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7장 그녀는…… □
이안은 모든 감각의 창을 닫아 버렸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진실성을 담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잘 느낄 수 없는 쉐도우 로드의 기운이거늘, 감각의 창까지 닫아 버리자 이젠 완전히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쉐도우 로드가 말한 차원의 검술인가.'
잠시 후, 허공에서 쉐도우 로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1분이 되었네. 조심하게나, 내 검은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목소리가 들린 허공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아까와 같이 그곳에 쉐도우 로드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허공.
그곳에서 쉐도우 로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하하! 그곳에 있을 터가 있나. 내 아티팩트의 효능일 뿐이야. 암살을 주로 목적으로 하다 보니 이런 저런 아티팩트를 많이 가지고 있지."
마법 아티팩트라면 살짝 상대하기가 곤욕스러웠다. 이안이 그것을 바로 표정으로 드러내자 쉐도우 로드의 다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싫은 표정 짓지 말게. 크흐흐! 자네도 이 대결에서는 '위반'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명검을 가지고 있지 않나."
"위반?"
이안이 실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로열'을 바라봤다.
"3대 제국검 중 하나, 라인하르트 대제국의 황손이 아니라면 만질 수도 없는 검이지. 과거 소드 마스터였던 헤일론 백작도 그 검에 말로 이루기 힘든 상처를 입기도 했었고."
헤일론 백작의 얘기가 나오자 이안이 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욕심이 과하니 벌을 받을 수밖에."
힘을 얻으려 했지만, 추악한 키메라의 모습으로 변한 헤일론. 그는 지금쯤 궁정마법사의 의해서 해체가 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위반이라 하니 어쩔 수 없지요."
이안은 로열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검을 사용하지 않을 작정인가?"
"아뇨, 설마 그럴 리가요. 예기를 죽이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는 없지요."
이안이 검집째 들어 올렸다.
"재미있군."
"지금부턴 더 재밌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예기가 없다고 한들 제국검은 제국검이니까요."
"말은 이쯤에서 그만 하지. 이쪽에서 먼저 가겠네. 돈이 걸린 예민한 문제라 승기를 이쪽에서 잡을 수밖에 없어서 말이야."
"원하신다면."
어차피 위치를 잡을 수도 없었다. 먼저 공격해 준다면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이안은 모든 감각의 창을 다시 열었다. 벌써 3분이 넘게 지나고 있었다.
샤샥!
'암기인가?'
이안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검집을 휘둘렀다.
채챙!
표창들이 허공으로 분산되며 땅에 처박혔다. 그리 빠른 속도가 아니었던 터라 쉽게 막을 수 있었다. 이안은 소리가 들린 쪽으로 빙허임풍을 펼치며 빠르게 도달했다.
'역시 없군! 암기를 날리고 튀었나?'
이안이 나뭇가지를 딛고 뛰어오르며 허공으로 비상했다. 위치를 이렇게 들어낸다면 공격해 줄 터. 아무리 허공에서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해도 이안은 달랐다.
'살기!'
뒤쪽에서 갑자기 검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렇다면 쉐도우 로드 또한 허공이다!
이안은 자신의 오른쪽 발로 왼쪽 발등을 차며 허공으로 더 높이 비상했다.
그리고 급히 아래쪽을 살펴봤다.
'어, 없다?'
분명히 쉐도우 로드 또한 허공에 떠 있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없다.
'아티팩트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안은 다시 뒤쪽에서 살기가 느껴지자 몸을 급히 뒤틀며 구하천풍검법의 이초식인 파지풍룡으로 급히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공중을 향해 목을 들어 올렸다.
'뭐, 뭐냐!'
이안은 곧바로 검집을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오른쪽에서 이상한 예민한 감각이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아무 느낌도 손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그러자 다시 왼쪽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왼쪽?'
왼쪽으로 검을 휘두르려니 다시 위쪽과 아래쪽에서 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
'못 막는다!'
이안은 방탄강기와 호신강기를 있는 대로 몸에 둘렀다.
까아앙!
호신강기의 왼쪽, 위쪽, 아래쪽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 안에 있던 이안도 결코 무사하지는 못했다.
"크으윽!"
아주 작지만 내상을 입었다. 이안은 내공을 운용하며 몸 안을 진정시켰다.
호신강기를 살펴보자 고작 살기가 아니었다. 모조리 얻어맞았다. 그것도 실체의 검을.
길이 폭을 보면 숏 소드 정도의 길이였다.
"흠! 제법 단단하군. 오러 블레이드라고 해도 쉽게 뚫릴 것 같지는 않군. 그렇다고 아티팩트로 보이지도 않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
이안은 경악했다.
방금까지 자신의 호신강기를 농락하던 쉐도우 로드가 거의100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자신에게 얘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거, 검을 놀리고 그 짧은 시간에 움직인다 해도 무리다! 그렇다고 움직인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이안의 얼굴은 점차 굳어졌다.
"이제 맛 좀 봤을 거라 생각하네만. 이것이 바로 차원의 검술, 디멘션 소드라네. 더 괜찮은 초식도 있지. 어떤가, 흥분으로 가슴이 뛰지 않나?"
"검이…… 차원을 뛰어넘는 건가?"
"그렇게 볼 수도 있네."
"……."
'완전 심검의 수준이로군.'
마음만으로 검을 다루는 경지. 전설상에서나 볼 법한 경지였다. 하지만 쉐도우 로드가 그 경지에 올랐다고 볼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그런 방법을 취할 수 있는 검법이 있다는 것일 뿐.
"검만 차원을 뛰어넘는 건 아니로군요."
방금 전을 생각하며 이안이 미소를 지었다.
"뭐, 자네의 말은 반쯤 맞았네. 검이 뛰어넘는 게 아니라 정확히는 시전자인 '나'라는 존재가 바로 차원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지. 물론 거리의 제한이라든가 막대한 마나의 양, 그리고 이해도가 필요하긴 하지만. 단숨에 끝낼 수 있다면 이만한 검도 없을 걸세. 그리고……."
쉐도우 로드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이안은 괜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가 말을 끄는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뭐, 보면 알 걸세."
팟!
그가 다시 홀연히 사라졌다.
이안은 눈을 좌우로 빠르게 돌리며 그의 기척을 찾았다.
하나 이미 차원 속으로 사라진 그를 찾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어차피 나에게 검을 휘두르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가까이 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략법!'
이안은 청풍검법의 절초 풍운지의를 펼쳤다.
팔락팔락.
소매가 펄럭거리더니 잠시 후 전신에 차가운 바람이 휘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원으로 들어간다면 그 또한 나를 찾을 수 없다. 그것이 약점이다!'
이안은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곧바로 오른쪽으로 세 발자국 빠른 보폭으로 움직였다.
과연 그곳에 검은 그림자가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안의 기척을 찾고 다시 차원 속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좋아, 아무 곳이나 한번 때려 보자!'
이안의 검집 주위로 매서운 칼바람이 일어났다.
'와룡연쇄참!'
수많은 검기가 이안의 주위를 매섭게 때리기 시작했다. 이안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며 왼손에 칠십육로무형지의 기운을 그대로 싣고 자신의 뒤쪽으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탕!
푸악!
"크윽!"
'좋아!'
풍운지의를 모르는 쉐도우 로드.
그가 칠십육로무형지를 피하다 어깨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하나 다시 이안에게 달려들다가 풍운지의의 수법에 제대로 맞아 들며 그대로 몸에 상처를 입었다.
내상은 아니지만 외상을 입었다. 이제 그는 피를 흘린다.
피를 흘린다면 적을 찾기가 더욱 쉬웠다.
이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설마 외상을 치료해 줄 힐링 같은 마법 아티팩트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농담인가?"
"아닙니다만."
"자네에겐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군! 없네."
그러면서 자신의 손가락에 낀 반지들을 나열했다. 반지의 숫자만 세 개다. 그중 한 가지가 아까 허공에다가 말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는?
"후우! 설마 여기까지 오게 할 줄은 몰랐군."
그는 왼손 새끼손가락에 걸린 평범한 금반지를 매만졌다. 잠시 후, 그의 몸에 푸른 물결이 생겼다.
"마법?"
"헤이스트. 대상자의 몸을 배로 빠르게 해 주지."
이안은 표정을 와락 구겼다.
지금도 빠른데 더 빠르게 된다면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두 가지는 알았군. 그럼 한 가지 반지는 어떤 것이지?'
유일하게 오른손 약지에 끼고 있는 반지를 봤다. 오른손에 낀 반지는 그것뿐이었다.
"저도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안이 검수식 자세를 다르게 취했다. 바로 청운적하검.
깨달음의 경지를 한 단계 올려 줄 수 있었던, 사부가 남긴 검법 중 하나 청운적하검이었다.
그리고 청성파를 대표하는 검법 중 하나였다.
'차원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노린다.'
이안의 양 다리가 살짝 구부러졌다. 그리고 스프링처럼 튀어 나가며 그 상태에서 청운적하검을 발휘했다.
파팟! 슉!
귀신처럼 휘둘러지는 빠른 검집.
아무리 검집 속에 들어 있어도 숨길 수 없는 예기는 검기를 불러일으키며 쉐도우 로드의 목을 베어 들어갔다.
아니, 베었다고 생각했다.
허공을 가르는 검.
또다시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안은 그 자리에서 멈추며 감각을 집중했다. 적이 피를 흘린다. 이제 위치를 대강 잡을 수 있다.
이안은 먹이를 향해 입을 쩌억 벌리며 달려가는 사자처럼 적을 향해 숨길 수 없는 흉포성을 드러냈다.
콰아앙!
허공에 마나들과 이안의 내공이 부딪치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이안이 자리에서 멈춰 서서 다시 쉐도우 로드의 피를 따라 추적했다.
'뭐지?'
헤이스트 덕분에 쉐도우 로드의 속도가 두어 배는 빨라졌다.
분명히 대결을 하면서도 느낄 수 있다.
하나 갑자기 이번만큼은 자신을 공격해 달라는 듯 아주 느려졌다.
'헤이스트의 운용 시간은 5분. 아직 캔슬될 시간이 아니다.'
불안한 감이 들었다.
파르르릇!
공간이 불안정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쪽이냐!'
"디멘션 홀드(Dimension Hold)!"
홀로 나직이 허공에 읊는 작은 음성.
파앗!
떨리던 공간은 아가리를 벌렸다.
"헉!"
이안이 기겁하며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순간 적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공간은 난데없는 이공간, 이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그 공간을 바라본 이안이 곧바로 검을 땅에 내리꽂았다.
쾅!
하나 그 공간이 이안을 집어삼키겠다는 듯 그대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슈슈슉―!
이안은 모든 내공을 하체로 집중시키며 구하천풍검법의 일초식인 풍룡비상으로 그대로 뛰어올랐다. 마치 바람의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타탓.
이안이 땅으로 내려앉자, 그 공간은 지체 없이 닫혔다.
"후우!"
한쪽에서 난데없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서는 지친 기색을 띠고 있는 쉐도우 로드가 소매로 땀을 닦아 내고 있었다.
"역시 이초식과 헤이스트를 운용하려면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하는군. 졌네."
"엥?"
이안은 방금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 생각했다.
쉐도우 로드는 정정해서 다시 말해 주었다.
"졌단 말일세, 졌어! 역시 젊은이에겐 당해 낼 수 없구먼. 하하하!"
이번에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다.
자신이 이겼다.
하지만 기쁨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것은 아니었다.
황당함, 억울함.
그 모든 것이 갑자기 자신을 휘몰아쳤다.
완전 이 대결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잡을 수 없음에 한탄했다.
"이긴 사람치고 밝은 기분이 아니로군. 하하! 그렇다면 진 내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겠는가! 자네 약속대로 자네에 관련된 그 모든 의뢰는 받지 않도록 하겠네. 그리고 또한 검술서는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하지."
처음에는 검술서에 대한 욕심이 없었으나, 그의 강함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명심하게나. 좋은 검법일수록 자신을 망칠 수 있음을 말이야. 뭐, 이 정도는 말 안 해 줘도 자네의 경지라면 충분히 알고 있을 테지만 말이야. 왠지 자네는 처음부터 좋은 검술을 익혔기 때문에 그 검술에만 의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말이야."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안도 곧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이전에도 만상귀일신공이나 구하천풍검법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상대가 있었다.
헤일론.
하나 그보다 오히려 낮은 검법인 청운적하검이나 청명심법으로도 충분히 몰아칠 수 있었다.
이안은 그를 지그시 바라봤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당신은 혹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이십니까?"
분명한 것은 헤이스트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디멘션 소드가 없이 이안의 속도와 비슷함을 나타냈었다.
이 세상엔 신법이란 것이 없다. 그렇다면 그와 비슷한 몸놀림으로 움직이려면 엄청난 상위의 경지라는 뜻이다.
이안은 지금 화경과 현경 사이, 즉 소드 마스터 최상급과 그랜드 마스터의 사이 구간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쉐도우 로드는 어쩌면 그랜드 마스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쉐도우 로드는 살짝 웃었다.
"블랙 머플러의 수장은 항상 비밀이라네."
"어쩔 수 없군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이안도 자신의 출생지나 살아온 곳 등 모든 것을 비밀로 하지 않았던가.
"루시, 전해 주거라."
루시는 검술을 전해 주면서도 한마디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 아빠가 약하다고 생각하지 마. 분명히 봐준 구석이 있으니까."
"……."
이안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애써 변명하는 루시의 모습이 엿보이긴 했지만, 분명히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것은 쉐도우 로드.
그것을 절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안은 검술서를 받고도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는지 쉐도우 로드를 바라봤다.
"사절단에 관련된 정보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만?"
쉐도우 로드는 루시를 바라봤다.
루시는 이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놈 시종인가 뭐시긴가 하는 에반이라는 놈 있지? 그놈의 침소에 있을걸. 아빠가 거기에 두고 오라 했거든."
"……?"
이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쉐도우 로드를 바라봤다.
"그럼 난 가겠네. 다시 만날 날이 오겠지. 하하! 오랜만에 몸 좀 움직여 보니 괜찮군."
"나 또한 좋은 구경했으니 괜찮았어."
그 부녀는 그런 말과 함께 스크롤을 찢었다. 곧바로 빛이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이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 에반에게 그 정보가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져 줄 생각이었다는 것이 아닌가.
"졌군."
이안은 자신이 졌다는 것을 실감해야만 했다.
"신 로엔그람 폰 이안은 슈레이더 왕국의 지배자이신 국왕 전하의 어명에 따라 후작이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귀빈 여러분들께서는 아무쪼록 즐거운 파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짝짝짝.
귀족들답게 여러 곳에서 박수를 쳐 주며 축하의 인사를 건네었다.
그곳에서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인물이 딱 한 명 있었다. 바로 카이드 백작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백작으로서 어느 정도 선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젠 이안이 후작이 되어 버렸다.
젊은 놈이 후작까지 되어 버렸으니 못마땅한 것은 당연했다.
그는 박수는 쳐 주었지만 결코 속으로 열불이 나는 것을 가까스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안은 카이드 백작의 살기를 보고 살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카이드 백작, 그 잘난 콧대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가히 기대되는구나!'
몇 달 전 회의에서도 이안에게 반감을 드러냈던 귀족이었다.
이안은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방금 전 쉐도우 로드가 남겨 두고 간 정보에 있음이 확실했다.
1급 정보(일독 후 태워 버릴 것!).
내용: 슈레이더 왕국의 귀족 중 몇 명이 프라스 제국과 결탁하여 사절단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음.
계획일: 아직 확실치 않음.
결행을 하려는 귀족: 확실치 않으나 카이드 백작이 의심됨. 그 외에도 자작들 몇 명이 있는 것으로 생각됨.
물론 이안은 그 내용을 몇 번이나 읽어 외워 버렸다.
카이드 백작이 의심된다는 말이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했다.
이안이 카이드 백작과 살짝 소리 없는 공방전을 치르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순간 몸이 경직됐다.
너무도 하염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여인.
'로이니스…….'
그 여인의 시선은 분명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
또각또각.
그러다 갑자기 로이니스가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당당한 움직임.
마치 먹이를 찾는 맹수처럼 이안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스윽.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안과의 거리가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녀의 매혹적인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축하해요, 로엔그람 후작님."
여전히 쌀쌀한 말투이기는 하지만, 옛날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안도 떨어지지 않는 말을 억지로 했다.
"감사……합니다."
"멀리서나마 후작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운이 좋을 뿐입니다."
"소녀의 간곡한 청이 있사옵니다. 오늘 후작님에게 감히 제가 춤을 신청할 수 있을까요?"
감히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존대다. 이안은 로이니스의 뜻이 진실이라는 것을 눈에서 엿볼 수 있었다.
사교계에서는 귀족 자제들에게 선망의 1순위인 로이니스가 누군가에게 춤을 신청하다니.
귀족 자제들 중 대부분이 마음을 두고 있었던 터라 그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안은 망설였다.
하지만 대답은 곧 떨어졌다.
"레이디께서 원하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