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81/200)

유혜영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제가 취재를 좀 해보니, 유달리 특정 해운 회사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오재민 의원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간다.

그간 나의 도움을 받아왔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오재민 장관은 유혜영 기자의 질문이 나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한 질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터.

하지만 오재민 장관은 청렴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

애초에 어떤 비리라도 있었다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입후보했을 당시 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재민 의원도 그동안 정치판에서 구르다 보니 이런저런 인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곳이 정치판이질 않은가.

‘물론 개중에는 나 때문에 생긴 악연도 있었지만······.’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재민 장관을 대신해 내가 대답했다.

“기자님, 취재 중에 나온 이야기라고요?”

“네.”

“업계 관계자가 누굽니까? 그런 말을 한 사람이?”

“호호호. 장보고 차장님, 취재원 보호는 기자가 지켜야 되는 최우선 원칙인데 모르세요?”

유혜영 기자가 눈웃음을 치며 눈을 흘겼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하실 정도면 이미 취재를 하셨을 것 같은데 말이죠.”

유혜영 기자는 살며시 미소를 지을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해신해운, 정확히 말하면 오재민 장관이 관련이 있는 사람은 장보고 차장이다. 하지만 오재민 장관이 그동안 딱히 해신해운에게 혜택을 줬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오재민 장관의 국회의원 시절 대표 업적인 ‘유조선 단일 선체 금지법’은 애초에 해운업계와 정유업계 모두에게 막대한 비용을 초래한 법률이었다.

나는 오재민 의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사실 오재민 장관님을 싫어하는 회사들이 많지 않습니까?”

“으흐흠!”

오재민 의원이 괜히 헛기침을 한다.

“정유업계는 뭐, 거의 대놓고 오재민 장관님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유혜영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해운업계도 장관님을 싫어하는 건 마찬가집니다.”

“네?”

“장관님의 대표 법안인 ‘유조선 단일 선체 금지법’ 때문에 정유 회사뿐만 아니라 해운 회사들도 불만이 많았잖아요.”

유혜경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제가 듣기로는 장관님이 또 해운 회사들을 옭아맬 다양한 규제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네?”

유혜영 기자가 고개를 돌려 오재민 장관을 바라보았다.

오재민 의원이 대답했다.

“유 기자님, 해양 사고의 특징이 뭔지 압니까?”

“글쎄요.”

“해양 사고는 특성상 사고가 발생하면 대규모 인명 피해나 환경 오염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사고 수습이나 구조도 매우 어렵지요.”

“음, 그렇겠네요. 아무래도 바다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을 수습한다거나 구조를 하기가 어려우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대형 재난 사건을 끊임없이 겪어 왔다.

큰 유조선 사고가 지역의 생태계를 파괴시키기도 하고 대규모 대형 재난 사건은 정치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기도 했다.

유혜영 기자가 물었다.

“그럼. 대형 해양 안전 사고를 막기 위해 어떤 마스터플랜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맞습니다. 앞으로 제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는 업계에 당근과 채찍 두 개를 골고루 제공할 생각입니다. 적극 지원하되, 엄격하게 관리, 감독할 생각입니다.”

“어떤 구체적인 계획들이 있나요?”

오재민 의원은 그동안 준비한 안전과 관련된 정책들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유혜영 기자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기업 친화적인 정책들을 펼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오재민 의원이 준비하고 있는 정책들 중에는 많은 안전에 관련된 정책들이 있었다.

오재민 의원의 말이 이어졌다.

“특히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연안 운송입니다. 비교적 규제가 느슨한 연안 여객선과 화물선에 관한 규제를 국제 규범 수준으로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말을 마친 오재민 의원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디어를 준 사람이 장보고 차장님입니다. 업계의 전문가 입장에서 여러 의견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요. 뭐, 이런 것도 유착 관계라면 유착 관계인가요? 허허허.”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을 강조하는 규제를 신설하면 기업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형 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해난 사고의 특성을 고려하면 안전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국제 항해가 연안 항해보다 위험하다고 말한다. 바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고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나라 전체에 충격을 주는 대형 재난 사건은 대부분 연안에서 발생한다. 나라에 더 큰 피해를 가하고, 더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하지만 연안이라는 이유로, 가까운 거리를 항해한다는 이유로 국제 항해에 투입되는 선박들과 비교하여 비교적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많은 대형 사건들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막을 수 있을지도······.’

전생에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 떠올라 갑자기 가슴이 막막해져 갔다.

울적해진 나의 기분과 달리 오재민 의원과 유혜영 기자의 인터뷰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가는 분위기.

오재민 의원도 자신감을 되찾은 듯 준비한 정책들을 세상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유혜영 기자가 노트북을 덮었다. 취재가 마친 유혜영 기자가 물었다.

“장관님, 지금 설명해주신 정책들은 바로 보도해도 되는 것들이죠?”

“하하하. 물론이죠.”

오재민 의원이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언론에 준비한 정책들을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오재민 의원도 정치인.

세상에 말을 한 이상 정치인인 오재민 의원은 실천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얼추 된 건가.’

오늘 유혜영 기자와 오재민 장관의 인터뷰를 성사시킨 개인적인 목적도 있었다.

낙장불입. 오재민 의원이 책임감 있게 정책을 추진하게 강제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목표였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해운 산업이 안정적으로 육성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보상 :

- 당신의 명성이 상승합니다.

- 우리나라 해운업이 안정적으로 육성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습니다.

- 해운 회사들의 도산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 해운업종 외 관련 산업계에서 당신의 활약을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Ex 조선업, 금융업, 보험업)

+

* * *

-해신해운 본사 10층 법무팀

며칠 후.

“장보고 파트장님.”

자금팀에서 법무팀 법무기획파트로 발령받은 한재명 과장이 나의 책상 근처로 다가왔다.

법무팀으로 인사이동 된 것은 아직도 불만인 눈치였지만 한재명 과장도 프로.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답게 업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맡긴 일을 빠르게 처리한 모양. 한재명 과장은 서류가 올려져 있는 결재판을 들고 있었다.

‘사람이든 회사든 변하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야.’

한재명 과장이 건넨 결재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해신해운은 이미 전자 결재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서류 결재를 병행하고 있었다.

법무팀은 미리 서류로 결재를 받은 후 전자 결재를 올리는 방법을 관행적으로 하고 있었다.

쓸데없이 종이를 낭비하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팀장의 업무 스타일이니 딴지를 걸기도 힘들었다.

법무팀장을 겸하고 있는 경영지원본부장 현재형 상무는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관행적인 업무를 절차까지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재명 과장이 말했다.

“말씀하신 자료들입니다.”

“네, 벌써 다 하신 건가요? 빠르시네요. 허허허.”

“뭐, 별거 아닙니다.”

한재명 과장은 칭찬이 멋쩍은 모양. 별일 아니라는 듯 괜히 입을 샐쭉거렸다.

“음, 그럼 태성중공업이 제일 문제겠군요.”

나는 한재명 과장이 정리한 자료들을 뒤적이며 말했다.

한재명 과장이 건네준 자료에는 새롭게 도입될 신조선 계약의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네, 파트장님. 다른 중공업들은 아직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 전이거나, 기간이 많이 많아서 어찌 가능할 것 같습니다.”

“태성중공업은요?”

“기간이 문제입니다. 태성중공업과 체결한 계약들은 이미 선박 건조에 들어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선박 금융 계약은요?”

“금융 계약도 다 체결된 상태입니다.”

“과장님, 태성중공업 담당자랑 이야기는 좀 해봤습니까?”

“아직 못 했습니다. 깐깐한 스타일이라 준비를 좀 해서 만나봐야 될 것 같습니다······.”

나는 한재명 과장의 말을 듣고 이해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성중공업뿐만 아니라 태성그룹을 상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

우선 태성중공업이 속한 태성그룹은 우리나라 제일의 재벌그룹이었기 때문에 소속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리로, 계약을 철저히 지키고, 매뉴얼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기업 문화가 뿌리 깊게 내려져 있기 때문에 담당자들 개개인의 재량은 타사와 비교해도 제한적이었다.

그 말은 애초에 담당자를 상대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태성중공업은 우리나라 일등 재벌그룹인 태성그룹에 속한 회사로, 조선소는 거제도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대형 조선소로 대한중공업, 미래중공업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수주를 많이하는 탑 쓰리(3) 조선소로 손꼽히는 회사, 주요 사업은 선박, 선박, 해양 플랫폼, 풍력 발전 설비 등을 판매하는 우리나라 조선 해양을 대표하는 대기업 중 한 곳이었다.

‘쉽지 않겠지.’

태성중공업의 깐깐한 직원들을 상대할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파진다. 태성중공업의 통 큰 양보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이 이렇게 되나?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나는 태성중공업이 몇 년 전 나에게 진 빚(?)을 떠올렸다.

이렇게 생색을 내려고 그런 일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의도는 순수했으니까.

하지만, 뭐 내 덕에 태성중공업이 큰 덕을 본 것은 사실이 아닌가?

빚은 독촉해야 제맛이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채권자들이 나타날까 봐 전전긍긍해야 하는 법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얼굴에 미소를 드리웠다.

“흐흐흐.”

“파, 파트장님?”

내가 갑자기 실소를 흘리자 내 얼굴을 살피던 한재명 과장이 물었다. 젊은 놈이 실성했나?

“아! 흠흠, 한 과장님, 일단, 태성중공업에 들어가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미팅 좀 잡아주세요.”

내 말에 한재명 과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파트장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해신해운의 재무 건전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은 고가의 신조선이 도입될 예정입니다. 대응책을 마련하세요!”

세부 퀘스트 : 신조선

클리어 조건 : 신조선 도입으로 인한 비용 축소

제한 시간 : 신조선 도입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해신해운 재무 구조 악화, 비요 상승, 파산 가능성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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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성중공업 (1)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고 찾아온 글로벌 금융 위기는 해운업을 넘어 조선업을 휩쓴다.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해운 회사들이 선박들의 인도를 미루고 발주를 취소하려 한 것이다.

금융 위기가 발생한 후 2년도 채 되지 않아 조선업의 신조선 수주 물량과 인도 물량은 절벽 수준으로 급감한다.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직후에는 중국 등에 발주한 벌크선을 중심으로 계약 변경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조선소를 덮친 ‘쓰나미’는 결국 우리나라 조선소에까지 불어닥쳤다.

해운업 호황기를 거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조선소는 최소 ‘3년 치 물량이 쌓여있다’고 자랑했지만 결국 그들도 불황의 파도를 넘지 못했다.

처음 시작은 벌크선이었다. 상대적으로 구조가 단순하고 건조가 용이한 벌크선을 주로 건조하는 중국의 조선소들에 대한 발주 취소가 이어졌다.

그리고 벌크선에서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으로 이어졌다.

호황기에는 95% 이상이던 컨테이너선 인도율이 금융 위기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에는 20% 아래로 떨어졌다.

해운업 컨설팅 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금융 위기 직후 1년간 연간 평균으로는 10척 중 5~6척만이 인도되었다고 한다. 금융 위기 직후 1년간 컨테이너 선박의 실제 인도율은 54.3%에 그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인도가 예정된 선박 중 제 시기에 인도된 선박은 평균 10척 중 1척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본격화된 선사들의 발주 취소 움직임이 계속되었다.

해신해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대형 선사들도 모두 신조선 발주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발주를 취소하기 위해선 남들보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해운업 호황기일 때는 발주된 선박이 많다. 조선소에도 몇 년 치 일감이 쌓여있다.

조선소들도 아직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기. 지금이라면 협상이 가능한 순간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 * *

-태성중공업 본사 앞

택시가 큰 빌딩 건물 앞에 섰다. 택시에서 내려서자 태성중공업의 로고가 크게 새겨진 빌딩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좀 일찍 도착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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