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167/200)

“장보고 과장.”

“네, 부장님.”

축구광 부장이 갑자기 나를 호명했다.

“뭐, 포워드를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미리 회사에 해양대 나온 사람들 통해서 주변에 좀 물어봤네.”

“네?”

뭐 그렇게까지? 무슨 한일전이냐?

“학교 다닐 때도 공 좀 찼다는 소문이 들리더군. 잘 부탁하네.”

“······네.”

뭐, 나는 권동민 전무와 권동호 부사장의 자존심 싸움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왕 시합에 참여한 이상 질 생각은 없었다.

잠시 후.

“삑!”

주심이 휘슬을 불고 축구 시합이 시작됐다.

경기 시작 5분 후.

상대방 진영 앞에서 공격수와 수비수가 실랑이를 벌이더니 공은 재무그룹 소속 수비수 다리를 스친 후 밖으로 나갔다.

코너킥 상황.

축구광 부장이 코너킥을 차기 위해 달려갔다.

휙휙! 축구광 부장이 이해할 수 없는 수신호를 보냈다.

“키 큰 사람 잡아!”

재무그룹 소속의 골키퍼가 크게 소리쳤다.

수비수 중에 한 덩치 하는 직원이 나의 몸을 거의 감싸 안으려는 듯 몸을 밀착시켰다.

뻥! 축구광 부장이 공을 시원하게 찼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크게 휘어 들어왔다.

그 순간.

< 띠링! >

+스킬 [잠입 Lv.7]을 사용합니다. +

- 인기척을 감춥니다.

내가 수비수들 사이에 몸을 숨기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를 전담 마크하고 있던 덩치는 순간적인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공은 빙글빙글 돌며 코너에 가까운 골대 근처를 향해 감겨 들어왔다.

나는 수비수를 제치고 빠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나의 움직임을 따라오는 수비수는 없었다. 아니 주변에 수비수들이 많았지만 누구도 나의 은밀한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공은 어느새 달려간 내 머리 위로 날아왔다.

+스킬 [고무고무킥 Lv.13]을 사용합니다. +

순간적으로 날아오른 나는 그대로 몸을 뒤집었다. 시저스킥이 작렬했다.

“꺅!”

“와아아!”

멀리 스탠드에서도 환호성이 터져 올랐다.

잠시 후.

전반전이 끝나고 휴식 기간.

“과장님, 이것 좀 드세요.”

정재훈 사원이 음료수를 내밀었다.

“과장님, 대박!”

정재훈 사원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전반전 만에 해트 트릭을 달성한 나의 활약으로 크게 앞서나가고 있었다.

“크하하핫 다들 고생했네. 이대로 후반전도 부탁합세! 오늘 이기면 내가 다음 주에 크게 저녁 한턱 쏘지!”

축구광 부장도 나의 활약에 만족한 듯 입에 귀에 걸려있었다.

그때 마이크를 잡은 총무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 곧 후반전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후반전은 조금 색다르게 여직원들도 같이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뭐야?”

행사를 진행하는 총무팀 직원의 말에 축구광 부장이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총무팀 직원이 말을 계속 이어갔다.

“자, 출전하시는 분들은 자신과 짝을 이뤄 경기에 참여할 여직원을 지금 뽑아서 10분 안에 운동장으로 모여주십시오.”

“뭐······?”

“여직원과 짝을 이루지 못한 분들은 경기에 참여할 수가 없으니 빨리 움직이세요!”

“······!”

축구에 참여하고 있던 직원들은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

‘여직원을 뽑아 오라고?’

내가 잠시 멍 때리고 있는 사이 사람들은 정신을 차린 듯 빨리 움직였다. 스탠드로 뛰어가 사람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과장님! 뭐 하세요!”

정재훈 사원이 나를 보며 말했다.

“빨리 가서 누구라도 데려오세요!”

“뭐?”

“자! 빨리빨리! 누구 달리기 잘할 것 같은 사람 아무나 데려오세요!”

정재훈 사원에 등을 떠밀었다. 등이 떠밀린 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스탠드 쪽으로 달려갔다.

‘일단 같은 팀 사람 중에서 뽑아야 되겠지?’

법무팀이 소속되어 있는 경영기획본부 사람들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섰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스탠드 앞에 도착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몇몇 여직원들과 눈이 마주친다.

‘음? 왜 저러지?’

경영기획본부 소속의 젊은 여직원들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몇몇은 딴 곳을 보는 척하면서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

‘음? 어라?’

인지하지도 못했는데 언제?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내가 멈춘 곳은 살짝 볼이 붉게 물든 권세아 대리가 앉아 있는 자리 앞이었다.

저녁약속

- 서울 근교의 어느 체육공원

‘어라? 내가 언제 여기에?’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권세아 대리의 앞에 내가 우두커니 섰다.

“오오오!”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특히 같이 경력직으로 입사한 경영기획팀의 리스크매니지먼트 파트장 진채호 부장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진채호 부장은 평소에도 나와 권세아 대리의 중매쟁이를 자청하던 오지랖 넓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두 사람을 향했다.

권세아 대리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곧 폭발할 것 같은 그런 얼굴색이었다.

나는 마치 프로야구 경기 중간에 키스타임 같은 이벤트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마땅히 생각해놓은 말도 없었다.

“오오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잔뜩 기대하는 눈치.

“아악! 대리님!”

“어, 어어!”

“······.”

정작 권세아 대리 본인은 조용한데 그 양옆에 있는 여직원들은 마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긴장한 탓인지 살짝 가슴이 떨려왔다.

하지만 보는 사람이 많으니 긴장한 표정을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보는 사람도 많으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는 권세아 대리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권세아 대리님?”

“······네?”

“축구 잘하세요?”

“네?”

“음, 축구 잘하시냐고요?”

“······.”

권세아 대리의 얼굴이 살짝 딱딱하게 경직되는 듯했다.

“에휴······.”

권세아 대리가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할 때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이런 일은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서툰 건지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느낌.

권세아 대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나의 표정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녀는 평소의 당찬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과장님, 가요. 저랑 커플 축구하러 가자고 오신 거죠?”

“네? 네.”

권세아 대리가 나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나의 손을 확 낚아챘다.

“어?”

나는 깜짝 놀라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권세아 대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보고 과장님, 커플 축구라면서요. 손잡고 뛰는 거라고 하던데 설명 제대로 안 들으셨어요?”

“아······.”

‘맞긴 맞는데······.’

그런데 지금부터 손을 잡고 갈 필요는 없는데······.

당당한 표정으로 나의 손을 끌고 앞으로 걸어가는 권세아 대리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속마음을 드리지 않으려는 애써 당찬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예쁜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주 잡은 손 너머로의 빠르게 뛰는 그녀의 심장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 *

- 해신해운 본사 10층 법무팀

며칠 뒤.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

정재훈 사원이 의자를 뒤로 쭉 밀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장보고 과장님, 저녁에 바쁘세요?”

“음? 왜?”

“아, 뭐 별다른 약속 없는건지 궁금해서요.”

“무슨 약속?”

“흐흐흐.”

정재훈 사원은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오른쪽으로 까딱거렸다.

그쪽 방향은 법무팀 옆으로 경영기획팀이 위치한 곳이었다.

“······.”

이 자식이!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정재훈 사원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계속 놀렸다.

“하긴 뭐, 권세아 대리님도 저녁에 따로 약속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

이 자식은 나도 모르는 걸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흐흐흐. 아까 자료 나눠드리러 갔다가 슬쩍 물어봤거든요.”

“······.”

그러니까 왜 그런 걸 물어보고 다니냐고!

“회사에 소문이 났거든요.”

“무슨 소문?”

“장보고 과장님이 의외로 얼굴값 못 하는 스타일이라고....”

“······.”

“생긴 거하고 다르게 연애 쪽으로는 의외로 쑥맥이 아니냐고 사람들······.”

“······.”

“특히 여직원들 사이에서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고······.”

“음······.”

“누가 과장님 보고 해신해운에서 가장 잘생긴 쑥맥이라고....”

“······.”

이런······.

‘이놈들아! 할일이 많다고!’

잘못된 소문이 전파되고 있는 모양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건데 사람들의 오해가 깊어 보였다.

전생에 못 다한 일을 하느라 바빠서 그렇지.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연애 무능력자는 아니었다.

뭐, 그런 오해를 애써 불식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마음에 드는 소문은 아니라는 것도 분명했다.

‘조만간 실력(?)을 좀 보여줘야겠어.’

그때 컴퓨터 모니터 화면이 반짝거렸다.

- 띠링!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누군가 메시지를 보내자 사내 그룹웨어 메신저가 반짝거리며 떠올랐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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