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르트-54화 (54/60)

■ 제54장 피를 뒤집어쓴 자 □

스르르릉!

결전의 땅에 조용히 울리는 검의 소리.

칼집에서 이안의 내공을 타고 허공섭물로 조용히 뽑혀 나왔다.

철커덕!

검을 잡은 이안이 팔을 한번 휘저으며 나는 소리였다.

이안이 먼저 나오자 반대쪽에서 귀창이 등에 멘 창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잠시 후 귀창의 눈이 붉게 물들었는데 아수라혈심법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안도 맞서기 위해 만상귀일신공을 펼쳤다.

대성한 아수라혈심법과 만상귀일신공의 기운으로 결전의 땅에는 미풍조차 허락하지 않는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귀창과 이안이 떨어진 거리는 약 300미터.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두 명이라면 그 정도 거리는 거리낌이 없었다.

이안은 피식 웃고는 중원말로 입을 열었다.

"참으로 웃기는군. 그때 모습을 감춘 것은 겁이 났던 것이냐?"

이지스 대평원 때의 대면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아수라혈심법을 운용하는 귀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그의 성격은 다혈질적으로 변해 있었다.

"겁쟁이? 크흣! 화경의 경지로는 현경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 텐데."

이안은 조롱하는 투로 입을 열었다.

"방금 전투를 봐서 알 것도 같군. 익스퍼트가 어떻게 마스터를 이기는지를 말이야."

"익스퍼트와 마스터의 차이를 숫자 1로 표시한다면 화경과 현경의 차이는 100 정도가 난다는 것도 알고 있나?"

"하지만 지금의 너와 나의 차이는 숫자로 표시할 수 없지."

귀창은 이안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입 꼬리를 올렸다.

"그런 것 같군."

이안이 그랜드 마스터에 올랐다는 것을 알았다는 투였다.

귀창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 갓 오른 애송이와 중급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멀기도 하지."

"글쎄."

이안이 로열을 하늘 높이 올렸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땅으로 떨어져야 할 검이 요상하게도 계속해서 공중에 떠 있었다.

이기어검술!

이안은 검을 귀창에게 쏘아 보내며 자신도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갔다.

신법을 운용하자 300미터는 단숨에 좁혀졌다.

파파파팟!

이안은 반탄강기와 호신강기를 여러 겹이나 두르고 구하천풍장을 여러 번으로 나누어 휘갈겼다.

펑펑펑펑!

허공에서 북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귀창은 가볍게 구하천풍장을 피했다. 이안은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날렸던 검을 제어하며 귀창의 후미를 공격했다.

챙챙챙챙!

혼자 따로 노는 검과 검이 만들어 낸 빈틈을 통해 장법을 구사하는 이안.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막아 내는 귀창.

이안은 장법을 그만두고 점점 더 파고들었다.

그의 주먹에 서린 강기에서 그동안 묵혀 두었던 청성파 권법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허!"

이프 후작과 라이브 후작은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마법검도 아닌 것이 혼자 따로 노는 것이 진정 가능하단 말인가!

그리고 검술만도 아닌 권법에도 조예가 깊었는지 도저히 주먹의 힘도 사람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쾅!

천풍무형신권.

허공에서 격돌하는 수많은 빛의 잔재들.

마나의 파공성.

그들의 전투는 태풍을 일으켰다.

타타타탓!

인간의 주먹이 빠르게 귀창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귀창의 창은 이안의 네 번의 주먹을 빠르게 막아 냈다.

그리고 발을 이용하여 보법을 밟으며 자신이 유리한 고지로 이안을 이끌어 냈다. 이안은 어느 정도 끌려가는 듯하더니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며 칠십육로무형지를 귀창의 미간을 향해 발사했다.

슈슈슝!

모든 것을 구멍이라도 내겠다는 듯한 기운이 내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귀창이 손을 아래로 내리긋자 기운들은 모두 다 사라졌다.

이안은 허공으로 점프하더니 손을 위로 내뻗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검 로열이 손아귀로 빨려 들어왔다.

솟아오르는 3미터 남짓한 엄청난 길이의 오러 블레이드!

창과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늘린 길이였다. 이안은 종횡무진하며 귀창을 공격했다.

쾅쾅쾅쾅!

빛들이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어느새 귀창의 창에서도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오르며 이안의 검과 맞부딪혔다.

"흐아압!"

귀창은 창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어 그대로 바람을 일으키며 이안을 허공 멀리 내던졌다.

보통 허공이라면 움직이기 힘든 공간이다. 인간에게는 하늘을 나는 재주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안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허공답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마법사들은 놀라워했다.

하늘을 점령하는 마법사들만의 전유물이 기사들에게 침공당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허공으로 오르다니!

플라이로 하늘에 오른다면 이안처럼 자유로운 행동이 불가능해진다.

뒤이어 귀창도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둘은 수만의 병사들이 쳐다보는 한가운데서 미친 듯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쿠쾅쾅쾅!

이안은 검을 느리게 아래로 그었다.

'풍룡현신!'

"쿠와와왕!"

이안의 검에서 한 마리의 용이 뛰쳐나왔다.

그 용은 허상이 아니었다.

'혈신강림!'

귀창의 창에서도 수많은 오러 블레이드가 떨어져 나가더니 이무기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콰아앙!

그 둘은 공중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그 공격으로 인해 이안과 귀창은 서로에게 충격을 주어야 했다.

'빨리 죽여야 해!'

이안은 반탄강기와 호신강기를 꿰뚫어 버리는 위력에 내심 놀라워하며 곧바로 정신을 퍼뜩 차렸다.

하지만 귀창은 별로 충격을 받지 않은 것인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서 드러나는군. 중급과 갓 입문한 자의 실력이."

"……."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헛소리라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타고 올라왔지만, 분명 귀창과 자신의 경지는 고하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되겠나? 청성파의 복수가."

"으득!"

이안은 평정심을 잃어버릴 뻔한 그의 말에 칼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이젠 어쩌지?'

어쭙잖은 재롱으로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이안에게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 귀창의 연이은 공격이 시작되었다.

챙챙챙!

창과 검이 부딪쳤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게 막아 냈지만 점점 창이 빨라지자 이안의 손과 발이 매우 바빠졌다. 가끔 창을 막지 못하면 간신히 피해 내거나 발을 이용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막아야 했다.

'에반조차 마스터를 상대로 이겨 냈다. 여기서 내가 진다면 이대로 프라스 제국을 무너뜨리는 것은 실패다!'

이안은 할 수 없이 디멘션 스텝을 밟으면서 귀창을 상대했다.

"호오! 이것은 예전에 봤던 바로 그것이로군."

"기억하고 있었나?"

"흠!"

이안은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차원의 검술 제2장을 이용했다.

'디멘션 홀드!'

하지만 단순히 홀드가 아닌, 홀드의 진화형.

총 8방위에서 차원이 일그러지며 귀창을 데려가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헛!"

귀창은 한순간 방심하고 있다가 차원으로 빨려 들어가려 하자 신속히 벗어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8방위였다.

벗어날 구멍이 없었다. 그는 하늘로 더욱 높이 솟아오르며 디멘션 홀드를 벗어났다.

하지만 이안은 그를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차원의 검술 제3장, 디멘션 핸드가 발휘되었다. 수십여 개의 차원에서 검은 빛이 나는 커다란 팔뚝과 손이 소환되더니 벗어나려는 귀창의 몸을 부여잡았다.

"으윽!"

귀창이 벗어나려고 했지만 손은 오러 블레이드에도 없어지지 않고 자신이 나타난 타 차원으로 귀창을 끌고 가 버렸다.

"으아악!"

그리고 사라지는 공간.

비명은 공간 저 멀리로 사라졌다.

이안은 그와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어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손쉽게 이긴 것이다.

'아, 사부님!'

죽어 가던 청성파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촤악!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겼다고 생각했던 이안의 얼굴이 갑자기 찌푸려졌다.

갑자기 차원을 가르고 나타나는 귀창.

그는 엄청 지친 얼굴로 땅에 발을 짚었다.

귀창은 주변을 살펴보더니 갑자기 광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드디어 나왔구나."

"드디어?"

"자그마치 30분을 넘게 차원을 갈랐으니……."

"30분?"

분명히 귀창이 빨려 들어간 것은 고작 1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30분이 지났다니?

설마…….

'타 차원은 이곳과 시간 개념이 다르다는 말이 아무래도 사실인 듯하군.'

"크으! 네 이놈! 네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를 것이다."

"지친 놈에게 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안은 활처럼 휘어지더니 곧바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귀창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동작까지 단 한순간에 이뤄졌다.

귀창은 지쳤다.

그의 창으로 보아 적어도 30분 이상 오러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마나적 손실이 꽤 있긴 할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라 해도 사람이니 정신적 손상도 상당할 듯했다.

'단숨에 죽인다!'

이안의 검에서는 어느덧 수십여 개의 검환이 만들어져 쏘아졌다.

일순간에 시야를 뒤덮을 만한 맹공이었던 것이다. 이안의 검은 그 틈을 타 귀창의 허벅지를 빠르게 베어 들어갔다.

슈악!

"크억!"

허벅지가 반쯤 너덜거렸다.

'성공이군!'

이안은 기뻐할 새도 없이 다음 공격으로 이어졌다. 귀창은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이안의 검을 흘렸다. 그리고 창대를 이용해 이안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맹렬한 기운을 내포하고 있는 창!

맞는다면 즉사다!

이안은 호신강기와 반탄강기를 여러 겹 두르며 검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창대를 손으로 낚아채듯이 잡고서는 그 공격을 간신히 막아 냈다.

"크윽!"

이안은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입술을 꾹 깨물며 곧바로 뒤로 세 발자국 물러났다.

귀창도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정말 지친 상대가 맞단 말인가.'

이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귀창을 바라봤다.

귀창은 아수라혈심법을 운용 중에 있었기 때문에 세상이 온통 빨간색으로 보였다.

귀창 스스로가 지쳐 간다는 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새끼가!'

귀창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리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내공을 불러일으켰다.

갑자기 그의 눈이 더욱더 광폭해져만 갔다.

마인이 된 모습이었다.

'놈이 미쳤구나!'

백도의 무공을 익힌다면 마인을 걱정할 리 없지만, 아수라혈심법 같은 깊은 마공을 익히게 된다면 마인이 될 것을 염려하는 것은 아주 당연했다.

그것은 현경에 올라도 인간인 이상 반드시 마인이 되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

마인이 된다면 내공의 한 줌마저 없어질 때까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적아 구별이 불가능해진다.

"크하하하!"

이안은 그의 광소를 듣고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마인. 진정한 마인의 모습으로 그는 다시 태어났다.

현경에 오른 자가 마인이 되면 손쓸 방법이 없다. 이안은 그가 완전히 마인이 되기 전에 손을 쓰기 위해 발을 굴렀다.

이안은 그의 자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기어검을 이용하여 그의 아킬레스건을 노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팟!

그의 움직임이 이안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뭐야!'

"크아아악!"

갑자기 들리는 비명 소리에 이안이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귀창이 자신이 끌고 온 1만의 군대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적아 구별이 불가능하다!'

우우우웅!

미친 듯이 움직이는 오러 블레이드.

귀창의 신형이 무작정 날뛰었다.

"대공 각하!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말을 건 이프 후작에게 오러 블레이드가 여러 겹으로 날아갔다.

"헉!"

이프 후작은 자신 또한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며 간신히 그것을 막아 냈다.

"모두 후퇴해라! 대공 각하께서 미치셨다! 후퇴해라!"

제일 먼저 상황 파악을 하게 된 것은 바로 라이브 후작이었다. 라이브 후작은 누구보다도 검을 먼저 들어 올려서는 귀창의 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 내는 성과를 보여 주었다.

그만큼 침착한 자였다.

"대공 각하!"

이프 후작만이 아직도 귀창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뒤에서 라이브 후작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자네도 어서 피하게! 그랜드 마스터의 창을 막는 것은 더 이상 요행으로도 불가능한 것이라네."

"끄응!"

이프 후작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안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여 수뇌부들 전원에게 전음을 보냈다.

'우리 또한 군대를 후퇴시켜라! 그랜드 마스터가 마인이 된 것 같다. 후퇴시켜!'

잠시 후, 찰트에게서 전음이 도착했다.

'마인 말입니까? 그랜드 마스터도 마인이 되는 겁니까?'

'그는 특수한 경우다. 적아 구별이 불가능할 테니 될 수 있는 한 후퇴시켜! 익스퍼트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걸리는 순간 신형조차 볼 수 없어!'

'알겠습니다, 전하! 헌데 전하께서는…….'

'나는 걱정하지 마라. 폭주하는 그랜드 마스터를 막을 자는 오로지 나뿐일 테니…….'

말하는 이안도 걱정이 없잖아 있었다. 이안은 지금 귀창의 움직임조차 제대로 잡아 내지 못한다.

'다시 한 번…….'

차원의 검술 제3장.

디멘션 핸드.

워낙 강한 기술이라 내공을 많이 잡아먹는 터라 이안도 이제 단 한 번을 남겨 두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실패하면?

게다가 마인으로서 강해진 터라 차원으로 끌려가지도 못하거나, 끌려간다고 해도 아까처럼 다시 뛰쳐나온다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졌다.

'지금은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야 해!'

이안은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고 부족한 내공을 어김없이 만상귀일신공으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귀창은 1만이나 되는 병력에게 관심이 있지 고작 단 한 명뿐인 이안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귀창이 더 지쳐야 한다.

지쳐야 이길 수 있다.

마인이 된 그는 평소보다 두어 배는 강력해져 있다.

이안은 때를 기다렸다.

귀창이 미친 지 1시간이 넘어갔다. 그는 아직도 내공이 충만한지 도망치는 1만의 군대를 홀로 상대하기 시작했다.

아니, 애초에 도망도 가지 못하게 막아 놨다. 그의 강력한 오러 블레이드가 퇴로에 엄청난 크기의 땅을 파 놓았기 때문에 병사들은 정신적 착란까지 일으키며 도륙당했다.

이안의 군대는 상당히 멀리까지 도망간 상태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어쩌지 못할 것이었다.

'됐다!'

1만의 군대가 거의 도륙당했을 때, 이안은 가부좌를 틀어 앉은 자세에서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부족한 감이 있지만 대부분의 내공이나 체력은 회복한 뒤였다.

이안은 찰트에게 받았던 포션 하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내상을 미연에 어느 정도 방지해 주는 포션이었다.

그 증거로 장기들에 작게 방어막이 쳐졌다.

적어도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찔러 곤란한 상황이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안은 눈에 이채를 발산했다.

그리고 어느덧 그의 신형은 허공 속에 녹아들었다.

* * *

쿠쾅쾅!

귀창이 창을 휘두를 때마다 벼락이 어디선가 떨어졌다.

그리고 움푹 파이는 땅.

귀창은 다시 한 번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벼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이안이 다가와 벼락을 단숨에 막아 낸 것이다.

'마인의 눈빛…….'

귀창의 눈과 마주친 이안은 벼락에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같은 그랜드 마스터인 그들이지만, 마인의 눈을 감당하기에는 이안의 경지가 역부족이었다.

"대공이 정신이 나갔소! 대체 어떻게 된 거요, 로엔그람 후작?"

이프 후작과 라이브 후작은 중요한 데만 가린 천을 입고서 이안에게 잔뜩 화난 표정으로 물었다.

이안은 귀창에게서 여러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대들도 죽고 싶지 않다면 물러나는 것이 좋을 거요. 지금 제레브 대공은 자신의 경지에 대한 자만심과 오만함으로 인해 마인이 되었소. 적아 구별이 힘들 테니 물러나시오."

"크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없는 것이오?"

"죽이는 방법밖에는 없소."

라이브 후작은 침착하게 물었다.

"죽일 방법은 있는 거요?"

"별다른 방법은 없소."

"우리들도 돕는다면?"

라이브 후작의 말에 이프 후작의 낯빛이 변했다.

"잠시 기다리시오, 라이브 후작! 우리라니? 지금 적국을 도와 대공을 죽이자는 말씀이시오?"

"눈이 있다면 당장 눈앞의 현실을 보시오! 저 대공이란 자는 이 세상에 파멸을 가져올 것이오. 저 미친 짓거리도 그의 마나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이오. 하지만 알잖소? 그랜드 마스터의 내공은 저런 식으로 싸우게 된다면 끊임없이 차오른다는 것을……."

이미 그 자체로 자연과 일치하는 몸이 되었거늘.

이미 몸은 마나가 통하는 길이 되었다.

아까와 같이 차원 속으로 끌어 보내면 마나가 없기 때문에 마나의 소모가 심하다고 해도, 이미 이 중간계에서는 무의미한 짓이었다.

라이브 후작은 다시 말을 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레브 대공은 이미 미친 자와 다름이 없소! 우리 군대까지 모조리 몰살시켰단 말이오! 여러 소드 마스터들까지 모두 저자에게 죽임을 당했소. 로엔그람 후작을 도와야 하오!"

"으으!"

이프 후작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듯싶었다.

"조, 좋소!"

잠시 후 이프 후작이 답을 내리자 라이브 후작이 활짝 웃더니 이안에게 엄중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돕는 것도 어디까지나 잠시일 뿐이오. 대공을 죽인 후에는 곧바로 당신을 죽일 것이오."

"마음대로 하시오."

이안은 담담히 말했다. 어차피 소드 마스터로 해결이 되었다면 오히려 편했을 것이다. 소드 마스터들이 마인이 된 현경을 막아 낼 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공격으로 허점이라도 만들어 낸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살고 싶다면 힘을 아껴 두지 말고 폭발적으로 사용하시오. 5분이라도 좋소. 그 시간 안에 최대한 방법을 만들어 보겠소."

"5분? 정말 5분이면 되오?"

라이브 후작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대공의 신형은 눈으로 쫓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최대한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주는 게 좋을 거요. 아티팩트가 있다면 지금 당장 모두 몸을 보호하는 데 사용하시오."

"알았소."

라이브 후작과 이프 후작이 서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시켰다. 이안도 여러 개의 검환을 생성시키며 귀창을 향해 뿌려 내기 시작했다.

'헉! 오러볼을 저리도 많이!'

상급 이상이 아니면 사용할 수도 없는 검환을 저리 많이 만들어 낸다는 것은 상대의 경지도 짐작이 간다.

'그랜드 마스터!'

라이브 후작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랜드 마스터가 되며 젊어진 건가?'

그랜드 마스터들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최고의 수명까지 살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젊어지는 것은 무리였다.

'젊어 보일 수는 있겠지. 그럼 대략 30대? 30대 중반이겠군. 그래도 대단하군! 30대 중반에 소드 마스터도 아니고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다니!'

단단히 헛다리를 짚은 라이브 후작이었다.

이안은 검을 높이 띄워 보이며 허공답보로 하늘 높이 올라가 최심장을 여러 번 휘갈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기어검술로 귀창의 몸을 꿰뚫기 위해 공격했다.

귀창의 창에서 계속해서 벼락이 떨어졌다.

쿠쾅쾅!

이프 후작은 간신히 벼락을 막아 냈다. 라이브 후작도 간신히 벼락을 막아 냈다.

그들의 표정은 과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검을 강하게 쥐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보다 긴 5분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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