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 (172/200)

“아··· 고맙습니다. 오늘 청문회 잘 마치면 쉴 수 있겠죠.···.”

그는 영혼이 반쯤 가출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박대홍 의원님 의원실은 어느 쪽에 있나요?”

“음? 박대홍 의원?”

“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대답한다.

“아마 같은 층이었던 거 같은데 반대쪽 끝이었나 그럴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가볍게 묵례를 한 후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 * *

-국회의사당 박대홍 의원실

박대홍 의원실이 있는 곳 근처는 비교적 조용했다.

‘아직 점심시간이어서 그런가?’

나는 조용히 박대홍 의원실 문 근처로 다가섰다.

< 띠링! >

+ 스킬 [잠입 Lv.7]을 사용합니다. +

- 인기척을 감춥니다.

- 당신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손을 조용히 뻗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럼 다녀올게.”

“네 보좌관님.”

한 남성의 목소리.

딸깍. 문이 열렸다. 나는 재빠르게 스킬을 사용해 복도를 향해 열리는 문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한 남성이 박대홍 의원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뒤로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리고 실수를 가장해 달려가 그의 어깨를 가격했다.

“아이고!”

깜짝 놀란 보좌관이 소리를 지르며 비틀거린다. 나는 보좌관이 넘어지지 않도록 재빨리 손을 뻗어 그를 어깨를 잡았다.

툭, 그의 손에 들려있던 파일 봉투가 툭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자료를 보면서 가느라 앞을 못 봤습니다.”

내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박대홍 의원의 보좌관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조심하쇼.”

“네, 죄송합니다. 아이고 봉투가 바닥에 떨어졌네요.”

나는 바닥에 떨어진 파일을 집어 그에게 건넸다.

보좌관은 바쁜 듯 봉투를 홱 낚아채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오재민 의원의 인사 청문회장.

그는 박대홍 의원이 부탁한 자료가 담긴 봉투를 박대홍 의원에게 건넸다.

자기 발언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박대홍 의원이 봉투를 열어 자료를 확인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새빨간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수상한 인물이 있는지 살피는 것.

하지만 [잠입 Lv.7]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탓인지 박대홍 의원은 사람들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나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박대홍 의원은 봉투에서 꺼낸 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편지를 들고 있는 박대홍 의원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

나는 네가 지난 20xx년 x월 xx일 한 일을 알고 있다.

골프장, + 200억, 정유사.

+

바보가 아니라면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스캔들이지만 몇 년 후에 터질 대형 정치 스캔들.

정유사의 대규모 담합 사건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 밝혀지게 되는데 사건의 불똥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번진다.

정관계 인사가 정유업계로부터 로비를 받아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박대홍 의원도 마찬가지.

특히 그는 가족이 운영하는 건설 회사가 국내의 대형 정유사에 팔아치운 골프장이 문제가 됐다.

정유사가 그 골프장을 시가보다 200억 원 넘게 부풀린 532억 원에 사들였기 때문이다. 차익 200억은 당연히 뇌물로 지급된 것이었다.

자신과 정유사의 밀착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박대홍 의원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순간.

박대홍 의원이 질의할 시간이 도래했다.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박대홍 의원이 질의를 시작했다.

“음···.”

잠시 뜸을 들인 박대홍 의원이 말했다.

“파파미라는 말을 아십니까?”

“네?”

오재민 의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 죄송합니다. 의원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네···. 파파미는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는 신조어입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박대홍 의원에 말에 더 당황한 표정의 오재민 의원.

“제가 후보자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니 그렇다는 말입니다. 파도 파도 미담만 나왔다는 뜻입니다.”

인사 청문회 (3)

-국회의사당 인사 청문회

“뭐야?”

“으으음.”

“······?”

청문회장에 있는 다른 의원들은 박대홍 의원이 느닷없이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인 오재민 의원을 칭찬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박대홍 의원은 횡설수설하며 오재민 의원을 칭찬하는 건지 질문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길게 늘어놓고 있었다.

박대홍 의원은 아마도 자신에게 협박성 블랙 메일을 보낸 사람이 오재민 의원 측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청문회 중간에 이런 쪽지가 자신에게 전달될 이유가 없질 않은가?

아마도 오재민 의원이 청문회를 무사히 마치면 자신도 큰 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흐흐흐. 화해라도 하자는 건가?’

나는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힐끔거리고 있는 박대홍 의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다. 물론 청문회를 마치더라도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 띠링! >

+

<메인(+돌발) 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오재민 의원이 무사히 인사 청문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보상 :

-당신의 명성이 상승합니다.

-조선업계에서도 당신의 명성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당신의 명성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정치 인맥이 확장됩니다.

+

+

신라일보,

“국회, 해수부, 농림식품부 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 보고서 채택”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가 오재민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 경과 보고서를 여야 합의로 채택했다.

국회 농해수위는 x일 전체 회의를 열어 오재민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 보고서 채택의 건을 상정해 가결했다.

이날 농해수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오재민 후보자에 대한 청문 보고서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여야 합의로 이견 없이 통과시켰다.

농해수위는 오 후보자에 대해 “공직자로 재직하던 시절 해양 정책, 해사 안전 정책, 항만 물류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고, 국회의원으로서 상당한 경험과 역량을 쌓았다”면서도 “특히 해운, 조선 산업에 대한 이해가 높으며 그동안 다양한 법안을 발의해온 점이 높이 평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산업·어촌 위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수산 분야에 대한 전문성 부족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고 경과 보고서에 명시했다.

(중략)

유혜영 기자

+

* * *

-해신해운 본사 대강당.

며칠 후.

오재민 의원에 대한 인사 청문회 보고서는 무사히 국회를 통과했다.

‘출세했네, 그 아저씨.’

오재민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이라니?

나는 본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오재민 의원을 떠올렸다.

영도 대표 무당인 영도 박수의 점집에서 몰래 그를 만났던 과거의 기억은 이미 좋은 추억이 되었다. 물론 오재민 의원은 내가 영도 박수 뒤에서 그를 흉내 낸 사실은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난 몇 년간 오재민 의원과 자갈치 쩐주 최 부자는 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아니, 전생에 최 부자는 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지만 이번 생에는 공생하는 동반자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몰랐다.

받기만 할 때보다 베풀 수 있을 때 더 큰 만족감이 온다더니 최 부자와 나의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어느새 본사 꼭대기 층에 위치한 대강당에 도착했다.

이제 곧 해신해운 본사에서 근무하는 전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타운 홀 미팅’이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대강당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사람들이 많이 도착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대강당 곳곳에서는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타운 홀 미팅을 주관하는 부서인 경영기획팀 사람들과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총무팀 직원들이었다.

그때.

“장보고 과장님!”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는?’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영기획팀 권세아 대리였다.

그녀는 대강당 앞 연단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다가 강당 뒷문에 나타난 나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나를 쳐다보며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댔다.

‘뭐, 뭐야 왜 저래.’

권세아 대리가 외친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본다.

권세아 대리는 나를 바라보며 계속 손을 흔들고 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오른손을 어색하게 들어 올렸다.

“아··· 예!”

권세아 대리는 내가 어색하게 손을 들며 주변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고 탐탁지 않은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녀는 다시 중단했던 일을 시작했다.

그때 권세아 대리를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의 등 뒤로 누군가 다가왔다.

“장 과장.”

그는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다 잘돼 가나?”

경영기획본부장인 도형준 전무였다.

“네?”

“별일 없나?”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물었다.

“뭐가요?”

“뭐긴 뭐야. 사업이지.”

“사업?”

“연애 사업.”

나는 그의 말에 살짝 얼굴을 붉혔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회사에서···.”

“아··· 그나저나, 전무님, 준비할 게 많으시죠?”

내가 애써 대화를 돌리려는 것을 눈치챈 듯 도형준 전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뭐 준비랄 게 있나?”

“그런가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쁜데 이런 행사를 한다고 제법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있던데요.”

“뭐, 누군가 그런 말을 하는 작자들이.”

“······.”

상사 된 입장에서 정재훈 사원을 밀고할 순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도형준 전무가 농담으로 화난 척 연기를 했지만 어찌 됐든 그는 회사의 실력자가 아닌가?

“뭐,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네.”

“네, 들으셨군요. 뭐, 전무님한테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 뭐 그런 소리도 들리던데요.”

“하하하, 그저 직원들끼리 허심탄회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인데 별일 있겠는가?”

오늘 행사 사회는 도형준 전무가 직접 진행할 예정이었다.

회사 일부에서는 오늘 경영기획팀에서 진행하는 타운 홀 미팅 행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특히 권동호 부사장과 권동민 전무 쪽에서 자신들과 협의도 하지 않고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 것에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럼, 이따 봅세.”

도형준 전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내 어깨를 두드리고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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