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제가 빨리 위에 올라가서 상의를 한 후에 빠르게 다시 내려오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박도훈 대리가 빠르게 회의실 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멈칫. 그는 문밖으로 나가려다 갑자기 빙글 돌아섰다.
박도훈 대리는 내가 앉아 있는 방향을 향해 공손한 자세로 꾸뻑 묵례를 한 번 하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
얼이 빠진 표정이었지만,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여기 한 사람이 더 있다.
“한재명 과장 왜 그래요? 정신이 없어 보이네?”
한재명 과장은 손을 들어 자기 뺨을 툭툭 때렸다.
“아······. 저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파악이 안 되네요.”
“허허허, 그렇습니까??”
“저는 오늘 선박 건조 계약 해지 협상을 하려고 온 건 줄 알았는데요. LNG 선박 150척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음, 사실 탱커팀과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하나 있습니다.”
“탱커팀이요?”
“네, 혹시 카타르에 있는 도하에너지(Doha Energy)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한재명 과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잘은 모르지만 도하에너지라면 카타르에서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회사가 아닙니까? 우리 회사 고객사 중에 한 곳이고요.”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대부분을 이 회사에서 수입한다고 보셔도 과장이 아닙니다.”
“그런데 도하에너지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네, 도하에너지에서 준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총 150척의 LNG선을 발주할 계획입니다.”
“헉!”
한재명 과장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런 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사실도 저는 몰랐네요.”
“아닙니다. 아직 정식적으로 공표된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모르실 수밖에 없지요.”
“음? 그럼 파트장님은 어떻게?”
“음, 뭐 아는 사람이 좀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요?”
한재명 과장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앞으로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이니, 이번 기회에 나의 인맥을 좀 자랑해서 나에 대한 존경심(?)을 좀 키울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별건 아니고요. 도하에너지 사장이랑 좀 아는 사이입니다.”
“네? 도하에너지 사장이라고요?”
도하에너지의 사장은 다름 아닌 압둘 무바라크.
나는 세계 최대의 에너지 수출 기업인 그 대단한 도하에너지 사장이 과거에 우리 회사 선박의 밀항자로 몰래 잠입했던 사람이라는 그에 대한 흑역사는 굳이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 한재명 과장을 바라보며 인맥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허허허, 과장님 뭐, 그렇게 놀라실 건 없습니다. 도하에너지 사장이 뭐 별건가요? AP사 사장도 제 친군데요. 겸사겸사 그렇게 다 같이 아는 사이입니다.”
“네에? AP사 사장이 친구라고요?”
한재명 과장은 깜짝 놀란 듯 큰 소리를 내질렀다. 거의 울부짖는 소리에 가깝게 느껴졌다.
AP사는 세계 메이저 오일 회사가 아닌가?
그리고 도하에너지는 카타르에서 가장 큰 국영 기업이자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업체다.
세계적인 글로벌 회사의 사장과 친구라니? 한재명 과장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짐짓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못 믿으시는 건가요?”
“아······. 아닙니다.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사장이 친구라고 하니까 무슨 동네 구멍가게 사장들 이야기하는 기분이네요. 하하하.”
나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뭐, 그런가요? 사장이라고 뭐 다른가요. 다 똑같은 사람이지.”
“······.”
한재명 과장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과는 생각의 사이즈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놀라시면 곤란한데요.”
“네? 그건 또 무슨 뜻인지···?”
“박도훈 대리가 뛰어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누가 내려오겠습니까?”
“······?”
“LNG 선박 150척을 수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무리 태성중공업이라고 하더라도 사장이 직접 뛰어 내려오지 않겠습니까?”
“······!”
그때.
똑똑똑!
회의실 문을 누군가 노크했다.
박도훈 대리가 상기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차장님, 오래 기다리셨죠? 저희 팀 팀장님을 모셔왔습니다.”
“아, 영업팀 팀장님이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나와 한재명 과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한재명 과장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사장이 아니네? 그럼 그렇지, 그런 표정이다.
태성중공업 영업팀장이 나에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장보고 파트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명함을 주고받았다.
“장보고 파트장님, 이거 결례했습니다. 제가 오늘 미팅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급한 미팅이 중간에 생겨 좀 늦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괜찮습니다. 급한 일이 우선이지요.”
영업팀장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네? 누가 더 오실 분이 있으신가요?”
“네, 보고를 드렸더니 사장님께서 직접 내려오시겠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한재명 과장을 바라보았다.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이미 나를 바라보는 한재명 과장의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한 상태였다.
똑똑똑!
회의실 문에서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비서로 보이는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장님 도착하셨습니다.”
태성중공업의 사장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키는 170cm 정도, 체격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눈빛이 매서운 사내였다.
태성중공업의 사장은 회의실을 한번 쓱 둘러보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걸어왔다.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며 태성중공업 사장이 자신을 소개했다.
“유진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해신해운 법무팀의 장보고 차장입니다.”
“해신해운 법무팀의 한재명 과장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자 다들 자리에 앉으시죠.”
태성중공업 사장 유진태가 손을 들어 자리를 권했다.
나의 정면에는 유진태 사장이, 그의 왼쪽에는 영업팀장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박도훈 대리가 착석했다.
유진태 사장이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하하하. 해신해운의 미래가 참 밝습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차장에 파트장까지 승진하셨군요.”
유진태 사장이 내가 건넨 명함을 눈여겨보더니 말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사장님, 사실 제가 해기사 출신이라 남들보다 운이 좋아 승진이 좀 빨랐습니다.”
해기사 출신의 육상 직원들과 비교해도 승진은 월등히 빨랐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했다.
유진태 사장이 잠시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어갔다.
“알고 있습니다.”
“네?”
“장보고 일항사님로 승선 생활하시다가 해기사 생활을 그만두시고 본사 근무를 하신다고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음?”
‘태성중공업의 사장이 나를 알고 있다고?’
유진태 사장의 말에 놀란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이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말에 깜짝 놀란 듯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유진태 사장이야 업계의 거물이니까.’
나도 그를 알고 있다.
개인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업계의 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신문과 뉴스를 통해서 그의 이름 정도는 숙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나의 기억에 따르면 유진태 사장은 전생에는 태성중공업의 사장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는 뜻.
그런데 별 인연이 없는 이 사람이 나를 알고 있었다고? 저렇게나 세세한 정보까지?
어찌 된 연유인지 나도 궁금할 지경.
“사장님께서 저를 아신다고요?
태성중공업 (3)
-태성중공업 회의실
태성중공업의 사장 유진태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표정이 나를 점점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유진태 사장이 나의 표정을 잠시 살피더니 말을 이어갔다.
“하하하. 이거 제가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을 너무 궁금하게 만들었군요.”
“허허허, 사장님이 저 같은 말단 직원을 아신다고 하시니 놀라서 그렇습니다.”
“우리 태성중공업이 큰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까?”
음?
‘태성중공업 사장이 나를 알 만한 사건이라면···.’
한 가지 사건밖에 없다.
유조선 “H 스피드”호 기름 유출 사건.
몇 년 전 서해안에 대규모 기름 유출을 발생시킬 뻔했던 사건. 하지만, 전생과 달리 아주 소량의 기름만 유출된다.
당시 유조선 “H 스피드”호와 충돌했던 것은 예인선단에 의해 운항 중이던 대형 해상 크레인이다. 그리고 그 예인선단과 예인선에 실린 해상 크레인의 소유자가 바로 태성중공업이었다.
물론 나도 태성중공업을 찾아오기 전부터 이 빚(?)을 단단히 받아낼 생각이었다.
당시 나의 활약으로 초기 방제에 성공해 기름 유출을 막아냈다. 만약 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태성중공업은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한 손해 배상은 물론 국민적인 지탄을 받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
전생에는 이 사고로 인해 태성중공업의 임직원들이 모두 봉사 활동에 투입되고, 임직원들이 온갖 고충을 겪지 않았던가?
‘뭐,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니까!’
물론, 내가 이 사고를 막은 이유는 태성중공업을 도우려고 했던 것보다는 인근 주민들에 대한 피해와 해양 오염을 막으려는 목적이 컸다.
하지만 태성중공업이 나의 선의(?)에서 비롯된 행위로 인해 큰 수혜를 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H 스피드호 사건이 있었으니 인연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사라지지 않는다.
태성중공업의 사장 유진태가 나의 이름과 경력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을 이유는 없질 않은가? 나는 그 내밀한 이유가 궁금했다.
유진태 사장이 말을 이어갔다. 그는 내 표정을 면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하하하. 아마 장보고 차장님은 이미 짐작을 하신 것 같군요.”
“유조선 H 스피드호 기름 유출 사건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하하. 맞습니다. 그 사건입니다. 우리 태성중공업이 큰 도움을 받았지요.”
유진태 사장이 큰 웃음을 짓더니 말을 이어갔다.
“당시, 현장의 직원들로부터 보고를 받았습니다. 해신해운의 항해사가 우연히 현장에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고요.”
“······!”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한재명 과장은 어린 상사에 대한 불타는 충성심을 이제는 감추지 않았다.
으하하하, 언제나 이런 시선을 받는 것은 짜릿하다.
“사실은 제가 그 사고 당시 해상 크레인을 관리하던 부서의 담당 총괄 임원이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네, 당시 수소문을 뒤늦게 했더니 그때 도움을 준 항해사의 이름이 장보고라고 하더군요. 이름도 특이해서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사고 이후에 아는 사람을 통해 해신해운에 연락을 좀 했었는데 승선을 위해 외국으로 나간 이후라고 하더군요. 그 이후로 다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는 게 깜박했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인데요.”
“도저히 우연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회사의 입장에서는 천운이라고 할 만한 행운이었습니다.”
‘그건 맞지.’
나는 부정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않았다.
“당시 알아보니 해경은 물론 인근의 방제업체들도 전부 피항을 간 상황이었다고 하더군요. 인근에 방제 작업이 가능한 선박이 없어 하마터면 기름이 대량으로 유출될 뻔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으흐흐흐.”
유진태 사장의 계속되는 칭찬에 얼굴을 붉혔다. 참으려고 했지만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질 않았던가?
하지만 유진태 사장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바로 유조선 단일 선체 금지법.
만약 이 법이 미리 통과되지 않았다면 아무리 내가 빨리 대처를 했어도 기름이 상당히 유출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그리고, 전생에 발생한 사고를 생각하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는 것도.
감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진태 사장에게 말했다.
“사장님, 천운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딱 맞습니다.”
“음?”
“그 사고가 있기 직전에 유조선 단일 선체 금지법원이 통과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에 입항하는 유조선들이 이중 선체로 구조를 변경했기 때문에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당시에 그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하늘이 도왔다고밖에는···.”
유진태 사장은 이제는 울먹일 지경.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눈빛과는 달리 마음이 약한 사람인가?
“그때 장보고 차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대형 사고로 인해 회사에서 문책을 당했겠지요. 이렇게 사장 자리까지 오를 일도 없었을 겁니다.”
“허허허. 일이 그렇게 되나요?”
유진태 사장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부끄럽지만 오히려 사고 대응을 잘했다고 안전 관리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요. 그 덕분에 그룹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사장까지 되었습니다. 하하하.”
유진태 사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그의 성격이 나의 마음에도 쏙 들었다.
오늘 태성중공업을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유진태 사장이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장보고 차장님 오늘 저희 회사를 방문하신 이유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사장님.”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 띠링! >
+ 스킬[협상 Lv.20]을 사용합니다. +
- 설득력이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