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0화 (200/200)

불참한 사람은 컨테이너사업본부장인 권동호 부사장과 재무그룹장 권동민 부사장이었다.

“불참한 사람들이 있군요?”

내가 자금팀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긴장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부사장님들은 임시 주주 총회 이후로는 출근을 하지 않고 계십니다.”

“음, 그렇군요.”

그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재벌가의 자제로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빼앗긴 회사를 되찾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마 다들 지난 임시 주주 총회 결과에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그래서 아직 충격에서 빠져나오시지 못한 분들이 계신가 보군요.”

“허허허.”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을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

“해신해운이라는 배는 새롭게 출항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배에서 승선하실 생각이십니까?”

이 자리에 있는 임원들은 긴장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얼굴에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새파란 후배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이 참을 수 없는 모욕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해신해운이라는 거대한 배가 새롭게 출항할 예정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배로 치면 항해사나 기관사와 같은 사관들이다. 어쩌면 생사를 함께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믿을 수 없는 자들에게 조타키를 맡길 수는 없었다.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의 해신해운은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지금 해왔던 관례대로 근무하실 분들이나 과거의 영광에 빠져 계신 분들은 미리 알려주십시오. 각오가 되신 분들은 내일 출근하시고, 각오가 없는 분들은 오늘 퇴근 전까지 사직서를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달성을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해신해운의 경영권을 차지하였습니다.”

보상 :

- 명성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 글로벌 명성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 칭호 [해신해운 최연소 대표 이사]를 획득했습니다.

- 스킬 [경영 Lv.1]을 획득했습니다.

+

금융 위기

-해신해운 본사

며칠 후.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인사 발령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조만간 해신해운 임원진의 대대적인 인사 발령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우선 너무 나이가 어린 대표 이사로 인한 불안감을 느끼는 직원들을 고려해 도형준 부사장이 회사로 복귀할 예정이다.

도형준 부사장은 해신해운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하는 컨테이너사업본부장을 맡기로 했다. 컨테이너사업본부장은 권동호 부사장이 담당했던 부서다.

도형준 부사장은 처음에는 고사했지만 나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권동호 부사장과 권동민 부사장은 임시 주주 총회 이후로 회사로 복귀하지 않았다.

경영기획본부장으로 발령을 낼 사람은 권세아 상무.

해신해운 자회사에서 근무하던 권세아 상무를 본사로 복귀시킨다는 계획이다.

권영호 회장의 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권세아에게 경영기획본부를 맡길 예정. 권영호 회장에 대한 향수가 있던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오너 일가가 경영진에서 전면 배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면 직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현재형 상무는 전무로 승진하면서 경영지원본부장을 맡게 된다.

경영지원본부는 인사팀과 법무팀 외에도 총무팀, IT팀이 산하 조직으로 편입되어 관리 조직 중에는 가장 큰 조직으로 변모할 계획.

권동민 부사장이 담당했던 재무그룹장 자리는 외부 인사를 영입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신규 자금팀장으로 발령 난 진채호 부장이 임시로 재무그룹장을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그만둔 임원들도 있었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임원의 수는 많지 않았다.

권동민 부사장이나 권동호 부사장이 들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날 이야기였지만 이들도 결국 사람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경영진에 충성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회사를 떠나는 것을 만류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특히 나이 등을 이유로 사임 의사를 전달한 해사본부장이 아쉽게 느껴졌다.

깐깐하고 고집이 있어 부하 직원들을 고생시키는 그였지만 업무 능력 하나는 탁월했다. 해사본부장은 나의 만류에도 새 술은 새 자루에 담아야 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해사본부장은 같은 해양 대학 출신으로 해기사 출신. 나에게는 대선배뻘이다.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이유 때문에 퇴사를 결심한 것인지도 몰랐다.

해사본부장은 부산 지사를 책임지고, 선원들과 선박들을 총괄하는 책임자였기 때문에 적임자를 찾기 어려운 자리 중 하나였다.

나는 고민 끝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

나의 선택은 ‘이희영 선장’이었다.

나와 함께 비너스호를 승선했던 이희영 선장은 꼼꼼하고 합리적인 일 처리로 후배들의 인망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이희영 선장은 처음에는 만류했지만 나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승선 생활 멘토였으니 끝까지 책임지라는 나의 엄포에 이희영 선장도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랜 승선 생활을 마치고 육상직으로 발령이 나면서 상무 직함을 달게 되었다.

그리고.

띠리링!

테이블 위의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사장님, 양화종 선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네, 돌려주세요.”

양화종 선장은 인도네시아 쓰나미 사건이 발생했던 비너스호 승선 당시 함께 승선했던 일등 항해사. 시간이 지나 선장이 된 그는 아직 해신해운 배에서 승선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네, 사장님, 양화종 선장입니다.”

“하하하. 사장님이라니 참 어색하세요. 그냥 평소대로 하세요.”

“업무 시간 중인데 공식 직함을 불러야지요.”

“허허허. 그러네요.”

“연락을 달라고 들었습니다.”

양화종 선장은 지금 승선 중. 싱가포르 항구에 기항한 그는 나의 연락을 받고 전화를 했다.

“선장님, 이번에 해신해운 해사그룹도 대대적으로 개편이 될 예정입니다.”

“음.”

“이희영 선장님이 해사본부장으로 가시게 됐습니다.”

“오! 그거 잘됐네요. 이희영 선장님이라면 딱이지.”

“그렇지요? 허허허.”

잠시 웃음을 터트린 나는 본론을 이야기했다.

“해사본부장님을 보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마 혼자 해사본부로 가시면 적응하기 힘드실 테니까요.”

“음?”

“양화종 선장님이 해사기술팀장으로 가주세요.”

“뭐? 내가?”

“네.”

“싫어 절대 안 돼. 나는 아직 배 타는 게 좋거든.”

“이희영 선장님을 생각하면 좀 젊고 일 잘하고 빠릿빠릿한 사람이 필요해요. 선장님밖에 없어요.”

“······그게 나라는 말이야? 이거 장보고 사장님이 나를 그렇게 좋게 보고 있는 줄 몰랐는데?”

“네, 이희영 선장님은 사람이 좋잖아요. 대신 욕을 먹을 사람도 필요하고.”

“······.”

“그리고, 사장님한테 갑자기 말이 짧아졌네요.”

“······.”

“갑니까?”

“인사권자의 명령입니까?”

“네.”

“······까라면 까야지 뭐.”

“허허허. 그럼 승낙한 것으로 알고 인사 발령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네······.”

평소 양화종 선장답지 않게 의기소침한 목소리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비너스호에 함께 승선했던 김호영 선장은 소문을 듣고 미리 자기를 보내달라고 했던 자리.

친하기로는 김호영 선장이 훨씬 친한 사이였지만 나는 내 사전에 인사 청탁은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희영 선장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 이후에 해사본부를 책임질 믿을맨이 필요했다. 해신해운이 자랑하는 엘리트 선장인 양화종 선장이 최고 적임자였다.

+

신라일보,

“해신해운 경영권 승계.”

최대 국적 선사인 해신해운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XX일 해신해운은 대표 이사로 장보고 사장이 선임되었다고 발표했다.

해신해운 홍보팀 관계자는 “장보고 사장은 해신해운 항해사 출신으로 회사에 큰 기여를 해왔다”며, “특히 쓰나미 사건, 해적 사건 등 다양한 사고에서 인명과 재산을 구조한 영웅”이고, “법무팀에서 근무하면서 불공정 계약을 정리하는 등 탁월한 실적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장보고 사장의 어린 나이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장보고 사장이 30세의 젊은 나이로 우리나라 최대 국적 선사의 사장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항하는 해신해운호의 젊은 선장은 자신의 실력으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는 실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중략)

유혜영 기자.

+

* * *

-해신해운 본사 9층 VIP 회의실.

몇 개월 후.

해신해운 임원진들이 참석하는 주간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세계 경제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해신해운 임원진은 매주 월요일 전 임원이 참석하는 비상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지난 몇 달간 세계 경제는 경제 불황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20XX년 X월, 전생의 기억과 동일하게 미국의 서프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융 시장 소식은 없습니까?”

나는 최근 상무보로 승진한 자금팀장 진채호 상무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금팀장 진채호 상무가 말했다.

“미국 5대 투자 은행(IB) 중 하나인 레이몬드 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

“레, 레이몬드 브라더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되묻자 진채호 상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몬드 브라더스라면 세계 4대 투자 은행 아닙니까?”

“맞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미 작년에 베어톤즈라고 불리는 미국 5대 투자 은행(IB) 중 한 곳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이때는 개별 은행의 문제 정도로만 치부했다.

그런데 레이몬드 브라더스까지 파산에 들어간다니?

진채호 상무가 말을 이어갔다.

“미국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서 레이몬드 브라더스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합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의 기억 그대로였다. 레이몬드 브라더스가 파산한 건 그 전조에 불과했다. 레이몬드가 무너지자 이에 투자했던 여러 투자자들도 연쇄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세계 최대 보험 회사 중 한 곳도 결국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다.

레이몬드 브라더스의 파산은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규모 파산으로 등재될 정도의 큰 사건이었다.

전생 당시의 한국 원화 환율로 환산하면 무려 700조 원 상당에 이르는 파산 규모. 상상하기도 어려운 금액이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심각한 뉴스를 보고하는 진채호 상무의 표정.

그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해사본부장 이희영 상무가 물었다.

“그렇게 큰 투자 은행이 파산한다면 큰일 아닙니까?”

“맞습니다.”

“음? 해운 시장에도 끼치는 영향이 없을지 걱정이군요.”

“아마 장기 침체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진짜 큰 불황이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이희영 상무는 오랜 기간 승선 생활을 한 베테랑 선원. 해사본부와 관련된 업무에는 누구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었지만 이런 금융 관련 지식은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심각한 보고를 하는데 사람들의 분위기가 너무나 평온했다. 아니 오히려 진채호 상무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표정이 아닌가?

반대로 이희영 상무는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

나는 진채호 상무에게 말했다.

“진채호 상무님,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는 히스토리를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시니 좀 설명을 해주시죠.”

“네, 사장님.”

진채호 상무는 신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레이몬드 브라더스와 여러 건의 파생 금융 상품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보고 사장님이 법무팀에 근무하실 당시 강력하게 계약 체결을 절대 불가한다는 의견을 제시해서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오오!”

“아마 그 계약이 되었다면 우리 회사에 적어도 수백억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런 피해를 벗어날 수 있었으니 참 다행입니다.”

“그렇게 큰 손해를 피했다니 참 다행입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음?”

진채호 상무는 나를 바라보았다.

“사장님.”

“네, 좋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진채호 상무가 말하는 내용은 임원이라고 하여도 접근이 제한된 극비 사항이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과 공유하기 전에 미리 나의 허락을 구한 것이다.

“사실 자금팀과 경영기획팀에서는 사장님 지시로 그동안 미국발 금융 위기가 발생할 것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

“그게 정말입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지시로 우리 회사는 현재 미국 부동산 시장 하락을 예측하고 미국 최대 IB 은행과 다수의 장외 파생상품을 계약한 상황입니다.”

“······!”

진채호 상무가 감격한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체결할 때는 확신이 없어 정말 손이 벌벌 떨렸습니다. 사장님 지시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체결하지 않았을 계약이지요! 그런데 이런 일이 정말 생길 줄이야!”

“으흐흠!”

나는 헛기침을 했다. 감격에 빠진 진채호 상무를 현실로 불러내기 위해서였다.

“제가 사장에 취임한 이후 그동안 대형 컨테이너 선박을 비롯한 선대 확충에 소극적으로 나선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거북이 행보라며 하면서 해신해운을 아니 해신해운의 사장인 저를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약속드리겠습니다. 오늘 이후로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겁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올해 연말까지 신조선 지수, 컨테이너 운임, 벌크 운임 모두 대폭락할 것입니다.”

“······!”

“다들 아시겠지만 해신해운은 그동안 발 빠른 비상 경영으로 현금을 축적하고 비용을 절감해 불황에 대비했습니다. 다른 해운 회사들은 불황을 버틸 여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장이 폭락해도 수익을 내는 파생 금융 상품으로 리스크를 헤지했습니다.”

“오······!”

“앞으로 약 일 년 뒤. 경기가 저점에 다다르면 우리의 대규모 반격이 시작될 것입니다. 모두 그때까지 맡은 바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버티면 결국에 우리가 승리합니다.”

“네!”

이 자리에 있는 해신해운 임원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울렸다.

M.V. “해신 제로(Heasin Zero)”호

약 이 년 후.

부산의 어느 항구에 접안된 원양어선 청진호 갑판.

“야! 이번에 배에서 내리면 모은 돈으로 뭐 할 생각이냐?”

“몰라. 개같이 고생했으니 일단 술이나 진탕 마셔야지.”

“그리고?”

“일단 질릴 때까지 놀고 그때 생각해보지, 뭐.”

“쯧쯧쯧. 돈 좀 벌었다고 그렇게 다 쓰면 늙어서도 여기 못 벗어난다.”

“야! 끔찍한 소리 할래?”

“아껴야 잘 살지.”

원양어선 청진호의 갑판. 제법 큰 규모의 대형 원양어선.

두 젊은 청년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들은 갑판장이 이들에게 다가왔다.

“어이! 잡담 그만하고 빨리 마무리 안 할래!”

“갑판장님 하고 있잖아요. 오늘 하선하는 날인데 오늘은 잔소리 좀 안 하면 안 됩니까!”

“허허허. 잔소리라니! 이놈들이 하선한다고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라고 그러는 거지! 대신 오늘 정박하면 선술집에서 소주나 한잔하고 가자고! 내가 쏠게!”

“싫어요. 오랜만에 내리는데 집에 일찍 가야죠.”

젊은 선원에게 다가갔던 갑판장은 입맛을 다시며 다른 선원들에게로 다가갔다. 술을 마실 다른 선원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때였다.

“어어어!”

갑판 쪽에서 작업 중이던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떠, 떨어졌다. 사람이 바다에 떨어졌다!”

“뭐?”

청진호의 갑판장은 헐레벌떡 뛰어왔다. 바다로 사람이 떨어졌다고 했건만 어디로 떨어진 것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부두 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바다로 날아들었다.

“뭐, 뭐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에 갑판장은 눈만 껌뻑거렸다.

잠시 후 바다 밑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올랐다.

“푸확!”

수면 위로 올라온 검은 그림자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한 명은 배에 승선했던 젊은 선원이었지만 한 명은 처음 보는 사람.

“저기 사다리 좀 내려주세요.”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네, 무사합니다.”

갑판장은 얼빠진 표정으로 허겁지겁 구명 튜브를 던지고 사람을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갑판장은 그 와중에도 물에 빠져 있는 젊은 청년이 참 잘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 * *

-원양어선 청진호 갑판

갑판장이 나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허허허 아닙니다. 마침 근처에 있었는데 물에 빠진 친구가 수영을 잘 못 하는 것 같더군요.”

“아, 그렇군요.”

갑판장은 함께 승선했던 젊은 선원이 수영을 못 하는지도 잘 몰랐던 모양인지 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때 젖은 옷을 갈아입은 젊은 선원이 나에게 다가왔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이거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지.”

“허허허. 괜찮습니다.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으니 다행입니다.”

젊은 청년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머리를 숙였다.

나는 눈앞의 청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전생에 탔던 원양어선 청진호의 갑판장이었다.

물론 30년은 젊은 얼굴이었지만 그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청진호를 함께 탔던 갑판장은 자신이 처음 원양어선을 탔을 때 발생한 사고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하필 그날도 배에서 내리는 날이었다. 갑판장은 심하진 않았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를 살짝 절었다. 수영을 못 하는 그가 바다에 떨어진 후 스크류 쪽에 발이 끼이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때마침 부산에 올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네.’

나는 오랜만에 만난 갑판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는 내가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손을 들어 올려 뺨을 긁었다.

“저기,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랑 닮아서요.”

“네?”

“하하하. 아닙니다. 제가 착각했습니다.”

나는 대충 옷을 말린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청년 선원에게 다가가 명함을 내밀었다.

“이번에 처음 배를 탔다고 들었습니다.”

“네.”

“혹시 상선에서 선원 생활을 시작하실 생각이 있으시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해 주세요.”

“네?”

젊은 선원은 내가 건넨 명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해, 해신해운 사장!”

그 순간.

끼이익! 부둣가에서 달려온 검은 세단이 멈추고 비서실장이 차에서 내렸다.

“사, 사장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비서실장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연락도 없이 사라진 내가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원양어선 갑판에 있으니 놀랄 수밖에.

“비서실장님 별일 아닙니다. 내려가겠습니다.”

나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원양어선 청진호 사람들을 뒤로하고 부두로 내려갔다.

화난 표정의 비서실장이 다가왔다.

“사장님, 갑자기 말씀은 하고 가셔야죠! 화장실 간다고 하시고는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사람이 물에 빠져서 어쩔 수 없이 구했습니다.”

“물에 빠졌다고요?”

“네, 아무리 바빠도 사람은 살려야죠.”

비서실장 한재명 차장은 입을 샐쭉거렸다. 인명 구조 때문이라고 하니 더 이상 잔소리를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비서실장 한재명 차장이 말했다.

“지금 바로 출발해야 될 것 같습니다.”

“네, 바로 가시죠.”

나는 차에 타면서 말했다.

“참, 여분의 옷이 한 벌 더 있죠? 옷이 다 젖어서.”

한재명 차장은 한숨을 크게 내쉰 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 *

-거제도 태성중공업

“아직인가?”

“네, 이제 곧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늦지는 않겠군.”

도형준 부사장이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후, 검은 세단이 도착하고 해신해운의 사장이 행사장에 도착했다.

오늘 이곳 거제도 태성중공업 조선소에서는 해신해운 선박의 명명식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도형준 부사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 것으로 보아 살짝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부사장님 조금 늦었습니다.”

“으음, 태성중공업 분들이 오래 기다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구할 사람이 좀 있어서요.”

“네?”

“일단 가시죠.”

궁금해하는 도형준 부사장을 뒤로하고 나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눈앞에는 거대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오!”

길이 366m의 거대한 선체가 시선을 압도했다.

이번 해 해신해운이 진수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해신 제로”호다.

‘제로(0)’라는 선명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해신해운의 의지와 선대 회장인 권영호 회장의 이름을 중의적으로 담아 명명했다.

해신 제로호는 뉴욕 맨해튼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80m) 높이에 맞먹는 초대형 선박. 화물 적재 능력은 13,102TEU. 길이 약 6m의 컨테이너 13,100여 개를 실을 수 있는 규모였다.

이제까지 진수된 국내 선박 중에서는 최대 규모.

“사장님, 오셨네요!”

그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미안 좀 늦었지?”

권세아는 내 옆으로 다가와 옆구리를 세게 꼬집었다.

“회사에서는 직함으로 부르라니까요!”

“아아아! 알았어. 알았다고!”

회사에서는 경영기획본부장 권세아 상무였다. 그녀와 나는 몇 달 전 결혼식을 올렸다.

권세아 상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고마워요.”

“뭘.”

권세아 상무는 선체에 적혀 있는 선명을 바라보았다.

“해신 제로(Heasin Zero)”

그녀의 아름다운 눈망울이 살짝 촉촉해졌다.

해신 제로호. 해신해운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남을 선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신해운이 글로벌 선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진 권영호 회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지은 이름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이끌 해신해운의 시작을 알리는 이름이기도 했다.

권세아 상무는 아버지를 떠올린 것일까.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오늘 좋은 날이니까!’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세아야, 나는 사실 ‘해신 세아’호라고 하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만해요!”

권세아 상무는 나의 농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옆구리를 또다시 세게 꼬집었다.

“장보고 사장님, 오셨습니까.”

태성중공업의 사장 유진태 사장이었다.

“사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유진태 사장의 손을 강하게 마주 잡았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둘도 없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협력하고 있었다.

그런 협력을 바탕으로 태성중공업과 해신해운은 국내의 해운 회사와 조선 회사 중 유일하게 금융 위기를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었다.

유진태 사장이 말했다.

“참 좋은 이름입니다.”

유진태 사장이 권세아 상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그럼 저기로 자리를 옮기시죠.”

유진태 사장이 우리를 안내했다.

“장보고 사장님, 그럼 오늘 스폰서?”

“네, 권세아 상무님이 하실 겁니다.”

“네, 아주 좋습니다. 의미가 있는 명명식이 될 것 같습니다.”

선박이 진수할 때는 명명식을 가진다.

해상업계에는 여성이 선박 명명식에서 스폰서를 맡는 관례가 있다.

명명식은 조선소에서 배를 건조한 후 선주에게 인도하기 전에 선주들과 조선소 관계자들이 모여서 행하는 의식이다.

이때부터 선박은 선명으로 불리게 된다.

명명식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9세기 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서 기원했다는 설, 북유럽 바이킹족이 활동하던 중세 초 선박을 새로 건조하게 되면 바다의 신에게 배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의 일환으로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세례 의식이 접목돼 선박이 건조된 뒤 샴페인을 터뜨려 축복을 기원하는 행사로 변질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명식에서 뱃머리에 샴페인 병을 힘껏 부딪쳐 깨뜨리는 행사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였다.

이번 선박 명명식에서는 권세아 상무가 “해신 제로”호의 스폰서를 맡기로 했다.

대부분 선주의 부인이나 딸, 선주 회사 여성 고위 관계자 등이 하는 관례이고, ‘해신 제로’호가 갖는 의미를 고려해 권세아 상무가 직접 스폰서를 하기로 한 것이다.

명명식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명명식을 진행하던 총무팀 직원이 말했다.

“그럼, 해신해운 장보고 사장님을 모시고 축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짝짝짝.

나는 큰 박수를 받으며 단상 위로 올라섰다. 단상에 서서 사람들 향해 인사를 한 후 마이크 앞으로 섰다.

“존경하는 유진태 사장님과 태성중공업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해신해운 임직원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금융 위기의 파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해신해운은 태성중공업과의 협력으로 그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해신해운과 태성중공업 양사의 우정과 협력의 산물이 또다시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해신 제로’호입니다. 해신해운은 지난 금융 위기 속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정기 선사 탑 5에 드는 성과를 이룩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5년 이내에 탑 3 정기 선사로 진입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이 해신 제로호가 있을 것입니다. ‘해신 제로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적 선사인 해신해운과 조선소인 태성중공업의 자긍심으로 세계를 누빌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이 위기를 헤쳐나갑시다!”

“와와아!”

“짝짝짝!”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명명식의 마지막은 조선소에서 준비한 샴페인 병을 선체에 던져 깨트리는 세리머니.

이때 샴페인 병을 선박을 향해 던지는 영광은 선박의 스폰서에게 주어진다.

권세아 상무가 앞으로 나섰다.

“세아야, 한 번에 깨트려야 되니 세게 던져!”

권세아 상무는 나의 잔소리가 귀찮은 듯 손을 들어 올려 뒤로 휙휙 내저었다.

권세아는 가냘픈 체구에도 불구하고 힘이 좋았다. 그녀가 내던진 샴페인 병이 ‘해신 제로’호 선체에 부딪히며 기분 좋은 소리가 퍼져 울렸다.

병과 유리가 부딪쳤을 뿐인데 마치 종소리 같은 맑은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해신 제로와 해신해운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달성을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당신은 세계 5대 선박왕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보상 :

- 명성이 급격하게 상승했습니다.

- 당신의 글로벌 명성이 상승했습니다.

- 칭호 [선박왕]를 획득했습니다.

+

‘아!’

이제 퀘스트도 끝인가?

선박왕 퀘스트가 달성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해신해운은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탑 5에 이름을 올렸다. 나를 선박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돌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떴다는 것은 이제 업계의 사람들 사이에 내가 선박왕이라는 것이 공지의 사실이나 다름없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

“음?”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이 세계의 유일한 선박왕으로 등극하세요.”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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