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200)

카리스마는 있다는 평가. ‘보스형 리더’로 통했다.

회사 인근 술집을 방문해 직원들의 외상값을 덜컥 갚아 준다든지, 우연히 술집이나 밥집에서 마주치면 턱턱 밥값을 제해주는 통 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이렇게 속이 좁은 인간이 없었다.

특히 아랫사람이 자신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토를 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독선적 측면’이 강했다.

이런 권동호 부사장의 독특한 스타일에 대해서 그가 29세라는 약관의 나이에 굴지의 대기업 임원에 오른 이력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아버지 세대인 부하 직원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카리스마’가 필요했다. 의도적으로 권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상한 캐릭터가 구축되었다는 분석이 있었다.

해양수산부 출신의 고위 관료로 해신해운에 영입된 고위 임원이 권동호 부사장 앞에서 무심코 담배를 꺼내 물었다가 “어디서 담배를 피우느냐”는 호통을 듣고 바로 사표를 썼다는 이야기는 회사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다.

‘얘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회사 다녀야지.’

선대기획팀장은 오늘도 입방정을 떨지 않은 자신의 참을성을 스스로 칭찬했다.

* * *

-여의도 해신해운 본사 인근 식당

며칠 후 점심시간.

“음?”

나는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하하하. 이제 청문회가 시작되는 건가?’

뉴스 화면 속에는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국회의원 오재민 의원이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간단하게 기자 회견을 하는 장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오재민 의원은 정유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주협회와 해양수산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의 막대한 공로가 있었지. 하하하.’

나는 새삼 뿌듯한 표정으로 티브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마치 어린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심정이랄까.

불안감? 아니 오묘한 감정.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전생에 오재민 의원이 인사 청문회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결국 좌초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생에 발생한 문제는 이미 깨끗하게 해결된 상황.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직 방심은 금물이다.

티브이 속에서 오재민 의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재민 의원의 표정은 밝고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전생에 청렴하고 능력이 있지만 우유부단하고 소심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오재민 의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오재민입니다.

오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제가 해양수산부 장관이 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해상 물류 체계를 구축하고, 세계 일등 수준인 조선업과 해운업과 연계할 수 있는 산업을 활성화하겠습니다. 특히, 항만 산업과 선박 금융을 비롯한 금융업을 적극 육성해 해양 강국으로 세계에 우뚝 솟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겠습니다. 해양수산인들과 밀접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해답을 구하겠습니다.

아직 후보자 신분이므로 인터뷰에 응하기 어려운 점 기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구상하고 있는 해양수산부의 방향과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인사 청문회에서 의원님들과 국민 여러분께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국회 인사 청문회를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네, 깔끔하네.’

“하아아암!”

나도 지난 며칠간 오재민 의원의 의원실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했던 터라 잠이 부족했다.

‘준비를 열심히 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

오재민 의원의 부탁을 받고 인사 청문회 준비 위원단과 함께 청문회를 대비해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자신은 있었다. 준비를 열심히 했으니까.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 띠링! >

+

<돌발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돌발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오재민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이 되기 위한 마지막 과문이 남았습니다. 인사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적극’ 서포트하세요!”

세부 퀘스트 : 국회 인사 청문회

클리어 조건 : 국회 인사 청문회 통과

제한 시간 : 국회 인사 청문회 종결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킹메이커(?)

실패 시 : 해신해운 파산 가능성 상승, 대형 해난 발생 가능성 상승, 해운 및 조선 산업의 위기

+

“어라?”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내용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불길한데?

‘이런 퀘스트가 떴다는 말은···.’

그건 오재민 의원의 인사 청문회가 계획대로 순탄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재훈아.”

나는 옆에서 뜨거운 순댓국을 후후 불어가며 야무지게 먹고 있던 정재훈 사원에게 말했다.

“예?”

“나 잠깐 다녀올 곳이 있으니 천천히 먹고 올라와.”

“네? 식사도 다 안 하셨잖아요?”

“급한 일이 생겨서 다녀와야겠다.”

“지금요?”

“그래, 점심시간 마칠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팀장님께 급하게 오후 반차를 좀 써야 된다고 말해주고, 내가 나중에 시간 봐서 따로 전화도 드릴 테니까.”

“네, 과장님.”

식당을 빠져나온 나는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기사님, 지금 빨리 국회의사당으로 가주세요.”

“국회의사당?”

“네, 빨리요.”

“알겠습니다. 안전벨트 단단히 매십쇼.”

젊은 택시 기사는 신난 표정으로 운전대를 단단히 잡았다.

달려가는 택시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떤 난관이 찾아올지 예상이 되질 않았다.

‘일단 청문회장 근처에서 대기해야겠어.’

빠르게 대처하려면 아무래도 청문회장 근처에서 대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 청문회 (2)

-국회의사당 오재민 의원의 의원실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나는 택시에서 내려 빠르게 달려갔다.

오재민 의원실에는 같이 인사 청문회를 준비한 인사 청문회 준비단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의원실에 있는 TV 속 화면에는 인사 청문회를 시작하는 오재민 의원의 모습이 보였다.

오재민 의원은 의원들의 질의에 앞서 모두 발언을 시작했다.

“존경하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이00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먼저 바쁘신 의정 활동 중에도 인사 청문회를 준비해 주신 데 대하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저는 공직 생활을 거치면서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고, 오늘은 이렇게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서 자질과 능력을 검증받기 위해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공직 생활을 마치고 국회의원이 되어 그동안 해양수산 분야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왔습니다.

(중략)

앞으로 저는 5대 당면 과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먼저, 경쟁이 심화되어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조선업을 살리겠습니다. 둘째, 바다가 삼면인 우리나라의 입지를 고려하여 물류의 핵심인 해운업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임기 내 국적 선사 중에 글로벌 3위 안에 드는 메가 해운 선사가 탄생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셋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조선업과 해운업에 비해 제반 산업의 경쟁력은 아직 부족한 수준입니다. 선박 금융을 비롯한 해양 금융업을 적극 육성하여 우리나라를 해양 금융 허브로 만들겠습니다. 특히, 관련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해운조선항만진흥공사를 설립해 정부의 효율적인 지원을 도모하겠습니다. 넷째, 부산항을 세계 최고의 허브항의 반열에 올려놓겠습니다.

(중략)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사 청문회를 개최해주신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오재민.”

오재민 의원의 모두 발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청문이 시작되었다.

‘뭐, 아직까진 순조롭네.’

별다른 특이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전생에도 오재민 의원 배우자의 다단계 투자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오재민 의원은 무난히 인사 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측되는 사람이었다.

후보자로 입후보된 이후 초반에는 오재민 의원에 대해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고 해서 ‘파파미’라는 신조어로 불리기도 했었다.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인자한 성격으로 직원들을 감싸 안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보좌관들 사이에서도 누구나 모시고 싶은 상사”로 소문이 자자했다. 정당이나 계파를 넘어 좋은 평가를 얻고 있었다.

인간적인 면모를 넘어 업무적으로는 강단이 있다는 평가였는데, 정유업계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유조선 단일선체 금지법안을 발의해서 통과시킨 배짱은 의원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는 후문.

‘누굴까.’

나는 화면 속에 비친 의원들의 모습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음? 저 사람은?”

그때.

화면 속에는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남성이 있었다.

그는 지역구 의원으로 자기 지역구에서 그 집안 땅을 밟지 않으면 도로를 건널 수 없다는 소문이 있는 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지금은 이쪽 위원회였구나.’

국회의원들이 재산 신고를 하면 최상위권에 올라 일등 자리를 다투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박대홍 의원.

전생에 그는 국회 국토교통 위원으로 있던 기간 동안 가족들이 대주주로 있는 건설사들이 국토교통부와 국토부 산하기관들로부터 공사 수주와 신기술 사용료 명목으로 수천억을 지급받은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겪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가 유명해진 또 다른 사건은 고유가 시대에 발생했다.

지금은 초선 의원인 그가 중견 정치인이 되었을 무렵.

전 세계적인 고유가 상황으로 글로벌 경제에 빨간불이 커지는 시기가 있었다.

고유가는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지만 해외의 메이저 정유사나 국내의 거대 정유사들에게 역대 최대 실적을 선물했다.

국내 정유사들도 고유가 덕을 톡톡히 보며, 역대 최고 수준의 영업 이익률을 기록했다.

고유가로 전 세계가 고통받는 시기에 막대한 수익을 거둔 정유사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고울 수 없었다.

미국의 대통령은 메이저 정유사를 향해 ‘신보다 돈을 더 벌어들였다’라고 힐난하며 가격을 조절할 것을 노골적으로 주문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도 마찬가지. 유럽의 각국은 고유가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는 석유, 가스 기업에 한시적으로 초과 이윤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런 세계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도 예외일 순 없었다.

정치권을 향한 요구가 빗발치자 국회의원들 중에 개혁적인 성향의 의원들은 정유사들의 고통 분담을 촉구하며, 정유사의 초과 이익 환수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적극적으로 정유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법 비중 있는 정치가로 성장한 박대홍 의원은 정유업계가 저유가 시대에 큰 적자를 기록할 때는 이를 방관하던 정부가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질 않고 자유 시장 경제 논리에 반한다고 맞섰다.

결국 박대홍 의원의 활약으로 정유사에 대한 초과 이익 환수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박대홍 의원과 정유사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커넥션이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의혹만 있을 뿐 증거는 없었지.’

박대홍 의원이 정유업계를 대변하는 주장을 하자 일각에서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큰 건설 회사를 운영하는 집안이니 재벌가들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던 것.

하지만 박대홍 의원은 인사 청문을 받는 당사자가 아니었다. 그에 대한 의혹은 추가로 밝혀지지 않았고 별다른 성과 없이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운이 좋았던 거지.’

박대홍 의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운이 좋아서 그 당시에는 들키지 않고 넘어갔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화면 속에 비친 박대홍 의원의 얼굴은 전생의 기억보다 확연히 젊었지만 비치는 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 아무래도 앞으로 딴지를 걸 놈은 저놈이 분명하겠군.’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차례를 준비하고 있는 박대홍 의원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박대홍 의원의 말로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그가 각종 비리의 온상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는데, 그는 그야말로 비리 박물관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었다.

청문회이니 국회의원이 정당한 질의를 하고 검증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박대홍 의원은 비리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저열한 인간. 저런 인간이 국회의원이랍시고 설치는 꼴을 그냥 놔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뭐가 좋을까.’

비리 박물관이기 때문에 그를 견제할 수단은 차고 넘쳤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적절한 비리를 고르는 게 어려울 정도.

‘이게 좋겠군.’

나는 하얀 A4 용지 한 장과 누구나 사용하는 사무용 볼펜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필적을 알아볼 수 없도록 짧은 편지를 한 장 작성했다.

편지 작성을 마친 나는 보이지 않도록 여러 번 접은 후 바쁘게 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오재민 의원의 보좌관에게 다가갔다.

“김 보좌관님.”

며칠 밤을 꼴딱 새운 오재민 의원의 보좌관은 퀭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눈 밑에서 이어진 다크서클이 길게 양 볼 위로 늘어져 있었다.

안 그래도 삐쩍 마른 사람이 요 며칠간 최소한 5킬로 이상 체중이 감량한 그런 모습이었다.

“······.”

이건 뭐, 부탁도 못 하겠네.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해야 되나.

나는 오재민 의원의 보좌관에게 건네려던 종이를 조용히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자 오재민 의원의 보좌관이 물었다.

“장보고 과장님,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좀 쉬면서 하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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