4기 암환자의 상태를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자신감 문제가 아니었다.

“매번 자신만만하군.”

“믿어야죠.”

도수는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환자의 회복력을 믿는 것뿐.

김광석은 입을 열었다 닫더니,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래, 꼭 일어나실 거야.”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말했다.

“좀 쉬고 싶습니다.”

“아, 그래야지. 쉬어야지.”

김광석은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하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나도 자네를 믿고 싶군.’

그는 진정으로 할리 무어 장군이 건강을 되찾길 바랐다. 도수가 보여준 신기에 가까운 직감과 실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길 바랐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그 말을 남긴 김광석은 몸을 돌려 나갔다.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도수는 문이 닫히기 무섭게 몸을 일으켰다.

“후.”

흠씬 두드려 맞은 후가 이럴까?

아직 몸이 찌뿌둥했다.

마취제를 맞은 것처럼 어질어질하다.

그럼에도 그는 기지개를 켜며 정신을 차리고 병실을 나섰다. 그가 향하는 곳은 할리 무어 장군이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환자실.

소독 후 무균복장을 착용한 도수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환자를 보고 있던 간호사가 시선을 돌렸다.

“닥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

“괜찮으세요? 좀 더 안정을 취하셔야할 텐데…….”

도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딘가 이상했다. 수술이 있기 전과는 상이하게 존경심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대답 대신 물었다.

“환자 상태는?”

“아! 체온, 맥박 다 정상이에요. 추후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이 정도면 안정적인 것 같죠?”

뜰뜬 목소리.

이는 호재다.

“수술이 잘됐나 보군요.”

담담하게 말한 도수가 덧붙였다.

“앞으로 며칠은 두 시간 간격으로 환자 상태를 체크해 주세요.”

보통은 세 시간에 한 번 체크하는 것이 매뉴얼이다. 그 간격이 줄어들수록 간호사 입장에선 더 피곤해지겠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밝게 웃었다.

“네, 그럴게요! 그런데 닥터.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건 왜 묻죠?”

“아니 그게, 의사 선생님치고 너무 나이가 젊어 보이셔서요.”

“젊은 거 맞습니다. 열일곱이에요.”

한국 나이론 열아홉이지만.

그 말을 들은 간호사가 화들짝 놀랐다.

“예? 열일곱이요?”

정식 의사가 되려면 의대 입학부터 최소 11년의 시간이 걸린다.

쉬이 납득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도수가 되물었다.

“그게 중요한가요?”

“아, 아뇨…….”

간호사는 차마 ‘의사가 맞긴 하냐’고 묻지 못했다. 두 눈으로 수술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어떤 수술 때도 본 적 없는 실력이었다. 당시의 순간을 떠올리던 그녀는 무심코 도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수술 과정에서 도수가 보여줬던 매서운 눈빛이 오버랩됐다.

“……!”

얼굴을 붉힌 그녀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시선을 피했다.

그 사이 환자의 몸 구석구석을 모두 살핀 도수가 말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환자 깨면 호출해 주세요.”

할리 무어 장군의 마취가 깨기까진 1시간 남짓.

도수와의 약속을 이행하기까지 남은 시간도 한 시간뿐이었다.

‘믿을 수 없어.’

도수는 할리 무어를 믿지 않았다. 그는 이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기 때문이다. 막말로 이제 도수에게 아쉬울 게 없다. 인간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얼마나 다른지 지난 7년 동안 수없이 지켜봤다. 생존과 욕망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추잡해질 수 있는지도. 전쟁통에서 자란 그는 장군뿐 아니라,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의 운명을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은 그야말로 멍청한 짓이 아닌가?

그 순간, 간호사가 정신을 일깨웠다.

“저… 실례지만.”

“……?”

“어떻게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의사가 된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타인은 집요하다.

즉, 피곤하다.

“안 됩니다.”

“예?”

황당한 표정의 그녀를 빤히 응시하던 도수가 대답했다.

“환자 보세요.”

드르륵.

문을 열고 중환자실을 나서는 도수.

그의 뒷모습을 쫓던 간호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싸가지…….’

***

1시간 후.

할리 무어 장군은 눈을 떴다.

먼저 시력이 돌아오고, 정신도 돌아왔다.

“쿨럭, 쿨럭……!”

힘겹게 기침을 뱉어낸 그는 자신의 몸상태를 체크했다.

‘수술이… 성공한 건가?’

손을 쥐락펴락해 보는 그.

아직 기력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특별히 불편한 곳은 느껴지지 않았다.

“간호사.”

맞은편 환자를 보고 있던 간호사가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며 등을 돌렸다.

“장군님! 정신이 좀 드세요?”

“그래, 괜찮아. 컨디션도 좋고.”

장군이 물었다.

“수술은 어떻게 됐지?”

“잘 끝났어요! 이제 회복하시기만 하면 돼요.”

간호사의 말에 할리 무어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쿨럭, 쿨럭! 하… 그게 정말인가? 어떻게 병원에서도 포기한 날… 하하하, 쿨럭!”

웃을 때마다 기침이 섞여 나왔지만 이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죽었다 살아난 목숨 아닌가?

“집도의, 집도의를 부르게.”

“닥터 리 말씀이시죠?”

“그래… 닥터 리.”

고개를 주억거린 간호사가 호출을 했다.

그사이 할리 무어는 뻐근한 옆구리를 감싸 안고 생각에 잠겼다.

‘정말 뛰어난 실력자였군.’

물론 그 사실을 믿었으니 수술을 강행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희망적으로 자기최면을 걸은 것뿐, 도수 자체를 믿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도수는 해내고야 말았다.

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할리 무어 장군이 감격하고 있는 그때, 드르륵 문이 열리며 도수가 들어왔다.

“제때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문 앞에 있었나? 부르자마자… 쿨럭,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오는군.”

할리 무어가 떨떠름하게 말하자 도수가 대답했다.

“대략 이쯤이면 깨어나셨을 거라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고맙네.”

할리 무어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다시 눈을 들 수 있었던 건 모두 자네 덕이야.”

“별말씀을… 완치되려면 앞으로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해요.”

“그건 병원에서 해주겠지. 하하… 쿨럭.”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약속을 지키실 차례군요.”

그런데.

할리 무어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와서 이런 얘길 하는 게… 아니꼽겠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주면 안 되겠나……?”

“뭘요?”

“좋은 환경에서 정식으로 의사가 되게… 내 모든 재정적인 지원을 약속하지. 어디가 됐든… 아름다운 나라에서 다시 시작하게. 몇 년이든 자네가 필요로 하는 동안… 내 목숨값을 치르겠네.”

“말씀드렸을 텐데요.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라고.”

“그건 자네가 밖에 못 나가봐서 하는 소리…….”

“아뇨.”

도수는 단칼에 잘랐다.

“약속을 지키세요, 장군.”

“후… 쿨럭, 쿨럭.”

길게 한숨을 내쉰 할리 무어가 입을 열었다.

“설득에 임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고집을 부리는군……. 자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난 자네를 내보낼 거야. 내 방식대로… 은혜는 갚겠네.”

“버젓이 증인들이 있는데도?”

“여긴 라크리마… 내가 하고자 해서 안 될 일은 없지.”

맞는 말이었다.

분쟁지역에서 군인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존재가 할리 무어 장군이었다.

“역시…….”

도수가 입을 뗐다.

“제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군요.”

미리 예상했다는 듯한 말투.

할리 무어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부터 반협박에 의한 약속이었어.”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만 사라져 주면 장군의 경력에 아무런 오점도 남지 않을 테니까요.”

할리 무어가 반색했다.

“날 이해하는군! 쿨럭, 쿨럭… 그래……. 막말로 지금껏 자네가 저지른 의료 행위들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지 않나? 전부 완벽히 성공했다는… 쿨럭. 어떤 증거도 없단 말이야.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자넨 떠나서 행복한 장래를 추구하고, 난 평생 은혜를 갚으면 되는 걸세.”

언뜻 들으면 달콤한 이야기였지만.

도수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미 약속을 어긴 장군을 제가 또 믿겠습니까?”

“허… 그래서, 안 믿으면… 어쩔 텐가?”

“장군님 말씀처럼 여기선 장군님 권력이 절대적이죠. 모든 사람들이 다 장군님 편이니까요. 그래서 저도 제 편을 한 명 만들어 왔습니다.”

벌떡 일어난 도수가 드르륵 문을 열었다.

그러자.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국인 여성이 서 있었다.

“아…….”

그녀를 알아본 할리 무어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당신은……!”

“오랜만이에요, 장군님.”

생긋 웃은 그녀가 병실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매디 보웬…….”

“‘기자’란 직함도 붙여주시죠.”

매디 보웬.

그녀는 미국인으로, 모르스 마을에 머물고 있는 종군기자였다.

조금 떨어진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매디 보웬이 입을 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이런 일을 저 모르게 벌이시다니.”

“그건…….”

할리 무어가 머뭇거리자 매디 보웬이 물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런… 것 같네. 자넬 보고 충격을 받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

“호호호! 농담도. 재미없는 건 여전하시네요.”

“할 말이나 하지.”

할리 무어는 도수를 노려봤다.

정작 도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전 잠시 나가 있죠.”

그러더니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순간적으로 놀라 어깨를 들썩인 할리 무어가 이불을 말아 쥐고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제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

할리 무어가 침묵하자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사실, 말씀해 주시지 않으셔도 돼요. 다 듣고 왔으니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전부 다요.”

“그럼 왜 왔지……? 지금쯤 기사를 쓰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뭐, 진위 여부 확인은 해야 하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제안할 게 있어요.”

“제안?”

할리 무어의 눈빛이 되살아났다.

기사가 나가면 꼼짝없이 추궁을 받겠지만, 아직 기사가 나가지 않았다면 살 길은 있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매디 보웬이 입을 열었다.

“문밖의 소년이 저를 찾아와 얘기하더군요. 장군님과 본인, 그리고 저까지 만족할 만한 방법이 있다고.”

“그게 뭐지?”

“간단해요. 장군님은 저 소년과의 약속만 지키세요.”

“약속을 지켜라……?”

“네.”

대답한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럼 저 소년은 계속 사람들을 치료하겠죠? 전 그 모습을 내전의 참상과 함께 보도할 거예요. 그럼 단순한 ‘고발성 기사’보다 훨씬 더 값진 기삿감이 되겠죠.”

“자네 둘은 횡재하겠군……. 하지만… 내가 얻을 건……?”

“확실한 이슈가 되면 더 이상 국제의료법 같은 건 개밥으로도 못 쓰죠. 여긴 전쟁터잖아요? 온 세상이 저 소년이 가진 신비한 매력에 주목할 거예요. 그리고 그것만으로 장군님의 잘잘못 따윈 중요치 않게 되겠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테니까.”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수가 실수하지 않고 환자들을 살렸을 때의 이야기.

만약 반대로 환자를 죽게 만든다면…….

“저 소년을 믿나?”

“농담해요?”

피식 웃은 매디 보웬이 덧붙였다.

“전 그를 믿는 게 아니에요. 병원에서도 포기한 장군님을 살려낸 데이터를 믿는 거지.”

“데이터라.”

침묵하던 할리 무어가 대뜸 물었다.

“나도 제안 하나 할까?”

“해보세요.”

“돈을 주지.”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당신은 한 가지만 누락시키면 돼. 내가 저 소년에게 수술 받았다는 것만. 어떤가?”

“돈이라… 돈 좋죠.”

그녀가 물었다.

“액수는요?”

“원하는 대로. 달러로 맞춰주겠어. 아무도 할 수 없는 제안이지.”

“축하해요. 장군님 혐의가 하나 추가됐네요. 뇌물공여 미수.”

“잘 생각해. 아무 탈 없이 큰 금액을 벌 기횐데도?”

“저 공돈 별로 안 좋아해요. 복권도 안 사는데 무슨.”

매디 보웬이 말했다.

“잊으셨나 본데, 저 종군기자예요.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에 자원해서 온 미친년이 돈이 중요하겠어요? 퓰리처상이라도 안겨주신다면 모를까.”

할리 무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

거절하는 즉시 매디 보웬은 사회 고발 기사를 작성할 터였다.

고개를 절레 저은 할리 무어가 입을 뗐다.

“당신 말대로라면 이곳 참상을 보도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목숨까지 걸고 온 당신이… 기자로서의 신념은 어디다 버리고 이런 소설을 쓰나?”

생긋 웃은 매디 보웬이 대답했다.

“우린 지금 미래를 선택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선택이 진실을 만들죠. 이건 거짓도 왜곡도 아니에요. 이곳 사정에 대한 세상의 문제의식을 키우고 절망으로 물든 땅에 희망을 꽃피울 기회라고요. 그리고 ‘이도수’란 아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비범해요.”

비범하다.

할리 무어도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

잠시 후, 매디 보웬이 중환자실 문을 열고 나왔다.

“얘기 끝났어. 네가 원하는 대로.”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녀가 말했다.

“역시 사람 살릴 만한 머리야. 대단한 담력까지… 이번 건 드라마 되겠어.”

도수는 피식 웃었다.

“드라마라면 비극일 텐데.”

“비극 속에서 꽃 피는 희망. 그게 바로 너야.”

“기꺼이…….”

도수가 중얼거렸다.

“기삿거리가 되어드리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데 이 투시력을 쓸 수만 있다면.

그를 빤히 응시하던 매디 보웬이 방긋 웃었다.

“그것 참 고맙네. 어쨌든… 딜(Deal)?”

도수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딜.”

마침내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된 도수.

그가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따라오세요. 진짜 의사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보여 드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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