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안녕하세요.”
“누구 만나러 오셨습니까? 날이 안 좋네요. 오늘 임시 주주 총회가 있어서 좀 바쁩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것 때문에 왔으니까요.”
“네?”
나는 임시 주주 총회 소집 통지서를 꺼내 들었다.
“저도 해신해운 주주니까요.”
총무팀 직원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주주님, 임시 주주 총회장은 대강당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허허허.”
“다른 분들도 주주이신가요?”
총무팀 직원이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서 있는 백경운 변호사와 동생 장해진을 가리켰다.
“네, 이분들도 주주입니다.”
옆에 있는 장해진을 가리켰다.
“해신해운 대주주인 블루오션에서 나오신 분입니다.”
“네?”
장해진은 통지서와 함께 블루오션 대표 이사라고 기재된 명함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블루오션 장해진입니다. 그리고 같이 온 분은 우리 회사의 대리인 백경운 변호사입니다.”
“아. 아! 블루오션에서 나오셨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오시면 9층으로 먼저 모시라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9층이요?”
총회가 열리는 곳은 23층 대강당. 9층은 VIP 회의실이 있는 곳이다.
23층이 아니라 9층으로 안내를 한다는 뜻은 임시 주주 총회 전에 미리 블루오션 측의 의중을 떠보려는 것이 분명했다.
총무팀 직원이 말했다.
“네, 9층에 주요 주주분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대기하시다가 총회장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장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 구석에 대기하고 있던 총무팀 신입 사원이 달려왔다.
“주주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젊은 총무팀 직원이 말하며 엘리베이터로 장해진과 백경운 변호사를 안내했다.
두 사람과 달리 나는 23층 대강당에 마련된 임시 주주 총회장으로 안내되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도 적은 숫자는 아닌데 회사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주요 주주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몇몇 다른 주주들과 함께 23층에 마련된 임시 주주 총회장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대강당 앞에 설치된 테이블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총회장으로 들어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주들의 신분증과 위임장을 확인하는 곳이었다.
임시 주주 총회는 23층 대강당에서 10시에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예상보다 많은 주주들이 몰려 위임장 확인 등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는 눈치.
우리나라 최대의 국적 선사인 해신해운의 경영권 향방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런 업계의 관심만큼 취재 열기도 제법 뜨거웠다.
대강당 바로 옆에 마련된 소회의실에 제법 많은 숫자의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기자실은 주주 총회장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TV 4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신분 확인을 마친 후 총회장 안으로 들어서 의자에 착석했다.
"빨리빨리 진행합시다!"
개회가 늦어지자 내 자리 뒤에 앉아 있는 주주들 사이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연단에 올라선 총무팀 직원이 올라와 말했다.
“외부에서 아직 입장을 하지 못하는 주주들이 있고 위임장 원본을 대조하느라 주주 입장 처리가 일부 지연되고 있으니 주주 여러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 총회장에 평소의 주주 총회보다 훨씬 많은 주주들이 참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
-해신해운 본사 9층 VIP 회의실
장해진과 백경운 변호사는 총무팀 직원을 따라 9층 VIP 회의실에 들어섰다. 주요 주주들을 위해 마련된 대기실이었다.
백경운 변호사가 장해진에게 조용히 말했다.
“국민연금에서도 담당자가 왔군요.”
백경운 변호사가 슬쩍 손가락으로 한 중년 남성을 가리켰다.
중년 남성의 정장 상의에는 그의 소속을 알 수 있는 배지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 옆에는 해신항공의 직원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해신항공 배지를 착용하고 있었다.
국민연금은 약 10%, 해신항공은 약 11%의 해신해운 지분을 들고 있는 기관으로 블루오션 다음으로 많은 해신해운 주식을 소유한 기관 투자자들이었다.
“주요 주주들이 모여 있군요. 오! 저 사람이 바로 최 부자입니다. 혹시 만나신 적이 있으신가요?”
“자갈치 쩐주 최 부자?”
“네, 저는 예전에 장보고 차장님 소개로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백경운 변호사가 최 부자에게로 다가가 장해진을 소개했다.
“어르신 잘 지내셨습니까? 일전에 장보고 차장님하고 함께 인사를 드린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오, 백경운 변호사! 기억하고말고! 오랜만이네.”
“네, 잘 지내셨죠.”
“그래 옆에 계신 분은?”
최 부자가 정해진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인상이라고 생각했다.
“하하하. 장보고 차장 친동생입니다.”
“오! 두바이에 있었던?”
“네, 이번 일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해진입니다. 이야기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음, 그놈이 이야기했다면 뭐, 좋은 이야기는 없었겠군?”
장해진은 최 부자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해 땀을 비질 흘렸다. 재미없는 놈당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장해진은 평소 형인 장보고로부터 자갈치 쩐주 최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를 잘 알고 있었다.
평소 만나기를 고대했지만 최 부자의 깐깐한 성격은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 부자가 말했다.
“블루오션이 해신해운의 대주주라지?”
“네, 12%까지 확보했습니다.”
“그렇군. 나도 개인적으로 2% 정도 보유하고 있다네. 그 망할 놈이 하도 닦달해서 말이지.”
“하하하. 그렇군요.”
여기서 그 망할 놈은 자신의 형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장해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장해진 사장.”
“네.”
“주주로 참석하니 참 좋군. 이렇게 대접도 해주고.”
“네, 그렇네요.”
“그런데 블루오션은 주주 총회 안 하나?”
“네?”
“해신해운 지분보다 많은 지분이 블루오션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네?”
“내 돈 말일세. 장보고 그놈한테 속아서 투자를 이곳저곳에 많이 했거든.”
“아!”
장해진은 그제야 형 장보고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형 장보고는 자신의 돈을 포함해서 투자 자문을 하는 사람의 돈도 있으니 잃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는 말을 했었다.
‘블루오션에 투자한 돈에 이 사람 최 부자의 돈도 있었구나!’
최 부자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장해진을 바라보았다.
덜컥,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해신해운 재무그룹을 담당하고 있는 권동민 부사장이 들어섰다.
재벌가 자제로 해신해운 오너 일가인 권동민 전무의 태도는 당당함이 넘쳐흘렀다. 경영권 다툼 중이었지만 오늘 임시 주주 총회에서도 패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주요 주주들과 친분이 있는지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권동민 부사장이 다가서자 국민연금과 해신해운의 담당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인사를 나눴다. 여전히 해신해운의 주인인 오너 일가다운 자연스러운 모습.
권동민 부사장은 주요 주주들을 만나 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한쪽 구석에 있는 장해진과 백경운 변호사를 발견했다.
그의 옆에 있던 비서가 귓속말을 하자 권동민 부사장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후 장해진과 백경운 변호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권동민 부사장이 말했다.
“주주님들 안녕하십니까.”
그는 제법 능글맞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블루오션에서 오신 주주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해신해운의 재무그룹을 담당하고 있는 부사장 권동민입니다.”
“네, 부사장님 반갑습니다. 블루오션의 대표 이사를 맡고 있는 장해진입니다. 이분은 저희 회사의 대리인입니다.”
“백경운 변호사입니다.”
권동민 부사장이 두 사람으로부터 받은 명함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자신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블루오션의 대표가 이렇게 어린 사람이라는 점이 그를 씁쓸하게 한 것이 분명했다.
권동민 부사장이 말했다.
“사실 저희가 블루오션 때문에 한 방 먹었습니다.”
“네?”
“저희는 두바이 국적 회사라고 해서 외국 자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인이 소유한 회사일 거라고 생각도 못 했네요.”
권동민 부사장은 장해진이 별다른 대답이 없자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젊은 분이 블루오션을 소유자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습니다.”
“하하하. 부사장님 아직도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셨네요?”
“네?”
“저는 블루오션의 실소유자는 아니고요. 회사의 대표 이사로 전문 경영인입니다. 실제 소유자는 따로 있습니다.”
“네? 장해진 대표님이 실제 소유자가 아니라고요?”
장해진의 말에 권동민 부사장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장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는 시종일관 당당한 표정이던 권동민이 당황한 모습을 보이자 어딘지 모르게 통쾌한 기분이 든다고 생각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실제 소유자가 따로 있다고요?”
권동민 부사장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장해진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그리고 오늘 주주 총회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
“아마도 지금쯤 23층에 도착했을 것 같군요.”
“······!”
권동민 부사장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임시 주주 총회 (2)
-해신해운 본사
해신해운 임시 주주 총회가 열리고 있는 본사 앞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해신해운 본사 건물 밖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련의 무리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복면을 뒤집어쓴 채로 “해외 투기 자본에 의한 국부 유출을 반대한다”며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해신해운의 지주 전환은 주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재벌의 족벌 경영을 타도한다”며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는 총회장도 마찬가지.
임시 주추 총회의 참석률은 높았다. 주주들의 참석률이 높아 총회장인 대강당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새벽부터 모여든 취재진과 주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주주 총회 시작 두 시간 전 이미 500여 명 이상 입장한 23층 대회의실 접수 창구 앞에는 아직도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총회장에 들어선 주주들의 구성은 다양해 보였다. 20대부터 5·60대 중장년층, 70대 이상 주주들까지 다양했다.
그때 총회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사이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저 사람?”
아직 정식적으로 개회도 하기 전인데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간 사람이 있었다.
“여러분! 존경하는 주주 여러분 의결 전에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단상 위로 올라간 남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
“존경하는 주주 여러분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재벌들의 횡포를 저지합시다! 지주사 전환을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잘한다!”
“옳소!”
단상 위의 남성이 크게 소리치자 강당 안에 자리 잡은 일부 주주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크게 웃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뭐 하는 놈이지?’
블루오션 측이 제안한 안건을 지지하는 발언이었지만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총회꾼인가?’
대기업의 주주 총회가 열리면 매번 참석해 소란을 피우고 회사의 입장에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는 전문 총회꾼들도 있다.
주주 총회를 준비하는 총무팀은 이런 총회꾼들을 잘 선별해서 대처하는 것도 주요 임무였다.
행사를 준비하던 총무팀 직원은 강당이 소란스러워지자 단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단상 측 마이크를 끄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개회 전이니 원만한 주주 총회 진행을 위해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일부 주주들 사이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개회 시각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늦은 사람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빨리 시작합시다!”
“옳소!”
총무팀 직원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주주님, 개회가 늦어져 죄송합니다. 법률상 주총이 끝나기 전에 오시는 분들은 입장을 허용하기 때문에 늦게 오셨다고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언제 시작하는 겁니까!”
“지금 접수된 위임장을 대조하고 출석 주주를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확인 작업을 마치면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주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나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도착 안 했나 보군.’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야 하는 주주들이 있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가 앉아 있는 자리 옆으로 다가서는 사내가 있었다.
“장보고 차장님.”
“음?”
그는 M.V “줄리엣”호에 승선했을 당시 함께 승선했던 이대성 삼항사였다.
“차장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이대성 삼항사?”
“하하하. 차장님! 지금은 이항사입니다.”
“아 그렇군.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이번 총회에 우리 사주 의결권 때문에 말이 많아서요. 해상 직원들 대표로 위임을 받아서 이곳에 왔습니다.”
이대성 이항사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런데, 차장님 회사를 그만두셨다고 들었는데요.”
“맞아. 오늘은 주주로 참석한 거니까.”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요!”
“소문?”
“네, 차장님이 갑자기 그만둬서 의견이 분분했거든요. 그런데 윗분들 눈 밖에 나서 쫓겨난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허허허 내가 쫓겨났다고?”
“네.”
음, 쫓겨났다니?
정확하기 말하면 나는 엄연히 사직서를 제출하고 자발적으로 퇴사를 한 사람이다.
쫓겨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약간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기는 그런 기분이랄까?
하지만 이대성 이항사는 이해한다는 듯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가 얼마나 해신해운을 아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나갈 정도라면 얼마나 본사 생활이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대성 이항사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