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200)

해신해운의 용선료 협상 요구를 일축하고 사사건건 딴죽을 걸던 싸우스팬이 알고 보니 글로벌 선사로 성장한 데는 우리나라 국책 은행의 지원이 컸던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1999년 5척으로 해운 사업을 시작한 싸우스팬은 해신해운 파산 당시 약 120여 척의 선박을 보유한 글로벌 선주사로 성장했다.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 국책 은행의 지원이 컸다는 후문.

해운업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도움으로 크게 성장한 회사가 먹튀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 국책 은행의 홍보 자료에는 “20xx년 용선주와의 12년 장기 용선 계약을 기반으로 이뤄진 최초의 선금융 후발주 SF(Structured Finance, 맞춤형 대출)로, 싸우스팬은 당시 5척의 컨테이너선을 운영하던 소규모 선사에 불과했으나 이러한 지원을 통해 세계적인 선사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히고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 국책 은행이라고 해서 외국 선사들에게 금융을 제공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보통 외국 선주사들이 우리나라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경우 우리나라 국책 은행이 좋은 조건으로 선박 금융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싸우스팬은 우리나라 태성중공업에 200x년에만 총 18척의 선박을 발주했는데, 우리나라 국책 은행이 이에 대한 선박 수출 금융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를 통해 글로벌 선사로 발돋움한 싸우스팬은 2000년대 호황기 당시 체결한 고액의 용선료로 유동성 위기를 맞은 해신해운의 용선료 협상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당시 한 업계 관계자는 “국책 은행의 도움으로 성장했다고도 볼 수 있는 해외 선주사가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적 선사를 오히려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개탄했다.

국내 조선사 신규 수주를 위해 고안했던 선박 금융이 부메랑이 돼 국내 해운사의 목을 조이는 상황이 된 것인데, 산업계 일각에서는 조선업과 해운업, 그리고 선박 금융업 전반에 대한 거시적인 정책과 지원책이 부족한 탓이라며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을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일등 조선 산업과 세계 5위권의 해운 산업을 가진 유일한 나라였다.

하지만 이런 산업 기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은 언제나 사후 약방문. 조선, 해운 산업계에 대한 정책적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늘 시달려왔다.

정부는 1등 국적 선사인 해신해운이 파산하고 나자 부랴부랴 침체된 해운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201x년 해양수산부 산하의 기타 공공 기관으로 금융 기관의 성격을 가진 공사를 발족시킨다.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 해운업의 경쟁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추락한 후였다. 이런저런 정책들을 시도하지만 민간에서 상실된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보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안 되니까··· 이번에는 좀 잘해봐야지.’

나는 책상에 놓인 자료를 챙긴 후 일어섰다.

“나는 오전 회의가 있어서 나갔다 올게.”

“네, 상무님이 찾으면 어디로 가셨다고 할까요?”

“해양수산부에 좀 들어갔다 올게.”

“네? 해양수산부요?”

“그래.”

“거긴 무슨 일로?”

“다녀와서 이야기해 줄게. 그래도 먹고 튀지는 못하게 해야지.”

“네?”

정재훈 사원은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상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재밌는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해운업 재건 계획 (1)

-해양수산부 청사

오늘따라 햇빛이 눈 부시게 느껴졌다. 손을 들어 올려 해를 가리자 눈앞에 큰 정부 기관의 청사 건물이 나타났다.

해양수산부 청사였다.

‘해양수산부라······.’

오묘한 감정이 떠오른다. 문뜩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는 해운업계의 사람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전생에 해신해운이 파산할 때 나를 포함한 해신해운의 직원들이 가장 아쉽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다른 정부의 소극적인 지원이었다.

관료들이 산업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그 중심에는 해양수산부가 있었다.

물론 회사가 망한 이유를 회사 외부에서 찾으려는 것은 아니다.

전생에 해신해운이 파산에 이른 가장 큰 원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싼 신조선의 도입, 용선 계약, 무리하게 추진한 사업들의 실패, 다른 경쟁 회사들에 비해 열악한 재무 구조와 수익 구조.

여러 이유 때문에 호황일 때는 다른 회사보다 이익률이 낮고, 불황일 때는 적자가 남들보다 컸다.

하지만 파산에 이른 가장 큰 원인은 단 하나.

그건 바로 경영진의 무능이다. 전생에 권영호 회장 사후 해신해운의 경영권을 차지한 사람들은 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회사가 망했는데, 경영진 말고 누구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겠는가?

다른 원인은 부차적인 것일지도 몰랐다. 비겁한 변명일 뿐.

유례없는 불황기가 찾아왔지만 경영진은 경영권 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불황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해신해운이 하루아침에 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쌓아온 저력이 있었다.

금융 위기 이후 유례없는 장기간의 불황을 10여 년간 버텨냈다.

문제는.

‘예상보다 너무 길었지.’

유례없는 호황기 이후 찾아온 해운업의 불황기는 유례없이 장기간 지속되었다.

결국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한 해신해운은 금융 위기로부터 약 1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 결국 생존력을 상실하고 파산한다.

파산 직후에는 해신해운 경영진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산업계를 중심으로 해신해운 파산의 원인에는 경영진의 무능에 버금가는 또 다른 원인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건 바로 해운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이 부족했다는 지적이었다. 해운업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그릇된 인식으로 해운업의 몰락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금융 위기 이후 해신해운이 파산에 이르는 10여 년 사이 수많은 해운 회사들이 줄도산에 이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의 실효성 있는 지원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해운업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없었다.

해운 회사들의 단체인 선주협회는 2008년 금융 위기로 촉발된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로 유동성 부족, 운임 하락, 유가 상승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호소하며 금융권과 정부의 지원을 호소했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한 해운업계의 어려움은 우리나라 국적 선사들에게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대형 해운 회사들은 대부분 어려움에 봉착하는데, 해신해운보다 사정이 더 나쁜 해운 회사들도 다수였다.

급기야 대형 글로벌 해운 회사가 파산한다는 소문이 시장에 돌기 시작한다. 이들 중에는 해신해운보다 큰 정기선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고 해신해운은 파산한다. 그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정부의 지원책. 단 한 가지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해운 회사는 살아남고, 지원을 받지 못한 해운 회사는 파산했다.

저 세계에서 가장 큰 덴마크의 국적 선사.

맨스크(Mansk)도 불황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덴마크 정부는 맨스크가 금융 위기 이후 약 62억 달러에 달하는 금융 차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세계 3위권 프랑스 국적 선사 CMM.

CMM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부도가 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시장에 파다했지만 CMM은 정부의 지급 보증을 통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해신해운은?

해신해운이 파산한 이후 정부는 뒤늦게 사후 약방문을 실시한다.

해신해운이 파산하자 해운 대란이 일어나 물류 비용이 상승하고, 지역 경제도 침체된다. 세계 글로벌 선사들 간에 얼라이언스 체제가 강화되지만 한국 선사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자 우리나라 정부는 그제야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한때 해운 강국이라 불렸던 우리나라의 해운 산업이 이제는 더 이상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정부는 해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서 ‘세계 해운 강국’으로 재도약하겠다며 이런저런 대책을 마련한다.

그중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대책도 있었다.

바로 정부에서 해운업을 진흥하기 위한 공공 기관을 설립한 것이다. 이는 해운업계가 오랜 기간 정부에 요구해온 것이기도 했다.

‘시기가 좀 늦었다는 점이 문제였지.’

아쉬운 기억을 떠올리자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대한민국 해운업에 곧 위기가 찾아옵니다. 해운업을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세요!”

세부 퀘스트 : 해운업 육성 계획

클리어 조건 : 공공 기관 설립

제한 시간 : 금융 위기 발생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해운 회사 도산 가능성 상승, 업계 위기

+

해양수산부 장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번에는 좀 더 빠르게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약간의 채찍질(?)만 하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장보고 차장님!”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은 신라일보의 유혜영 기자였다.

달려온 유혜영 기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헉헉,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덕분에 좋은 인터뷰 기회를 잡았네요.”

“하하하. 뭘요.”

“아, 그리고 파트장으로 승진했다고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유혜영 기자가 싱긋 웃어 보였다.

신임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취임한 오재민 장관과의 독점 인터뷰 기회를 잡은 유혜영 기자가 밝게 웃어 보였다.

“장보고 차장님,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네?”

“오재민 장관님하고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거예요?”

유혜영 기자의 얼굴에 호기심이 드리워진다. 기자이기 때문에 호기심이 강한 것일까?

일반 시민에 불과한 나와의 친분을 궁금해할 이유가 없을 텐데.

“오재민 장관님이 국회의원 되시기 전에 부산 영도구청장이셨거든요. 제가 영도 출신입니다.”

“음······, 지연 뭐 그런 거다 이 말이죠? 호호. 일단 알았어요.”

유혜영 기자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해양수산부 장관실

비서를 따라 장관실에 들어섰다.

오재민 장관의 방은 해양수산부 장관답게 꾸며져 있었다. 선박 모형과 수산업 관련 장식들이 이곳저곳에 놓여져 있었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선물로 받은 화분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해 바닥 한구석에 잔뜩 모여있었다.

“오! 장보고! 왔나?”

오재민 해양수산부 장관이 유혜영 기자와 함께 들어서는 나를 발견하고는 환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의원님, 아, 이제는 장관님이라고 불러야 되는군요.”

“하하하. 어서 자리에 앉게. 유 기자님도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네, 장관님 잘 지내셨습니까!”

옛말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옛말은 틀린 게 없구나.’

나를 바라보는 오재민 의원의 눈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치인답지 않게 유순하고 유약한 심성의 소유자였던 사람인데 이제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사람이 영도 박수 앞에서 전전긍긍하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일국의 장관 자리에 오른 사람답게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쩌면 현생에서는 해양수산부 장관도 그에게는 지나쳐 가는 자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큰 꿈을 꾸고 있을지도?’

말없이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자 오재민 의원이 웃으며 말했다.

“내 얼굴에 뭐 묻었나?”

“격무에 시달린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얼굴이 더 좋아 보이네요.”

“허허허. 얼굴이 좋아 보이기는 무슨! 피곤해 죽겠는데.”

웃음을 터트린 오재민 의원이 말을 이어갔다.

“장관이 되고 보니 생각보다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

“하하하. 아무래도 그렇겠죠?”

고개를 돌려보니 책상 주변으로 산적한 서류 더미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재민 장관이 이번에는 유 기자에게 말을 건넨다.

“유 기자도 이렇게 대면하는 건 꽤 오랜만이네요.”

“네, 장관님,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제가 오히려 부탁해야 할 입장이죠. 좋은 기사 써주세요.”

유혜영 기자는 오재민 의원에게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안경을 고쳐 쓰더니 질문을 시작했다.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한 의도와 의미를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으흐흠!”

처음부터 쉽지 않은 질문이 이어졌다. 오재민 의원이 가볍게 헛기침을 한 후 대답을 이어나갔다.

유혜영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장관 취임 후 한국 해양수산 정책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어떻게 파악하셨나요?”

“해양수산 분야는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특히 해양수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해운업과 조선업이 그렇습니다. 아직은 호황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그리고 수산업은 여러 어려움에 봉착한 상황입니다. 자원 감소와 어장 환경 훼손 등으로 근본적인 위기가 있습니다.”

“음!”

유혜영 기자가 안경을 고쳐 쓰더니 물었다.

“해양수산업 분야의 상황이 그렇게 어려운지 몰랐네요?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허허허. 저도 잘 모르고 좋은 자리인 줄 알고 맡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더군요,”

“네, 장관님 그래서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요?”

“뭐, 아직 본격적인 위기가 도래한 것은 아니지만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산업 생태계 다시 정립하는 것입니다.”

“산업 생태계요?”

“네, 우리나라는 세계 조선 일등 국가이자, 세계 5위권의 해운 국가입니다. 중국이 빠르게 쫓아오고 있는 추세이지만, 해운조선업 두 산업에서 이런 성과를 보이고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말을 마친 오재민 장관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준비한 것들을 언론에 공개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해운업과 조선업을 육성할 수 있는 진흥 공사를 설립해 산업계를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공공 기관을 설립한다고요?”

“네, 해운, 조선, 금융 상생 체계를 확립해서 해운업과 조선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적극적인 지원 프로젝트를 실시할 계획입니다. 현재 7.3% 수준인 해양 수산 GDP 기여율을 중장기적으로 10% 이상이 되는 수준까지 높여 나갈 생각입니다. 제가 장관직을 맡는 동안 반드시 그 초석을 만들어 놓을 생각입니다.”

유혜영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빛났다.

“음 장관님, 지금부터 드리는 질문은 좀 불편하실 수도 있는 내용인데요.”

“음?”

“국회의원 시절부터 해양수산업계를 위해 많은 일을 해주신 것으로 유명하신데요.”

“네.”

“일각에서는 기업에 너무 친화적인 장관 인사가 아니냐는 말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혹시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그런 소문이 있습니까?”

“네, 안 그래도 이번 정부의 정책들이 기업 친화적이다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고요.”

오재민 장관의 말에 유혜영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 후 고개를 돌렸다.

“특히 특정 기업과 유착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음?”

“앞으로 특정 기업에 대한 몰아주기 정책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 뭐 이런 이야기들이죠.”

유혜영 기자의 의뭉스러운 눈빛이 나를 향했다.

해운업 재건 계획 (2)

-해양수산부 청사 해양수산부 장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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