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호 해신해운 회장이 XX일 지병으로 별세하였다는 소식이 업계에 전해졌다.
해신해운 경영권의 향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해신해운은 지분 구조상 해신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해신항공그룹 계열사로 편입돼있지만 실질적인 회사 경영은 해신해운 회장의 독자 경영 체제로 운영돼 왔다.
해신해운의 지분 구조를 보면 권영호 회장이 7.87%, 해신해운 자사주는 8.7%, 그 외에 특수 관계인이 16.12%이며, 해신항공이 11%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외국계가 23% 상당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업계 일각에서는 해신해운의 경영권 문제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것은 외국계 자본의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특히 지난달 블루오션라는 두바이의 신생 해운업자가 해외 투자자들에게서 해신해운 지분 624만 주를 사들여 지분율을 12%까지 높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적대적 인수 합병(M&A)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권영호 회장이 마땅한 후계자 없이 갑작스럽게 별세한 만큼 그룹사의 주 계약 회사인 해신항공이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지분 구조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중략 )
유혜영 기자.
+
“음, 권영호 회장의 지분이 7.87%라······.”
손에 쥐고 있던 신문을 커피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기사에 표시된 특수 관계인 지분은 16.12%.
권영호 회장의 자녀들의 지분이다.
세부적으로는 권동호 부사장이 7%로, 권동민 부사장이 6%, 권세아의 지분이 3.12%.
권영호 회장은 배우자와 오래전에 사별했으니 그의 해신해운 지분은 자녀들에게 삼등분된다.
물론 다른 자산들도 있을 테니 상속인들 간에 상속 재산 분할 협의가 이루어지면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방법의 상속도 가능하다.
‘결국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권동호 부사장의 지분이 약 9.57% 정도라는 말이군.’
하지만 현재 권동호 부사장과 권동민 부사장의 경영권 다툼이 치열한 상황이니 권영호 회장 지분의 상속을 포기하는 분할 협의는 불가능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딸랑!
카페 창가 쪽 문이 열리더니 한 당찬 표정의 젊은 여성이 들어섰다.
큰 가방을 옆으로 메고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들어오는 사람은 신라일보의 유혜영 기자였다.
“차장님!”
유혜영 기자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일찍 오셨네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산뜻한 표정을 지으며 유혜영 기자가 말했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전에 왔습니다.”
“다행이에요. 늦어서 죄송해요.”
유혜영 기자가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기사는 잘 봤습니다.”
“아 보셨어요? 안 그래도 사실 해신해운 내부 사정에 대해서 좀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요.”
“저한테요?”
“네, 제가 차장님 아니면 어디 가서 물어보겠어요.”
“허허허.”
나는 유혜영 기자가 눈을 반짝이자 부담스럽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유혜영 기자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렸다.
그녀의 눈의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기자다운 날카로운 눈빛.
유혜영 기자가 물었다.
“장보고 차장님, 사실 홍보팀에도 물어보긴 했는데요.”
“네.”
“권영호 회장님 사후에 해신해운의 후계 구도가 너무 불안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는 사람들이 업계에 있어서요.”
“맞습니다. 타당한 지적이네요.”
“네?”
“해신해운의 내부 사정이 불안하게 맞습니다.”
“음······. 그럼 소문대로 아직도 누가 차기 회장 자리에 오르는지 교통정리가 덜 된 건가요?”
“제가 듣기로도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타다닥, 유혜영 기자가 한참 하던 타이핑을 잠시 멈추고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금융권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인데요.”
“네.”
“외국계 지분이 너무 높다는 의견이 있더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해신해운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 23% 상당을 외국계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유혜영 기자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테이블 앞으로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차장님, 아직 이건 비밀인데요.”
“네.”
“사실 제가 주위 인맥을 총동원해서 리서치를 좀 했거든요.”
“네.”
“두바이에 있는 블루오션 말인데요. 등록된 대표이사는 두바이 국적인데요.”
“음?”
“그 배후가 사실은 한국 사람이라는 소문이 두바이에 퍼져 있다고 하던데요.”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멀뚱멀뚱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블루오션 (1)
-서울 여의도 모처 카페
유혜영 기자가 오묘한 표정을 짓는다. 요리조리 나의 표정을 살피더니 재밌는 일이라도 생긴 걸까? 미소를 살며시 지어 보였다.
“장보고 차장님, 표정이 왜 그래요?”
“네? 뭐가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제법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제법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던 것도 사실이다.
“호호호. 진짜 모르셨던 모양이네요.”
“네?”
“블루오션 말이에요. 뭐 하는 곳인지 아직 전혀 파악이 안되셨나 보네요.”
“음, 그건··· 그렇습니다.”
“호호호, 이거 의외네요. 장보고 차장님이 모르는 것도 있네?”
유혜영 기자는 나의 대답에 기분이 좋아진 듯 즐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차장님이랑 대화하다 보면 정보가 워낙 많으셔서 그동안 기자인 제 자존심이 많이 상했었답니다.”
“네? 그래요?”
기자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내가?
물론 전생의 기억에서 비롯된 정보도 많으니 유혜영 기자보다는 손쉽게 정보를 입수했던 것도 사실이다.
유혜영 기자가 말을 이어갔다.
“최근에 해신해운 지분을 추가로 매수해서 12%까지 끌어올린 두바이의 정체불명의 해운 회사가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정말 없더라고요.”
“음······.”
유혜영 기자는 기밀 정보라도 알려주는 듯 목소리를 낮춘다.
“아, 사실 해운 회사라고 하기도 좀 그러네요.”
“왜요?”
“뭐, 알아본 바로는 두바이에 일단 해운업을 한다고 신고가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에스앤피(S&P)를 하는 회사가 아닌가 싶어요.”
“에스앤피(S&P)라······.”
S&P. 에스앤피(S&P)는 Sale & Purchase의 약자.
선박 매매를 뜻하는 말이다.
화물 운송과 같은 전통적인 의미의 해운업은 아니지만 선박 매매도 해운 시장에서 중요한 영역 중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해운 선진국의 경우 화물 운송보다도 다른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사업 영역이 선박 매매업이다.
유혜영 기자가 말했다.
“장보고 차장님이 블루오션에 대해서 아시는 내용은 뭐가 있나요?”
“음, 뭐 별다른 정보가 없습니다. 두바이 회사 블루오션이 지난 몇 년간 차곡차곡 지분을 매수해 왔더군요. 그런데 특히 최근에 노르웨이계 투자자가 가지고 있던 지분을 전량 매수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피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정보들이네요.”
유혜영 기자에게 물었다.
“유 기자님, 그런데 블루오션은 두바이 회사 아닙니까?”
“맞아요.”
“대표이사도 두바이 사람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그런데 지분 구조가 좀 복잡하더군요.”
“지분?”
“네, 두바이의 투자 회사가 블루오션의 지분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더군요.”
“그럼 블루오션의 배후가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바지라는 말이죠.”
“바지요?”
“네, 바지사장이요. 대표이사가 바지사장 같아요. 두바이 해운 시장에서는 블루오션의 실제 사주가 한국 사람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하더군요.”
“음······!”
“그래서 일각에서는 블루오션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더군요.”
“꿍꿍이?”
“네, 그게 아니라면 정체를 숨기고 바지사장을 내세울 이유가 뭐가 있냐는 거죠!”
“음.”
“해신해운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적대적 M&A를 시도하려는 세력이 아니냐! 뭐 그런 거죠.”
유혜영 기자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의 추리력이 어때요? 그런 표정이랄까?
그녀는 추리력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당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떻게 생각해요?”
“음, 일리가 있군요.”
“······그게 끝?”
“네?”
“음, 일리가 있군.”
유혜영 기자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의 목소리를 흉내낸다.
“그게 끝이냐고요.”
“네. 허허허.”
유혜영 기자는 당돌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상하네.”
“뭐가요.”
“반응이 시큰둥하네. 이런 반응을 기대하고 한 이야기는 아닌데······.”
“······.”
“뭐, 재미없네요······.”
“허허허, 죄송합니다.”
유혜영 기자는 나에게서 별다른 정보를 빼낼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주섬주섬 노트북을 챙겨 넣기 시작했다.
“뭐, 오늘 만나주셔서 감사했어요. 소득은 없었지만 호호호.”
“이거 죄송합니다. 좋은 정보가 있으면 저도 연락드리겠습니다.”
유혜영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가 우두커니 멈추어 섰다.
“아!”
갑자기 할 말이 생각이 난 듯 유혜영 기자가 몸을 빙글 돌렸다.
“장보고 차장님, 다음에 아버지가 식사 한번 같이하시자고 하셨어요.”
“아버지요?”
“네, 얼마 전에 아버지랑 만났다고 하시던데요.”
“······?”
이게 무슨 소리지?
“집으로 한번 초대하라고 하시던데요.”
“저를요?”
“네, 아버지랑 많이 친해지셨나 봐요.”
“제가요? 유 기자님 아버지하고요?”
“네.”
“만난 적이 없는데······?”
“음? 몰랐어요?”
“······?”
“태성중공업 유진태 사장님. 우리 아빤데.”
“······!”
뭐?
태성중공업의 유진태 사장이 유혜영 기자의 아버지라고?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망치로 뒤통수라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유혜영 기자가 해운이나 조선업 관련 특종을 많이 내는 이유가 있었구나!’
그동안은 정보력이 단순히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나도 그녀에게 제공한 정보가 많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해운, 조선업계의 금수저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태성중공업의 CEO를 아버지로 두고 있으니 얼마나 업계에 인맥이 많겠는가?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정보를 주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네.’
당분간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유 기자님!”
“네?”
“바쁘지 않으시면 잠깐 이야기 좀 더 하다 가시죠?”
“지금요?”
“네.”
“음, 저 바쁜데······.”
유혜영 기자가 눈을 흘기며 바라본다.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시간이 아깝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래요?”
유혜영 기자가 다시 터벅터벅 들어와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기 시작했다.
* * *
-해신해운 8층 재무그룹본부 회의실
며칠 뒤.
해신해운 본사에서 재무그룹이 있는 8층.
왼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큰 회의실에 재무그룹의 핵심 멤버들이 모여 있다.
엄숙한 분위기. 재무그룹장 권동민 부사장이 주재하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무거운 표정의 권동민 부사장이 미간을 찌푸린 채로 말했다.
“좀 알아봤나?”
“네, 부사장님.”
자금팀장이 회의 자료를 바라보며 말했다.
“노르웨이계 버란트레이딩이 매각한 해신해운의 주식을 두바이 해운 회사 블루오션이 전량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블루오션이 장 마감 이후 시간 외 대량 매매를 통해 버란트레이딩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624만여 주(8.7%)를 1천545억 원에 사들였다고 합니다.”
“음, 그건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닌가. 내가 궁금한 것은 그놈들이 우리 회사 주식을 왜 매입했냐는 거야.”
“네, 그런데 블루오션의 주식을 대부분을 들고 있는 곳이 두바이 소재의 투자 회사라고 합니다.”
“투자 회사?”
“네, 그래서 두바이 증권가 쪽에서는 블루오션의 최근 공격적인 행보를 고려할 때 적대적 인수 합병(M&A)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쾅! 권동민 부사장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쳤다.
“뭐? 적대적 M&A? 이게 무슨 개소리야!”
“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아직까지 모르고 있을 수가 있나!”
권동민 부사장의 질책에 자금팀장이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했다.
“블루오션이 해신해운 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5% 미만 보유자로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주주라고 합니다. 이번 추가 매입을 통해 12%대 지분을 확보하게 된 것이라 파악이 늦었습니다.”
“그럼 블루오션을 소유한 두바이 투자 회사는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인가?”
“그게 아직 시장에 정확하게 알려진 정보가 없습니다. 소문에는 두바이 왕족이라고도 하고, 외국인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건 해외 투자와 자원 등으로 선물 거래를 주로 하는 회사로 최근 몇 년간 굉장한 성과를 보였다고 합니다.”
“으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