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르트-53화 (53/60)

■ 제53장 결전의 땅 □

펄럭펄럭!

바람이 불어오자 이안의 망토가 휘날렸다.

이안은 허공으로 잠시 얼굴을 치켜 올렸다가 누군가 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찰트였다.

흰 로브를 질질 끌고 나타난 찰트는 이안의 얼굴을 직시했다.

"걱정되십니까?"

"뭐가?"

"지금 저희는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프라스 제국 안까지 파고들었습니다. 그걸 염려하시는 것이겠지요."

찰트의 말에 이안은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맞는 말이다."

너무 빠른 것은 좋지 않았다.

프라스 제국이 펠타온 제국과의 전쟁을 뒤로한 채, 군대를 물려 이안의 군대를 후방에서 공격한다면 앞과 뒤에서 공격을 받다가 괴멸될 것임은 그 누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프라스 제국이 딴마음을 품기도 전에 먼저 밀어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전하."

척척척척!

공국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대륙을 질타한다.

요지부동하던 킹 제레브가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나 군대를 이끈다는 것이다.

그 군사의 숫자는 고작 1만에 불과했지만 대륙인들의 이목은 킹 제레브와 이안에게 쏠렸다.

포타르시스 공작을 간단히 이겨 대륙십강에 오른 최연소 신진 고수 이안!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대륙십강의 일원으로서 그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최강의 자리를 가진 그랜드 마스터 킹 제레브!

슈공대방어진 2차는 바로 킹 제레브의 군대였다.

"자네 그거 들어 봤나?"

곳곳에서 그들 싸움의 승부를 점치는 이야기가 오갔다.

고수들의 대결 이야기는 평민들의 안주와도 같았다.

한 평민은 맥주를 입으로 털어 내며 대륙을 떠돈다는 음유 시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꺼내 놨다.

"대륙십강의 두 인물이 서로 붙는다고 하는데, 들어는 봤나?"

"에이, 이 사람아. 그 얘기를 벌써 몇 번째 듣는 줄 아나? 이미 이 여관은 물론이고 대륙 곳곳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란 말일세."

"그래, 자네는 누가 이길 것 같나?"

"음…… 아무래도 음유 시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혜성같이 나타난 이안, 아니 그 청령이라는 사내가 이길 것 같다는군."

"에이! 그건 말이 되지 않네. 짬밥도 먹은 놈이 위라고, 이미 수십 년 동안 대륙십강인 킹 제레브가 이길 것임은 내 장담하지!"

"그래, 그렇군! 킹 제레브는 그랜드 마스터라고 하지 않나? 그랜드 마스터이니, 마스터 최상급인 로엔그람 후작을 상대로는 쉽게 이길 것 같군."

평민들은 동조하며 거침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토해 냈다.

그만큼 그들은 이미 대륙의 최고 정점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킹 제레브의 밑으로 판단이 되었다.

아무래도 그의 나이가 걸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안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전의 날은 다가왔다.

둥! 둥! 둥!

슈공대방어진 2차가 이뤄지는 평원.

결전의 땅.

사람들은 이곳을 '결전의 땅'이라며 마음대로 불렀지만,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결전의 땅 위에는 1만이 주둔하고 있는 제레브 군대와 7만의 군대인 이안이 주둔하고 있었다.

1만 대 7만. 참으로 경이적인 숫자적 차이로 한순간에 밀어 버리면 집어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전투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이렇게 두 그랜드 마스터가 주둔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랜드 마스터의 위용은 수만의 군대조차 무릎 꿇릴 수 있다.

만약 단 한 명의 그랜드 마스터라도 부재를 할 시에는 그날로 전쟁은 끝이 나는 거란 말이었다.

"군사를 뒤로 물려."

"옙!"

레더린은 곧바로 대답하고 군사들을 뒤로 물렸다. 이안의 군대가 뒤로 물러나자, 이안의 옆에는 에반 한 명만 서 있었다.

"앞으로 나가라, 에반. 가서 프라스 제국에게 네가 갈고닦은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 주고 오거라."

에반은 흥분된 기색으로 대답했다.

"옙!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마스터."

에반이 말을 타고 곧장 달려 나갔다.

"북을 울려라! 징을 쳐라! 우리들의 대표가 나선다. 함성을 내질러라, 이 평원이 떠나가도록!"

둥! 둥! 둥! 둥!

쿵! 쿵! 쿵! 쿵!

"우와아아아아!"

전장에서의 단기 대결은 곧 사기로 이루어진다. 레더린이나 찰트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에반을 바라봤지만, 이안은 에반이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도 에반은 이 순간을 갈망해 왔고, 기다려 왔다.

전장에서의 싸움.

그것이 바로 기사가 된 이유였다.

에반은 등 뒤에서 울리는 함성 소리에 코가 찡해졌다. 눈시울도 붉어졌다. 한낱 기사에 불과했던 그가 이젠 대륙을 넘보는 군대의 단기대결 기사가 되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갈망해 왔던가.

기사에겐 매 순간마다가 바로 축복이었고, 영광이었다.

그는 얼굴을 소매로 닦아 내고는 육중한 바스타드 소드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어디 나를 상대할 프라스 제국의 기사는 없느냐!"

그의 외침이 결전의 땅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병사들이 술렁거렸다. 기사들 또한 서로의 눈치를 봤다. 에반의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롱소드를 들고 있는 중년의 기사가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한눈에 보아도 명마라는 것을 알 정도로 무거운 갑옷을 입은 중년의 기사를 태우고도 전혀 힘들어 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중년의 기사가 묻자, 에반이 대답했다.

"난 로엔그람 후작 각하의 수하인 에반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난 프라스 제국을 수호하는 갈만이다."

"갈만?"

에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갈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만은 프라스 제국에서도 제법 유명한 기사였다.

은빛이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롱소드를 주 무기로 삼으며, 콧수염을 자랑스럽게 기르는 갈만.

그는 프라스 제국의 한 소드 마스터였기 때문이다.

"비겁한!"

찰트는 무심히 쳐다봤지만 레더린 또한 소드 마스터였기 때문에 갈만이 작게 한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전율을 느껴야 했다.

갈만이 누구란 말인가!

프라스 제국에서도 제법 이름이 높은 기사가 아니었던가.

"전하! 당장 전투를 중지시켜야 합니다. 에반의 필패가 분명하옵니다!"

이안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지켜봅시다."

"전하!"

레더린은 이안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항상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전투에서 에반의 승리는 전신 마르스가 도와준다 해도 불가능했다.

"위명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소, 갈만 경."

에반은 갈만에게 '경' 자를 붙였다.

갈만은 말고삐를 잡으며 정중하게 말했다.

"나 또한 그대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오, 에반 경."

"흠!"

에반이 침음을 삼키며 바스타드 소드를 들었다. 그의 검에서 오러가 튀기 시작했다.

"인사는 그만 하고, 먼저 가겠소. 이랴!"

갈만도 오러를 일으키며 곧바로 달려들었다. 에반도 말고삐를 한 손으로 쥐고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에반은 말고삐를 높이고는 바스타드 소드를 두 손으로 쥐어 들며 검기를 흩날렸다.

콰콰쾅!

검기를 막아 낸 갈만의 검이 충격파를 일으키며 에반이 타고 있던 말과 갈만이 타고 있던 말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푸히히힝!"

갈만과 에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땅으로 착지했다. 그리고 서로를 노려보는 자세로 검을 들어 올렸다.

갈만은 천천히 에반을 살펴봤다.

'일부러 말을 없앴다는 것은 평지전에 강하다는 뜻이겠지. 어디, 실력 좀 볼까?'

갈만이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빠르게 에반에게 달려들었다. 에반은 하늘 높이 바스타드 소드를 들어 올렸다가 그가 다가오자 그대로 내리치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가 서 있던 허리 쪽으로 갈만의 검이 스쳐 지나갔다.

에반은 땅에 착지하고 나자 곧바로 갈만의 목을 향해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다.

스파팟!

갈만은 깜짝 놀라며 몸을 뒤로 굴렸다. 에반이 집요하게 쫓아가며 그의 발목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스팟!

번쩍이는 속도로 날아가는 검기!

갈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기를 살짝 피해 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에반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그의 검에는 최상급 익스퍼트들이 펼칠 수 있는 오러가 일렁이고 있었다.

'지금이다!'

갈만은 공격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 상대를 자신에 비해 약하다 평가하고 있는 것이었다.

에반은 냉정심을 유지했다. 그것이 바로 이안에게 받은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냉정심을 유지한 결과 상대의 공격 루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설사, 상대가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에반은 짧게 앞으로 삼 보 움직였다. 그 환상적인 몸놀림에 공격하려던 갈만의 눈에서 이채가 발산되었다.

'뭐, 뭐지?'

촤악―!

생각과 고통은 한순간이었다.

허벅지에서 갑자기 불에 덴 듯한 화끈거림이 느껴졌다. 갈만은 공격을 거두고 몸을 추슬렀다.

"크윽!"

그리 심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까딱 잘못했다가는 허벅지 전체를 내줬을지도 몰랐다.

허벅지가 살짝 검에 베인 것일 뿐, 전체적으로 괜찮음을 확인하자 갈만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놈! 어리다고 봐줬더니 기어오르는구나!'

갈만은 곧바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출력의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냈다.

레더린은 그 경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초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가려는 그 순간이었다. 아직 깨달음이 없어 중급으로 올라서진 못했지만, 아마 5년 안에는 충분히 중급에 들어설 만한 실력자였던 것이다.

우우우웅!

"이놈, 끝장이다! 어디 이것도 반격해 보거라!"

에반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히 맞섰다. 에반은 오러 블레이드를 상대함에 있어서는 갑옷이 불편하다고 생각했는지, 어느새 벗어 버리고는 덤벼 오는 갈만을 향해 내던졌다.

갈만은 순식간에 시야를 잃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자 곧바로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 순간, 에반의 눈에서 갑자기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다시 한 번 짧게 빠른 속도로 세 걸음을 앞으로 나섰다.

'또!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봤다! 다시 당하지는 않을 터!'

갈만의 오러 블레이드는 다시 상대를 찾았다. 이번엔 상대가 던질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 보였다. 에반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멍청한 놈! 공중은 피할 곳이 없다.'

갈만의 검은 에반의 신형을 집요하게 쫓아가 곧바로 내질렀다.

우우우웅!

오러 블레이드는 에반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심장을 향해 파고든 공격을 에반이 신음을 삼키며 최대한 몸을 틀어 피해 낸 것이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어깨를 꿰뚫자, 에반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절대 평정심을 놓지는 않았다.

그 증거로 그는 신음 한 번 토해 내지 않았다.

에반은 바스타드 소드를 오른손으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갈만은 재빠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며 바스타드 소드를 피해 냈다. 하지만 에반은 예상했다는 듯 그 자세로 곧바로 검을 던졌다.

"헉!"

설마, 기사가 전투 중에 검을 내다 버린다는 생각은 못했는지 갈만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리 빠른 속도도 아니었기에 팽이처럼 몸을 돌리며 피해 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앞으로 시야를 돌렸을 때는 에반의 육중한 몸이 그를 덮쳐 오고 있었다.

푸슈우욱!

"끄어어억……!"

소드 마스터인 갈만이 검을 놓쳤다. 에반의 글러브에 껴 있던 단검이 갈만의 목을 찌른 것이다.

"꺼억!"

갈만의 눈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크게 뜨여 있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다시 주워 담기 위해 발광하기 시작했다.

결전의 땅에 모인 병사들이나 기사들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장면이 너무나도 잔인해 보였기 때문이다.

에반은 고통스러워 하는 갈만을 향해 자신의 던진 바스타드 소드를 들어 올려 그대로 내리찍음으로써 그의 생을 종결시켜 주었다.

"마, 말도 안 돼!"

레더린의 입은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

익스퍼트 상급에 불과한 에반이 마스터인 갈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다니!

그것은 역사상 없었던 일이며 앞으로도 일어나기는 힘들 것이었다.

옆을 바라보니 이안은 그 이유를 아는 듯했다.

이안이 실실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오오오오!"

에반은 갈만의 목을 들어 올리며 결전의 땅에서 함성을 내질렀다. 그의 함성 소리는 대지를 울렸다. 하늘을 가리던 구름들도 에반에게만 햇볕을 허용했다.

그만큼 그는 역동적인 전투를 보여 준 것이다.

에반은 갈만의 목을 하늘 높이 내던졌다. 그리고 한 발자국씩 다시 진형을 향해 걸어왔다.

이안은 씨익 웃고서는 손을 위로 올렸다.

"다시 한 번 북을 울려라! 함성을 내질러라! 우리는 승리했다!"

"우와아아아!"

병사들은 심장 속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피와 얼굴에서 드러나는 아드레날린으로 전장 속 긴장이 더해만 갔다.

이안의 눈에 귀창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에반이 도착하자 동료 기사들은 그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리고 그들을 지나 이안 앞에 도착했을 때 에반은 어느 때보다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반, 복귀 신청합니다!"

"수고했다. 쉬어라."

이안의 말에 감격이라도 한 걸까.

에반이 힘껏 외쳤다.

"예, 마스터!"

"신관에게 데려가라."

오러 블레이드에 당한 상처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깊었다.

지금은 흥분으로 고통을 잊었다고 해도, 신관에게 치료를 받으며 고통에 비명을 지를 에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안의 진영이 들끓는 가운데, 갈만이 당하자 제레브의 군대원들은 어느 때보다도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인재인 소드 마스터를 잃고 나자 귀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소드 마스터를 잃는다는 것은 전장에서 뼈아픈 손실과도 같았다.

1만의 군대인 만큼 소수 정예를 데려왔던 귀창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방금 전 전투를 보고 나자 그의 휘하에 있는 소드 마스터들도 쉽게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귀창은 에반이 사용한 보법을 잘 알고 있었다.

중원에서도 삼류 취급을 받는 삼재보!

하지만 이곳의 기사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기술일 것이다. 그런 의미로 이번 소드 마스터들은 새로운 기술에 개안을 하며 방금 전 전투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그때,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인 이프 후작이 나왔다.

"대공 각하!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우리 군의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 저를 보내 주시옵소서! 제가 당장 로엔그람 후작의 목을 따 대공 각하에게 드리겠나이다."

이프 후작은 화가 나는 것보다는 새로운 강자와의 싸움을 원하는 순수한 무인이었다. 그는 어느 때보다도 피가 들끓던 방금 전 전투에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귀창은 냉정하게 평가했다.

"불가능하다, 후작."

이프 후작의 낯빛이 변했다.

"아니, 불가능하다니요? 설마, 대공 각하께서는 소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시는 겁니까?"

그는 붉게 흥분된 어조로 제레브를 쏘아보고 있었다.

"아니면 저 후레자식 놈들의 우두머리인 꼬맹이 로엔그람 후작을 과대평가하시는 겁니까?"

그의 언사는 매우 무례했다. 듣고 있던 다른 소드 마스터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들은 존경해 마지않는 킹 제레브가 모욕을 받자 참을 수가 없던 것이다.

"이프 후작! 무례하오! 아무리 이프 후작이 소드 마스터라 해도 대공 각하는 공국의 왕이오!"

이프 후작은 그제야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찔끔했다.

"소, 송구합니다, 대공 각하."

"아니다. 난 단순히 소드 마스터를 잃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가, 감사합니다, 대공 각하."

이프 후작은 자신이 왜 저들에게 지는지 이유는 몰랐지만, 제레브의 말이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했다.

"헌데 이제 어찌하실 겁니까, 대공 각하?"

이프 후작 옆의 또 다른 소드 마스터인 라이브 후작이었다.

라이브 후작은 이프 후작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에 소드 마스터가 되어 현재 중급을 이루고 있는 기사였다.

"내가 나서면 어떻겠는가?"

귀창의 말에 이프 후작은 물론 라이브 후작까지 놀랐다.

"아, 아니 아무리 로엔그람 후작이 대륙십강이라 해도 대공 각하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저희들이 상대하는 편이……."

"그와는 많은 악연으로 둘러싸인 사이다."

라이브 후작과 이프 후작은 상대 팀 진영의 제일 선두에서 백마를 타고 있는 미청년을 노려봤다. 미청년은 알 수 없는 무형의 기운으로 그들을 압박하려 하고 있었다.

상당히 거리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턱 막히는 엄청난 기운!

'어려도 호랑이라는 건가?'

대륙십강.

그 자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음.'

이프 후작과 라이브 후작은 동시에 침음을 삼켰다.

제레브 대공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두 후작은 한 발자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대공 각하."

"이해해 줘서 고맙네."

귀창은 창을 들었다.

"전하, 상대가 누구인지는 아시는 겁니까?"

"잘 알지."

이안은 대담하게 입을 열었다.

레더린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리 이해해 보려 하지만, 소신은 이해할 수가 없나 봅니다. 이번만큼은 절대 전하 뜻대로 하실 수 없습니다."

"레더린이 뭘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다."

"아시면서 그러는 겁니까?"

"위험해지면 적당히 빠져나올 거야."

"적당히 빠져나갈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잖습니까?"

"그때가 되면 레더린이 끼어들어도 좋아."

"전 저자의 3합도 견디지 못합니다."

솔직한 답변이었다.

소드 마스터 중급으로는 킹 제레브의 창을 3합 이상 견뎌 낼 리가 없었다.

"왜 내가 진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저자는 수십 년을 요지부동 대륙십강 자리에 앉았던 최고의 기사입니다."

수많은 고수들이 대륙십강 최고 자리의 아성을 깨기 위해 킹 제레브를 향해 도전을 해 왔지만, 레더린이 듣기로 10합 이상을 견뎌 낸 자는 없다고 했다.

그중에는 대륙에서도 위명이 자자한 소드 마스터들도 더러 있었다.

"레더린은 최고의 기사라는 이름이 저자의 타이틀로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가?"

"최고의 기사라는 것은 무위의 고하로써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강한 것이 제일이지."

"그러니 절대 나가시지 말라는 겁니다. 그랜드 마스터입니다. 드래곤이라 해도 그랜드 마스터만큼은 피해 간다 들었습니다."

이안은 코웃음을 쳤다.

드래곤을 과소평가하다니!

이안은 기억을 더듬으며 알아낼 수 있었다. 드래곤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그랜드 마스터의 오러라면 드래곤의 심장을 꿰뚫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웃긴 얘기지만 그랜드 마스터도 가만히 있으면 5살짜리 아이가 내지른 단검에도 심장을 꿰뚫려 죽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무위가 높아진다고 해도 금강불괴가 아닌 이상에는 날카로운 검이 피부를 깊게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분명 공격은 가능할지 몰라도, 맞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드래곤은 이미 반신의 경지에 오른 괴수.

인간이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에 역부족이었다. 설사 그랜드 마스터 한 무더기가 우르르 몰려간다 해도 이안은 확신할 수 있었다.

드래곤.

이 중간계를 지키는 가디언인 드래곤은 그랜드 마스터보다도 수십여 배는 강하다고 말이다.

"나와. 당장."

이안은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 권강이 푸르스름하게 맺혔다.

하지만 레더린은 그래도 요지부동.

"못합니다, 전하. 차라리 저를 죽이고 가십시오."

"원수인 프라스 제국을 무너뜨리는 것도 저자를 죽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저자를 죽이고, 난 프라스 제국을 갖겠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어떤 시간? 그저 이대로 또 수십 년을 보낼 텐가? 아니, 차라리 저자가 누군가의 손에 죽거나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겠는가?"

"……."

"그러니까 당장 비켜."

"못 비킵니다."

이안은 권강을 더욱 강하게 생성시켰다. 그리고 레더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슈슈슈슉!

마나의 형체물 네다섯 개가 순식간에 날아가 레더린의 미간을 강하게 공격했다.

"헉!"

레더린은 설마 진짜로 공격할 줄은 몰랐다는 듯 얼굴을 빠르게 내리며 간신히 피해 냈다.

"죽이라고 한 건 너다. 원망하지 말거라, 레더린."

"휴우∼ 할 수 없군요, 전하."

레더린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레더린이 그렇게 말하자 이안의 낯빛이 변했다.

"그렇게 나왔어야지."

"조심하십시오, 전하."

"걱정 마. 승전보 울릴 준비나 해."

"알겠습니다."

이안은 백마에서 내려 전장으로 걸어 나갔다.

철컥!

그의 좌수 엄지가 검을 강하게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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