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196/200)

‘음? 저 사람들은?’

정재훈 사원의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경영지원본부 총무팀 소속 직원들이었다. 주주 총회를 준비하는 소관 팀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곧 개최될 임시 주주 총회에 관심이 많았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정재훈 사원이 귀를 쫑긋 세웠다. 컨테이너사업본부나 재무그룹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립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오늘 신문 봤나?”

“네.”

“어떻게 될 것 같나? 블루오션에서 표 대결을 할 계획이라고 보도 자료를 뿌린 모양이던데?”

“그래도 권씨 집안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무리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런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단 말이야. 뭔가 불안해.”

“뭐. 해신해운은 권씨 집안 회사 아닙니까? 해신그룹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래 설마 해외 투기 자본에 회사가 넘어가는 걸 가만두진 않겠지.”

“아! 그 기사 못 보셨어요?”

“무슨 기사?”

“블루오션이요 국내 기업 경영권을 노리는 투기 자본이라고 기사가 났었잖아요.”

“응.”

“그런데 투기 자본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소리야?”

“블루오션 지분을 들고 있는 투자 회사의 투자자들이 대부분 한국계 자본이라고 반박 기사가 났다니까요?”

“그래?”

“네, 그리고 이번에 대표 이사도 변경됐는데 한국인이라고 하던데요.”

“뭐? 블루오션 대표 이사가 한국 국적인 사람이라고?”

“네. 그렇다니까요. 그것도 굉장히 젊어요. 두바이 금융계에서 일하던 한국계 청년 기업인이라고 기사가 쫙 놨어요.”

“허허허. 별일이네.”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총무팀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직원들 사이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임시 주주 총회를 앞두고 벌어질 표 대결로 회사가 뒤숭숭했다.

* * *

-블루오션 한국 지사 회의실

+

신라일보,

“블루오션 공개 성명 발표, 소수 주주 행동 촉구”

해신해운에 대한 경영 참여를 선언한 블루오션 측이 지난 xx일 공개 성명을 통해 해신해운 주주들이 임시 주주 총회에서 자신들과 뜻을 함께해줄 것을 촉구했다.

블루오션의 대표 이사 장해진 사장은 “해신해운은 매우 성공적이며 가치 있는 회사로 오랫동안 해운업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온 회사”라며, “회사의 주인은 주주들이지 오너 일가가 아니다. 해신해운의 미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 주주, 기관 투자자, 국민연금 가입자 등 모든 이해 관계자가 지금 바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할 때”라고 요청했다.

특히 장해진 사장은 “해신해운 주주들이 저평가된 회사의 주인이라는 관점에서 더 이상 재벌가들의 소수의 지분을 가지고 회사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해신해운은 “여러분이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모든 해신해운 주주분들은 임시 주주 총회에서 블루오션이 제안한 임원 선임에 찬성해달라”고 촉구했다.

유혜영 기자.

+

신문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백경운 변호사가 환하게 웃었다.

“사진 잘 나왔네요.”

“네?”

“장해진 사장님이요. 사진 잘 나왔네요. 하하하.”

“으음! 청년 사업가라고? 출세했네 우리 동생. 허허허.”

백경운 변호사가 신문을 건넸다. 잘생긴 동생의 사진이 신문에 실려 있었다.

백경운 변호사가 말했다.

“아! 그리고 해신해운 이사회로부터 답변이 왔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이사회를 열었는데 블루오션에서 주주 제안한 안건을 다음 달 xx일 임시 주주 총회 의안으로 추가 확정했다는 내용입니다.”

“잘됐네요.”

계획대로 진행되자 나는 만족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주주들의 권익을 강화할 수 있는 안건을 제안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권영호 회장 사망을 이유로 경영진을 재편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신해운 이사회는 해신해운의 주주 제안과 관련해 일부 위법의 소지가 있으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해신해운의 주주 제안을 임시 주총 총회에 상정하기로 확정했다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해신해운에서 발표한 자료를 유심히 바라보던 백경운 변호사가 말했다.

“그런데 상대방도 승부수를 띄운 것 같습니다.”

“특별한 내용이 있나요?”

“네, 이번 주주 총회에서 지주사로 전환할 생각인가 봅니다.”

“오호! 뭐라고 실렸나요?”

백경운 변호사가 신문 기사를 소리 내어 읽었다.

“한편 해신해운 이사회는 이번 지주사로 전환하는 것은 해신해운이 초일류 기업으로 시너지를 내고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결정이며 적법한 절차로 진행됐음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전생의 기억보다 살짝 빠른 시기이긴 했지만 기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전생에도 해신해운은 지주사로 전환되었다.

해신해운을 지주 회사와 해신해운으로 분할하는 지주 회사 체제로 전환되었는데, 지주사로 그룹사를 지배하기 위한 지주사와 고유의 해운 사업을 전담하는 자회사 해신해운으로 구분되었다.

당시 회사 측은 최근 대내외 급격한 환경 변화에 유기적으로 대처하고 지속 성장이 가능한 미래형 기업 구도를 확립하기 위해서 경영 투명성이 확립되는 지주 회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실상은 오너 일가의 지배 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백경운 변호사가 말했다.

“장보고 차장님, 그래도 최근 반박 기사를 통해 소수 주주들 사이에 우리가 해외 투기 자본 세력이 아니라는 정보는 전달이 좀 된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네, 그래도 대표 주주들의 표를 계산하면 아직 저쪽이 우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임시 주주 총회에서 표 대결이 벌어질 테니 준비가 필요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표가 아쉬운 상황이군요. 소수 주주라도 소홀히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백경운 변호사가 물었다.

“장보고 차장님, 그러면 따로 생각해둔 방법이 있으신가요?”

“네, 일단 대리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주주들을 모아야겠습니다. 주요 주주들을 설득해 대리 행사할 수 있도록 최대한 위임장을 확보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좋은 생각입니다. 일반 소수 주주들의 표도 무시할 수 없으니 관련 기사 등을 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변호사님.”

백경운 변호사가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 사무실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백경운 변호사가 밖으로 나서자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주주 명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너 일가의 승리를 예측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 분명했다.

임시 주주 총회가 열리더라도 해신그룹의 오너 일가인 권씨 일가가 표 대결에서 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경영권을 노리고 공격을 시도한 펀드는 제법 있었다. 하지만 크게 재미를 본 일은 적었다.

반재벌 정서가 강하다는 인식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투기 자본보다는 재벌가의 편을 들어주는 경향이 강했다.

아무리 블루오션이 해외 투기 자본 세력이 아니고 건전한 투자 자본이라고 설명한다고 하여도 권씨 집안의 회사라는 인식이 강한 이상 경영권을 공격하는 세력에 대한 반감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주요 주주들한테는 따로 전화해서 미리 대리 행사할 수 있도록 위임장을 받아둬야겠어.’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주주 명부를 들어 올렸다.

익숙한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사람들을 설득해 투자를 하게 만든 보람이 있는 순간이었다.

‘흐흐흐. 역시 이 사람한테 먼저 전화를 해야겠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를 걸자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상대방은 꽤나 급한 성격인지 신호음이 몇 번도 채 울리지도 않았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냐? 바쁜데 왜 전화했냐?”

오랜만에 하는 통화이건만 그다지 반기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지내셨죠?”

“흥! 네놈 때문에 생고생만 하고 있는데 그걸 몰라서 묻는 게냐!”

괄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부산 자갈치 쩐주 최 부자였다.

전생에 나의 사업 멘토이자 내가 성공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도와줬던 자갈치 최 부자.

현생에서는 내가 그의 투자 멘토나 다름없었다.

최 부자는 나의 투자 자문 덕분에 전생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부를 축적했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한강 이남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좀 도와주셔야 될 것 같아요.”

“흥! 안 그래도 언제 전화가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불친절한 목소리였지만 그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의결권 대리 행사를 하려고 표를 모으고 있으니 위임장을 좀 보내주세요.”

“일없다!”

“네?”

일이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최 부자는 지금 약 2% 상당의 해신해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요 주주였다. 개인이 2%를 들고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지분이었다.

‘설마 해신해운 측에 넘어간 건 아니겠지?’

“나도 직접 올라갈 생각인데. 도대체 무슨 짓들인지 내가 직접 참석해서 들어봐야겠다.”

최 부자가 걸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며칠 뒤.

+

신라일보,

“해신해운과 블루오션 주주 총회를 앞두고 표 대결에 집중”

해신해운과 두바이 국적의 해운 회사 블루오션이 해신해운 주주 총회 공고를 앞두고 의결권 대리 행사를 권유했다.

해신해운은 주주 총회의 원활한 진행 및 의결 정족수 확보를 위해 의결권 대리 행사를 권유한다고 XX일 공시했다. XX일부터 의결권 권유 효력이 발생하며 주주 총회가 개시되는 오는 XX일까지 진행된다.

해신해운의 관계자는 “해신해운의 지주 회사 전환에 찬성하고, 블루오션의 주주 제안에 반대하는 의결권을 회사에 위임해 달라”고 권유했다.

해신해운 측은 공시를 통해 “중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장기적인 주주 이익 제고를 위해 적법한 절차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지주 회사로 전환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컨테이너 선박 확대를 통한 매출 성장과 수익성 개선은 물론 신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겠다”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회사의 리더십을 믿어달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블루오션은 “해신해운의 지주사 전환은 오너 일가의 지배 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며 지주사 전환 안건에 제동을 걸고 나선 바 있다.

블루오션은 “지주 회사 전환은 해신해운 주주들의 가치를 심각하게 평가 절하하는 것이다. 지주사로 전환하면서 실속 있는 자회사가 지주사 밑으로 전환되는데 이들 대부분이 오너 일가가 대부분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 기업”이라며 “주주가 주인인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의결권 대리 행사를 블루오션이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권유했다.

특히 블루오션 측은 “블루오션은 해운업에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해신해운의 주주로 경영에 참여해 시너지효과와 이익 창출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혜영 기자.

+

-여의도 블루오션 한국 지사 회의실

며칠 뒤.

공고된 해신해운 임시 주주 총회의 날이 밝았다.

회의실에는 긴장한 표정의 두 사람이 아침 일찍부터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 주주 총회에 블루오션을 대신해서 참석하기로 한 백경운 변호사와 동생 장해진이 그들이었다.

백경운 변호사가 말했다.

“가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임시 주주 총회가 시작하는 날입니다. 블루오션이 제안한 주주 제안을 통과시키세요!”

세부 퀘스트 : 임시 주주 총회

클리어 조건 : 블루오션 주주 제안 안건 의결

제한 시간 : 임시 주주 총회 종료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해신해운 파산 가능성 상승, 막대한 재무 손실, 개인 투자 실패

+

임시 주주 총회 (1)

-해신해운 본사 건물 앞

출근 시간은 지난 이른 아침.

빌딩 앞에 서서 해신해운 본사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해신해운(Heasin Shipping)’

해신해운 로고가 새겨진 큰 빌딩을 바라보고 서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매일같이 출근하던 곳인데도······.’

오랜만에 왔기 때문일까.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졌다.

주주의 자격에서 이 자리에 왔기 때문일까?

이때까지는 직원으로 출근하는 입장이었고, 지금은 주주로 이 자리에 섰다.

주주는 법적으로는 주식 회사인 회사의 주인이라는 뜻이 아닌가? 주인의 입장에서 찾아와서 그런지 회사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임시 주주 총회를 위해 해신해운 본사를 방문한 주주는 우리뿐만은 아니었다. 주변을 기웃거리며 걸어오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주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주주 총회는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행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분를 확보하고 있는 회사 입장에서는 주주 총회는 보통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가 미리 정해놓은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간혹 전문 주총꾼이라 불리는 세력이 등장해 훼방꾼들이 있었지만 처리 가능한 골칫거리였다.

진짜 문제는 이번 같은 경우다. 주주 총회에서 표 대결이 벌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도 회사가 준비한 시나리오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배우들이 추가되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주연 배우가 될 생각이었다.

회전문을 지나 해신해운 본사 로비로 들어섰다.

로비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들도 여럿 보였다.

임시 주주 총회를 알리는 현수막도 회사 로비에 크게 걸려있었다.

총회장을 안내하는 표지들도 있었다. 임시 주주 총회가 개최되는 장소는 해신해운 본사 빌딩의 가장 높은 층인 23층에 있는 대강당이었다.

해신해운 지배 구조 개편이 논의되는 임시 주주 총회였고, 권영호 회장 사후에 경영권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 논의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너 일가의 경영 독주를 막겠다고 선언한 블루오션의 반격이 예상되고 있었다.

격전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임시 주주 총회가 열리는 해신해운 본사는 평소와는 다르게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그때 로비 한쪽 구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저기! 저 사람.”

“장보고 차장님 아니야?”

“회사를 그만뒀다고 들었는데?”

나를 발견한 해신해운의 직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였다.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장을 차려입은 해신해운 직원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장보고 차장님?”

총무팀 소속 직원이었다. 총무팀은 본사 10층 법무팀 바로 옆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안면이 있는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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