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0장 찾았다! 로이니스 □
키메라가 된 헤일론은 붉은 안광으로 주위를 바라보며 물기가 있는 곳으로 무작정 내달렸다. 앞에서 거치적거리는 것은 그저 몸으로 돌파하고 나니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의 한 팔밖에 없는 거대한 손에는 여인 셋이 쥐 죽은 듯이 기절해 있었다.
"크르르르."
키메라는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탓에 냇가에서 벌컥벌컥 닥치는 대로 물을 마셨다. 그것도 모자라 손에 쥐어진 여인들을 내다 버리듯 떨어뜨려 놓고,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잡아다가 무작정 입에 쑤셔 박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냇가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던 물고기들은 키메라의 이빨에 온몸이 터지는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키메라는 포만감이 느껴질 때까지 물고기들을 잡아먹고 나서야 주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아까 떨어진 충격으로 깨어난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공포에 젖은 눈빛, 그걸 증명하듯 떨리는 눈동자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다리.
꽉 깨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비집고 흘러나왔다.
"가, 가까이 오지 마. 더 이상 가까이 온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녀의 곁으로는 바람의 중급 정령인 실라페 하나가 매서운 눈길로 키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라페의 힘은 능히 오우거의 발목도 잡을 정도로 강력하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였던 헤일론을 잡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실라페, 놈을 제압해!"
호기스럽게 외친 명령에 실라페가 빠르게 질주하더니 키메라의 발목을 바람으로 감쌌다. 하지만 키메라는 작게 인상을 찌푸리더니 가벼운 걸음으로 실라페의 기술을 파괴시켰다.
쿠웅!
숲에 거대한 발걸음 소리가 울리자 새들이 푸드득거리며 하늘로 비상했다. 로이니스는 그들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다가 현실에 직면한 상황을 보며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무리다.
그제야 이놈을 왜 아다만티움으로 지어진 철창에 가뒀는지 알 수 있었다.
고작 팔이 하나밖에 없는 것을 보며 위안을 삼았지만, 키메라에게 있어 하나나 둘이나 로이니스를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만감을 채운 키메라는 더욱더 강대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도망가야 해!'
그녀는 눈길을 돌리다가 시녀들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예전 같았더라면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시녀들 따위는 내다 버리고 도망갔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죽은 것도 아닌, 단지 기절해 있는 시녀들을 보며 도망갈 수는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그녀들은 자신을 따라와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누군가 눈치를 채 줄 사람만 있다면!'
로이니스는 강대한 정령력을 풍기며 주위로 발산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정령력을 느낄 수 있다면 적어도 마스터 급 이상의 실력자가 와 줄 것이었다.
사절단에 있어서 마스터의 실력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이안.'
그가 와 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이안의 신형은 재빠르게 키메라가 사라진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신법을 이용하여 튕겨 나가는 그의 모습은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한참 전에 사라진 키메라를 단숨에 쫓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일단 키메라가 사라진 방향으로 추적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했다.
키메라가 다행스럽게도 도주하는 것에는 아둔한 모습을 보여 줬고, 그 큰 덩치는 어디에서도 숨길 수가 없기 때문에 곳곳에 추적할 수 있을 정도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안은 그런 곳을 더듬으며 로이니스를 찾기 위해 내달렸다.
하지만 굳을 대로 굳어진 그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로이니스의 생사조차 알 수 없으며 사절단은 큰 위기에 빠졌다. 이럴 때 그리텔이라도 있었으면 손쓸 곳을 줄일 수 있기에 안심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새삼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리텔 님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공간이동 마법으로 사라진 그를 찾기에는 무리가 있다.
'방법…….'
이안은 주머니를 뒤졌다.
* * *
"놈들은 단순한 키메라족에 불과한 괴수들이다! 놈들의 가죽은 생각보다 단단할 수 있으니 단숨에 오러로 몰아붙여라. 그렇지 않으면 승기를 잡기 어렵다!"
"예!"
칼리프의 명에 은의 기사단 전원이 오러를 피워 올렸다.
50명에 버금가는 기사들이 오러를 피우자 귀족들은 반색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들을 보며 벌벌 떨리는 손으로 검을 잡았던 그들이다.
아무리 정식으로 검술을 수련했다 한들,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떨리는 상대로 제대로 된 검술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설사 그런 검술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상대의 전신에 생채기라도 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믿음직스러운 은의 기사단의 모습에 그들은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들이라면 능히 괴수들을 제압하고 자신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오해였음을 그들이 일차적으로 붙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텅!
한 기사의 검이 키메라의 손톱에 막히고 나자 기사는 한순간이나마 당황했다.
"헉!"
오러라 하면 강철조차도 쉽게 베어 낼 수 있거늘, 고작 손톱에 가로막혔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패닉 상태에 빠진 기사는 옆으로 돌격한 키메라의 숄더차지에 안면에 부상을 입고 즉사를 면치 못했다.
명색이 왕실기사단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은의 기사단이었지만 마스터 급 20마리에 익스퍼트 급 30마리의 키메라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크아아악!"
곳곳에서 피와 비명이 난무했다.
귀족들은 잔인한 그들의 모습에 몸을 벌벌 떨었다.
정신없이 싸우는 기사들도 자신의 옆으로 전우의 머리가 굴러다니자 머리가 백지장처럼 변했다.
"후작 각하께서 5분만 기다리라 하셨다. 5분이다! 5분만 기다리면 해결될 것이다."
칼리프는 정신없이 오러를 피우고 키메라들을 쓰러뜨렸다. 마스터 급은 몰라도 익스퍼트 급의 키메라들은 칼리프의 검에 몇 수 덤비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다.
그 모습에 기사들은 더욱 힘을 내고 싸웠다.
'5분!'
5분만 기다리면 된다 하였다.
왕국 최고의 기사의 말이니 그들은 결코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칼리프가 익스퍼트 급 키메라를 3마리째 베어 내고 있을 때, 기사들은 15명 전사에 5명이 전투 불능에 빠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에 반해 키메라들은 마스터 급 키메라 20마리는 생채기조차 없었고, 익스퍼트 급 키메라 10마리만 간신히 죽일 수 있었다.
키메라들은 적을 죽이기보다는 오히려 가지고 놀려는 속셈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기사들의 전사자가 적은 것이었다.
"벌써 5분이 지났소. 로엔그람 후작 각하께서는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 것이오!"
한 귀족의 물음에 다른 귀족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꾹 참고 있던 것들을 모조리 표출하기 시작했다.
"혹시 도망간 것이 아닙니까? 젠장! 왕국 최고의 기사라고 하면서 광고를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거늘. 하긴, 그 나이에 사절단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군!"
"그의 실력도 의심스럽소이다!"
5분이 넘어가고 8분째가 다가왔다. 기사들 대부분이 커다란 상처 하나씩 짊어지고 싸우고 있었다. 키메라들은 단순히 기사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기사들의 얼굴에 절망감이 어린 그 순간.
슈우웅―!
거대한 불덩이 하나가 키메라들 사이로 쏙 사라졌다.
콰앙―!
그리고 잠시 후, 터지는 거대한 불.
"키에에엑!"
"키리릭!"
키메라들의 비명 소리가 허공을 가득 채운다. 곳곳에서 폭발이 일었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허공에 떠 있는 로브의 의문인.
바로 그리텔이었다.
그리텔은 곧바로 다시 마나를 재배열하며 마법을 영창했다.
그의 손에서 5서클 마법들이 캐스팅 없이 곧바로 쏟아져 나왔다.
익스퍼트의 기사들이 중무장을 한다 해도 5서클 마법 한 번이면 즉사를 면하기 어렵다. 하물며 가죽만을 믿고 덤비는 익스퍼트 급 키메라들은 모조리 몰살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마스터 급 키메라들도 조용히 울음소리를 낮게 깔며 그리텔을 노려보았다.
"크르르르……."
전신 곳곳에서 그을린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바로 마법에 맞은 흔적들이었다. 만약 마법이 제대로 맞았다면 무사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그리텔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찾고 있던 놈을 발견한 것이다.
조용히 이 키메라들을 조종하고 있는 놈!
그놈이 자신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노려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텔이 이곳에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이 건네준 반지에 있었다. 반지에 마나를 불어넣자, 그리텔과 바로 통신이 연결되었던 것.
일종의 휴대용 통신기였다.
이안은 그것으로나마 짧게 상황을 남기고 뒤를 부탁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텔은 계속해서 쫓고 있던 놈을 발견하자 메모라이즈 해 두었던 마법들을 차곡차곡 하나씩 풀어냈다.
"썬더 볼트(Thunder Volt)!"
파괴력을 중점으로 둔 대인 마법.
번쩍―!
콰쾅―!
그의 손에서 벼락이 하나 떨어지자, 마스터 급으로 불리던 키메라 하나가 그대로 비명횡사했다.
"키에에엑……."
머리 나쁜 키메라들도 그러자 자신들을 죽이는 놈이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챘다. 아무리 두려움을 잊고 사는 그들이라도 마법 한 방에는 그들의 두려움을 능가하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휴몬의 얼굴은 굳을 대로 굳었다.
제대로 먹혀 들어가던 키메라 작전이 오히려 한 마법사가 나타남으로써 실패로 돌아가게 생겼다.
하지만 함부로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키메라를 제어하고 있는 것은 6서클 마법사인 그로서도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한다.
적은 6서클 마법인 썬더 볼트를 난사하는 모습을 보니 적어도 7서클 유저 급이거나 마스터는 될 것이다.
여러모로 6서클인 자신이 덤벼 본다 하여도 양패구상조차 역부족이었다.
"빌어먹을!"
휴몬의 눈이 무시무시하게 변했다.
그는 곧바로 키메라들의 제어력을 풀어 버렸다.
"크르르?"
제어력이 풀린 키메라들은 멈추는 것들도 있으나 그 흉폭성을 참지 못하고 날뛰는 놈들도 있다. 마스터 급 키메라들은 죄다 휴몬의 흉폭성을 이어받아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콰르릉! 콰쾅!
휴몬에게 손쓸 시간도 없이 그리텔의 손이 바빠졌다.
그리텔이 썬더 볼트를 휘갈기는 사이 휴몬은 재빨리 캐스팅을 외치며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승산 없는 싸움을 해서 괜한 목숨을 버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저, 저놈이!'
그리텔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휴몬의 입에서 텔레포트 주문이 외워지고 있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휴몬의 주위에서 마나가 재배열이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텔은 차마 그놈을 향해 디스펠 마법을 걸 수가 없었다.
디스펠이 6서클 이하의 마법들은 모조리 캔슬시켜 주는 마법이기는 해도 메모라이즈를 해 놓을 수 없는 마법이다. 그건 워낙 방대한 마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텔은 당장 사절단을 해하는 키메라들 때문에 간신히 찾은 흑마법사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놓칠 수밖에 없었다.
"망할!"
결국 그의 분노는 온전히 키메라들에게 떨어졌다.
콰르릉―!
파파파팟!
이안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일보에 수십 장씩 나아갔지만, 이안이 느끼기엔 더디었다.
'왜, 왜! 하필이면 그녀를…….'
억지로라도 다른 귀족들과 자리를 바꾸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그녀의 생사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자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러자 신법이 더욱 더디어졌다.
"어디지? 어디야!"
거리가 도대체 얼마나 떨어진 것일까.
그녀의 위치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상황은 조급했지만, 이안은 냉정하게 행동하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이안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거대한 마나로 차원이 들썩인다. 그것은 분명 공간이동을 할 때의 현상이었다. 그것도 이안과 그리 거리가 멀지 않은 곳.
잠시 후, 이안이 대응을 하기도 전에 빛에 휩싸이며 한 로브를 입은 자가 나타났다.
리치, 바로 그놈이다!
거대한 마기가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의 힘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7서클 마법사.
예전, 프로시안 영지에서 헬 파이어 마법으로 이안을 날려 버렸던 리치.
이안은 고개를 허공을 빳빳이 세웠다.
리치는 양손에 마법을 조용히 끌어올린다.
"대단하군! 벌써 여기까지 움직였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방법이 뭐냐? 마법을 사용한 것 같지는 않고……."
철커덕!
이안의 엄지손가락이 검을 밀어 올렸다.
당장이라도 뽑을 기세로 이안은 전신의 내공을 운용하며 청운적하검을 준비했다.
이안이 싸늘한 기세로 입을 열었다.
"날 막을 셈인가? 막으려면 막아라. 허나 비키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을 명심해라."
리치는 후드를 벗어젖히며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크크큭! 7서클 마법사의 힘을 허투루 보지 마라.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한들 7서클 마법이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크흐흐, 그렇군. 전에도 이랬지. 네놈은 헬 파이어를 맞고도 다시 살아난 놈이었어."
반탄강기와 호신강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터였다. 견고한 호신강기 안에서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종국에는 모든 방어막이 깨져 반죽음이 될 때까지 화상을 입어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이안은 조용히 분노를 가라앉히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세 번은 말하지 않는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라. 이번이 마지막 경고임을 명심해 두는 게 좋을 것이다."
"크크큭! 얼마 전에 본국으로 아주 놀라운 사실이 들어왔지. 라인하르트 제국의 황태자가 살아 있다는 정보였어. 본국은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당연하지. 라인하르트 제국의 모든 황족들은 죽음을 당했을 테니까."
"본국을 자청하는 것을 보면 프라스 제국의 개라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는구나."
"어차피 네놈은 여기서 죽을 것이야. 프라스 제국의 천하 통일을 위해서라면 혼란의 불씨가 될 것은 모조리 부수는 것이 좋지."
리치의 양손에 매달린 불이 조용히 하나로 합쳐지더니, 양손을 이안에게 내밀며 외쳤다.
"파이어 버스터(Fire Burst)!"
쾅―!
리치의 눈이 살짝 삐뚤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광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이놈, 꼴좋구나. 고작 파이어 버스터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날 줄이야. 이런, 쯧쯧. 너희들의 여신은 파이어 버스터만큼은 보호해 주질 못하는 게로군."
아닌 게 아니라, 리치가 사용한 파이어 버스터는 정말 강력한 마법이었다. 일단 7서클 마법사가 사용했다는 점과 흑마법사라는 점이 마법의 데미지를 몇 배나 강화시켜 주었다.
파이어 버스터를 맞은 땅이 움푹 파였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살아 나오기는 힘들 것이었다. 리치는 혹시 몰라 마나 스캔을 곳곳에 사용해 보았지만 이안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러자 확신할 수 있었다.
"크흐흐! 정말 죽어 버렸구나. 응?"
그때, 리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허, 헉!"
"놈!"
놈은 분명 마법사라고 할 수 없었다. 만약 마법사였다면 자신이 낌새를 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은 대륙에서 제일 높은 7서클의 경지였고, 그 이상의 경지는 인간이 오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할 때와 마찬가지로 차원의 공간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건 분명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안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전신 어디에서도 폭발의 흔적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팟!
이안의 오러 블레이드가 푸른 궤적을 그리며 리치의 몸통을 향해 나아갔다.
까강―!
리치의 뼈와 맞부딪치자 오러 블레이드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이안의 눈은 더없이 커질 대로 커졌다.
설마, 검강으로 자르지 못하는 것이 있다니?
분명 전에만 해도 심장 부분을 정확히 찌를 수 있지 않았던가?
그가 놀라는 사이 리치가 이안의 검을 손으로 잡았다.
"크흐흐! 놀랍나? 네놈이 어떻게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이 기습 공격은 아주 훌륭했다. 허나 네놈은 내 몸이 미스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야."
미스릴은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아주 견고한 방어구가 될 수 있다. 특히 오러 블레이드와 같은 마나로 이루어진 집합체를 막아 낼 수 있는 아주 강력한 금속이 될 수도 있었다.
일종의 마나를 이용하여 금속이 마나의 집합체를 분해하여 충격을 흡수하는 일이었다.
미스릴을 온몸에 두르고 있다면 상처를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안이 입술을 질끈 깨문 그 순간.
더 놀라운 일은 그때 일어났다.
화르르륵!
리치가 검을 치워 내기 위해 뼈로 이루어진 손을 검에 댄 순간, 갑자기 엄청난 열기가 리치의 몸을 뚫고 들어갔다.
"크아아악!"
리치가 황급히 손을 떼어 내려 했지만, 무슨 일인지 검이 손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크으으윽!"
리치는 급한 대로 마나를 운용하여 검을 그대로 떼어 냈다.
그러자 검이 서서히 떨어지더니 이안의 손에 착 달라붙었다.
"네, 네놈! 그, 그 검은 설마……!"
이제야 검이 눈에 들어온 리치.
주인이 아닌 자가 만졌다가는 온몸에 화상을 입게 만들어 주는 3대 제국검 중 하나.
바로 라인하르트 제국을 증명하는 검이 이안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정보 길드에서도 알고 있는 사실을 프라스 제국에서 모를 줄이야! 쉐도우 로드, 정말 무서운 자다.'
이안은 입술에 미소를 걸었다.
프라스 제국 측에서는 이안의 제국검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정보를 팔던 쉐도우 로드는 이안의 정보를 그 누구에도 판 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정말 짓궂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사람이라도 죽일 듯한 기세를 풍기던 그.
결국은 쉐도우 로드가 이안에게 골탕을 먹이기 위해서 정보를 팔았다고 거짓말을 친 것이었다.
이안은 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팟!
'검강이 통하지 않는다면……!'
오러 블레이드가 축소를 시작하더니 검 끝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안의 검 위에는 냉기가 풀풀 풍기는 검환이 만들어져 있었다.
거대한 마나의 집합체!
바로 소드 마스터 최상급에 이른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환!
"네, 네놈! 설마……!"
리치의 얼굴이 절망적으로 물들었다.
그도 지금 이안이 사용하고 있는 검환이 무엇인지쯤은 알고 있었다.
대륙십강의 초극강 고수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검환!
이안은 마치 허공을 베듯이 조용히 쓸어내렸다.
'가라!'
검환은 이안의 검을 떠나 리치의 몸과 거대한 충돌을 이루어 냈다.
콰콰콰쾅!
검환을 사용한 것은 리치와 이안의 거리가 고작 3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때다.
이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설사 그랜드 마스터 급의 기사라도 피할 수 없음을 말이다.
* * *
콰쾅!
붉은 손톱과 실라페가 완성시킨 배리어가 허공에서 충돌을 이루어 냈다.
콰지지직―!
두어 번을 견디던 배리어는 속절없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로이니스는 그 안에서 조용히 놈이 배리어를 깨고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헉! 헉!"
정령력의 소모가 상상 이상이다.
최소 다섯 방은 견뎌 주리라 생각했던 배리어도 세 방을 채 견디지 못하고 깨졌다.
쨍그랑―!
배리어가 깨지자 그 안으로 몸을 날리는 키메라.
로이니스의 낭랑한 외침이 그때 울려 퍼진다.
"실프, 전력으로 놈의 다리와 팔을 묶어! 실라페, 바람의 칼날로 목을 끊어!"
파앗!
그녀에게 남아 있던 한 줌의 정령력이 사방으로 퍼졌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기운이 그녀의 몸에서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도 몇 달 동안 놀고먹은 것은 아니다. 한번 정령력을 잃고 나자 기초부터 차근차근 하니, 예전엔 얻지 못했던 깨달음을 얻어 더욱 강한 정령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전개된 실라페의 바람의 칼날이 사지가 묶여 있는 키메라의 목을 향해 강력히 날아갔다.
콰아앙!
살갗을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로이니스는 눈을 부릅떴다.
"흡!"
바람의 칼날은 키메라의 목과 부딪쳤으나 가죽이 상상 이상으로 두꺼웠다. 오러 블레이드만큼은 못해도 오러 정도의 파괴력을 내는 정령력이 고작 가죽에 상처 하나 못 냈음을 알자 로이니스의 표정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런……!'
옆을 슬쩍 보자 역시나! 정령들은 모두 역소환이 되어 정령계로 돌아가 있었다. 그렇다. 정령을 잃은 정령술사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로이니스는 평범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나약함을 지독히도 잘 알고 있었다.
"크르르르!"
키메라는 자신을 옭아매던 기운이 사라짐을 느끼자, 목을 한 번 매만지더니 이빨을 드러내며 노골적으로 로이니스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엄청난 살기가 로이니스를 두렵게 만들었다.
"아……!"
도대체 방법이 없다.
로이니스는 도움이 될 만한 걸 찾기 위해 허리춤을 뒤졌다.
그러자 차가운 금속의 느낌.
'단검?'
호신용이라고 보기에는 힘들고, 장식용이라고 볼 수 있는 단검이다. 사절단에 참가하여 입을 옷과 잘 어울려 가져온 장식용 단검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검을 제작하는 데 있어 실력 있는 드워프나 장인이 만든 것이 아닌, 그저 슈레이더 왕국의 아르텔에서 기념품으로 산 단검에 불과했다.
날이 섰을 리는 없지만, 로이니스는 그거라도 양손으로 들며 칼날을 앞쪽으로 내밀었다.
"오, 오지 마! 오면 찌를 줄 알아. 알겠어?"
바람의 칼날도 통하지 않는 가죽이 날도 서지 않은 장식용 단검에 상처를 입을 리 만무했다.
그녀의 두려운 기색을 알고 있는지 키메라가 한 발자국씩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로이니스 또한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오지 말라니까!"
그녀는 간절히 외쳤다.
하지만 뜻과는 무관하게도 키메라는 붉은 손톱을 하늘 위로 높이 들어 올린다.
그리고 내려쳐지는 손톱.
쨍그랑!
장식용 단검의 날이 그대로 부러졌다.
"아아……!"
로이니스는 부러진 단검을 앞으로 내밀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올라간 손톱.
그리고 섬전 같은 속도로 로이니스의 머리를 향해 내리쳐지는 붉은 손톱.
키메라는 그녀의 머리통이 산산조각이 날 거라는 걸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키메라의 손톱은 그녀의 머릿속에 박히기도 일보 직전에 나타난 검에 의해서 막혀야 했다.
텅!
손톱에서 강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키메라는 황급히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크르르?"
그리고 검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자 하나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역시 신경 쓰게 하는 것은 여전하구나, 헤일론 백작."
"크르르르……."
키메라도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살기를 그에게 내뻗었다. 하지만 이미 남자는 예전과는 달리 엄청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미 네가 철창을 부수고 나간 그 순간……."
갑자기 남자의 신형이 푹 꺼졌다.
사라진 것이다!
키메라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엿보던 로이니스도 어떻게 된 것인지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기운도 완전히 사라졌다. 키메라를 옥죄어 오려는 살기조차도 말이다.
키메라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땅과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지만 그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우득!
어금니를 꽉 깨무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키메라의 등 뒤에서…….
키메라는 앞으로 세 발자국이나 움직이고 뒤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사라졌다.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다.
철컥!
난데없이 금속 소리가 들려왔다.
키메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허공이었다. 그것도 바로 머리 위!
남자의 검이 오러 블레이드를 잔뜩 머금으며 섬전 같은 속도로 키메라의 머리로 뻗어 내려졌다.
"……죽었다는 것을 명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