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2화 (192/200)

도형준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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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이거?

‘퇴임이라고? 그럼 경영기획본부는 어떻게 되는 거야?’

예기치 못한 인사 발령 공고였다.

정재훈 사원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차장님, 밑에 조직 개편도 있어요.”

“음?”

“한번 보세요.”

새롭게 변경된 조직 변경도가 올라와 있었다.

뭐야 이건.

‘경영기획본부 해체?’

뭐? 경영기획본부를 해체한다고?

경영기획본부는 해체하고 재무그룹 산하의 일개 팀으로 격하되었다.

정재훈 사원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법무팀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뭐?”

법무팀도 재무그룹 산하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법무기획파트는 파트를 해체.

‘······이 새끼들이!’

누가 이런 짓을 벌였을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동호, 권동민 형제들이 작당한 결과가 분명했다.

아마 눈엣가시였던 도형준 부사장을 가장 먼저 쳐내려고 작업을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음?”

그리고 인사 발령 마지막에 적혀 있는 글자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

장보고 차장 : 법무팀 -> 부산 지사 운항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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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가 없네?

통수 (1)

-서울 종로 호텔의 한 연회장

“장보고 차장, 무슨 일인가?”

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을 눈치챈 도형준 부사장이 물었다.

“부사장님 한번 보시죠.”

“음? 허허허.”

도형준 부사장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임원은 임시 직원이라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라더니 정말이군.”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됩니까?”

도형준 부사장은 잔뜩 흥분한 나와는 달리 초연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뭐, 어쩌겠나. 경영진에서 그렇게 결정한 것인데.”

도형준 전무는 인사 공고 마지막에 표시된 발령권자의 직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표이사인 사장 이름으로 공고된 인사 발령이니 딱히 효력을 다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임원은 그야말로 임시 직원이니 퇴임시키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지 않은가.

그리고 회사의 조직을 개편하거나 나 같은 정직원을 발령하는 것은 경영진의 경영 판단의 재량이 폭넓게 인정되는 부분이다.

도형준 전무의 차분한 반응 때문일까. 나도 화가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새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통수를 당했다고 생각하니 언짢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할 상황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주에 혈기 왕성한 사람은 나 외에도 있었다.

“부사장님, 부사장님 퇴임에 경영기획본부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이건 우리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겁니다!”

정재훈 사원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

“뭐? 전쟁?”

“네! 전쟁입니다!”

“허허허. 같은 회사 사람들끼리 무슨 전쟁인가.”

도형준 전무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에 정재훈 사원도 뒤통수를 긁적였다.

큰 피해를 본 당사자들도 가만히 있는데 자기가 대신 흥분하면서 난리를 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우리가 한참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나민 아세르가 다가왔다. 상황이 궁금해진 것이다.

“뭐 큰일은 아닌데요. 작은 문제가 생겼네요.”

“작은 문제?”

“네, 도형준 부사장님이 회사에서 잘렸네요.”

“네?”

“그리고 저도 법무팀에서 운항팀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나의 말을 듣고 있던 나민 아세르와 홍기표 부산신항 사장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뭐, 별거 아닙니다. 다만 준비한 계획을 좀 앞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계획?”

“네, 동생을 한국으로 좀 들어오라고 해야겠습니다.”

두바이 국부 펀드에서 일하고 있는 장해진을 한국을 불러들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것일까.

나민 아세르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나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올려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했다. 앞으로 일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듯이.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해신해운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방안을 모색하세요!”

세부 퀘스트 : 경영권 다툼

클리어 조건 : 경영 일선 복귀

제한 시간 : 다음 임시 주주 총회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퇴사, 좌천, 해신해운 파산 가능성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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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여의도 모처 사무실

며칠 후,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는 서울의 하늘 뒤로 붉은 노을이 드리워졌다.

여의도에 빼곡한 빌딩 숲에서 퇴근하려는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직장인들은 이미 일과를 마쳤을 시간.

드르륵, 한 젊은 남성이 캐리어를 끌면서 한 사무실 앞에 나타났다.

사무실 문 앞에는 개업을 축하하는 화분들이 놓여져 있었다.

사무실을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휴우우.”

젊은 사내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끼이익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인테리어 공사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사무실.

하지만 안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형!”

사무실에 들어선 사내는 내가 기다리고 있던 강력한 우군이자 나의 동생 장해진이었다.

“오! 잘 찾아왔네!”

나는 사무실 문 앞으로 달려가 가방을 받아 들었다.

“피곤하지?”

동생 장해진은 두바이에서 출발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바로 왔기 때문에 피곤한 기색이었다.

“아니야. 비행기에서 좀 잤어.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직 시간이 좀 있다고 하지 않았어?”

“다음 정기 주주 총회 때를 예상했는데 변수가 좀 생겼네.”

“변수?”

“그래, 잘릴 뻔했거든.”

“형이?”

“그래, 근데 정직원이라 바로 해고하지는 못하니까 부산 지사로 우선 발령을 내버렸네?”

“뭐? 허허허.”

동생 장해진은 어이없다는 듯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동생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내가 회사를 취미로 다닐 만큼 자산이 많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그동안 해신해운에 가져다준 이익이 막대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너무하네. 그동안 형이 해신해운에 해준 게 얼만데.”

“허허허.”

동생의 말에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고 그저 씁쓸하게 실소를 흘렸다.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고, 동생의 지적이 사실이기도 했다.

대신 나는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라 가슴 한쪽 구석이 착잡해졌다.

책에서 읽은 구절은 “회사는 기억력이 없어서 직원들이 어떤 성과를 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과거에 어떤 성과를 냈었는지는 금방 잊는다.

회사는 그저 직원들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만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해신해운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며 경영진이 되려고 하는 권동호, 권동민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자신들의 경영권 싸움에 몰두해있을 뿐 누가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인지는 관심조차 없었다.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고, 자기 일처럼 일하는 직원이라도 특별하게 취급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당연히 주어진 일을 다해야 하는 기계의 부속품과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착잡한 표정을 읽은 것일까.

동생 장해진이 다가오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계획은 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을 좀 소개해 줄게.”

나는 동생 장해진을 데리고 사무실 안에 마련된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 안쪽에는 몇몇 사람들이 바쁘게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자, 모두 주목해주세요. 방금 멀리서 원군이 합류했습니다.”

“오!”

“이름은 장해진입니다.”

“장씨네? 그러고 보니 좀 닮았네?”

“네, 제 친동생입니다. 두바이 국부 펀드에서 일하는 펀드 매니저입니다. 지금 두바이에서 귀국했습니다.”

“오! 동생도 잘생겼다!”

사람들이 웃으며 박수로 환영했다.

회의실에는 자발적으로 나를 돕기 위해 합류한 해신해운의 인재(?)들이 있었다.

법무기획파트에서 함께 일한 정재훈 사원, 한재명 과장, 구민철 대리.

이들은 이번 인사이동으로 한직으로 발령이 났다.

나름 회사에서 잘나가는 인재들이라 생각했던 탓일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인지 자발적으로 나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때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단발머리의 여자가 손을 들었다.

“차장님, 질문 있어요.”

“네, 유 기자님.”

그녀는 신라일보의 유혜영 기자였다.

“동생분 말인데요.”

“네.”

“혹시 지금 여자친구가 있나요?”

“······.”

농담을 하는 건가?

하지만 유혜영 기자는 진지하기만 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장해진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여자친구가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유혜영 기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인지 정확하게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으으음! 그런 내밀한 이야기는 차차 알아가는 걸로 하시고요. 일단 회의를 시작합시다.”

내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 회의실 가장 구석에서 안경을 낀 채로 서류를 확인하던 냉철한 인상의 미남이 우리 곁으로 걸어왔다.

인상이 날카로운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대단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유혜영 기자가 이번에는 그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반갑습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백경운 변호사라고 합니다.”

그는 장해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아! 반갑습니다. 변호사님 안 그래도 형한테 이야기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음? 차장님이 제 흉을 많이 봤나 보군요.”

“아니요. 예전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시던데요.”

“음, 그건 사실과 다르군요.”

“네.”

“사실 제가 차장님의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는데 말이죠. 이제야 빚을 갚을 기회가 왔군요. 하하하.”

법무 법인 올림푸스의 백경운 변호사가 나를 돕기 위해 열 일을 제쳐두고 부산에서 올라온 상황이었다.

백경운 변호사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차장님, 그럼 오늘 올 사람은 다 온 거죠?”

“네, 변호사님.”

“좋습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해 볼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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