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0장 다시 만난 자 □
이안이 왕국에 도착한 지 보름이 지났다. 보름 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확실한 증거로 인하여 카이드 백작은 매국노 집안이 되어 왕국에서 추방되었고, 대대적인 기사들을 토벌대로 보내어 여러 영지들을 들쑤시며 흑마법사들을 색출해 냈다.
그 과정에서 여러 하위 귀족들이 매국노 짓까지 하면서 힘을 키웠지만, 아직 미미한 힘이었기에 기사들에게 얼마 버티지 못하고 토벌되었다.
그리고 이안은 로엔그람 상단의 영향력으로 프라스 제국과 관계된 공국이나 동맹국들에게 모든 무기나 방어구들에 대한 판매를 중지하고, 몇몇 각 지점주들을 제외하고 철수시켰다.
게다가 이안이 얻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쉐도우 로드가 있는 '블랙 머플러'다.
얻었다고 보기보다는 동업이라고 해야 하는데, 쉐도우 로드는 돕는 대가로 예전부터 꿈꿔 오던 어쌔신들의 땅을 원했다.
그 얘기를 카이어스 국왕에게 꺼냈는데, 처음에는 꺼려 하는 눈치더니 이안이 쉐도우 로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자 곧 윤허가 떨어졌다.
다시 보름이 지났을 때는 프라스 제국의 대대적인 침공이 시작되었다. 프라스 제국은 펠타온 제국을 노리기보다는 펠타온 제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왕국들을 차례차례 습격했다.
물론, 슈레이더 왕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슈레이더 왕국은 곧바로 귀족들을 선두로 약 1만의 군대가 300마리가 넘어가는 키메라들을 막아섰다.
이안은 4만의 군대를 펠타온 제국으로 곧바로 끌고 갔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20일이 지나갔다.
주변 왕국들은 키메라들의 힘에 눌려 전폭적인 지원이 불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라 펠타온 제국도 키메라들을 제대로 막아서지 못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은 뒤였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겨울을 약 한 달 남겨 두고 엄청난 추위를 가져왔을 때 속성을 가진 기사들이 대거 출몰하였다.
마법적 힘으로 인챈트를 시킨 것이 아니라, 마나 자체의 성질을 뒤바꾸는 검술이었다.
펠타온 제국의 대응에 당황한 것은 프라스 제국이었다.
비장의 한 수인 속성 검법이 튀어나왔으니, 키메라들은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도륙당하기 시작했다.
프라스 제국은 또다시 강한 키메라들을 대량 양성하여 제국과 왕국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속성 검법의 기사들과 키메라들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리고…….
겨울이 지났다.
* * *
"크아악!"
"끄아악!"
이시즈 대평원.
과거 이시즈라는 인간 영웅과 마왕이 일전을 겨뤘다는 거대한 평원이다. 이시즈 평원은 펠타온 제국과 프라스 제국을 관통하는 평원이었기에 이들의 전쟁은 이곳에서 주로 이뤄졌다.
소규모적이든, 대규모적이든.
프라스 제국은 키메라들만으로는 침략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드디어 꽁꽁 숨겨 두었던 병사들을 파병했다. 그건 펠타온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병사들을 모집하여 파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10만 대 4만.
프라스 제국 측이 10만, 슈레이더 왕국 3만 5천에 펠타온 제국 5천이었다. 펠타온 제국 측 여러 방위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이시즈 평원 쪽으로 군사를 돌릴 여력이 되지 못했다. 그들도 슈레이더 왕국 측에 이시즈 평원의 방어를 맡기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시즈 평원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슈레이더 왕국의 기사들이나 병사들은 매우 드물었다. 오히려 프라스 제국은 이곳을 전쟁터로 일삼았기 때문에 지리적 요건에서는 그들이 우세했고 사기도, 군사력도 모두 우수했다.
슈레이더 왕국과 프라스 제국은 고작 길목 하나를 두고 몇 날 며칠을 싸웠다.
뚫리면 패배이고, 막으면 승리다.
10만을 상대로 위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이안은 이 전투가 계속되자 군사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안은 전 지휘자로서 거짓말을 보태며 그들에게 단번에 사기를 끌어올릴 만한 말을 해야 했다.
"며칠 후면 펠타온 제국 측으로부터 지원군이 도착한다."
이미 짜고 맞춘 것이 있었기에 찰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레더린도 이안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간부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안을 더 이상 쳐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지휘관이었다.
"정말입니까?"
수뇌부들 대부분이 화색을 띠며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렸다. 이안은 일단 병사들의 사기부터 올려야 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에 퍼질 파장은 나중에 생각해야 했다.
웨일즈는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자리에서 턱하니 일어났다.
"으하하하! 여기서 고생한 보람이 있었군요. 언제 온다는 겁니까? 지원군 병력은?"
이안은 눈을 감았다.
"자세한 건 아직 모른다. 나도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괜히 들뜨지 마라. 헛소문이 될지도 모르니."
헛소문이라 해도 수뇌부들은 강력하게 믿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안의 말에도 불구하고 모두 병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회의가 끝난 후, 이안이 의도한 대로 유언비어는 퍼져 나갔다. 일주일만 기다린다면 지원군이 도착하여 10만의 병력들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이안은 알 수 있었다.
지원군은.
나 자신.
단 하나뿐이라고.
이시즈 평원에 10만 대군을 끌고 쳐들어 온 프라스 제국의 총사령관은 딜듀란 백작이었다.
대표적인 충신 가문으로 제국에 속한 소드 마스터들 중 10위권 안에 들고 있는 강자 중에 강자.
알려져 있기로는 중급이라 하지만, 소드 마스터들은 항상 3수를 숨겨두기 때문에 실제로는 측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딜듀란 백작 밑으로는 또 다른 소드 마스터 둘이 존재한다. 그들은 얼마 전 프라스 제국에서 키워 낸 소드 마스터들로, 각각 리자드 자작과 룬터 자작이었다.
"이번 대규모 전에는 아마 상대측 소드 마스터인 리자드 자작과 룬터 자작이 참여할 것 같습니다."
사실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화살에 맞지 않거나, 목이 잘려도 죽지 않는 신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출전한다고 해도 강력한 기사들에 의해 철저하게 보호하다가 얼굴만 잠시 비추고 다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우린 소드 마스터가 둘이로군."
이안이 말하자 자연스레 레더린에게 수뇌부들의 눈이 갔다.
이안은 총사령관이기 때문에 몸을 부딪치는 전장에서는 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레더린은 훌륭한 라인하르트 대제국의 충신이다.
그가 나서 주길 바라고 있었다.
"사령관께서 명만 내려 주신다면 참여하겠습니다."
사실 레더린은 여태까지 전쟁에 대해 방관하고 있었다. 그가 소드 마스터라는 사실은 극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전에 룬터 자작과 격전을 치룬 후 그가 소드 마스터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룬터 자작과 싸워 봤을 때는 상당히 놀랐습니다. 알려진 대로 초급이 아니라, 적어도 중급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리자드 자작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만약 둘이 동시에 달라붙는다면 오래 버티지는 못합니다."
전장에서 제일 거슬리는 존재는 고위급 마법사나 소드 마스터들이다. 그들의 무위는 순식간에 수백, 수천의 병사들을 도륙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큰일이로군. 병사들의 사기조차 바닥을 기고 있을 터인데……."
이안의 고심은 시간이 갈수록 쌓여만 갔다.
4만의 병력으로 10만의 병력을, 그것도 평원에서 막아 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괜히 제국군이 아니라는 듯, 정예병이라고 출전한 병사들의 수준은 슈레이더 왕국의 병사들이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무기와 방어구 수준부터 달랐다.
아무리 이안이 로엔그람 상단을 운영하며 수많은 드워프제 무기와 방어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4만이나 되는 병력에게 입힐 정도의 물량을 단숨에 구할 수는 없었다.
이안은 탁자를 탁! 소리 나게 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규모 전까지 기다릴 것 없다. 오늘 밤 친다."
그의 말에 수뇌부들이 반색했다.
"그 말씀은 먼저 치자는 것입니까?"
"지금 제일 시급한 건 대규모 전투로 인한 병력의 손실이나 소드 마스터들이 아니다. 당장 필요한 건 병사들의 사기다. 떨어질 대로 떨어져 바닥을 기고 있는 이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사령관의 출전과 승보를 울려야 하는 것."
이번에는 반색하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머리에 해머라도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입을 쩌억 벌렸다.
"사, 사령관께서도 출전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안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다르지 않다."
레더린이 깜짝 놀라 외치듯 말했다.
"사령관께서는 이번 이지스 대평원 전쟁에 있어 제일 중요한 분이십니다!"
"밤에 야습을 갔을 때, 소드 마스터 세 명이 단숨에 달려들면 어쩔 텐가, 레더린?"
"……."
이안의 질문에 레더린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소드 마스터들이 출전하면 그때부터는 답이 없다.
"뿐만 아니다. 아직도 프라스 제국에는 수십 마리가 넘는 키메라들이 양성되어 있다. 그들까지 합세하면 병사들의 사기는 더 이상 떨어질 대로 떨어질 터. 우리는 이미 밑바닥을 수없이 경험해 봤다."
수뇌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력의 약세를 극복하기에는 너무 처참한 결과만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번 야습으로 총 세 가지를 얻을 것이다. 첫째는 병사들의 사기요, 두 번째는 상대 소드 마스터들의 죽음이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이길 수 있다는 희망과 집념이다. 우리는 승리한다. 이상이다."
야습에 대한 자세한 작전은 찰트에 의해 완벽히 짜여 왔다.
전장에서 흔히 쓰이는 전략으로 바로 양동작전을 계획해 온 것이다. 흔히 쓰인다면 적들이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 지금 상황에 쓰이기에는 양동 작전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적들은 병력이 우세하다는 것만 믿고 경계를 너무 늘어뜨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슈레이더 왕국 측보다 소드 마스터가 한 명이나 더 많다는 사실에 안심을 느끼고 있었다.
발 빠른 날랜 자들로만 2천을 구성하여 300은 양동작전을 위해 동쪽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발 빠르게 사라져야 한다. 적들도 완벽하게 야습이라는 것이 알려지도록.
하지만 사라지되,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300의 병력은 군으로 돌아오지 않고 프라스 제국과 이지스 대평원을 잇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로단 산맥으로 이동할 것이다.
관심이 양동작전으로 쏠려 있는 그 순간을 노려, 남은 1700의 군사는 적을 죽이기보다는 식량 창고에 불을 내어 그들의 식량을 줄여 없애는 것이다.
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프라스 제국은 로단 산맥을 통해 지원을 받을 테지만, 그 300의 병사는 대기를 하고 있다가 식량지원의 발을 묶거나, 괴멸시켜야 했다.
"300명으로 되겠습니까?"
"어차피 발을 묶기만 해도 성공이다. 군사로 이길 수 없다면, 적들을 아사하게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이번 야습 작전에서 기사들의 플레이트 메일 착용은 불가능해졌다. 그 이유는 밤에 반짝거리는 걸 없애기 위함도 있지만 빠르게 후퇴하고 공격하는 작전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몇몇 기사들의 원성도 있었지만 이안은 이번 전쟁에서 그런 기사들의 원성을 철저히 무시했다.
오히려 빠지라면 빠지라는 자세로 방관했다.
전쟁을 통해 이안의 성격은 변화해 갔다. 수뇌부들은 이안의 성격 변화에 걱정이 많았지만, 이안은 오히려 더욱 냉철해져만 갔다.
하지만 그런 이안도 몇 달 전 그록이 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직도 이안은 자신이 왜 황제가 되려 하는지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안의 경지는 마스터도 아닌, 그랜드 마스터도 아닌 그 중간에서 멈췄다.
기사들이나 수뇌부들도 쉬쉬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이안에게는 병사들이 붙여 준 별명이 하나 생겼다.
노스였다.
노스란 300년 전에 존재했던 거짓말쟁이 소년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거짓말을 하며 마을 사람들을 비웃었는데, 병사들이 생각하길 이안은 그런 쪽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야습에서 얻는 것은 3가지가 아니라 4가지였다.
바로 사령관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안은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사기가 올라간 그 틈을 타 교묘하게 이지스 전선에서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무지한 병사들이라도 한두 번 속으면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이안의 거짓말은 병사 1만을 죽음으로 내몰 때까지 계속되었다. 슈레이더 왕국 측 병사들은 3만이 되었고, 프라스 제국의 병사들은 8만 5천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프라스 제국의 병사들을 1만 5천이나 죽였지만, 병력 차이는 그대로나 다름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봐야 했다.
이안은 자신에게 노스란 별명이 붙여진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도 소드 마스터다.
청각이 발달하여 개미의 작은 소리마저도 놓치지 않는다. 병사들이 그에 관해 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 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거짓말쟁이 노스.'
이안은 이를 꽉 깨물고 주먹을 쥐었다.
'이번 야습으로 모든 것이 뒤바뀔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대공 각하."
딜듀란 백작이 부복 자세를 취했다. 그 또한 검을 든 무인이라면 프라스 제국의 대공을 모르지는 않았다.
킹 제레브!
물론 킹 제레브가 검을 사용하는 무인은 아니더라도, 그랜드 마스터 급에 오른 초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킹 제레브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창을 등에 메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딜듀란 백작은 킹 제레브가 설마 전선을 확인하러 왔음은 꿈에도 몰랐다. 워낙 대외적으로 활동을 금하고 있는 대공이었기에 그의 얼굴을 보는 것도 그림을 통해서였다.
"여기까지 친히 왕림해 주셔서 영광이옵니다."
"신 리자드 자작, 대공 각하를 뵈어 영광이옵니다."
"신 룬터 자작, 대공 각하를 뵈어 영광이옵니다."
모두들 제국 내에서는 내로라하는 소드 마스터다. 그들이 일제히 부복을 취하는 자세에 기사들은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킹 제레브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평민인 것처럼 몸 자체에서 아무런 기운도 솟아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앞에 부복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자작이나 백작이 기사들에게는 더욱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그건 기사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소드 마스터인 그들은 킹 제레브를 보는 순간, 그의 기운에 꼼짝하지 못한 채 몸이 얼어붙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그들의 부복 자세에 기사들이 감탄하는 사이 킹 제레브는 스윽 한번 훑어보더니 시선을 창문 바깥으로 던졌다.
그리고 살짝 입을 열었다.
"전선 상황은?"
"펠타온 제국 측, 아니 슈레이더 왕국의 병사들과 현 대치 상태이며 본국의 병사는 8만 5천, 저들의 숫자는 3만. 얼마 안 가 괴멸시킬 수 있을 듯하옵니다."
"나쁘지 않군. 소드 마스터나 마법사들 숫자는?"
"마스터 둘에, 마법사는 아직 확인 불가입니다."
"다른 전선들의 상황은 알아보았나?"
"예상 외로 펠타온 제국의 반항이 거세답니다. 끊임없이 지원 요청이 온다고 들었습니다."
킹 제레브는 담담히 말했다.
"그렇겠지."
그는 무심히 눈길을 창문 바깥으로 던졌다. 수천의 병사, 아니 수만의 병사들이 그의 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그의 눈썹은 꿈틀거리지 않을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고 난 뒤 그가 삶의 재미를 못 느끼고 있었다.
'삶의 재미라…….'
'뭐야, 저것들은?'
야습을 준비한 병사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원래 밤이었기 때문에 어두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처음에 보였던 긴장감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허탈해 하는 듯한 표정이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정찰병의 보고로는 경계령이 약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경계는 뭐란 말인가.
마치 황자라도 도착한 것처럼 수많은 수호 기사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안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경계가 저리도 삼엄하다면 야습 작전을 펼치기도 전에 실패할 것이다.
그만두려면 지금 그만두고 양동작전을 위해 펼쳐진 300의 병사들을 불러들여야 한다.
하지만 이안은 쉽사리 물러날 수 없었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 당장 내일이라도 대규모전이 이뤄지면 이번에는 정말 8만 5천이나 되는 병력을 막을 수 있을지 두려웠다.
'위기는 곧 기회라 했다.'
왜 경계가 삼엄한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만약 생각대로 황자라도 있다면 기회다! 황자를 생포한다면…….'
이안의 머릿속은 빠르게 굴러갔다.
"양동작전을 위해 병사 300을 이끄는 책임자에게 전해라. 내가 지시하기 전까지 대기하라고."
"알겠습니다."
에반이 대답하고 곧바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이안이 대기하고 있는 1,700의 병사들에게 소리 소문 없이 전달했다.
'지시하기 전까지 편안히 쉬라 전해라.'
병사들은 긴장감이 풀리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어떤 병사는 갈증이 타는지 가져온 물을 입에 들이부었다.
이안은 눈에 마나를 집중하며 경계에 집중되어 있는 진영을 바라봤다.
'젠장…….'
이안은 계속해서 기다렸다.
밤은 길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안이야 상관이 없지만, 병사들은 하나 둘씩 지쳐 가고 있었다. 따분함도 느끼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후퇴하면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더 떨어질 것이다.
아무것도 못한 야습전으로 얻은 것은 고작 그들의 경계가 삼엄해졌다는 것과 누군가가 새롭게 등장했다는 것뿐이었다.
뜻밖의 수확이긴 하지만 병사들의 사기에 관해서는 일체 얻은 것이 없었다.
'피해를 입어도 좋다. 어떻게 해서든 야습전을 성공시키고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야 한다.'
이안은 손을 위로 올렸다. 병사들이 눈을 빛내며 몸을 바짝 엎드리며 이안의 손짓에 주목했다.
"야습을 준비한다. 가서 양동작전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병사들에게 알려라. 양동작전이 시작되면 불꽃 신호탄을 쏘아 올리라고. 실패하면 푸른 신호탄이다."
"알겠습니다."
몸이 날랜 병사가 재빠르게 사라졌다.
이안은 프라스 제국 진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기사들에게 둘러싸여서 막사 안에서 나왔다.
그가 나오자 기사들이 모두 움직였다.
이안은 안력에 내공을 주입하며 자세하게 보려 했지만, 기사들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누구지?'
그런데 황자는 아닌 것 같다. 황자라고 하기에는 왠지 늙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저리 엄중한 호위를 받고 있다면 분명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은 맞았다.
이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프라스 제국의 심중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이안이 갑자기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을 옥죄어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없다. 그 누구도 아니다.
최상급 소드 마스터를 능가한 자신에게 이러한 압박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필시 현경, 즉 그랜드 마스터 급의 기사뿐이었다.
'큰일이다!'
이리 살기가 등등하다면 벌써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이안은 재빨리 후퇴 명령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불꽃 신호탄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삐이이잉!
콰앙!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엄청난 폭죽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프라스 제국군은 한순간 멍하니 쳐다보다가 갑자기 곳곳에서 불이 나는 것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습격이다! 망할 슈레이더 왕국 놈들이 습격을 가해 왔다!"
"저기다! 막아라!"
"우와아아!"
병사들이 한순간 그곳으로 몰려갔다. 기사들도 물론이고, 갑자기 막사 밖으로 나온 룬터 자작이 그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챙챙챙!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곳이지만 300의 병사가 양동작전을 위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안의 귀에 똑똑히 그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안은 꿈쩍도 안 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당연한 듯이 말이다.
이안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후퇴를 해야 한단 말인가?'
300의 병사를 버려야 한다.
그것은 지휘관으로서 해선 안 될 짓이었다.
"공격 명령을 내린다. 불화살을 준비하라!"
병사들이 뒤에 큼지막한 롱보우를 꺼내 들며 준비해 온 화살에 기름을 묻히고 불을 붙였다. 그들의 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먼저 당기거나 쏘지 않았다.
이안은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렸다.
피유웅!
1,500발이 넘는 화살이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팍팍팍!
화살들은 제각기 다른 곳에 꽂혔다. 막사와 식량 창고, 그리고 멍하니 있던 병사들에게 말이다.
"끄아악!"
"이쪽도 습격이다!"
"불을 꺼라!"
이안은 다시 손을 들었다 내렸다.
다시 장전된 화살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번엔 불을 끄기 위해 달려가던 병사들의 몸에 꽂혔다.
화살이 꽂힌 병사들은 바닥을 나뒹굴며 피를 토하고 절명했다. 곧이어 달려온 동료 병사들의 발에 밟혀서 말이다.
챙!
이안이 멋스럽게 검을 뽑아 들자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 모두가 활을 내팽개치며 자신 있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공격!"
이안의 돌격 명령에 그들은 양을 탐하는 늑대처럼 눈에 이채를 발산하며 빠르게 내려갔다.
양동작전과 불 때문에 혼란스러운 프라스 제국은 지휘관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불을 끄고 대열을 준비해라!"
딜듀란 백작이다. 딜듀란 백작은 킹 제레브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창피함을 당하자 얼굴이 붉어졌다.
어떻게 해서든 만회하고 싶었다.
킹 제레브는 슬쩍 입을 올렸다.
"상대 쪽에 소드 마스터가 둘이다."
리자드 자작은 이때가 기회라는 듯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 야습한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오러가 번쩍할 때마다 병사들이 피를 내뿜으며 죽었다.
딜듀란 백작도 검을 뽑아냈다.
"저도 가겠습니다. 하앗!"
딜듀란 백작의 검에서도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쳐 올라와 병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공격도 얼마 가지 않아 누군가에게 가로막혔다.
라인하르트 대제국의 후작이었던 레더린이 나선 것이다.
딜듀란 백작과 레더린은 서로를 노리는 야수처럼 원을 그리며 검을 움켜쥐었다.
서로가 서로를 고수라고 인정한 것이다.
"난 슈레이더 왕국의 기사 레더린이다! 너는 누구냐!"
호기스럽게 외치는 레더린에게 딜듀란 백작도 외쳤다.
"난 프라스 제국의 딜듀란 백작이다."
레더린은 딜듀란 백작을 직시하며 노려봤다.
"그대가 이곳 지휘관이로군."
"그렇지."
"잘됐군! 그대만 죽이면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을 테니까."
딜듀란 백작의 검에서 갑자기 소용돌이 같은 기운이 내뻗어졌다.
"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그들끼리의 전쟁을 만들어 내며 맞서 싸웠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곳곳에서 병사가 죽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이안은 적당히 하고 후퇴 명령을 내리려 했다. 하나, 그의 앞에서 한 남자가 검을 뽑아 들며 쳐다봤다.
"오호라! 네가 바로 슈레이더 왕국의 지휘관인 거짓말쟁이 노스로구나!"
노스는 분명 이안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안은 감히 자신에게 그런 말을 지껄이는 자를 똑똑히 노려보았다.
프라스 제국에서도 꽤나 인지도가 있는 리자드 자작이다. 레더린에게 듣기로 최소 중급 이상으로 판단하라 했으니, 맞을 것이다.
"감히 어떤 개새끼가 나를 부르는 것이더냐!"
첩자를 통해서 이안의 별명을 들은 바가 있는 모양인 듯했다.
리자드 백작의 눈이 금세 탐욕의 그것처럼 변했다.
"크흐흐! 천금 같은 기회로다! 내 너를 죽여 프라스 제국 대륙 통일의 일등공신이 되어야겠다."
지휘관을 죽인다면 포상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 리자드 자작은 하루빨리 백작의 지위에 오르고 싶었다.
어차피 고작 20대밖에 안 되는 애송이의 실력은 기껏해야 소드 마스터 초급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초급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분명, 소문은 헛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이안은 병사도 아니고, 적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언짢았다. 아니, 만상귀일신공을 펼치자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오냐! 거짓말쟁이에게 어디 죽어 보거라!"
"크흐흐! 어디 거짓말쟁이 실력이나 보자꾸나."
리자드 자작이 달려들기도 전에 이안이 먼저 달려들었다.
이안은 전력을 다했다.
'아니?'
리자드 자작이 갑자기 눈을 비볐다. 상대가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감쪽같이.
마법을 사용한 것 같지도 않았다.
리자드 백작은 갑자기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곧바로 그는 본능에 몸을 맡기며 앞으로 굴렀다.
슈악!
방금까지 그가 서 있던 공간이 갈라졌다. 이안의 검이 그곳을 훑은 것이다.
이안은 설마 피할 거라고는 생각 못한 듯 리자드 자작을 놀랍게 바라봤다.
"피했군."
'어, 어떻게!'
리자드 자작은 얼굴에 심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엄청 놀랐다.
'어디 다시 한 번.'
리자드는 정신을 집중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공격이나 방어에 치중하기보다는 그가 사라지는 것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것이다.
이안은 다시 한 번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보기보다는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홀연히, 그것도 완벽하게 사라진 것이다.
리자드 자작은 다시 한 번 자기 자리에서 앞으로 빠르게 굴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오른 이안의 검 로열은 리자드 자작의 허벅지를 빠르게 베고 지나갔다.
"크악!"
허벅지가 잘린 것은 아니지만, 완벽히 피해 낸 것이 아니었던지라 피가 왈칵하고 쏟아졌다. 너덜거리는 것 같았다.
"이노옴!"
리자드 자작은 정신을 번뜩 차리고 한 발로 이안에게 달려들었다. 피가 쏟아지는 것은 그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순식간에 지혈이 되었다.
괜히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소드 마스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흥분한 마스터를 잡는 것은 쥐 잡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다.
이안은 리자드 자작이 빠르게 내리치는 검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리자드 자작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안이 본능적으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오르는 자신의 검 앞에서 손을 내미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곧바로 손을 자르고 몸까지 두 동강 낼 거라는 걸 의심치 않았다. 적 지휘관을 죽일 수 있다면 허벅지 좀 베인 것 정도는 싸게 먹힌 거라 생각되었다.
어차피 이 전투만 끝난다면 마법사나 신관에 의해 치료가 가능했으니 말이다.
까앙!
'까앙?'
리자드 자작의 눈이 경악한 표정으로 변했다.
맨손이 검을 쳐 낸다. 피스트 마스터가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피스트 마스터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이뤄졌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안은 땅을 짚은 발로 갑자기 리자드 자작의 얼굴을 강타했다.
퍼억!
미처 방어하지 못한 리자드 자작이 안면에 발차기를 맞고 비틀거렸다.
"크윽!"
그의 코에서는 코피가 주룩 쏟아졌다. 쌍코피다.
그는 소매로 쌍코피를 스륵 닦아 내고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안이 다가오는 것에 타이밍을 맞춰 느릿한 속도로 검을 내리쳤다.
다시 쳐 볼 테면 쳐 보라는 심정으로.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안의 손등은 정확히 리자드 자작의 검을 쳐 냈음은 물론이거니와 쥐기도 했다.
세상에!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오르는 검을 맨손으로 잡아 내다니!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드래곤이 아닌 이상에는 말이다!
'이놈은 진정 드래곤이란 말이냐!!'
생각은 길고 공격은 짧았다.
퍼억!
이번엔 발이 아니라 이안의 오른손 주먹이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리자드 자작이 비틀거릴 시간도 주지 않고 곧바로 검을 놓은 손으로 자작의 손목을 잡고 비틀었다.
"끄아악!"
우드득!
손목뼈가 그대로 부러졌다. 그 엄청난 고통에 리자드 자작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검을 놓아 버렸다.
"네가 그러고도 검사란 말이냐!"
검사는 어떤 상황에도 검을 놓으면 안 된다. 그것은 손이 잘리지 않는 한은 계속돼야 한다.
"으으으!"
리자드 자작은 이안을 보며 뒤로 물러섰다.
기사들은 리자드 자작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이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런 기사들의 생각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검으로 달려드는 기사들을 일 검에 모두 처단했다. 수십의 기사들이 눈 깜빡할 시간에 도륙당했다. 리자드 자작은 주위를 둘러보아 병사가 죽으며 떨어뜨린 창을 들어 올렸다.
'놈을 죽인다!'
리자드 자작이 창을 투척 자세로 취하며 그대로 쏘아 던졌다. 익숙지 않은 투척과 왼손에 제대로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지만 창은 제대로 날아갔다.
이안은 그때까지 방심하고 있는 것처럼 등을 내보이고 있었다.
리자드 자작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이안의 몸이 사라졌다.
쿠쾅!
권강을 주먹에 생성시킨 이안의 주먹이 리자드 자작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다.
그 강한 주먹에 소드 마스터 리자드 자작의 얼굴이 그대로 터져 버렸다.
피가 쏟아졌다.
그를 바라본 기사들과 병사들은 두려움에 사무쳐 몸을 벌벌 떨었다.
이안은 고개를 돌려 봐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손을 위로 올렸다.
"후퇴! 후퇴다!"
챙챙챙!
레더린과 딜듀란 백작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수백여 합을 겨루고도 서로 상처 하나 주지 못했다.
후퇴 명령이 떨어지자 레더린은 곧바로 검을 내리며 몸을 돌렸다.
딜듀란 백작은 아쉽다는 듯 웃었다.
"크큭! 정말 안타깝군. 서로가 모시는 주인이 다르지만 않았어도, 아니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어도 원 없이 싸워 봤을 텐데 말이야."
딜듀란 백작은 그를 잡을 마음이 없었다. 야습이 아닌, 전장에서 그대로 미친 듯이 싸워 보고 싶고 그 누가 강한지 경지의 고하를 나누고 싶었다.
레더린 또한 아쉬운 건 마찬가지였다.
또 언제 마스터와 싸움을 겨룬단 말인가.
"나도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요. 그럼, 언젠가 보겠소."
레더린은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이안은 자신을 바라보는 소름 끼치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이안은 벼락에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까와 같은 반응이었다.
'그다!'
그랜드 마스터.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대륙십강 중 최강이라 불리는 킹 제레브!
디그라실 공작과 싸웠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강하다!
디그라실 공작보다도 훨씬 강하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마치 잊혀지지 않는 얼굴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때, 이안의 뇌 속으로 짜릿하게 스쳐 지나가는 기억 하나.
이안은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손가락을 떨었다.
청성파의 복수!
"귀차앙!"
귀창!
바로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