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르트-46화 (46/60)

■ 제46장 사건의 끝 □

"……큭!"

솔직히 말해서 자신의 경지와 무공들을 합치면 대륙십강에서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든 이길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이노센트는 디그라실 공작처럼 대륙십강 중에서도 최강의 수위를 다툴 정도로 이름 높은 기사가 아니었다. 그저 아주 평범한 대륙십강의 한 명일 뿐이다.

하지만 이안이 이노센트와 부딪치며 깨달은 것은 화경의 경지에 넘어선 자들에게 무공 따위는 일개 기술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보법을 밟지 않아도, 신법을 전개하지 않아도 빨리 움직이고 재빨리 피할 수 있는 능력들이 있었다.

이안은 간신히 빙허임풍을 펼치며 창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헉……! 헉……! 헉……!"

거칠게 토해 내는 숨소리.

이제 이노센트와 부딪힌 지는 고작 3분이 살짝 지났을 뿐이었다. 캐스팅이 완료되려면 2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시간을 막아서는 것을 넘어서 5분이면 오히려 이안은 자신이 이노센트에게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반대를 걱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가다간 당한다!'

이노센트와 3분 동안에 수십 번을 부딪쳤지만, 이노센트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했다.

'설마…… 내 내공이 저자에 비해서 역부족이라는 건가.'

이안은 땀을 소매로 쓰윽 닦고는 다시 검을 잡았다.

이노센트는 살짝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점점 힘들어지는군, 젊은이."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

어딜 봐서 힘들어 하는 표정인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입가에 여유를 부리는 미소만 가득하지 않은가!

이노센트는 자신의 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 창이 무엇인지 아는가?"

"……."

이안은 말을 아꼈다. 그럴 힘마저 아껴야 했다.

"바로 7대 신검 중 하나인 화이트 소드를 드워프들과 협상하여 녹인 뒤 창으로 재탄생시킨 것이지. 난 그 이름을 본받아 화이트 스피어라고 이름을 붙여 줬네. 정말 잘 어울리지."

'그랬나?'

3대 제국검과 7대 신검.

인간계에 뿌려진 10개의 신물.

제국검은 고작 제국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신물이지만, 7대 신검(神劍)은 이름에 걸맞게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제국검과 마찬가지로 신물들 또한 자신들의 주인을 스스로 찾기 마련이다.

'화이트 소드의 능력은?'

드래곤의 힘이 깃들어 있는 검.

그걸 재탄생시킨다고 해도 능력이 사라질 리가 없다.

이안은 머리를 굴렸다.

화이트 소드라면 분명 화이트 드래곤의 힘이 깃들어 있을 터.

여타 드래곤들과 화이트 드래곤의 차이를 알아야 했다.

이노센트는 입을 열었다.

"화이트 스피어의 능력은 단 하나. 화이트 드래곤의 능력과도 같은 '방출'이네."

"방출?"

"그래, 마나들을 효율적으로 내보내 주고 제어해 주지. 그리고 원할 때마다 소량의 마나로 대량의 마나를 사용한 듯한 효과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방출'이지. 정말 괜찮지 않나?"

'그랬나?'

이안은 자신보다도 훨씬 효과적으로 내공을 다룬다는 화이트 스피어에 놀라움을 토해 냈다. 그리고 부딪칠 때마다 전해 오는 엄청난 충격은 바로 그 방출에서 비롯된 것일 터.

'강한 자가 강한 무기를 쥐니 더욱 강해질 수밖에…….'

이안은 그리텔을 바라보다가 싱긋 웃어 보였다.

"1분 남았습니다, 어르신."

"자네를 굴복시키기엔 이제 시간이 많지 않군! 지금부터 모든 힘을 방출시킬 거네."

'죽겠군!'

소량의 마나로도 상대가 안 되는데 대량의 마나를 방출시킨다면 도대체 얼마나 강한 힘을 받아야 된단 말인가.

콰콰쾅!

'큭!'

이노센트의 몸에서 방출되는 마나에 이안은 순식간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마나가 갈기갈기 이안의 피부를 찢을 듯한 충격을 주었다.

"3황자가 너무 강한 자를 포섭했군."

이안은 씁쓸하게 웃으며 로열을 꽈악 쥐었다.

이노센트는 여유로운 웃음을 흘렸다.

"알고 있었는가? 맞네. 나를 포섭한 것은 바로 3황자와 글루노 후작이네."

이안은 놀라움을 토해 냈다.

"단순히 3황자만 한 것이 아니라 글루노 후작도 참여한 일이란 겁니까?"

"그렇지!"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것을 함부로 가르쳐 주셔도 됩니까?"

"물론 계약 위반이지. 허나! 자네는 이곳에서 죽을 걸세. 1분이 채 지나기 전에 저자도 내 창에 죽을 테고. 그럼 누가 바깥에 이 사실을 알리겠는가?"

이안 또한 만상귀일신공을 펼쳤다.

이노센트는 이안의 눈에 살기가 엿보이는 것을 보고 이제부터 제대로 하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밌군. 만약 이게 단순한 대련이었다면 계속 옆에 두고 즐겼을 터인데. 이곳에서 죽여야 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철컹!

이노센트가 창을 휘어잡자 5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이안의 오러 블레이드와는 다른 하얀 오러 블레이드.

이안은 하얀 오러 블레이드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화이트 산맥에 걸맞은 화이트 오러 블레이드라……."

어느새 이안의 검에서도 2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올랐다.

"내가 먼저 가겠네."

"……."

이안은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죽음의 기로에서 그는 결코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제 30초다. 30초만 막으면 된다!'

콰콰쾅!

본디 화이트 산맥의 이름이 화이트라고 지어진 이유는 겨울이 되면 눈이 수북이 쌓여 하얀색을 이루기 때문이었다. 그런 화이트 산맥에 어느새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와아, 눈이야!"

"정말이네!"

펠타온 제국의 수도인 펠타온 시티.

수도에 사는 아이들은 눈이 오자 바깥으로 뛰쳐나와 뛰어놀았다.

그런데 한 아이가 눈을 바라보다가 화이트 산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저게 뭐야?"

"어디 봐 봐. 음……. 그러게, 정말 뭐지?"

허공을 수놓는 엄청난 크기의 빛깔들.

그리고 허공이 폭발하는 듯한 충격이 그 아이들한테도 전달되었다.

"지, 지진인가?"

"우와아아! 되게 멋지다."

"가 볼까?"

한 아이가 그렇게 묻자, 다른 아이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눈이 오면 화이트 산맥엔 아이스 트롤이 나타난다고 엄마가 그랬단 말야!"

"맞아! 우리 아빠도 그랬어. 가지 말랬어!"

"우웅! 그래도……."

"어? 저기 봐. 파란색 빛이 조금씩 작아진다."

"어, 정말이네? 파란색 빛아, 지면 안 돼!"

"지면 안 돼, 파란색아!"

* * *

'큭! 이게 정말 사람의 힘이더냐!'

이안은 입가에 묻은 피를 스윽 닦아 내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의 길이가 2미터는 되니, 오러 블레이드까지 합쳐 도합 7미터의 엄청난 길이었다.

이안의 접근하기도 전에 휘둘러 오기 때문에 짧은 이안의 검으로는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소드 마스터들의 오러 블레이드도 막는 반탄강기와 호신강기라 해도 이노센트의 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막는 순간 우수수 그냥 여러 겹이 바로 박살이 나니 괜한 내공 소모일 뿐이었다.

"이대로는 마법사를 놓칠 것 같군."

"그냥 보내 주시지요."

이안은 허리를 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오러 블레이드는 어느새 1미터로 크게 줄어 있었다.

"자네를 죽이는 것이 최종 목적이지만, 막는 것도 일단 필요로 하니 말일세."

"그래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시간은 이제 10초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만……."

이안이 그리텔을 바라보자, 그리텔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의 내공이 많이 줄어 있긴 하지만 10초를 못 막을 것은 아니었다.

이노센트가 턱을 괴고 생각했다.

"그래, 어찌해야 할까?"

"이제 7초 남았습니다."

"답은 간단하군."

"6초……! 헛!"

이안은 헛바람을 들이켜며 곧바로 움직였다. 이노센트가 지금까지완 달리 상대를 그리텔로 잡은 것이다. 이노센트와 그리텔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놓친다!

'설마 그걸 노리고 있었던 것이냐, 처음부터!'

그리텔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지금 캔슬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5분을 기다려서 캐스팅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5분 동안 다시 이안이 막아 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렇다 해도 여기에서 그만두지 않으면 죽는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안이 순식간에 얼굴을 구기며 곧바로 검을 살짝 휘둘렀다.

그리고 갈라지는 차원.

"뭐, 뭣이!"

이안의 몸이 사라지자 이노센트는 크게 놀랐다. 자신의 눈에서 벗어나다니! 감각에서조차 사라지다니!

이노센트의 놀람은 바로 그 순간 더 커졌다.

채앵!

이안이 어느새 그리텔의 앞으로 나타나 창을 막아서는 것이었다.

"서둘러 주십시오, 그리텔 님."

이안이 말하자, 그리텔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텔레포트!"

그리고 허공으로 빛이 되어 사라지는 그리텔의 모습.

이노센트는 허탈한 듯이 입을 벌렸다.

"어, 어찌 이동했는가? 자네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거리가 족히 30미터는 떨어져 있었네."

"제게 거리는 상관되지 않습니다."

"서, 설마. 자네, 마법사의 기질도 있었던가? 아닌데, 아니야. 분명 자네는 마법사의 느낌이 들지 않고, 마법사와 검을 병용해서 이렇게 강한 경지에 오를 리도 없지. 그렇다면 아티팩트?"

"그렇게 생각하셔야 편할지도 모릅니다."

"큼! 젊은 사람답지 않게 한 수를 숨겨 두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네. 아니, 숨겨 두고 있는 수가 설마 공간을 이동하는 기술이라니!"

"후우!"

이안은 일단 한 고비를 넘기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노센트를 직시하며 바라봤다.

'계속 싸울 마음은 없다. 일단 도망갈 곳을 알아야 하는데.'

자기 딸을 위해서니 이안을 죽어라고 쫓아올 것이었다.

'망할.'

사절단과 나라를 위해서 하는 짓이라곤 하지만, 이노센트의 딸 또한 무슨 죄로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저 운이 없어 이노센트 가문에 태어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이안은 검을 슬쩍 내렸다.

그러자 이노센트가 인상을 가볍게 찌푸렸다.

"지금 와서 그만둔다거나 하는 뜻으로 봐야 하는 겐가?"

"어차피 시간이 남는다면 딸을 보게 해 주십시오."

"딸? 딸이라니? 내 딸을 말인가?"

이안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어차피 이대로 계속 싸우는 행위는 둘 다 양패구상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따님을 보게 해 주십시오."

"훗! 노인네를 상대하기에는 힘이 역부족이던가?! 그래서 간교한 수작을 부리려는 겐가?"

"전 슈레이더 왕국의 사절단을 책임지고 있는 로엔그람 후작입니다. 그리고…… 한때는 한 제국의 황태자였던 적도 있지요. 여신에게 명예를 걸고 약속할 수도 있습니다."

"미안하네! 차라리 자네를 죽여 하루 빨리 딸을 치료하는 방법밖에는 없네."

"치료하시는 방법은 아십니까?"

"크음!"

이노센트는 기침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약초에 대해서는 가문의 유전병 때문에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치료 방법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자네는 치료 방법을 아는 겐가? 우리 가문의 유전을 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치료 방법은 알아내겠습니다."

"하지만 자네가 치료 방법을 알아내도 어쩔 수 없네. 자네를 죽여야만 메모라인 플라워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일세."

"메모라인 플라워? 설마 메모라인 플라워를 찾고 계신 겁니까?"

"그렇네. 설마 가지고 있는가?"

'다행이다!'

메모라인 플라워라면 그리텔이 가지러 간 것이 아닌가.

이안은 쾌재를 불렀다. 운이 좋으면 잘 넘어갈 수도 있었다.

더 이상 이노센트와 싸우면 필패였다.

그의 화이트 스피어는 디멘션 소드를 마스터하지 않은 상태로는 이길 수 없다. 적어도 쉐도우 로드가 올랐던 그 경지만큼은 올라야 했다.

"아까 그 마법사님이 가지러 가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메모라인 플라워. 운이 좋다면 더 얻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분명히 얼마나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것이 아니니, 있는 것은 모두 가져오실 테지요."

"자네 말은 온전히 믿을 수 없군! 뿐만 아니라 얻는다 해도 난 이미 자네와 달리 다른 사람과 메모라인 플라워를 위한 거래를 성사시켰네. 아무리 내가 막무가내식 기사라지만, 지켜야 하는 도가 있어."

"딸을 치료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럼 됩니까?"

갑자기 이노센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내, 내가 뭘 하면 되는가?"

"당장은 해 줄 것이 딱 하나뿐입니다."

이안은 씨익 웃었다.

글루노 후작과 3황자는 믿기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쩌억 벌렸다. 여기저기서 쏟아진 피가 역한 냄새를 풍겨 왔다.

"이, 이것이 바로 로엔그람 후작의 피란 말이오?"

글루노 후작이 묻자 이노센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 말대로 쉽진 않았소. 전력을 다하지 않았으면 내가 당했을 것이오."

이건 진심이었다.

이노센트도 끝까지 갔으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젊은 놈치고는 굉장히 꿈틀거리더군."

"흐흐흐! 잘하셨소. 역시 대륙십강의 최고의 자유기사인 이노센트 경이오! 근데 놈의 시체는 어디 있소?"

이노센트는 순간 무서운 기세를 가득 담은 눈길로 글루노 후작을 바라봤다.

"단순히 마스터들의 싸움을 치고 박는 풋내기들 싸움이라 생각하는가? 마나와 마나의 폭발 과정에서 시체를 찾을 수가 없소. 저길 보시오."

글루노 후작은 안경을 고쳐 쓰며 이노센트가 가리킨 곳으로 눈을 돌렸다.

땅이 움푹 파여 있는 곳.

너덜너덜한 천이 여기저기 흩날리고 있었다.

글루노 후작은 그게 이안이 입고 있었던 옷이란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오! 맞는 것 같군. 황자 전하, 이제 놈이 황녀를 살릴 확률은 없습니다. 하하하! 이거 계획대로 일이 아주 잘 풀렸습니다."

3황자는 광소를 지었다.

"크흐흐! 고맙습니다, 후작. 이제 내 마음대로 베리카 가의 영애를 아내로 맞이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군요."

그간 이안한테 먹은 겁으로 얼마나 시달렸는가.

3황자와 글루노 후작은 이안의 죽음에 속이 후련하다는 듯이 하늘에 대고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 잘됐군요."

3황자는 이노센트에게 약속한 물건을 넘겼다.

"이것이 바로 메모라인 플라워라고 하는 약입니다. 이노센트 경, 이 약이 바로 주인을 찾아갔군요."

"고맙습니다, 황자 전하. 제 딸도 황자 전하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다."

"하하하! 황자 된 도리로써 그래야지요. 제 국민들은 모두 저의 백성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이노센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황자 전하의 성은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딸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왔더니 걱정이 되어서……."

"하하! 그래야지요. 잘 가십시오, 이노센트 경. 부디 딸아이의 쾌차를 빌겠습니다."

이노센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화이트 산맥에서 벗어났다.

그날, 3황자와 글루노 후작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후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리텔 님, 다 저장되었습니까?"

"물론이네. 하하하! 이것이 황제 폐하께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주 통쾌한 일이로군!"

이안은 3황자에게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상상하며 고스란히 3황자가 먹을 충격에 고소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노센트 경은 어딜 가는 겐가?"

"삼 일 후, 광장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어차피 이노센트 경의 딸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일단 황녀님부터 치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난 아직 궁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가져가게나. 여기 있네."

그리텔이 준 것은 작은 동전이었다. 그런데 그 동전에는 방금 전 이노센트와 3황자, 글루노 후작이 얘기했던 영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황녀님의 쾌유를 빌겠네. 난 자네만 믿어."

"감사합니다, 그리텔 님. 언젠가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하하! 나야말로 황녀님께서 살아나신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걸세."

"헌데 황녀님의 치료를 위해 언제 궁으로 오실 예정입니까?"

"아마 밤중에나 몰래 들어갈 수 있을 걸세. 일단 그 약초는 내가 자주 사용하던 것이라 사용법을 알고 있으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허공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텔은 홀연히 사라지는 이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정말 대단한 능력이로군. 저런 젊은이가 내 제자로 들어왔으면 좋았으련만……."

이안은 곧바로 궁으로 향했다.

비록 이리스 황녀의 중독을 해독할 만한 약초를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끌 만한 약초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떻게 해서든 해독제를 찾아야 했다.

이안이 궁 안에 도착하자 곧바로 황실기사단이 먼저 나와 이안을 포박했다.

"황녀님께 독을 가한 인물이다. 검을 뺏어라."

이안은 미리 검집을 빼서 황실기사단 아무한테나 던졌다. 그리고 아티팩트로 무장된 철수갑을 이안에게 채우고서야 안심하고 대전으로 향할 수 있었다.

"황제 폐하이시다. 감히 얼굴을 쳐다볼 수 없는 분이니, 먼저 입을 열지도 그분을 보지도 말아라."

황실기사단의 엄중한 경고를 받고 나서야 대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이안은 그때처럼 거의 중간까지 질질 끌려가고 나서야 앉을 수 있었다.

"죄인 로엔그람 후작은 고개를 들어라!"

이안은 황실기사단이 당기기 전에 미리 얼굴을 들어 올렸다.

브리온 황제는 용상에 앉아 기대 어린 눈길로 이안에게 물어 왔다.

"죄인 로엔그람 후작은 짐과 약속한 해독제를 찾아왔는가?"

이안은 황제를 직시하며 말했다.

"먼저 제 몸에는 이 사건이 저에 대한 음모라는 것을 증명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게다가 해독제는 그 음모를 시행한 자가 박살 냈기 때문에 찾을 수 없었으나, 황녀님의 생명을 몇 달 정도 연장시켜 줄 약초는 찾을 수 있었습니다."

"뭐, 뭣이! 이 일이 음모라는 증거를 찾았다고?"

"그렇습니다."

"으으! 죄인의 몸에서 가져오너라!"

잠시 후 이안의 몸을 뒤적거린 황실기사단은 몇 송이의 꽃과 하나의 동전을 꺼냈다.

"이 동전이 맞는가?"

"맞습니다. 1회성 마법이라 한 번밖에 보실 수 없습니다만, 증거로는 확실합니다. 실행하기 위해서는 동전을 쥐신 황제께서 '진실을 열어라'라는 말만 해 주시면 됩니다."

황제는 더 기다릴 것도 없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진실을 열어라!"

그러자 브리온 황제의 앞으로 영상이 펼쳐졌다.

대전에 모인 귀족 전원이 볼 수 있도록!

이안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느긋하게 차를 마시던 3황자와 글루노 후작.

그들은 한 기사의 방문으로 부랴부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 후작 각하와 황자 전하를 찾으십니다."

"어디로 말인가?"

"대전으로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글루노 후작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는 사이에 3황자가 물어 왔다.

"후작, 아바마마께서 우릴 왜 찾으시는 걸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저 부탁할 일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그런 일이라면 왜 대전으로 오라고 하신 건지……."

그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음!'

왠지 켕기는 것이 있는 글루노 후작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일을 그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그들은 대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글루노 후작님과 황자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들라 하라!"

"예∼."

그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대전에 모인 이리스 황녀 독살 사건을 아는 고위급 귀족들 모두가 그들을 쳐다봤다.

글루노 후작과 3황자는 뭔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대전 한가운데에 꿇려 있는 한 남자를 보며 입으로 '헉!' 소리를 내뱉었다.

"어, 어찌 저자가!"

"이, 이럴 수가!"

이안은 그들을 힐끔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브리온 황제는 3황자와 글루노 후작에게 노성을 토했다.

"정말 이 내용이 사실이냔 말이더냐!"

글루노 후작은 약삭빠르게 무릎을 먼저 꿇었다.

"황제 폐하, 신은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사옵니다."

3황자도 얼른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바로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아바마마! 소자 또한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으으!"

브리온 황제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놈들이! 지금 너희들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느냐! 당장, 이놈들을 뇌옥에 가둬라! 그리고 감옥에 갇힌 슈레이더 왕국의 모든 사절단을 풀어 주거라!"

"예, 폐하!"

기사들이 몇몇 사라지고, 또 다른 기사들은 3황자와 글루노 후작을 포박했다.

"이놈들! 놔라, 어디 감히 천한 것들이 내 몸에 손을 대느냐! 아바마마, 억울하옵니다! 소자는 절대 아니옵니다, 아바마마!"

"저놈은 내 아들이 아니다! 또한 재상도 오늘부로 재상은 물론 후작의 자리에서 박탈한다! 그의 모든 재산은 국고로 환수될 것이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글루노 후작은 안경을 고쳐 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3황자는 차가운 감옥 바닥으로 수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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