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1화 (191/200)

권동민 부장의 표정은 진심으로 불쾌해 보였다.

‘해신해운은 권씨 가문의 회사다.’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이 해신해운에 관심을 가지다니. 그의 자존심이 도무지 용납하지 않았다.

벌컥.

그때 회의실 문이 노크 소리도 없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부, 부사장님!”

자금팀의 소속의 젊은 직원이 경직된 표정으로 회의실로 들어섰다.

“뭐야? 회의하는 거 안 보여?”

권동민 부사장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급한 소식이라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뭐? 뭔데?”

“블루오션 측이 경영 참여를 하겠다는 인터뷰가 떴습니다.”

“뭐? 경영 참여?”

“네, 방금 신라일보 단독 보도로 인터넷에 기사가 떴습니다.”

젊은 직원이 권동민 부사장에게 다가와 방금 프린트한 신문 기사를 건넸다.

+

신라일보,

“두바이 해운 회사 블루오션 해신해운 경영권 공격!”

최근 해신해운의 지분을 12%까지 매수한 두바이 국적의 해운 회사 블루오션이 해신해운의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회사는 해신해운에 ‘투명 경영’ 방안을 요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해신해운 오너 일가와 협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향후 주주 총회에서 치열한 표 대결이 벌어질 전망이다.

지난 XX일 해신해운은 블루오션이 XX일 기준으로 지분 12%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블루오션은 두바이 국적의 투자 회사가 대주주로 있는 해운 회사다.

블루오션은 “지분 취득의 목적은 경영 참여다”며, “현재 세부 계획은 없지만 향후 해신해운의 경영과 관련된 사항이 발생할 경우 임원의 선임 및 패임, 이사회 정관 변경, 주주 배당 등을 고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신해운은 우리나라 최대의 국적선사로 경영권은 최근 별세한 권영호 회장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다. 권영호 회장과 그의 자녀들이 보유하고 있는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23.99%로 알려져 있다.

오너 일가에 우호적인 지분권자로는 같은 해신그룹의 계열회사인 해신항공이 11%, 우리 사주 4.64%, 해성기업이 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블루오션을 제외한 주요 기관으로는 두바이 국부 펀드를 포함한 외국인 및 외국 기관이 합계 14%, 국민 연금은 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지분과 블루오션의 지분을 합칠 경우 총 36%가 넘어 총수 일가의 지분을 넘어선다.

특히, 지난 X월 크레디트싱가폴을 통해 들어온 투자자가 역외 헤지펀드로 확인돼 향후 해신그룹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 행보가 주목된다.

이들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지분 매수 목적을 밝혔지만 해신해운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 주주 총회에서 오너 일가가 아닌 다른 주주권자의 편을 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 투자업계(IB) 관계자는 “블루오션은 지배 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권영호 회장 사후의 경영권 분쟁에 참여할 것으로 보여진다.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블루오션의 이러한 경여 참여를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략)

유혜영 기자.

+

블루오션 (2)

-해신해운 본사 9층 VIP 회의실

해신해운 본사 9층은 회장과 사장을 비롯한 최고위 임원들이 근무하는 집무실이 위치한 곳이다.

임원들의 집무실 외에는 비서실과 VIP들을 위한 식당과 VIP 회의실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난 늦은 저녁 시간 VIP 회의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딱딱하게 굳어 있는 표정의 사내가 말했다.

“이봐, 아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컨테이너사업본부장 권동호 부사장이 물었다.

그가 아우라고 부를 사람은 해신해운 안에서는 그의 친동생인 권동민 부사장 말고는 없었다.

이 자리에는 권동호 부사장과 권동민 부사장 그리고 해신해운의 핵심 임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해신해운의 이사회 멤버로 회사의 주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은 오늘 논의할 사안이 매우 심각한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이었다.

권동민 부사장이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씰룩거렸다.

권동호 부사장의 말이 마치 자신의 잘못 때문에 이 사태가 벌어진 것처럼 타박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바이 국적 회사인 블루오션 측이 지분을 12%까지 끌어올리고 경영 참여를 선언한 것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질 않은가? 회사의 재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해서 주주들의 장외 거래까지 막을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재무그룹장 권동민 부사장이 말했다.

“장외 시간에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마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장외 거래로 12%까지 지분을 한 번에 끌어올릴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네요.”

“12%면 단일 지분으로 블루오션이 해신해운의 최대 주주가 아닌가?”

“맞습니다.”

블루오션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12%. 해신해운의 오너 일가들의 지분을 모두 합치면 12%를 훨씬 넘지만 가장 많은 지분을 들고 있던 권영호 회장도 본인 명의의 지분은 7.87%에 불과했다.

권영호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아 현재 가장 많은 지분을 들고 있는 개인 주주는 권동호 부사장. 하지만 권동호 부사장의 지분도 9.59%에 불과하다는 점이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권동민 부사장이 말했다.

“단일 지분은 그렇지만 우리에게 우호적인 주주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해신항공을 말하는 건가?”

“······.”

권동호 부사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권동민 부사장이 해신항공 측 사람들을 자신 몰래 만나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으으음! 자자!”

두 사람의 분위기가 냉랭하게 식어가자 사외이사 중 한 명이 대화를 중재하고 나섰다.

“개인적인 감정은 잠시 접어두시고, 일단은 힘을 합쳐야 되지 않겠나? 우리끼리 다투다가 회사의 경영권을 뺏기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 아닌가?”

그는 해신해운의 사외이사로 우리나라 최대 법무 법인인 마당의 대표 변호사. 해신그룹의 창업주의 사위로 권동호, 권동민 부사장의 입장에서는 고모부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권동호 부사장의 입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

권동호 부사장이 잠시 흥분한 기색을 누그러뜨린 후 물었다.

“그런데, 제깟 놈들이 이런 식으로 경영 참여를 하겠다고 하면 우리가 들어줘야 됩니까?”

“일단, 지금 상태라면 다음 주주 총회 때까지는 블루오션이 1대 주주가 되는 셈이 아닌가? 그리고 경영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 의사를 밝히면서도 장기 투자 청렴성 등을 강조하며 기업 지배 구조 개혁의 전도사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으니 다른 명분 없이 그들을 배제한 것도 말이 안 되겠지.”

“기업 지배 구조 개선 등 같은 명분은 이런 놈들이 주로 써먹는 명분 아닙니까?”

“그렇겠지.”

권동호 부사장이 물었다.

“그런데, 이놈들의 진심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언론에서는 공격적인 M&A를 위한 것이다, 시세 차익을 위한 것이다 떠들어 대고 있고, 블루오션 놈들은 건전한 경영 참여가 목적이라고 하니······.”

“설마 해신해운의 경영권을 차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기야 하겠나. 공격적 기업 지배 구조 개선 등을 명분으로 삼은 뒤 투자 차익을 노리는 전략은 헤지 펀드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 아닌가.”

만약, 이들의 본심이 투자 차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해신해운의 경영권을 가져가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건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투자 차익만 노리는 것이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군요.”

권동호 부사장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툭툭 두드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재무그룹장 권동민 부사장이 말을 이어갔다.

“형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일단 회사 내부의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무슨 소린가?”

“내부에 도움 안 되는 놈들부터 빠르게 정리하시지요.”

“내부?”

“네, 일단 내부 결속을 한 다음 쳐들어오는 놈들과 싸워야 될 것 아닙니까.”

“으음······.”

권동호 부사장도 같은 마음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시기에 내부 총질하는 놈들을 내버려 둘 이유가 없겠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움직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권동민 부사장과 함께 뜻을 모은 이상 이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눈엣가시 같은 놈들이 몇 명 있었다.

중립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편에 가담하기를 거부했던 사람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 그리고 그놈도 있었지······.’

아버지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고만장하게 날뛰었던 애송이의 얼굴도······.

* * *

-서울 종로의 한 호텔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연회장 앞에는 서명식을 위한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고 그 뒤로 큰 현수막이 걸려있다.

현수막에 기재되어 있는 문구는 ‘선박급유 및 유류중계기지 건립사업실시협약 체결식’.

오늘 이곳에서는 부산신항에서 추진되는 유류 중계기지 터미널 사업과 관련된 실시 협약이 체결될 예정이었다.

실시 협약은 사업을 추진하는 관청과 우선 협상자로 선정된 회사가 사업을 추진하는 조건들을 협의하는 절차를 말한다.

협의가 완료되면 실시 협약서를 작성하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해신해운이 포함된 컨소시엄과 부산신항 사이에 협약식이 있을 예정이다.

유류 중계기지 터미널 사업 우선 협상자 지위를 따낸 해신해운 컨소시엄은 “부산쉬핑앤오일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부산쉬핑앤오일은 선박 연료유 중계기지 터미널을 건립해 운영하기 위한 회사.

이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는 총 4개 업체로, 대주주인 해신해운이 40%, 두바이의 정유 회사 AP가 25%, 태성물산이 20, 부산 현지의 종합 건설 회사가 나머지 1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직 AP사의 직원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쁘게 움직이는 기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새롭게 추진되는 사업인 만큼 홍보팀에서 홍보를 위해 기자들을 여러 명 초청한 것으로 보였다. 신라일보의 유혜영 기자도 바쁘게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장님!”

유혜영 기자는 내가 연회장에 들어온 것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알은척을 했다.

그때 나의 등 뒤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장보고 차장 왔나?”

“예 부사장님, 일찍 오셨네요.”

그 사람은 도형준 부사장이었다.

도형준 부사장은 해신해운을 대표해서 참석했다.

해신해운이 40%의 대주주였기 때문에 부산쉬핑앤오일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를 해신해운 측 인사가 맡기로 했는데, 권영호 회장이 생전에 도형준 부사장으로 대표이사로 낙점했던 것이다.

“도형준 부사장님.”

우리 근처로 한 중년의 남성이 다가왔다.

네이비 정장을 깔끔하게 입고 푸른색 넥타이를 깔끔하게 착용한 중년 사내가 도형준 부사장에게 목례를 하며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분이 말씀하신 그 장보고 차장님입니까?”

“아, 예 사장님.”

도형준 부사장이 나를 그 사람에게 소개했다.

“장보고 차장, 이분은 부산신항의 홍기표 사장님이시네.”

“안녕하십니까. 해신해운 법무팀의 장보고 차장입니다.”

“홍기표입니다. 안 그래도 이 사업을 만들어 내신 분이라고 들어서 한번 얼굴을 뵙고 싶었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을 뿐입니다.”

“하하하.”

홍기표 사장이 한 차례 웃음을 터트린 후 말을 이어갔다.

“그런 장보고 차장님.”

“네, 사장님.”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네?”

“AP사를 사업에 참여시킬 생각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부산신항에 유류 중계기지를 건설하는 건 우리 숙원 사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정유 회사나 유류 중계 회사를 참여시키지 못해 그동안 사업을 주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AP사와 같은 메이저 정유 회사를 투자자로 참여시키다니 정말 기대 이상의 성과입니다. 제가 듣기로 AP사가 참여한 이유가 전적으로 장보고 차장님 덕분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홍기표 사장의 계속되는 칭찬에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홍기표 사장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연회장으로 시선을 끄는 한 무리의 사내들이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중동 지역의 남성들이 착용하는 전통 복장인 흰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AP사의 직원들이었다.

“어!”

저 사람은?

“하하하. 미스터 장!”

나민 아세르!

AP사의 사장 나민 아세르가 왜 한국에?

반가운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자 나민 아세르가 나의 손을 움켜잡았다.

내가 물었다.

“사장님, 여기까지 무슨 일입니까?”

“두바이 왕세자의 아시아 순방 일정이 곧 있습니다. 저는 이 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겸사겸사 먼저 어제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네? 어제 한국에 오셨다고요? 그럼 저한테 미리 연락을 주셨어야죠. 이거 너무 섭섭합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어제 밤늦게 들어와서 연락을 못 했습니다.”

그때 도형준 부사장과 홍기표 사장이 다가왔다.

“부사장님, 이분은 AP사의 나민 아세르 사장님이십니다.”

“음? 뭐?”

“AP사의 사장님?”

“네, 오늘 행사 때문에 직접 오셨답니다.”

도형준 부사장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늘 AP사를 대표해서 참석하기로 한 사람은 한국 지사장이었기 때문에 나민 아세르가 직접 이곳을 찾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정재훈 사원이 다가왔다.

“차, 차장님.”

“음?”

“큰일 났습니다.”

“큰일?”

“네, 본사로부터 이런 연락이 왔습니다.”

정재훈 사원이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음? 뭐야 이건?”

정재훈 사원이 내민 프린트물은 사내 공고를 출력한 서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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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해운 비정기 인사 발령

-임원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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