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이도수
현장에 나타난 소년.
이도수는 메스 날을 노려봤다.
그 순간 두 눈이 번뜩였다.
샤아아아아아.
살갗을 파고든 메스 끝에서부터 모세혈관들이 퍼져 나가며 비치기 시작했다. 마치 컴퓨터 회로를 반투명으로 그린 듯한 형상.
도수의 입이 열렸다.
“절개 부위는 이렇게…….”
중얼중얼.
그의 메스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주욱!
칼날을 따라 살결이 갈라졌다.
그 와중에 모세혈관이 몇 가닥 끊겼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한 가닥의 혈관도 끊어먹지 않고 절개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메스에 달린 칼날은 작고 예리했지만, 모세혈관까지 모두 피해 가기에는 너무 크다.
투두둑……!
혈관들이 잘려 나가는 소리.
청각이 아무리 발달한 사람이라도 듣기 힘든 그 소리가 고막을 간지럽힌다.
그러나 도수에게는 익숙한 소리였다.
“후우.”
혈관이 잘린 자리로 피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출혈(出血)이다.
대부분의 부상자가 죽는 원인.
고작해야 모세혈관이 손상된 것뿐이지만 출혈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사람 몸의 피는 4.5리터가량.
그중 3분의 1인 1.5리터가량이 빠지면 환자는 사망한다.
우유팩에 바늘구멍을 내고 빈각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그 시간이면 환자는 사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수는 수술에 속도를 붙였다.
겨드랑이 밑에서부터 옆구리 아래까지.
방금 절개한 부위에 거침없이 손가락을 집어넣고 양손으로 확 벌린 것이다.
쩌억!
피부가 가진 탄력 때문에 손에 압박이 왔다. 벌어진 절개 부위가 스스로 닫히려 발광을 하는 것이다. 도수는 손가락이 부러질 것처럼 경직됐지만 참고, 외쳤다.
“집게!”
그를 멍하니 보고 있던 병사 한 명이 얼음물을 뒤집어 쓴 듯 화들짝 놀랐다.
“이게 뭐…….”
“빨리!”
뾰족한 외침.
병사는 두리번거리며 김광석을 찾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이 사람 죽이고 싶어?”
도수가 물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
감히 사람 목숨의 무게를 짊어질 엄두를 못 낸 병사는 망설이던 끝에 움직였다. 도수의 허리춤에서 집게를 꺼낸 것이다.
“고정시켜.”
건방진 말투.
그러나 병사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멀리서 김광석이 뭐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는 덜덜 떨며 환자의 절개 부위를 고정시켰다. 단순히 고정시키는 것만으로도, 기존에 보던 것과 달리 땀이 뻘뻘 났다.
“좀 더 벌려.”
침착한 도수의 한마디.
병사가 집게를 쥔 손에 힘을 가하자.
“거기!”
도수가 외쳤다.
손을 멈춘 병사.
“후.”
도수는 소매로 땀을 닦았다.
딱 시야 확보가 잘될 만큼 옆구리가 오픈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안쪽은 온통 피로 물들어있었다.
이리게이션(Irrigation: 세척)도, 석션(Suction: 흡인)도 불가능한 상태. 최대한의 시야 확보가 이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늘상 있는 일이었기에, 도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번쩍!
눈이 빛나고.
샤아아아아아.
그의 시야로 다른 어떤 누구도 볼 수 없는 광경이 떠올랐다.
혈관들과 심막, 그 안에 뛰고 있는 심장까지 반투명하게 투시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절개할 때보다 훨씬 더 집중력을 소모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피곤해.’
마치 출혈처럼.
체력이 물 쓰듯 빠져나가고 있었다.
더 집중할수록 투시력은 강해지지만, 이처럼 체력의 소모도 커진다.
도수는 서둘렀다.
서걱, 서걱!
심막이 잘려 나갔다.
동시에,
심막에 고여 있던 피가 빠진다.
심장을 압박하고 있던 원인이 제거된 것이다.
이제 한 고비.
봉합만 잘 되면, 환자는 산다.
‘봉합.’
도수는 집게를 꺼냈던 허리춤에서 실과 바늘을 꺼냈다. 그 후 정교한 손놀림으로 심막을 꿰매는 게 아닌가?
“아……!”
병사가 신음을 흘렸다.
너무 놀라서 어떤 소감도 형언할 수 없는 것이다.
그사이 심막을 모두 꿰맨 도수는 집게를 잡아 환자의 몸속에서 빼냈다.
“제법이야.”
미소 지은 도수가 옆구리를 봉합했다.
자칫 잘못하면 환자를 즉사시킬 수도 있는 심장. 그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심막도 꿰매는 마당에, 살을 꿰매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제야,
두 사람은 중년 의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김광석.
한달음에 달려온 그가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환자 가슴이 열린 상태라 차마 말릴 수 없었다. 눈앞의 소년이 큰 실수라도 하면 환자 목숨은 그대로 요단강을 건널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아직 20살도 안 되어 보이는 녀석이 환자 왼팔의 총상 외에 심장압전(Cardiac temponade)을 찾아내고 척척 수술해 버렸다.
민간인, 그것도 동양인의 외모.
정신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김광석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자넨 누군가?”
***
“이도수.”
“……?”
김광석은 귀를 의심했다.
한국말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한국인인가?”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나 말고 한국인 의사가 또 있단 말은 못 들어봤는데…….”
“의사 아닌데요.”
“뭐?”
“전 난민이에요.”
“……!”
김광석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 잠깐. 난민 캠프에 살고 있는 그 난민이라고?”
도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광석은 기가 막혀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의사도 아닌 자가 어떻게…….”
총상 환자에게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심장압전을 찾아냈다. 의사라도 검사가 필요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것도 수술까지 하고.
“…….”
물어볼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할 말을 잃은 그에게,
도수가 말했다.
“일단 이 사람부터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수술 중에 출혈이 많았다. 부득이하게 야외에서 수술했으니 감염 문제도 있을 것이다.
환자에게는 수혈과 안정이 필요했다.
고개를 끄덕인 김광석이 넋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병사에게 말했다.
“사람을 좀 불러오게.”
“…예.”
병사가 건물 안을 떠나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김광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본인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고 있나?”
“사람을 살렸죠.”
당당한 태도.
김광석은 헛바람을 뱉었다.
“자네는 지금 환자 가슴을 열었어. 의사 자격도 없는 사람이.”
“제가 증상을 얘기했다고 믿었을까요? 의사 자격도 없는데.”
“…….”
도수가 말을 이었다.
“겉보기엔 그냥 총상 환자였어요.”
김광석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총상 환자로 분류해 처치한 의료진의 실수다. 하지만…….
“심장압전을 어떻게 찾아냈지? 의사들도 검사 없이 찾아내기 힘든 걸.”
“점점 숨이 차고 창백해졌어요. 가슴을 움켜잡고 괴로워했고요. 옷을 찢으니 명치 쪽에 시커먼 멍이 보였죠.”
“단지 그걸로……?”
“네. 열어보면 정확해지니까요.”
“미친 소리!”
김광석은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자가 죽을 수도 있었어!”
“저 아니었으면 그렇게 됐겠죠.”
도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쏘아보며 대치하고 있던 그때.
불현 듯 UN군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닥터! 어떻게 된 겁니까?”
현장지휘관이었다.
김광석은 도수에게서 눈을 뗐다.
“여기 이 친구가 멋대로 수술했네. 일단… 환자는 살려놨어.”
“아.”
현장지휘관이 도수를 일별하더니 물었다.
“의료진이 아닙니까?”
“그렇네.”
“모르시는 분이고요?”
“처음 봤네.”
확인을 마친 지휘관은 도수를 턱짓했다.
“연행해.”
군인 둘이 다가가 포승줄을 묶었다.
도수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손을 뒤로 빼줬다.
“수술이 끝났다고 해도 저 사람은 치료가 필요해요.”
“자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현장지휘관은 까칠했다.
그는 이어서 병사들에게 말했다.
“저항하거나 도주 시 발포해도 좋다.”
“옛썰.”
도수가 피식 웃었다.
“살려줘도 지랄이구만.”
이번에도 한국말.
따라서 김광석만 알아들었다. 그는, 꽁꽁 묶여 지나쳐 가는 도수를 향해 당부했다.
“자중하는 게 좋을 거야.”
나름 걱정해서 한 말인데.
도수는 뒤돌아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본인이나 신경 쓰시죠.”
등 뒤로 묶인 손.
가운데 손가락이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