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르트-56화 (56/60)

■ 제56장 무신의 탄생! □

이안의 신형은 프라스 제국 황실 위에서 나타났다.

황궁에 워낙 강대한 마나 파장으로 텔레포트 마법을 방해하는 안티 매직 쉴드가 쳐져 있지만, 이안은 텔레포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손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서는 자연과 일체가 되며 곧바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여 황제의 침실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사실 이안에게 황제의 침실 따위 찾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한 무위를 지닌 인간이 여럿 분포되어 있는 곳만 집중적으로 노리다 보면 알 수 있다.

이안은 일부러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 당장 달려가면 로이니스를 내놓으라고 황실 안에서 깽판을 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분노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황제가 침소로 드는 순간 이안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니 곧바로 황제의 침소가 있는 꼭대기 층으로 순식간에 올라갔다.

* * *

하루 일과를 평소와 같이 보내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관에게 치료를 받은 그라나이드 황제.

그는 이제야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빠른 발걸음으로 침소에 들었다. 침소에 들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침대 속에 몸을 파묻었다.

'문제로다! 대체 어찌하면 그 애송이를…….'

대륙에 혜성처럼 나타나 폭풍 같은 기세를 내뿜으며 종횡무진 프라스 제국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로엔그람 후작.

고작 약소국의 귀족 하나가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선봉장에 세워 달라던 명망 높은 젊은 귀족들도 이안의 군대에 기세가 눌려 허리조차 펴지 못한 채 슬그머니 자신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필시 자신들을 선봉장으로 만들까 걱정하는 투로 말이다.

겁쟁이 밖에 존재하지 않고, 별다른 뾰족한 수도 없는 이때 그라나이드 황제는 정말이지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철컥!

한순간 창문이 열리더니 거센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라나이드 황제가 고개를 들어 창문을 확인하자 그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헉! 누, 누구냐!"

"반갑습니다, 프라스 제국 황제시여."

미청년이 씨익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웃음이 썩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어, 어찌 이곳에 들어온 것이더냐! 여봐라! 밖에 누구 없느냐?"

"……."

하지만 밖에서는 묵묵부답.

그때, 미청년의 입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소용없을 겁니다. 이미 이 방 안에는 무형의 막이 쳐져 있기 때문에 말이죠. 아! 그렇다고 천장이나 벽 속에 숨어 있는 호위 기사단을 불러 봤자 소용없다는 것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뭣이?"

그라나이드 황제의 눈이 커졌다.

천장과 벽 속에 숨어 있는 비밀 호위대의 정체를 이리도 쉽게 알아차리다니!

그리고 그들을 불러도 소용이 없다니?

황제는 그럴 리 없다는 생각에 그들을 불러냈다. 황제의 반지에는 통신용 마법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통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요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 어찌!"

"제법 실력 있는 기사단을 데리고 있더군요. 전원이 소드 마스터 중급이라! 아, 게다가 5서클 마법사 둘까지 섞여 있을 줄이야. 고생 좀 했습니다."

미청년은 정말 고생했다는 듯이 이마에 없는 땀을 훔쳐 냈다.

"자, 자네는 누구인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당신의 수하들이 데려간 숙녀 분의 기사이지요."

황제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그 얘기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가 바로 지금 본국을 위협하고 있는 그 청년이라는 얘기가 아니던가!

"로, 로엔그람 후작!"

미청년이 씨익 웃었다.

"후후! 그럼 위대하신 프라스 제국의 황제 폐하를 위협하여 숙녀 분의 위치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안이 로이니스의 위치를 모르는 이유는 있었다. 프라스 제국의 황제가 숨기려고만 한다면, 이안의 이목 정도는 손쉽게 피해 낼 수 있었다.

이미 프라스 제국 내에서는 귀중한 범인들이나 첩자들을 잡아다가 그런 곳에 집어넣기도 했다. 바로 고대 시절부터 존재하던 마법사들이 만들어 놓은 마나의 방!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곳이 프라스 제국 내에서는 몇 군데나 있었다.

"이놈! 감히 짐의 몸에 손이나 댈 수 있을 줄 아느냐!"

이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위아래를 훑었다. 하나 아무리 봐도 그가 이리 큰소리를 칠 만한 믿는 구석은 없는 듯해 보였다.

이안이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예식용 칼을 허공섭물로 띄워 놓고 그의 목에 대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 검이 날아다닌다! 마, 마법사인 것이냐?"

"제가 어딜 봐서 마법사라는 겁니까?"

마법사라면 응당 캐스팅이나 주문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 마법사도 아니다.

정령사? 하지만 이안의 모습에서 정령사 같은 신비한 기운이 풍기는 것도 아니었다.

무(無).

그렇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 숨 쉬어 마나를 들이고 마시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마나적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기한 몸이었다.

"헛소리는 그만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당장 내일 아침에 프라스 제국 황제가 살해당했다고 보도가 될지도 모르니까."

"네놈이 짐을 죽이고도 유유히 살아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이 황궁에 들어왔겠습니까? 그것도 혼자서!"

"흥! 어디 운이 좋아 안으로 들어왔을지 모르지만 황족들이 죽임을 당하면 그 순간 기사들이 짐의 침소로 들어올 것이다. 병사들 또한 하늘과 땅을 지키는데 어떤 식으로 나갈 것이더냐?"

"한번 기대해 봐도 좋겠군요."

이안은 예식용 칼을 정말 자신의 손으로 잡고는 그대로 그라나이드 황제를 향해 휘둘렀다.

싹둑!

그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거, 생각해 봤는데 말입니다. 황족이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딱 죽기 직전까지만 손을 써 놓는다면 그 누가 알겠습니까?"

"크흐흐! 그거 생각해 봤느냐? 내가 피해를 입는 순간, 내 몸에 새긴 마법진이 다른 마법진으로 타격을 주게 된다. 그 마법진이 어디에 있을까?"

그라나이드 황제의 웃음이 커질수록 이안의 얼굴에 새겨진 골은 깊어져만 갔다.

그 마법진이 바로 로이니스가 있는 곳이 아니겠는가!

'비겁한 새끼!'

"아! 내 머리카락이 잘렸으니 그녀의 머리카락은 또 어떻게 됐을지 참으로 기대가 되는군."

이안은 분노가 폭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 폐하! 이제 그만 하시지요."

"돌프만 후작! 룰브 공작과 벨턴 경도 있군."

그리고 열리는 방문.

그 셋은 이들의 대화를 모두 듣기라도 한 듯 보였다.

벨턴이 손을 살짝 내리자 갑자기 이안의 등 뒤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찍!"

갑자기 쥐새끼가 피를 뿜으며 죽었다.

'패밀리어!'

동물을 노예로 삼아 동물이 듣고 보는 것은 모두 주인이 알아낼 수 있는 마법이 흑마법사들에게는 전해지고 있었다.

아마도 패밀리어인 쥐를 통해서 들은 모양이었다.

'패밀리어가 죽으면 통상 흑마법사들은 괴로워한다고 들었건만 아무렇지도 않은 저 표정을 보니 상당한 고위 급 마법사임에 틀림이 없다!'

이안은 상황이 곤란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황제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돌프만? 룰브? 벨턴?'

어디선가 들어 봤음직한 말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안의 뇌를 스치는 기억들.

'대륙십강 고수들!'

이안은 이를 깨물었다.

"으득! 너희들이냐? 로이니스를 데려간 놈들이."

벨턴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크흐흐! 너 또한 그년이 있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철저히 죽여주마, 너희들을!"

돌프만 후작은 벨턴의 사악한 마법이 마음에 걸렸다.

"로엔그람 후작, 난 당신을 대륙십강의 고수로서 대할 것이오. 명예로운 죽음을 원한다면 그리하도록 돕겠소. 헛된 짓 하지 말고 이만 죽어 주시오."

벨턴은 돌프만 후작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미쳤나!! 본좌가 분명 저 애송이의 목숨을 끊는다고 했건만!"

"닥치시오! 사악한 흑마법 따위로 사람을 죽인다니. 저 사람의 영혼만큼은 구제함이 옳은 것 아니겠소? 저자가 아무리 어려도 대륙십강이오! 같은 대륙십강으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라면 최고의 예를 다해야 하는 게 바로 법도요!"

"흥! 법도 따위 누가 지었단 말이냐? 이미 난 흑마법을 전개했다. 게다가 한마디 더 지껄인다면 너 또한 죽여 버리겠다."

벨턴의 말에 돌프만 후작은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같은 대륙십강이라고 해도 위아래가 있으니 돌프만 후작은 벨턴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본디, 마법사가 마법을 전개하기 전이 바로 빈틈이라고는 하지만 벨턴만큼의 고위 급 마법사라면 그 거리 개념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허! 그만들 두게나. 황제 폐하께서 계시는 자리일세."

룰브 공작이 나서자 그 둘은 입을 쏙 다물었다.

'쩝! 프라스 제국에서 대륙십강을 둘이나 잃으니 타국에서 고수들을 영입해 왔군. 그나저나 흑마법이라니?'

이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자 벨턴이 히히거리며 웃었다.

"낄낄. 아가야. 그리 걱정할 건 없단다. 단순히 작은 마법에 불과하니 말이야! 헌데 혹시 흑마법의 성지인 '헬 필드'에 가 본 적이 있느냐?"

전설 속에서나 존재한다는 헬 필드!

마족들이 살아 숨 쉬며 마물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알려진 곳이 아닌가!

흑마법사들은 그곳에 가고 싶어 마족과의 계약도 일삼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껏 그곳에 도착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낄낄! 폐하는 이만 나가시지요."

"아, 알겠네!"

벨턴의 살기에 기가 죽은 그라나이드 황제는 서둘러 방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이안은 벨턴이 무엇을 하는지 갑자기 궁금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반탄강기와 호신강기로 몸을 둘러싸며 보호했다.

갑자기 벨턴이 손을 들어 올리더니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닌가.

그가 주문을 외우면 외울수록 방에는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어? 어?"

대륙십강들은 자리를 지켰지만, 벨턴의 마법에 이상함을 느낀 프라스 제국의 다섯 소드 마스터들은 흔들리는 방에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때, 벨턴의 두 눈에서 이채가 발산된다고 느꼈다.

"매스 텔레포트!"

그리고 그들의 신형은 모두 사라졌다.

* * *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마계!

이곳이 진정 마계란 말인가.

하늘은 평소에 보던 푸른 모습이 아니었다. 먹구름으로 드리워져 있는데다가 간간이 보이는 하늘은 붉은빛을 띠었다.

그리고 세상 전체가 어두침침했다.

이안의 내공이 마구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마공과도 비슷한 마기의 기운에 절로 반응하는 것이다.

"크흐흐! 어떻느냐, 헬 필드의 모습이."

벨턴의 말에 이안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로이니스는 어디 있느냐!"

"아아, 그 계집 말이냐? 글쎄?"

돌프만 후작과 룰브 공작도 헬 필드에 도착하자 놀라움을 토해 냈다.

"크흐흐! 왜 이곳을 '성지'라고 부르는 줄 아느냐?"

이안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벨턴이 크게 웃었다.

"크하하! 그건 나와 같은 흑마법사들에게 마기를 수배나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지."

"닥쳐라! 어서 로이니스를 내놓기나 하거라. 로이니스는 어디 있느냐?"

그때 돌프만 후작이 입을 열었다.

"황제한테 있을 것이오. 어차피 여기서 죽을 거라면 가르쳐 주는 게 좋을 듯싶군."

돌프만 후작은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속았군.'

이안은 로이니스가 여기 있을 거란 생각에 순전히 따라온 것뿐이지, 마법이나 구경하자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그년은 네놈이 죽으면 따로 보내 줄 터이니 그리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말거라!"

벨턴이 갑자기 손을 휘두르자 그의 양손에 헬 파이어가 소환되었다.

"죽어라! 애송이!"

헬 파이어 두 구가 이안을 향해 정확히 날아왔다. 중간계에서 리치가 사용했던 헬 파이어보다 1구나 많은데다가 이곳은 헬 필드였다.

헬 파이어는 환경에 맞게 점점 더 강하게 변화했다.

하지만 이안은 아주 담담했다.

벨턴과 돌프만 그 둘은 이안이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룰브 공작만큼은 달랐다.

이안은 룰브 공작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이안의 입 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룰브 공작은 그가 웃는 이유만큼은 알 수 없었다.

'내가 만약 저 상태였다면 최선을 다해서 헬 파이어를 피했을 것이다! 헌데 여유라니?'

그때 이안이 헬 파이어를 향해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무슨 짓을 하려고?'

푸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가락에서 푸른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앙!

그 빛은 헬 파이어의 중심부를 뚫었다. 그리고 헬 파이어가 강하게 폭발했다. 애초부터 두 구였던 헬 파이어였기 때문에 하나가 폭발하자 다른 하나도 연달아 폭발하기 시작했다.

쿠콰콰쾅!

엄청난 폭발이었다.

룰브 공작은 그 폭발력에 이안이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놀라운 일이었다.

'죽지 않았다?'

그 폭발에서 작은 막을 하나 생성해 헬 파이어의 폭발을 모두 막아 냈다. 몸에는 먼지 하나 묻지 않아 보였다.

먼저 공격을 가한 벨턴을 바라보던 이안의 얼굴이 변했다.

만상귀일신공을 펼친 것이다.

"칫! 죽지 않았군. 놈의 다리를 묶어라!"

그의 외침에 프라스 제국의 다섯 소드 마스터들이 움직였다. 각자 자신 있는 자세를 취하며 오러 블레이드가 넘실거리는 검과 함께 이안과의 거리를 좁혀 갔다.

"돕지 않을 건가?"

벨턴의 말에 돌프만 후작과 룰브 공작은 서로를 쳐다봤다.

룰브 공작은 잠시 후 벨턴을 보며 말했다.

"저자의 목숨은 자네가 걷기로 하지 않았나? 두고 보겠네."

"나 또한 그럴 것이오."

벨턴이 씨익 웃었다.

"낄낄! 저놈을 잡아다가 마법 재료로 쓰면 굉장할 거야. 후회나 하지 말라고!"

룰브 공작은 이안이 헬 파이어를 막아 낸 막과 그것을 뚫은 정체불명의 마나 탄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관찰하기 위해 룰브 공작은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저자를 잘 살펴보게, 돌프만 후작. 자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뚫을 수 있을 게야."

돌프만 후작은 최상급 소드 마스터였다. 그는 룰브 공작의 말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입니까?"

"저자는 이미 자네를 막고 있는 벽을 뚫었기 때문이지, 허허!"

"그, 그럼……."

돌프만 후작이 입을 다물었다.

이안의 경지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

이안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다섯 소드 마스터들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콰앙!

"크윽!"

한 명의 소드 마스터가 가슴에 주먹을 얻어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네 명의 소드 마스터는 이안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마구 휘둘렀다.

이안은 허공답보로 하늘 높이 뛰어오르더니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드 마스터들을 향해서 최심장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쾅쾅쾅!

"으아악!"

최심장은 지독한 독장이었다.

최심장에 맞은 소드 마스터들의 얼굴이 푸르스름하게 물들었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들이 면역력이 강하다고 해도 현경에 오른 자의 최심장을 버텨 낼 리는 만무했다.

'세상에!'

돌프만 후작은 다섯 소드 마스터들을 이리도 쉽게 이겨 버리는 이안의 행동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독에 중독된 소드 마스터들은 몸을 배배 꼬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그들의 몸은 독에 잠식되어 죽을 것이었다.

돌프만 후작은 자신도 그대로 달려갔으면 저렇게 되었을 거라는 상상에 전신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만히 있는 게 좋네. 아무리 벨턴이 헬 필드라는 막강한 마법을 선사하고 있다 해도 말이야."

"벨턴이 질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설사 벨턴이 8서클 마스터라 해도 변함은 없네. 이미 이 공간에서 누구보다 적응을 빨리 한 자는 벨턴이 애송이라 부르는 로엔그람 후작뿐이야. 우리가 달려든다 해도 변함은 없지. 이미 그는 무적일세."

"어, 어찌 저 정도 나이에……."

킹 제레브가 죽었다고 들었을 때는 믿을 만한 사실이 아니었다.

룰브 공작은 얼굴에 웃음을 피웠다.

"허허! 프라스 제국이 지독한 놈을 건드렸군.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프라스 제국의 멸망일지도 모르겠군."

"며, 멸망!"

이안은 마스터들을 가볍게 이겨 내고 로열을 뽑아 들었다. 아니, 로열이 스스로 뽑혀 나와 이안의 손아귀에 잡혔다.

"이놈! 어디 한번 이것도 막아 보거라."

벨턴은 자신의 마기를 모두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의 마기는 거대한 하나의 운석을 불러 들였고, 그 마법이 바로 메테오 스트라이크였다.

"메테오 스트라이크!"

쿠콰콰쾅!

거대한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엄청난 온도를 가진 운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하하! 8서클 최고의 마법인 메테오 스트라이크다. 과연 네놈이 막을 수나 있을까?"

지친 듯한 벨턴의 모습에 이안은 로열을 높이 들어 올렸다.

운석의 크기는 최소 20미터는 돼 보였다.

분명 이곳 헬 필드와 부딪힌다면 주위 몇 킬로미터는 전부 생명체 하나 없이 죽어 버릴 터.

이안은 오러 블레이드를 수십 미터나 생성시켰다.

"헉!"

돌프만 후작도 놀랐고 룰브 공작도 놀랐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거대한 구의 형상을 띠기 시작하더니 메테오를 향해 날아갔다.

"가라!"

이안이 검을 아래로 내리긋자 검환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변형을 하기 시작하더니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그대로 잠식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땅으로 내려섰다.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땅과 부딪히자 폭발할 거라고 믿었던 돌프만 후작은 급히 아티팩트인 쉴드 마법을 전개하며 그 자리에서 내뺐다.

하지만 이상했다.

터지지 않는다?

그가 고개를 돌려 확인하였다. 이안이 만들어 냈던 검환이 메테오 스트라이크의 폭발을 막아 냈던 것이다.

"끌……."

벨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믿기 힘든 일이었다. 8클래스 중에서도 최강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을, 그것도 마기가 충분한 헬 필드에서 사용한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단숨에 막아 내다니!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놀람은 얼마 가지 않았다.

이안이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가볍게 눌러 버리고 벨턴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가 담긴 검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컥!"

흑마법사 벨턴.

대륙십강 하나가 이렇게 무너졌다.

이안이 돌프만 후작과 룰브 공작을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우리도 죽일 것인가?"

이안은 한숨을 쉬었다.

"아뇨, 일부러 타국과 원한을 맺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헌데, 벨턴이 죽었으니 어찌할 텐가? 중간계로 돌아가야 할 텐데. 벨턴을 죽인 걸 보면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군."

"차원이란 어차피 공간에 불과합니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것쯤은……."

이안이 손을 들고 자신이 있는 자리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으니 차원이 찢어졌다.

"놀랍군……. 자네 설마, 드래곤이라도 되는 건 아니겠지?"

"드래곤이었다면 헬 필드에 오는 순간 그 존재가 알려지기 때문에 마족들의 공격을 받았을 겁니다. 드래곤들도 마계에 오는 것만큼은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군. 프라스 제국의 소드 마스터들은 어찌할 텐가? 모두 죽어 가는 것 같네만……."

"데려갈 테니 알아서 치료해 주십시오. 저는 해치워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 공간은 3분 후면 닫힙니다. 빨리 오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안은 자신이 찢은 공간 안으로 몸을 던졌다.

돌프만 후작은 이안이 자신이 드래곤임을 부정한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무신의 탄생이로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