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르트-58화 (58/60)

■ 제58장 계략 □

"전하……."

새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바로 이때 하는 말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찰트는 고작 하룻밤 만에 신수가 훤해진 이안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왜 그러나, 찰트 경?"

"전하, 물론 국사를 다루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잠시 시간을 둬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제왕의 국혼입니다. 며칠 푹 쉬고 나오는 것이 어떠십니까?"

"하하하! 괜찮아. 왕비께서도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긴 하셨으니까 말이야."

그때, 이안이 대전을 스윽 둘러보더니 침묵해 있는 레더린을 바라보았다.

"레더린 공작,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레더린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전하. 소신은 전하의 국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음……. 뭐, 공작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겠지."

이안은 레더린에게 무언가가 있는 것은 같았지만, 자신이 상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로이니스와 관계된 일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 모든 신하들은 들어라."

이안의 눈동자가 대전에 모인 이들의 얼굴을 훑었다.

"예, 전하∼."

그들이 한결같이 대답하자 이안은 흡족한 듯이 입을 열었다.

"우리 라인하르트 왕국은 과거 22년 전에 멸망했던 대제국을 재건한 국가이다. 그 이념과 사상은 과거 대제국을 따르고 있다. 본국은 건국기념일이 1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국가에 불과하지만, 대륙 그 어디에도 우리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국가는 없다고 짐은 생각한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모든 것은 안정되어 가고 있고, 국민들, 귀족들 그 누구도 불만이 없는 국가의 밑바탕도 만들어졌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새로 유입될 국민의 수와 땅이다."

현 라인하르트 왕국의 크기는 고작 공국의 크기에 비견될 정도로 아주 작았다. 물론, 공국이란 웬만한 영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한 크기지만 타 왕국보다는 작았다.

"그래서 짐은 선포한다. 오늘 이 시간부로 본국은 전시상태로 돌아가며 대제국을 멸망시켰던 프라스 제국을 시작으로 영토 확장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

이안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귀족들 그 누구의 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그들 또한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그 누구도 이안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라인하르트 왕국은 엄연히 왕권이 강한 곳이다. 귀족들이 함부로 입을 열 만한 곳이 아니었다.

"본국은 전쟁으로 수많은 나라를 흡수하여 제국으로 변화하여 만년대국이 될 수 있는 초석을 만들 것이다. 앞으로 군사를 모집하고, 군사들의 사기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사들의 훈련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각자 생각해 둬야 할 것이다."

"예, 전하."

이안의 입에서 나온 말이 그대로 대륙에 공포되자, 대륙의 모든 나라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펠타온 제국과도 두터운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라인하르트 왕국의 도약이 그들에게는 두려움의 존재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안은 군사들의 힘을 몇 배로 증강시키기 위해서 바로 마나호흡법인 삼재심법을 가르쳐 주고, 보법인 삼재보 등을 가르치며 군사들의 힘을 키워 갔다. 뿐만 아니라, 마법 훈련시설까지 차려 군사들에게 환상이지만 실제 같은 전장의 모습을 보여 주며 그들의 사기를 올릴 방법을 여러 가지 생각해 내었다.

그리고 기사들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 무엇보다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중력을 1.5배 올려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오래되면 뼈가 손상되어 자칫하면 나이가 들어서 그대로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 하루에 1시간 이상 사용은 불가능했다. 하나 고작 1시간이라 해도 기사들이 수련을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마가 님."

이안은 오랜만에 드워프 일족을 찾았다.

드워프 일족과 이안의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기에 그들은 이안을 반겼다.

"오, 인간 대표 왔는가!"

이제는 그들이 사는 산맥에 몬스터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광산이나 여러 가지 활동에 지장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가가 직접 목책을 열어 주었다.

"어쩐 일인가? 아! 그렇지. 내 귀는 열고 살았기 때문에 자네가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말은 들었네. 축하하네! 인간들 세상에서 쉽지 않은 일이라 들었는데……."

"감사합니다."

"으하하! 반가운 사람이 왔으니 맥주라도 한잔해야지. 어서 맥주 통을 열어라. 오늘 거하게 마셔야겠다."

마가는 숨김없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안은 드워프 일족만큼 자유스러운 일족을 본 적이 없었다.

마가의 아담한 집에 도착하자 이안이 입을 열었다.

"마가 님, 사실 오늘은 부탁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음? 부탁할 일이라니?"

이안이 진지한 투로 입을 열었다.

"사실 본국에는 타국과는 다르게 위상을 드높일 이름 있는 기사단이나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일 영웅이 될 만한 기사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기사단이라니? 전쟁을 준비하는 겐가?"

"그렇습니다."

"전쟁이라면 우린 정말 지긋지긋하다네. 대체 인간은 왜 조화를 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려고만 드는 겐가?"

"그게 바로 인간입니다. 그 인간을 통솔하는 것이 바로 왕이라는 것인데, 왕에게 욕심과 야망이 없으면 그건 왕이 아니라 일개 겁쟁이에 불과합니다."

"자네는 겁쟁이가 되기 싫어서 야망과 욕심을 가졌나?"

"그건 아닙니다. 왕은 인간을 통솔하지만, 그 인간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제 백성들이 전쟁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본국의 강한 힘을 원하는 것은 맞습니다."

마가의 입이 묘하게 올라갔다.

"강한 힘을 가지고 싶으나 전쟁을 원하진 않는다? 어쩐지 모순 같군."

"인간에게 모순 같은 면이 없었다면 지금 대륙을 통제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가 되었을 겁니다."

"짧은 생을 살지만, 무엇보다 많은 걸 느끼게 해 줄 인간의 특권이라……."

마가는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대표가 원하니 연구해 보겠네. 전체적으로 원하는 것은 어떠한 건가?"

이안은 씨익 웃었다.

"어떤 검에도, 창에도 뚫리지 않을 방패와 갑옷이 필요합니다."

"강도는?"

"마나의 힘에도 손상이 가지 않는 최강의 강도로!"

마가는 갑자기 고민하기 시작했다.

"꽤나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 작업이 될 걸세."

"대륙을 평정하는 것보다는 빠를 테죠."

"그렇군! 하하핫! 역시 인간은 농담도 심하군. 맞네, 맞아! 마나의 힘으로 파괴되지 않는 갑옷과 방패라니! 오늘부터 정말 바쁘게 움직일 것 같아."

"감사합니다, 마가 님."

"어차피 우리도 원하는 것이 있으니 도와주는 것이 아닌 가. 앞으로도 도울 게 있으면 말해 주게. 도와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니까."

"그럼 완성된다면 불러 주십시오."

"알겠네. 아? 인간 대표, 벌써 가는 건가?"

마가는 반가운 손님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하핫! 인간 대표이다 보니 여전히 바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군……. 어쨌든 몸조심하게."

대륙에서 이안을 위협할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드워프는 그를 걱정했다.

"마가 님도 그때까지 몸조심하십시오."

이안은 드워프와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사라졌다.

* * *

공국 크기의 작은 나라인 라인하르트 왕국.

하지만 실세는 강한 나라다.

총 인구 수가 500만을 돌파하면서, 점차 왕국의 때를 조금씩 벗어 가고 있었다.

이안은 가을이 되자, 5만의 군대를 이끌고 프라스 왕국의 전선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프라스 왕국은 힘을 잃은 지가 오래되어 귀족들은 나라를 지키기보다는 몸을 내빼기에 바빴다. 정말 충신이라고 남은 귀족들도 나라에 모든 것을 바치느라 군사도, 재력도 그 아무것도 남지 않고 오로지 귀족이라는 작위 하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국민들은 전쟁의 피해로 기아가 발생하거나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프라스 왕국은 더 이상 대륙을 위협하던 커다란 나라가 아니었다.

이빨마저 빠져 버린 늙은 호랑이.

프라스 왕국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라나이드 국왕은 헤디온 왕자를 데리고 국외로 피신했다.

하지만 국외로 피신한다고 한들 그들을 받아 줄 나라 따위는 있지 않았다. 라인하르트 왕국의 보복이 두려워서였다.

그들이 도망간 순간 프라스 왕국은 이미 지도자를 잃은 나라에 불과했다.

프라스 왕국 사람들은 국왕과 왕자를 맹비난했다.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 버린 한심한 제왕이라니!'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도자를 잃은 프라스 왕국은 이미 거의 항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프라스 왕국을 이안이 흡수하자 제법 왕국 티가 나는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왕국 중에서도 상당히 커다란 대왕국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지경이었다.

이안이 프라스 왕국을 흡수하고 제일 먼저 선보인 정책은 바로 흑마법사와 네크로맨서를 국외로 추방하고, 모든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점차 많은 평민들로 하여금 인재를 얻기 위해 아카데미를 설립, 국립으로써 평민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대륙의 모든 자들은 그런 라인하르트 왕국 정책에 놀란 감이 있었다. 제일 놀란 것은 바로 계급사회를 무너트리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평민 아카데미 설립이었다. 단순히 관리나 비서 따위가 아니라 마법사와 기사들까지 될 수 있는 아카데미.

이안은 남작 이상, 즉 영지민 수가 1만이 넘는 곳 전부에 아카데미를 한 곳씩 설립하도록 강제적으로 요구했다.

물론, 처음에는 귀족들의 반발이 심하기는 했지만 라인하르트 왕국이 워낙 왕권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귀족들의 아우성도 점차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안은 제일 낮은 준남작 자리를 평민들에게 허락하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준남작도 하나의 귀족이나 다름이 없건만, 평민들로 하여금 그 귀족의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하다니!

하지만 준남작의 자리는 자유도시의 시장으로 선거를 통해 되거나 전쟁으로 수많은 공을 세웠을 때, 마지막으로 기사나 마법사나 행정관리가 되었을 때였다.

이안의 생각은 아주 대단했다.

준남작의 자리가 많아지다 보면 귀족들도 평민들이 얼마나 강해지는지 뼈저리게 느낄 계기가 될 것이다.

점차 그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귀족들은 더 이상 콧대 높게는 살지 못할 터.

이안은 귀족들의 콧대 높은 생활에 불만이 많은 왕이었다.

"라인하르트 왕국은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

이안의 생각에서 나온 것은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변해 가기 시작했다.

점차 수많은 평민들이 라인하르트 왕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온 이방인들에게 이안은 땅과 집을 내주었다.

그리고 이안의 두 번째 영토 확장 전쟁이 시작되었다.

"연합국이라니? 그게 뜬금없이 무슨 소리지?"

이안의 말에 찰트가 고개를 숙였다.

"전하! 현재 본국의 성장을 두려워한 나라들이 연합국을 생성하여 본국에 대응하는 듯싶습니다."

"뭣이? 이런! 예상은 했지만 설마 벌써부터 연합국을 만들 줄이야. 그래, 어떤 나라가 붙었지?"

"공식적인 연합국 이름은 디오그라프입니다. 리오프, 디오, 단테스입니다."

"전력은?"

찰트는 잠시 숨을 돌리고 얘기했다.

"세 나라 합쳐 50만 대군입니다."

50만 대군이란다. 라인하르트 왕국이 프라스 왕국을 흡수하면서 대왕국으로 성장했지만, 50만에 대응할 만한 숫자의 군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본국의 병사는 약 20만입니다. 그것도 수도권 수비 병력과 전선 수비 병력을 합친 숫자입니다. 그것마저 제외한다면 15만 정도일 겁니다."

"군사의 수는 중요한 게 아니야."

이안은 짧게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본국은 지금껏 군사 수로 싸워 온 적이 없어. 프라스 제국을 무너트릴 때도 고작 4만부터 시작했을 뿐."

"맞습니다. 그리고 본국의 군사 15만 전부는 전하의 호흡법과 보법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사들은 오러에도 뚫리지 않을 철갑부대를 만들었으며 이 전쟁을 수년간 준비해 왔습니다. 정예병으로 구성된 본국이 50만 군대에 밀릴 일은 없습니다."

라인하르트 왕국이 재건된 지 벌써 4년이 지나가는 일이다.

이안의 나이는 어느덧 스물다섯을 달리고 있었다.

"좋아! 디오그라프든 뭐든 간에 한순간에 밀어버려야겠어."

"전하, 디오그라프 연합국의 50만 대군의 총사령관이 누군지는 아십니까?"

"그대가 얘기해 줘야 하지 않나?"

"멸망한 프라스 제국의 황자였던 헤디온입니다. 현재는 디오그라프 연합국의 백작의 작위로서 자살한 아버지의 유지를 받아 총사령관이 된 듯합니다."

"자살?"

그러고 보니 그런 듯했다.

나라가 멸망하자 그라나이드 황제는 그에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기억하고 있다.

"감히 본국에 대응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연합국이라 해도 이번에 완전 전선을 밀어버려야겠군."

"이번 디오그라프 전선만 뚫을 수 있다면 본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 제국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펠타온 제국의 힘을 더 이상 빌리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이안은 잠시 고심했다.

"펠타온 제국이라……. 지금 당장은 필요한 나라이지. 반드시 필요한 나라다. 하지만 펠타온의 위상을 꺾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찰트가 고개를 숙였다.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할 전하의 모습을 기대하겠사옵니다."

"당신 오셨나요?"

세리아 왕비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세리아 왕비의 등 뒤에서 작은 꼬마 아이가 하나 튀어나왔다.

"아, 아바마마!"

이안이 그 아이를 보자 웃음꽃을 피웠다. 그 아이는 이안에게 달려와 안겼다.

"그래! 우리 나르시안이 아니냐? 어이구, 이놈! 며칠 안 본 사이에 기골이 아주 장대한 것이 틀림없는 장군감이다!"

"호호호! 우리 나르시안은 틀림없이 제국의 황제가 될 거예요. 그것도 아주 훌륭한."

"왕비의 말이 맞소이다."

이안과 세리아는 처음에는 친구와도 같은 어조로 말을 했지만 몇 년이 지나고 대왕국으로 성장하자 자연스레 하대는 없어지고 서로 존중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대화는 어색하지 않았다.

"둘째 아이는 어떠하오?"

이안이 세리아의 배를 바라보았다. 세리아는 만삭이 되었기 때문에 허투루 움직이지도 않았다.

"호호! 몇 시간 전만 해도 발로 배를 찼답니다."

"출산 예정일이 며칠이었지?"

"2달 후요!"

"우웅! 아바마마."

그때, 이안의 관심을 받지 못한 나르시안이 삐쳐서는 이안에게서 세리아에게 도망갔다.

"하하하! 이놈. 아비는 너 또한 아주 사랑한단다. 너 또한 네 동생을 아끼고 보살펴 주어야 할 것이야. 알겠느냐?"

"알았어요, 아바마마! 꼭 훌륭한 황제, 장군이 되어서 제 동생을 지켜 줄 거예요."

"하하하! 사나이라면 약속을 지킬 줄 알아야지."

이안은 그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이안에게 있어 나라만큼 소중한 것은 가족이었다.

* * *

"라인하르트 왕국의 침공선공이 있었소. 우리 디오그라프는 적국에 맞서 강력한 방어전선을 만들어야 하오."

도반 백작의 말에 귀족들이 수긍했다.

지금껏 라인하르트 왕국에 침공을 당한 프라스 제국은 방어전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끝났다.

하지만 이미 당해 본 헤디온 황자, 아니 백작은 달랐다.

"내 생각은 다르오. 지금껏 수많은 군대가 방어전선을 이끌어 냈지만 최강의 대륙십강이라던 킹 제레브의 아성도 라인하르트 왕에게 깨어졌소. 우리의 군대는 50만이오! 뭐가 아쉬워서 고작 15만 밖에 안 되는 군대를 두려워해야 한단 말이오?"

몇몇 귀족들 또한 헤디온 백작의 말에 수긍했다.

하지만 그에 번복할 수밖에 없는 귀족들도 있었다.

"하지만 적의 15만 군대는 깨어진 적이 없는 무적의 군대요. 또한 본국을 치기 위해 수년을 준비해 왔소. 우리는 고작 급조된 군대에 불과하단 말이오. 이미 수많은 거친 훈련을 가져온 라인하르트 왕국의 정예병들과 싸운다면 이긴다고 해도 엄청난 손실이 있을 거요. 그들의 허를 찌를 만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약점을 하나 잡아 내야 하오."

"약점? 약점이라니? 대체 약점이 뭐가 있단 말이오? 도반 백작의 말씀대로만 따지면 라인하르트 왕국은 펠타온 제국과도 맞붙을 수 있는 유일한 국가요. 그런 국가에게 약점이 어디 있을 것 같소?"

"내가 듣기로 라인하르트 왕국의 왕은 가족을 끔찍이 여긴다 들었소."

도반 백작의 의중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귀족은 한 명도 없었다.

더러운 수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쟁에 있어 가족을 인질삼아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처럼 손쉬운 일은 없었다.

과거 라인하르트 왕이 그러했다. 헤디온은 이안에게 맞았던 부위를 매만졌다.

'아버지가 자살한 이유는 전부 이안, 그 빌어먹을 왕 때문이다! 그놈만 죽인다면, 그놈만 죽인다면 아버지의 영전에 목을 가져다드릴 것이니라!'

헤디온 백작은 오늘 같은 날을 위해 자살할 결심을 버린 것이었다.

"그의 가족을 인질로 삼읍시다! 라인하르트 왕국에 심은 스파이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납치하시오! 물론 계획은 그 이안 왕이 없을 때 얘기요. 그는 킹 제레브도 이긴 고수이니, 자칫하면 경계심을 심어 줄지도 모르니 말이오."

도반 백작이 웃음을 지었다.

"이안 왕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할 만한 방법이 있소. 분명 그는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될 거요."

헤디온이 놀랐다.

"정말이오, 도반 백작?"

"물론이오!"

"그럼 도반 백작에게 그 일을 일임하겠소. 이 일이 성공만 한다면 백작은 큰 공헌을 한 것이 될 거요."

"우리에게 승리만을 바랄 뿐이오!"

"아침 일찍부터 어디 가시는 거예요?"

세리아의 표독스런 눈길에 이안이 몸을 사렸다.

"하하! 부인. 잠시 비밀리에 수도나 한 바퀴 돌아야 할 것 같소."

이안의 급 변명에 세리아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당신의 얼굴은 많이 알려진 거 몰라요? 그냥 여기 있어요!"

"아니 되오! 전쟁 준비로 인해 국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면 이 나라의 왕인 내가 나서야 하지 않겠소?"

"흐응……."

이안의 변명이 그럴싸했기에 세리아는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럼 몸조심하도록 해요. 찰트 재상에게 꼭 이미지 트랜스를 해서 평민처럼만 돌아다녀요, 평민처럼!"

"아, 알았소."

이안은 대표적인 공처가 중에 한 명이었다.

이안이 화제를 돌리기 위해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어보았다.

"헌데 나르시안이 보이지 않는구려. 나르시안은 어디 있는 거요?"

"오늘은 자기 방에서 잔답니다."

"원 녀석도……. 매일 엄마랑 같이 자겠다고 떼를 쓰더니 이제는 그러지 않는가 보오?"

"그 아이도 이제 3살이나 되었잖아요. 게다가 동생을 지켜야 된다고 어제부터 목검을 사 달라고 졸라요."

"하하! 3살이면 정말 어린 나이인데, 그 나이부터 수련을 쌓는다면 그랜드 마스터도 능히 가능할 듯하오."

이안이 웃자 세리아가 소리를 꽥 질렀다.

"안 돼요! 저와 합의 봤을 때는 그 아이를 마검사로 키운다고 하셨잖아요."

"마, 마검사는 서로 마나의 충돌 때문에 고 클래스와 높은 경지의 무공을 구사하는 건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소."

"흥! 그랜드 마스터인 당신과 4서클 마스터인 제가 있는데 뭐가 어렵겠어요?"

"끄응……."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두 개의 기운을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물론, 중원에도 그런 무공이 있긴 하지만 들어만 봤을 뿐 제대로 배워 본 적이나 청성파에는 그런 무공이 없었다.

'무공을 따로 창안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어디 무공 창안이 쉬운가?

과거 세리아의 영지에 있을 때도 한 번 시도했다가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지 않나?

그런데 심법 창안이라니! 몇 년이 걸린다 해도 이루기 힘든, 아니 평생을 들여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애처롭게 쳐다보는 세리아의 눈동자를 보니 이안의 마음도 눈 녹듯이 풀렸다.

"에휴∼ 알겠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마법사들과 심도 있게 연구를 해 보도록 하겠소."

"호호! 고마워요, 여보.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

"아쉬울 때만 사랑한다니……. 가끔 일할 때 찾아오도록 하시오. 나르시안과 너무 놀기만 하고, 조금은 섭섭하오."

이안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세리아는 이안의 팔을 때리며 눈웃음을 쳤다.

"호호! 알겠다니까요, 여보."

"……."

세리아가 갑자기 웃음을 지우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데 출병 날짜는 언제죠?"

"한 달 후가 될 것 같소."

"알았어요, 여보. 당신은 걱정 안 하지만, 병사들이나 수하들 좀 챙겨 주세요."

"물론이오! 당신 말이니 무엇이든 들어줘야지."

세리아는 활짝 웃었다.

그녀가 웃는다.

이안의 마음이 강하게 요동쳤다.

그도 웃었다.

그녀가 웃으면 자신도 기쁘다.

"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오, 부인."

"저도예요, 여보."

들썩!

갑자기 세리아의 배 속에 있던 아기가 배를 강하게 찼다.

배가 움직이는 것이 이안에게 보였다.

이안과 세리아는 동시에 배를 쳐다보며 웃었다.

"하하하!"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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