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르트-43화 (43/60)

■ 제43장 피해 갈 수 없는 오해 □

"글루노 후작, 어떻습니까?"

3황자의 물음에 글루노 후작이 안경을 고쳐 썼다.

"대성공입니다. 이리스 황녀는 물론이거니와 로엔그람 후작도 마셨으니 쉽게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3황자는 그의 대답에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하하! 잘했어요, 후작. 그런데 로엔그람 후작은 슈레이더 왕국의 명망 높은 기사라고 들었는데, 독이 통할 듯싶은 거예요?"

글루노 후작은 호언장담했다.

"그 독의 이름은 '다크 포이즌'입니다. 이름 있는 흑마법사들만이 만들 수 있는 지독한 독이지요. 소드 마스터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에게는 죽이지는 못해도 적어도 힘을 어느 정도는 빼앗을 수 있다고 합니다."

"듣기로 로엔그람 후작은 소드 마스터 중급 이상이라는데?"

"헛소문입니다. 그의 나이를 봐도 소드 마스터라고 하기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데, 초급을 벗어났다고 보기에는 불가능합니다. 그의 경지는 디그라실 공작님도, 프라스 제국의 킹 제레브 대공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겠지요? 하하하! 사실 조금 불안하긴 했습니다. 후작의 얘기를 들으니 안심이 가는군요."

"신만 믿으십시오, 황자님. 지금쯤 황녀의 몸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신관이 눈치를 채고 폐하께 아뢰었을 것입니다. 흐흐흐!"

* * *

이안은 침대에 누워 조심히 검 '로열'에 손을 대었다.

그의 감각에 잡히는 작은 기운들.

그 기운들은 이안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곧바로 문 뒤로 가 숨소리를 죽였다.

끼이익―!

때에 맞춰 들어오는 괴한들.

이안은 맨 앞에 들어온 자를 끌어들이고 로열을 그의 목에 대고 외쳤다.

"누구냐?"

잠시 후, 떨리는 여자의 음성이 들리는 게 아닌가?

"나, 나야. 로이니스."

이안이 방 구석구석 박혀 있는 아티팩트들을 이용하여 방을 밝혔다.

로이니스 뒤로 따라온 자들은 이번 사절단에 임명된 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안은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이 밤중에 여기까지는 웬일들이시죠?"

귀족들 중 하나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이리스 황녀가 독에 중독됐답니다, 후작 각하."

이안은 순간 청천벽력 같은 소리로 들렸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뭐, 뭐요?! 그,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이번 사건의 주모자로 후작 각하께서 지목되었고, 병사들과 기사들이 사절단을 급습하여 이미 대부분의 귀족들은 포박당한 채 감옥에 끌려갔습니다. 저희들만 간신히 빠져나와 후작 각하께 찾아왔습니다."

정말 귀족들의 수는 고작 대여섯 명에 불과했다.

"어서 피해야 합니다, 후작 각하!"

"그럴 거 없소이다, 로엔그람 후작!"

척척척!

높낮이가 없는 말투 마르도 백작. 그리고 그 뒤로 리카르소 자작을 비롯하여 수십 명의 기사들이 이안의 방을 포위했다.

"여긴 사절단의 방이오. 함부로 들어올 수 없을 텐데?"

"안타깝지만 후작 당신한테 체포령이 떨어졌소. 우리는 그 명에 따를 뿐이오. 사절단 전원을 죽게 하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포박되는 게 좋을 거요, 후작."

"그들을 어디에 가뒀소?"

"폐하의 어명에 따라 감옥에 가뒀소."

"우리가 아무리 죄를 저질렀다 해도 사절단의 입장으로서 객궁에 머무르게 하는 게 예의고 법도요!"

"어쩔 수 없소이다. 폐하의 어명이라 하지 않았소? 해명을 하려거든 폐하 앞에서 하시오. 모든 일은 폐하께서 결정하실 일이니……."

귀족들이 죄다 이안의 얼굴을 바라봤다.

사절단의 책임자로서 이안이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안이 벌인 일로 오해가 벌어진 것이다.

'망할…….'

"좋소. 포박하시오."

"모두 포박하라! 죄인은 소드 마스터이니 절대 방심하지 마라."

죄어 오는 기사들.

이안은 그들이 볼 수 있게 양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당신이 소드 마스터이니 일반적으로 포박할 거란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거요."

특별히 이안에게 고위급 마법사가 제작한 아티팩트가 채워졌다. 그 아티팩트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기운을 억제해 주는 수갑이었는데, 아직 그랜드 마스터 급에 오르지 않은 이안은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이안이 순순히 포박되자 마르도 백작은 슬쩍 웃었다.

"흐흐! 죄인들을 감옥으로 압송하라!"

"예!"

"전하, 큰일이옵니다. 전하!"

대전으로 급히 뛰어 들어오는 베리카 백작.

카이어스 국왕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웬일이에요, 백작? 백작처럼 품위가 있는 자가 이리 뛰어다니다니."

베리카 백작은 정색하며 말했다.

"사절단으로 갔던 로엔그람 후작이 이리스 황녀의 독살 사건의 주모자가 되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절단들이 잡혀 감옥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웃음기 만발하던 카이어스 국왕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뭐, 뭐라고요? 화, 확실한 거예요? 백작?"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어, 어째서 후작이 그런 일을……."

"오해임이 분명합니다. 전하! 어떻게 해서든 저희가 손을 써야 합니다. 이렇게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요, 백작. 일단 모든 귀족들을 소집하도록 해요. 백작, 긴급회의예요."

긴급회의!

수도에 모인 모든 귀족들을 소환하는데, 어떠한 이유를 가진 자도 절대 불참할 수 없다.

긴급회의가 이뤄진 적은 이례적으로 거의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드물었다.

"아, 알겠습니다. 전하. 당장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서두르도록 해요, 백작!"

* * *

"풀어 주시오, 난 죄가 없소이다!"

"풀어 주세요!"

슈레이더 왕국 사절단의 소리였다. 귀족들은 아니고, 시종이나 시녀들의 울부짖는 소리였다.

귀족들 중 어느 몇 명은 후작이 그럴 리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몇 명은 이안을 노골적으로 원망 섞인 눈길로 쳐다봤다.

그렇지만 절대로 바깥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나자 귀족들 중 대부분이 이안에게 반감을 사게 되었다.

죄인들을 가둬 두는 감옥이었기 때문에 벽 곳곳은 오물로 가득했고, 나오는 밥이라고는 농노들도 먹지 못할 만큼 쓰레기 같은 주먹밥이었다.

'귀족들 대부분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겠군.'

소드 마스터인 이안도 버티기가 힘들 정도로 역했다. 보통 귀족들은 어떠하겠는가.

'사절단의 후작인 내가 이런 감옥까지 가뒀다는 것은 이리스 황녀의 독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었다. 오래 놔두면 놔둘수록 중독 현상이 심해지겠지. 만약 고위급 신관들이나 마법사들이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라면 분명히 해독제를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 나를 부르게 될 것이다.'

이안은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리 황녀를 중독시켰다고 해도 사절단을 어쩔 정도로 대륙의 원성을 살 만한 펠타온 제국이 아니었다.

'기다린다.'

끼익―!

한 서너 시간쯤 흘렀을까.

간수 한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로엔그람 후작, 폐하께서 당신을 찾으시오."

'생각대로군.'

"알았소."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 가짐을 단정히 했다.

"허튼수작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이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기사들 수십 명이 버티고 있소."

"어차피 그럴 생각이니 걱정 마시오."

"흥!"

간수의 충고를 받아들이며 이안은 거의 끌려가다시피 걸어 나갔다.

"베리카 폰 로이니스, 3황자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나와라. 3황자님이 계시는 궁으로 압송할 것이다."

그때, 이안의 귀를 자극하는 소리.

이안은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건 뭔 소리요, 간수?"

간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뭔 소리겠소? 3황자님이 이 나라의 법을 관리하시는 분이니 죄수들을 담당하는 것이 당연하지. 그냥 잠자코 따라오기나 하시오. 당신도 황제 폐하를 알현하게 된다면 3황자님을 뵐 수도 있소."

'3황자?'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3황자가 어째서 로이니스를 먼저 찾는지 알 수가 없었다.

'3황자와 로이니스, 대체 무슨 관계였지? 뭔가 놓친 듯한 기분인데…….'

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단 황제부터 만나야 한다.'

간수를 따라 감옥의 끝까지 다가가자 기다리고 있던 기사 수십 명이 이안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아티팩트 때문에 고작 일반 사람만 한 데다 제대로 된 밥도 먹지 못하고 차가운 감옥 바닥 때문에 잠도 자지 못했으니 이젠 일반 사람만도 못하다고 봐야 했다. 이런 기사의 숫자는 과하다고 볼 수 있었다.

'조심성이 많은 나라야. 펠타온…….'

이안이 묵묵히 걸어가니 기사들도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하나 이안은 절대 포위망을 벗어나고픈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즉각 참형을 당할지도 몰랐다.

'황제를 만나 해명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안이 씨익 웃었다.

'아직 이리스 황녀는 치료되지 못했다는 뜻이군. 절대 사절단을 죽일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시름 덜어 놓을 수 있었다.

"무릎을 꿇어라."

탁탁탁.

이안은 정신없이 앞으로 끌려가 거의 강제적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브리온 황제는 살짝 입을 열었다.

"죄인 로엔그람 후작은 고개를 들라."

"고개를 들라!"

뒤에 대기하던 기사가 이안의 머리를 잡고 뒤로 당겼다.

"큭!"

이안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망할 놈의 나라 펠타온. 소국은 무시한다 이건가. 딸 사랑이 아주 대단한 나라로군.'

"죄인 로엔그람 후작은 얼마 전 이리스 황녀를 독을 이용하여 중독시켰다. 시인하겠는가?"

'이제 시작이다.'

이안은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크흠! 신 로엔그람 후작은 이리스 황녀님을 절대 중독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었습니다."

"슈레이더 왕국 사절단의 책임자 로엔그람 후작에게 묻겠네. 그대는 프라스 제국과 비밀리에 동맹을 맺고, 본국의 뒤를 치기 위하여 파견된 사절단이 아닌가?"

"절대 아닙니다. 저희는 그 누구와도 동맹을 맺지 않았고, 설사 동맹을 맺는다고 해도 오직 펠타온 제국 한 곳뿐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리스 황녀를 중독시킨 것은 누구라 생각되는가?"

"조사를 하지 않았으니 모릅니다. 하지만 신은 절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사절단 그 누구도 그럴 사람도 없었고,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목숨?"

브리온 황제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그럼 로엔그람 후작은 짐이 시간을 부여한다면 해독제를 찾아올 수 있겠는가?"

"어떤 독에 중독되어 있는지를 모르니 어떤 해독제를 찾아와야 할지 모릅니다."

"여봐라, 이리스 황녀를 데려오너라!"

옆에 있던 글루노 후작이 대경실색했다.

"폐하, 그건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저자가 아무리 아티팩트로 힘이 빼앗겨 있다곤 하지만, 기본적인 힘은 황녀님을 일격에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안은 글루노 후작을 잠시 노려보았다.

"게다가 본국은 슈레이더 왕국처럼 작은 나라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그저 모두 참살시켜야 할 것입니다."

'저, 저놈이!'

이안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글루노 후작은 안경을 고쳐 쓰고는 콧방귀만 뀌었다.

"글루노 후작은 입을 닥치시오! 빨리 이리스 황녀를 데려오너라."

"예, 폐하∼."

글루노 후작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기사들은 황제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바깥으로 나갔다.

글루노 후작은 입이 쏙 다물어졌지만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덜컥.

잠시 후 휠체어에 타 온몸을 이불로 둘둘 둘러싸고 있는 이리스 황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황녀의 병은 고위급 신관들조차 병명을 알 수 없다. 그대는 알 수 있겠는가?"

"아티팩트 때문에 힘듭니다. 수갑을 풀어 주십시오."

이안은 거의 간청하듯 얘기했다.

"으, 으음……."

브리온 황제는 잠시 고민했다. 하나 이안은 그런 황제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이 수갑을 풀지 않으면 살펴볼 수가 없사옵니다. 애초부터 제가 중독을 시켰다면 제가 잡혀 오던 날까지 태평하게 방에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저는 슈레이더 왕국의 최고의 기사입니다. 슈레이더 왕국은 저를 결코 잃으려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브리온 황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알았다. 로엔그람 후작의 수갑을 풀어 주거라."

"예, 폐하."

이안은 수갑이 풀리자 손목을 한 번 비틀어 보았다. 내공이 서서히 활성화되면서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괜찮군, 이 정도면.'

"어서 살펴보아라."

브리온 황제의 독촉 소리에 이안은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스 황녀의 팔뚝을 잡았다.

'응?'

낯설지 않은 기운이었다.

'뭐지?'

이안은 곰곰이 회상해 보았다. 그러다 머릿속을 스치는 작은 생각.

'이, 이것은! 그, 그때 차를 마시며 느꼈던 기분과 똑같다. 설마 바로 그것이 독이었나?'

이리스 황녀의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이 상태에서 감기라도 걸렸다가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다.

게다가 몸은 너무도 병약해서 오늘내일 죽을지도 몰랐다.

이안의 심각한 얼굴에 브리온 황제의 얼굴도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무슨 독인 줄 아는가?"

"몸 구석구석 퍼져 쉽게 치료할 수는 없을 듯하옵니다."

이안은 내공을 이용하여 독을 몰아내었다. 하지만 너무도 지독한 독이라 해독제 없이는 내공만으로 독을 몰아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청명심법이 아니었으면 이 정도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가르친 것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끄으응."

이리스 황녀가 신음 소리를 흘려 내자 브리온 황제가 용상을 탁 짚으며 일어났다.

"이, 이게 무엇인가?"

"독으로 인한 현상입니다. 염려 마십시오."

이안은 정신을 집중하여 일단 내공으로 전신을 한 바퀴 휘감았다. 그리고 그녀의 독을 한순간에 모두 흡입하여 자신의 손가락 끝으로 맺었다.

뚝뚝―!

검은 빛깔의 독이 땅으로 몇 방울 떨어졌다.

브리온 황제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그게 무엇이지?"

"독입니다. 하지만 이건 응급치료에 불과합니다. 고작 수명을 조금 늘렸을 뿐. 황녀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해독제를 찾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떤 해독제인지 알겠는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안은 손에 묻은 독을 소매로 닦아 내었다.

"짐이 시간을 준다면 해독제를 찾아올 자신이 있는가?"

"……."

이안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없다. 이런 독이 흔할 리가 없다. 중원에서도 보기 힘든 독이었다.

"해독제를 찾지 못하면 이리스 황녀가 죽는다. 그리고 이리스 황녀가 죽는다면 사절단은 모조리 죽일 것이다. 슈레이더 왕국 또한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협박이다. 명백한 협박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찾아라, 해독제를!"

글루노 후작은 들고 일어섰다.

"아니 되옵니다, 폐하! 말이 안 됩니다. 절대 이대로 풀어 줘서는 안 됩니다."

"후작, 닥치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 방법은 이것뿐이네. 물론 로엔그람 후작뿐만 아니라 모든 신관과 마법사, 약초사들을 이용하여 수소문할 것이야."

"그럼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먼저 나가겠습니다, 폐하."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는 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았다. 하지만 이리스 황녀가 중독됐다는 사실은 일급비밀이다. 그 어디에서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 알겠는가?"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시간은 황녀가 죽기 전까지다. 그때까지 가져오지 못한다면 사절단을 모조리 몰살시킬 것이다."

이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찾아오도록 하게나!"

"어서 오십시오, 글루노 후작."

방에 들어선 글루노 후작은 3황자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황자님,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긴, 처음부터 준비했던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아, 혹시…… 베리카 백작의 영애가 이곳에 있습니까?"

"그렇지요. 지금쯤 방에 있을 겁니다."

3황자는 상대의 마음도 없이 치러지는 결혼식에 들뜬 모습이었다.

웃음꽃을 피우던 3황자는 잠시 거울을 쳐다보더니 웃음을 싸악 지웠다.

"로엔그람 후작은 어찌 되었습니까?"

"막아 보려 했지만, 황제께서 그를 내보냈습니다."

3황자는 거울에서 눈을 떼고 글루노 후작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어떻게 해서든 막았어야죠. 그가 이제 궁을 나왔으니 해독제를 찾으려 할 텐데……."

3황자가 책망하는 어조로 원망 섞인 눈길을 보내자 글루노 후작은 안경을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독은 아무나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귀한 독입니다. 그만큼 해독제도 찾기 힘들다는 말이지요. 그는 결코 저희에게 해독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겁니다."

"해독제라……."

3황자는 의자에 살짝 앉았다.

"그렇지요. 해독제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것 하나, 그것뿐이지요. 그의 능력으로 봤을 때, 제가 가지고 있는 해독제를 노릴지도 모르지요."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아니에요. 어차피 그 독은 이제 남지도 않았으니 해독제를 파괴하도록 하세요."

후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예? 파괴 말입니까?"

3황자는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저를 찾아도 절대 해독할 수 없게끔 말이에요.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 보자고요."

후작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 알겠습니다, 황자님. 그럼 저는 이만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가는 길 아무쪼록 조심하도록 해요, 후작."

"명심하겠습니다."

후작이 사라지고 난 뒤.

3황자는 광소를 퍼트렸다.

"크흐흐! 로엔그람 후작, 널 나의 성대한 결혼식에 제물로 삼아 줄 것이다. 크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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