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권영호 회장을 바라보았다.
권영호 회장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향했다.
“장보고 차장.”
“네, 회장님.”
“혹시, 자네는 셋째를 부추겨서 앞으로 벌어질 해신해운의 경영권 싸움에 참여할 생각인가?”
“······!”
권영호 회장의 이번 질문에는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 권영호 회장이 질문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물론 앞으로 권영호 회장 사후에 두 아들 사이에 벌어지는 진흙탕 싸움을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걸 대비해서 나도 미리 많은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권세아 대리를 부추기거나 이용해서 경영권 다툼을 벌일 계획은 물론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앞세우는 그런 치졸한 짓 따위를 할 생각은 없으니까.’
내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나의 말에 권영호 회장이 눈을 흘기며 대답한다.
“그래? 그건 좀 음 아쉽군.”
“네?”
“나는 자네가 그 정도 야망은 있는 사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내 예상이 틀렸던 건가?”
“······.”
권영호 회장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바닥으로 살짝 떨어뜨렸다.
운명의 순간을 앞둔 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하자 나는 나의 속마음을 들킬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권영호 회장이 도형준 부사장과 나를 한 번씩 바라보더니 물었다.
“그럼, 도형준 부사장, 장보고 차장.”
“네.”
“네, 회장님.”
“자네들이 보기에도 내가 떠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
“······.”
“······.”
우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권영호 회장은 우리의 대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닌 듯 혼자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갔다.
“허허허. 지금 이 순간이 다가오니 직감적으로 알 것 같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
“그런데, 요즘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네. 장보고 차장 자네 때문이야.”
“네?”
“앞으로 유례없는 불황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내 사후에도 나의 자식 같은 해신해운이 문제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나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는 말이야.”
“회장님, 제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
권영호 회장은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 크게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도형준 부사장, 장보고 차장··· 그래, 자네들이라도 있어 안심이 된다네. 하지만 결국 회사는 리더십이 중요하지.”
“······.”
“그런데, 소문을 듣자 하니 아직도 동민이나 동호나 이놈들은 서로 견제하기 바쁘다지?”
“······.”
우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이기도 했고, 권영호 회장도 내부 정보를 들어서 다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
권영호 회장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래 장보고 차장, 셋째를 부추겨서 경영권 다툼을 할 생각이 없다고 하니 말이야. 자네 생각에는 동민이나 동호 두 사람 중 누가 더 해신해운의 회장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이 방에 들어온 이후로 미동조차 하지 않던 도형준 부사장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도 나의 대답이 굉장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대답했다.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회장님, 혹시 삼국지 읽어 보셨습니까?”
“음? 당연하지. 우리 세대에서 삼국지를 안 읽어 본 사람은 없지.”
“허허허. 그럼 다행이네요.”
“무슨 소린가?”
“유비가 후계를 고민하던 장면이 갑자기 떠올라서요. 그때 가장 신뢰하는 부하인 제갈량에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음?”
권영호와 도형준 부사장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듯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을 떠올리기 위해 애쓰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후계자
-권영호 회장의 침실
“삼국지 유비라······.”
권영호 회장이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린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네, 회장님.”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건가?”
“삼국지연의 소설 말인데요. 유비가 주인공 아닙니까? 그런데 유비가 죽는 순간에 후계자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후계자?”
“네, 당시 유비가 촉나라를 세우긴 했지만 위나라나 오나라에 비해 세력이 약했던 것으로 평가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끊임없이 전쟁이 이어지는 전란이 계속되는 상황이니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우리 해신해운처럼 말이죠.”
“어려운 상황이라···.”
권영호 회장은 나의 말에 호기심이 생긴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그때 유비가 가장 신임하는 부하인 제갈량을 불러 후예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아들인 유선을 부탁한다고. 하지만 만약 역량이 부족하다면 차라리 제갈량이 대신 촉나라를 이끌어 달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으으음.”
“뭐 아마도 유비가 제갈량에게 대신 황제에 오르라고 했다는 것은 허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유비가 자신이 한평생 힘들게 세운 나라가 후대에 허무하게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런데 제갈량은 충성심이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유비의 아들은 좋은 군주가 될 자질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제갈량은 그를 황제로 옹립하고 자신은 신하로서 최선을 다하죠.”
권영호 회장도 익히 잘 아는 이야기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유비가 세운 촉나라는 2대도 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멸망하지 않았습니까?”
“음······.”
잠시 고민하던 권영호 회장이 말했다.
“그럼 자네 말은 역량 있는 부하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맡겨야 한다는 말인가?”
“음, 뭐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그럼 무슨 뜻인가?”
“능력이 없는 리더가 해신해운의 경영권을 잡게 되면 해신해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으으음······.”
해신해운이 망할지도 모른다.
아니 실제로 전생에 해신해운은 삼국지의 촉나라처럼 망하지 않았던가?
재벌가의 자제라고 해서 경영 능력이 뛰어나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우리나라 재벌가의 자제 중에는 뛰어난 경영 능력을 발휘해서 물려받은 기업을 더 크게 성장시킨 재벌 2세들도 있다.
하지만 부자가 3대를 이어가지 못한다는 말처럼 역량 없는 후손들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회사도 얼마나 많았던가.
아니 멀리 찾을 것도 없다.
전생에 해신해운이 딱 그런 꼴이었으니까.
소유와 경영권을 분리하는 방법도 있다. 유럽의 가족 기업들은 소유와 경영권을 분리해 경영은 철저하게 능력 있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도 기업들마다 전문 경영인이 있지만 오너들의 입김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파리 목숨이 다름없는 자리였다.
권영호 회장이 말을 이어갔다.
“으음, 자네 뜻은 잘 알았네. 그럼 나는 도형준 부사장과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를 잠시 비워주겠나?”
“네, 알겠습니다.”
나는 권영호 회장의 말에 조용히 일어나 방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따라 나온 집사는 침실 옆 응접실로 나를 안내했다.
* * *
-권영호 회장의 침실
장보고 차장이 방을 나섰다.
방에는 권영호 회장과 도형준 부사장 두 사람이 있다.
권영호 회장은 자신을 오랫동안 보필한 도형준 부사장만 남아있자 긴장이 풀린 듯 침대 위로 몸을 눕혔다.
권영호 회장은 장보고가 자리를 비우자 잠시 머리를 베개에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기업의 후계 구도를 정리해야 한다는 말은 많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을 애써 무시했다. 그 이유는 결정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소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던 것도 아니다. 회사를 경영할 때는 과감하고 결단력 있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회사를 물려주는 일에서는 도무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식들 문제에 있어서는 그도 평소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컨테이너사업본부장을 맡은 첫째도, 재무그룹장을 맡고 있는 둘째도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추진력은 강하지만 내실보다는 외형에 치중하는 타입, 실속이 없고,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었다.
둘째는 반대로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지만 사고가 편협하고, 창의력이 부족했다. 부하로서는 유능할지 몰라도 큰 회사의 리더에 어울리는 자질은 아니었다.
‘나에게 장보고 같은 아들이 있었더라면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을······.’
아니 전해 듣기로는 막내딸인 권세아가 장보고를 만나고 있다고 한다.
권영호 회장은 잠시 권세아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상상을 해본다.
‘아니야······, 그래도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지.’
첫째와 둘째가 납득하지도 않을 일이고, 아직 세상에 알려진 자신의 자식도 아니다.
평생을 숨겨온 일인데 이제 와서 언론의 조명을 받게 할 수도 없었다.
‘어찌하면 좋을까······.’
침묵한 채로 고민하는 권영호 회장에게 도형준 부사장이 말했다.
“회장님.”
“그래.”
“장보고 차장의 말도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음?”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 회사의 경영을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갈량에게 나라를 맡기라는 말이냐?”
“음,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도록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유럽의 가족 기업들 중에는 오너들이 회사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그것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실정과는 좀 맞지가 않아.”
“왜 그렇습니까?”
“우리나라 재계는 정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 그리고 다른 재벌들로 형성된 이너 서클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오너가 회사를 경영해야 해. 그런 메리트도 무시할 수 없다네.”
“음···.”
도형준 전무도 고개를 끄덕인다.
권영호 회장이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섣불리 결정을 할 수 없으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 두는 편이 좋겠군.”
“안전장치요?”
“그래, 해신해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해성기업을 너에게 맡기겠다.”
“네?”
도형준 부사장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해성기업은 권영호 회장이 100% 지분을 들고 있는 회사로 규모가 작은 회사이지만 해성기업이 중요한 이유는 해신해운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법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주요 주주들의 지분보다는 적었지만 경영권 분쟁이 심화될 경우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는 회사였다. 도형준 부사장이 향후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는 주주 총회가 열릴 경우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다는 뜻이었다.
“회장님, 해성기업을 저에게······?”
권영호 회장은 해성기업의 지분을 자식들이 아닌 도형준 부사장에게 넘겨주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안심이 될 것 같아.”
“음······, 알겠습니다.”
“너도 한평생을 해신해운을 위해 바치지 않았더냐. 퇴직금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
권영호 회장의 말에 도형준 부사장은 감격한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권영호 회장이 말을 이어갔다.
“해성기업을 가지고 있으면 동민이나 동호도 함부로 하지 못하겠지. 자네가 잘 감시해주게.”
“알겠습니다.”
도형준 부사장이 물었다.
“그런데 회장님, 경영권이 넘어간 이후에는 어떻게 할까요? 해성기업을 향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허허허. 자네에게 퇴직금으로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내 사후에는 자네 것이니 자네 마음대로 해도 좋네.”
“아······!”
권영호 회장의 말에 도형준 부사장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권영호 회장의 침실 옆 응접실.
“차장님.”
“네?”
권영호 회장의 집사가 다가왔다.
“회장님께서 들어오시라고 하십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집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두 분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네?’
방 안으로 들어서자 권영호 회장은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민이 어느 정도 해소된 표정이랄까?
‘저 아저씬 왜 저래?’
도형준 부사장이 오히려 살짝 상기된 표정이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긴 것이 분명해 보였다.
권영호 회장이 방문으로 들어서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보고 차장, 이거 미안하네. 오래 기다렸지?”
“아닙니다. 회장님. 이야기는 잘 나누셨습니까?”
“그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의 내용으로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전생에 권영호 회장의 사후에 벌어진 그런 진흙탕 같은 경영권 싸움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 띠링! >
+
“퀘스트 달성을 축합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권영호 회장의 의지가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보상 :
- 명성이 급격하게 올라갑니다.
- 사내 평판이 상승합니다.
- 해신해운의 후계 구도에 변동이 생깁니다.
- 권영호 회장의 [호감]을 획득했습니다.
- 사랑의 결실을 맺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 * *
-해신해운 본사 10층 법무팀
몇 개월 후.
“아직 연락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