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7화 (7/152)

# 7

대수술

스으으윽.

메스를 다루는 도수의 손놀림은 교묘했다. 혈관을 피해 살과 근육을 절개하는 정교함이란.

‘정말… 5,000회 이상 경험이 있기라도 한 건가?’

김광석은 마스크 안으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5,000회의 임상경험.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진짜가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이 드는 것이다. 처음 도수를 만났을 때만 해도 가까이서 볼 수 없었던 손놀림. 그건 차라리 예술에 가까웠다.

그 순간.

절개를 끝낸 도수가 훤히 드러난 갈비뼈를 내려다보며 주문했다.

“립 커터(Rib cutter: 갈비뼈 절단 시 쓰는 커다란 가위).”

간호사가 가위를 건넸다.

턱!

두 손으로 넘겨받은 도수는 거침 없이 늑골을 잘랐다.

뚝… 뚜둑……!

뼈가 잘려 나간다.

동시에 섬뜩한 소리가 이어졌다.

3, 4번 갈비뼈를 잘라낸 도수는 할리 무어의 폐를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맞은편에 서 있던 김광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윽…….”

보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상태가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이만큼 암이 퍼졌다면 수술은 불가능하다.

“엉망이야. 이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알겠지? 이 수술이 얼마나 무모한지.”

도수가 마스크 위로 눈동자를 들었다.

그러자 김광석이 말을 이었다.

“그놈에 고집 때문에 환자 가슴까지 열고… 이게 무슨 짓이야? 안 그래도 병약한 환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할 거냐는 말이야.”

환자의 가슴을 도로 닫을 거라고 확신하는 그.

그러나 도수는 다시 시선을 내리고 손을 뻗었다.

“칼.”

“뭐?”

김광서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칼!”

도수의 불호령에 간호사가 메스를 건넸다. 그리고 감광석이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칼자루를 쥔 도수가 환자의 폐를 쑤셨다.

푹!

“이런 미친……!”

김광석이 비명처럼 외쳤다.

그럼에도 도수의 동작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리게이션(Irrigation: 세척).”

그를 보조하는 의료진이 세척액을 부었다.

촤악!

“석션(Suction: 흡인)”

슈아아아아악!

피와 세척액이 동시에 석션기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시야가 확보되는 동시에.

도수는 폐엽에 그림자처럼 들러붙은 암덩이를 도려냈다.

서걱, 서걱!

그의 눈동자에 맺힌 빛이 더 짙어졌다.

샤아아아아아.

종양이 퍼진 농도를 정확히 구분해주는 투시 능력.

그 투시 능력을 발판삼아 자로 잰 듯 경계선을 잘라낸다.

석, 서걱!

그리고 마침내.

폐엽이 잘려 나갔다.

그럴수록 김광석의 안색도 창백하게 질려갔다. 도수가 절제한 부위는 자칫 조금만 지나쳐도 환자의 폐 기능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만큼 아슬아슬했기 때문에, 김광석이 보기엔 과한 면적을 절제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때 도수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

“그렇게 가만히 서 계실 거면 나가주십시오.”

“……!”

“아니면 피라도 제거해 주시든가요. 이리게이션.”

손을 뻗는 도수.

입술을 지그시 깨문 김광석이 의료진에게 세척액을 빼앗아 들이부었다.

촤악!

“내가 보조하지.”

도수는 들은 척도 안하고 말했다.

“석션.”

슈아아아악!

친히 석션을 실시하던 김광석이 덧붙였다.

“…만약 잘못되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그런 각오도 없이 수술방에 들어왔겠어요? 꽉 잡아요.”

“예… 예엡……!”

절개 부위를 벌리고 있던 의료진이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평소의 도수도 충분히 까칠했지만, 수술방 안에서의 도수는 매섭기 그지없었다. 어린애의 모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칼잡이로 돌변한 것이다.

그가 날카로운 눈매로 환자를 살폈다.

“이제 절반은 끝났습니다. 왼쪽 폐는 한곳 남았어요.”

폐를 잘라낸 도수가 절제한 폐엽을 쟁반 위에 던졌다.

툭!

“하아……!”

절개부위를 고정시키고 있던 의료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도수가 말했다.

“정신 차려요. 이리게이션.”

촤악!

“석션.”

슈아아아악!

세척액과 핏물이 빨려 들어가자, 도수는 타이 연습을 하던 대로 능숙하게 잘라낸 부위를 봉합했다.

그다음 갈비뼈를 근육 사이에 고정시키고 옆구리를 닫았다.

그야말로 물 흐르듯 진행된 수술.

수술하는 내내 의료진들이나 김광석은 숨을 돌릴 틈조차 없었다. 보조를 맞춰 따라가는 것만 해도 급급했던 것이다.

그만큼 도수의 손이 빨랐다.

수술과정을 가까이에서 쭉 지켜본 김광석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잠시도 망설이는 기색이 없다.

개흉(開胸)을 하고 폐를 살피는 것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

암이 퍼진 부위를 구분하고 절제할 면적을 정하는 데만 해도 신중의 신중을 요하기 마련이다.

한데 도수는 생각할 틈도 없이 열고, 잘라내고, 봉합해 버렸다.

이런 속도로 수술을 진행했는데 그 시간에 폐엽을 떼어냈다는 자체가 수술의 성패를 떠나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수술은 이제 절반이 진행됐을 뿐.

김광석이 말을 걸 틈도 없이 도수가 의료진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른쪽도 바로 수술하겠습니다. 땀 좀 닦아주세요.”

간호사가 붙어서 땀을 닦아주었다.

‘응?’

그녀는 뭔가 이상했다.

‘무슨 땀을… 비 오듯 흘리잖아? 어디 아픈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정작 도수는 개의치 않고 김광석과 위치를 바꿨다.

“환자 자세 바꿔주세요.”

의료진이 조심스럽게 의식 없는 할리 무어 장군을 반대쪽으로 돌려눕혔다.

도수는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살과 근육을 절개하고 갈비뼈를 잘라낸 뒤 암이 퍼진 폐엽을 마주했다.

김광석은 이 순간을 다시 봐도 섬뜩했다.

“정말… 환자가 살 수 있겠나?”

너무 넓은 면적을 잘라낸 게 아니냐는 뜻.

그를 응시하던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으세요. 장군은 살 수 있습니다. 남은 암세포가 사라질 때까지 얼마간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겠지만…….”

김광석은 한숨을 삼켰다.

“부디 자네 말이 맞길 바라지.”

그의 시선에는 환자에 대한 걱정과 애틋함이 묻어났다.

흘깃 바라보던 도수는 환자의 가슴 속으로 눈을 돌렸다.

“성공할 겁니다. 칼.”

턱.

메스를 받는 그 순간.

도수의 눈앞이 흔들렸다.

“윽.”

아찔했다.

만약 폐엽에 손을 댄 상태였다면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왜 그래?”

김광석이 물었다.

“자네 손을 좀 봐.”

도수는 메스를 쥔 손을 내려다봤다.

덜덜.

계속해 떨리고 있었다.

‘젠장.’

투시 능력을 과하게 써버렸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진행하면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큰 수술에는 더 큰 집중력과 투시 능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만큼 더 큰 체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자리 바꾸시죠.”

도수의 한마디.

김광석은 눈을 부릅떴다.

“내가 수술하라는 거냐?”

“절제 부위는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

김광석은 고민에 빠졌다.

메스를 잡는 순간 환자의 죽음은 두 사람 모두의 공동 책임이 된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목숨.

의사가 된 후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신념이었다.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김광석은 도수의 눈을 응시했다.

“부탁하지. 난 정확이 어딜 절제해야 할지 감도 안 와. 그러니 자네가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해.”

“그러죠.”

도수는 메스를 넘겼다.

자리를 바꾼 두 사람.

‘제발 한 번만.’

샤아아아아아.

도수의 투시 능력이 발현됐다.

그리고 희미하게 절개해야 할 경계선이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오른쪽…….”

김광석의 메스 끝이 도수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0.2㎜ 정도만 아래로.”

미세하다.

“아니, 0.1㎜만 위로요.”

김광석의 메스가 다시 움직였다.

“아래, 조금 더, 조금… 거기!”

딱.

멈춘 김광석의 메스.

“헉, 헉…….”

도수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경계점을 잡은 그는 희미한 시야로 메스가 가야할 길을 노려보며 말했다.

“거기서부터 지금 방향대로 3㎝를 절제하시면 됩니다.”

김광석은 메스를 내리그었다.

혈관들을 피해 폐엽만 잘려 나가는 기적적인 상황.

김광석은 도수를 걱정할 정신도, 정확한 경계를 절제하고 있는 기쁨을 누릴 정신도 없이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잘하고 있는 건가?’

무시무시한 공포.

장님이 된 채로 수술하는 기분이었다.

“이리게이션.”

촤악!“

“석션.”

슈아아아아악!

안쪽이 깨끗하게 비워지자 메스가 자르고 들어간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도수가 말했다.

“2㎝만 옆으로… 스톱!”

이번에도 잘 멈춘 메스.

“15도만 트세요.”

다행히 김광석은 훌륭한 서전답게 각도기로 잰 듯 메스를 움직였다.

“다시 3㎝ 절제하시면…….”

휘청!

도수가 수술대를 잡으려다 말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콰당……!

“닥터!”

의료진이 놀라 외쳤다.

김광석도 당황하긴 매한가지였으나 그는 환자에게 온 신경을 쏟았다.

‘살려낸다!’

위로 3㎝ 움직이는 메스.

이번에는 도수의 정지신호를 바랄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이미 꼭짓점이 모두 맞춰졌기에, 김광석은 깔끔하게 폐엽을 절제할 수 있었다.

텅!

폐엽을 쟁반 위에 떼어놓은 김광석은 어쩔 줄 모르는 의료진들을 향해 말했다.

“마무리는 내가 직접 합니다. 저 닥터 리를 병실로 데려가서 안정을 취하게 해요. 수술 마무리되는 대로 금방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닥터.”

의료진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어려운 작업은 모두 끝낸 김광석은 수술방을 떠나는 도수의 뒷모습을 흘깃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체 어떻게 된 녀석인지…….’

환자가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도수는 기꺼이 칼자루를 넘겨줬고 쓰러지는 순간까지 환자의 상태를 신경 썼다. 여기서 확실해진 건 도수 역시 개인의 욕심보단 환자의 회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김광석은 봉합한 실을 자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장군. 제발 기사회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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