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폭풍전야
늦은 시간.
할리 무어에게 불려간 김광석은 자다 일어나 퉁퉁 부은 눈을 부릅떴다.
“암이요?”
“그렇소.”
“확실한 겁니까?”
“오늘 아침,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소.”
“…….”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단다.
그럼 오진일 리는 없다는 뜻.
김광석은 몇 번 입을 더듬다가 어렵게 물었다.
“몇 기랍니까?”
“4기라고 하더군.”
“병명은요?”
“진행성 비소세포폐암이란 병을 아시오?”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4기면 생존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병원에서도 수술을 단념했을 것이다.
“…….”
김광석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할리 무어가 입을 열었다.
“괜찮소. 나이도 있고… 어차피 우리야 죽음을 각오하고 사는 사람들이니. 하지만 내가 흔들리는 건, 살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오.”
살 가능성이라니?
김광석의 눈이 커졌다.
“4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소.”
“병변 부위가 아무리 좋아도 그 정도 진행도면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극히 드물 텐데… 검사사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할리 무어는 검사 사진을 건네주었다.
그걸 본 김광석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날 살릴 수 있겠습니까?”
“…….”
사진을 돌려준 김광석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저 아닌 누구라도 손을 대기 힘들 겁니다.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 권위자가 온다 해도 손대지 못할 확률이 큽니다.”
“그렇구려.”
할리 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만한 권위자를 찾아서 만날 때까지 버틸 수도 없는 상황.
고개를 주억거린 할리 무어가 덧붙였다.
“그런데, 성공을 자신하는 사람이 있더이다.”
“성공을 자신한다고요? 그게 누굽니까?”
“이도수.”
“…예?”
김광석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이도수, 그 친구가 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소.”
할리 무어가 다시 확인시켜 주자 김광석이 진지하게 말했다.
“장군.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얘기해 보시오.”
“이건 심막에 고인 피를 빼내는 것과 차원이 다른 수술입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많은 케이스를 경험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수술을 한 적은 없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 무리해서 수술을 강행했다가 지금 남겨진 시간마저 잃으실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는 게…….”
“그래서.”
할리 무어가 말을 잘랐다.
“닥터 킴이 수술 방에 함께 들어와 줬으면 합니다.”
“제가요?”
김광석은 일순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말 죄송한 얘기지만… 제가 담당의라면 전 수술을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인 제가 집도의가 될 순 없겠지요. 항암치료를 하면서 시간을 버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시는 게…….”
“닥터 킴에게 집도를 맡기려는 게 아닙니다. 수술 과정을 확인하고 수술 내내 훌륭한 솜씨로 도와달라는 뜻이오.”
“……!”
김광석의 손을 맞잡은 할리 무어가 덧붙였다.
“수술 집도는 이도수. 그 친구가 하게 될 겁니다.”
***
철컹!
기적처럼 유치장 문이 열렸다.
도수는 거울에 얼굴을 비춰봤다.
거뭇거뭇하게 자란 수염, 짙은 눈썹이 조각 같은 이목구비와 어우러져서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샤워를 좀 하고 싶은데요.”
“팔자 좋군.”
까칠하게 대답한 군인이 그를 샤워 부스로 안내했다.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몇 없으니 당연한 대우였다.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라는 지시를 받았겠지만, 군인이 보기에 도수는 꼼짝없는 죄인이자 골칫덩이일 것이다.
도수는 개의치 않고 면도를 하고 목욕재계를 한 뒤 깔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느새 부스 밖에는 바실 프롬리 상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물이 훤해졌군. 따라오게.”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뒤따라 갔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의무대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둔 수술 방 앞이었다.
“결국 사고를 쳤군.”
김광석이었다. 그는 이미 수술복을 입고 있었다.
“잘 어울리시네요.”
도수가 빙그레 웃자 김광석이 가시 돋친 한마디를 뱉었다.
“설마 널 어시스트하게 될 줄은 몰랐다.”
“든든합니다.”
도수가 태연하게 말했고.
김광석이 물었다.
“어떤 수술을 할 생각이지?”
“명칭 같은 건 모릅니다. 암이 퍼진 부위를 절제해야죠.”
“그걸 몰라서 묻겠나? 병원에서 이미 수술을 포기한 환자야. 절제부위는 어떻게 정할 셈이지?”
“약을 써서 치료할 수 있는 부분은 남겨두고 정도가 심한 경계선을 절제할 겁니다.”
“그걸 어떻게 구분하지?”
종양 위치는 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심한 농도까진 검사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썩은 사과처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절제해야 할지 경계선을 정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의사들이 선택하는 방법이 대략적 절제.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할리 무어 장군은 폐가 거의 남지 않아 사망할 터였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감이라고 해두죠.”
“미치겠군.”
김광석은 머리가 핑 돌았다.
이 미친놈이 환자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방법이라도 있나 했더니… 환자 목숨을 걸고 도박이라도 할 셈이야?”
“말이 심하군요.”
도수는 손을 닦으며 덧붙였다.
“이 수술에서 집도의는 접니다. 어떤 의구심도 갖지 말고 제 지시에 따르세요.”
“살인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을 손 놓고 지켜보라고?”
“장군이 잘못되면 전 더 엄중한 처벌을 받겠죠. 그리고 제가 수술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건 닥터 킴도 아실 텐데요.”
“성공을 확신하나?”
“물론입니다.”
“최악의 최악까지 생각해야 하는 게 의사야.”
“1퍼센트의 확률만 있어도 최선을 다하는 게 의사죠.”
그리 말한 도수가 몸을 돌렸다. 수술실을 향해 걸어가던 그는 이내 걸음을 멈추고 짤막하게 덧붙였다.
“이미 결정 난 사항입니다. 집도의와 환자를 믿으세요. 만약 그게 힘들다면 수술실에 발을 들이지 마십시오.”
그러더니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
으득.
이를 악문 김광석은 마스크를 고쳐 쓴 뒤 수술실로 따라갔다.
***
수술실 안.
의료진들이 도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빛까진 미처 숨기지 못했지만.
‘뭐야?’
‘대단한 권위자라더니… 저런 애송이가?’
물론 도수는 개의치 않았다.
“환자 상태는요?”
“…혈압 125에 77입니다. 안정적이에요.”
할리 무어 장군은 깊게 잠들어 있었다.
김광석이 맞은편에 서자, 도수의 입이 열렸다.
“오늘 수술은 스피드가 관건입니다. 왼쪽, 오른쪽 옆구리를 다 열고 양쪽에서 폐엽을 하나씩 절제할 겁니다. 4, 5번 갈비뼈를 자르고 들어가죠.”
빈틈없는 성격 덕분인지 지시하는 모습이 제법 능숙했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집도의.
사정을 모르는 의료진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 한 사람, 김광석만 빼고.
도수는 김광석의 눈을 응시했다.
“대답은요?”
“…….”
시선을 맞추고 있던 김광석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도수가 말했다.
“칼.”
메스(Mes: 외과 수술, 해부에 사용하는 작은 칼)를 가리키는 것이다.
통칭 메스를 부르는 명칭은 의사마다 다 달랐다. 그냥 메스, 칼, 블레이드라고 부르는 의사도 있었다.
턱.
메스를 건네는 간호사.
그녀에게는 눈길도 안 주고 환자를 내려다보는 도수의 눈이 빛을 품었다.
샤아아아아아.
반투명하게 변하는 할리 무어 장군의 신체. 그 안에 혈관과 장기들이 생생하게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