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164/200)

그의 배우자도 사실은 다단계 사기 사건의 실질적인 피해자였다. 하지만 초기에 가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초창기 가입 멤버들에게 수익을 일부 나눠주는 다단계 사기 사건의 특성상 가입 초기 약간의 수익을 거둔 사실이 있었다.

청문회에서 야당의 집중 공세가 벌어진다. 장관 후보자의 아내가 다단계 사기에 연루되었다는 공세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오재민은 자진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생은 전생과 사정이 다르다.

부산에서 활동하던 조의칠 일당은 나의 활약으로(?) 초기에 진압되었기 때문이다.

“고민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으신가요?”

“음, 사실 내가 이렇게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네 도움이 크지 않은가?”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전생에 나와 인연이 없을 때도 그는 해양수산 분야에 큰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현생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그의 말은 정답이다.

‘사실 해양수산부 장관이 된다면 절반 이상은 나 덕분이라고 봐야지!’

“흥!”

내가 별 대답을 하지 않자 오재민 의원이 콧방귀를 끼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예의상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자네도 참 한결같군.”

“사람이 변하면 쓰나요. 초심을 지켜야지.”

오재민 의원이 고개를 한번 가로저었다.

“사실은 업계의 반대가 있다는 소문이 있다네.”

음? 이게 무슨 소린가?

“업계요? 무슨 업계가 반대를?”

“정유업계가 비공식적으로 당 지도부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는 소문이 있네.”

“정유업계요?”

“그래.”

정유업계?

정유업계라면 이놈들이 아직도 몇 년 전 앙금이 남아 있다는 뜻인가?

‘뒤끝이 제법 오래가는 놈들이군.’

정유업계는 유조선 단일선체 금지법 입법 당시 비용 증가로 인한 소비자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반대를 했던 일이 있다.

하지만 내가 물밑에서 선주협회를 동원하고 AP사를 등장시켜 여론 싸움을 벌여 승기를 잡았다.

그때부터 정유업계가 오재민 의원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재민 의원이 주저하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일개 기업도 아닌 한 산업계가 반대 의견을 표출한다면 정치권에서도 상당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포기할 순 없지.’

그때.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흐흐흐. 왜 안 나타나나 했네!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오재민 의원을 해양수산부 장관이 될 수 있도록 서포트하세요!”

세부 퀘스트 : 입각

클리어 조건 : 오재민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입각

제한 시간 : 차기 내각 구성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정치권 인맥

실패 시 : 해운 및 조선 산업의 위기, 해신해운 파산 가능성 상승

+

‘뭐? 이 정도라고?’

나는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창 메시지를 읽은 후 오재민 의원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퀘스트에 실패하는 경우 주어지는 페널티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예상 밖인걸.’

오재민 의원이 그 정도라니. 그의 손에 해양수산부의 미래와 해신해운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자 새삼 그가 달리 보였다.

내가 오재민 의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재밌네요.”

“음? 뭐가?”

“해양수산부 장관을 뽑는 일인데요. 해운업이나 조선업도 아니고 정유업계가 반대한다는 게 웃겨서요.”

“허허허.”

오재민 의원도 표정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일단, 걱정하지 마시고 잠시 지켜보시죠.”

“음?”

“제가 방법을 좀 찾아보겠습니다.”

“······?”

오재민 의원은 가라앉은 나의 목소리를 듣자 영도에서 영도 박수를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 듯 몸을 부르르 살짝 떨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나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살짝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 * *

-해신해운 본사 10층 법무팀

다음 날.

일찍 출근한 나는 조간신문을 펼쳤다.

승선 생활의 습관 때문일까?

인터넷 뉴스로 대부분의 정보를 습득하는 시대였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며 종이 신문을 보는 것을 루틴으로 삼고 있었다.

‘어디 한번 볼까.’

+

신라일보,

“해양수산부 장관 해운 항만 분야 전문가를 뽑아야”

장관 후보 2차 발표를 앞두고 해수부 장관 후보로 수산 전문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한국해운산업발전을위한모임(회장 김XX)은 11일 ‘해운업과 조선업, 항만업을 가장 잘 아는 정치력 있는 유력 인사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되기를 원한다’ 제하의 긴급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대한민국 해운, 조선업계는 새롭게 출발하는 내각에 바라는 바가 매우 크다.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해운업과 조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혁신적인 전환의 정책 도입이 절박한 시점이기에 해운업과 조선업을 잘 아는 인사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되기를 염원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해양수산부 업무 중 해운 항만 부문은 특히 중요하고 국가 산업의 중심이 되는 기간산업이라며, 전문성과 특수성을 요구한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는 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위해 정치력 있는 전문가를 장관으로 탄생시켜야 한다”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들은 해수부 장관 후보로 4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해운업에 전문 지식을 갖춘 현장 전문가 △정책을 이행할 수 있는 통찰력과 강한 의지, 추진력을 갖춘 정치력이 있는 사람 △해양수산업의 현장에 살아 있는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 △기업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강력한 개혁을 실시할 수 있는 사람 등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으로는 하마평에 오른 오재민 의원이 적임자라는 의견을 밝혔다.

(중략)

+

‘음!’

뭐, 좀 약하지만 여론전의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유혜영 기자···.’

기사를 작성한 사람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전생에 배우자였던 사람의 직장 상사라서 되도록이면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드르륵!

사무실 책상 위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당연히 유혜영 기자였다.

“여보세요, 장보고입니다.”

“장보고 과장님? 저 유혜영입니다.”

“네, 기자님.”

“기사 내용 보셨어요?”

“네, 잘 봤습니다.”

“그 정도면 어떻게 마음에 드셨을까요?”

“음, 일단은 그렇습니다.”

“일단은? 말이 심하시네! 제가 어제 급하게 기사 만든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허허허. 그런데, 사단법인 한국해운산업발전을위한모임은 실제로 있는 단체입니까?”

“당연하죠! 인터뷰 따느라고 고생했다고요. 그리고 기자가 어디 없는 이야기를 쓰나요!”

음?

‘뭐, 그런 일도 있던데?’

하지만 입 밖으로 그런 소리를 내진 않았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같은 편이니까.

유혜영 기자가 말을 이어갔다.

‘뭐, 뭐야?’

그녀의 목소리가 좀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뭐랄까. 애가 타고 있는 그런 목소리? 아니면 애교가 잔뜩 섞인 그런 목소리?

유혜영 기자가 말했다.

“그럼, 우리 오늘 만나는 거죠?

도하에너지 (1)

-해신해운 본사 10층 법무팀

“오늘요? 오늘 만나자고요?”

“과장님! 진짜 이러기예요?”

“음?”

유혜영 기자는 내가 대답을 얼버무리자 다시 한번 대답을 재촉했다.

“제가 그렇게 보고 싶습니까? 허허허.”

“무슨 소리예요! 그렇게 선심 쓰듯이 말하지 말라고요!”

“알았습니다. 알았다니까요.”

“특종감 아니기만 해봐요.”

“제가 언제 특종감이라고 했습니다.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지.”

“그게 그거죠. 기차의 촉을 무시하지 않는 게 좋아요. 제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요.”

“음?”

“장보고 과장님 주변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들이 많이 터지는 게 뭔가 있다고요.”

“있긴 뭐가 있습니까?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속이 뜨끔한 나는 나도 모르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멀면 아쉽고, 가까이하기는 무서운 사람들이다.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유혜영 기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 해운, 조선, 항만업 관련 전문성 있는 좋은 기사들을 많이 보도한 탓인지 유혜영 기자는 업계에서 제법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었다.

‘앞으로 언론 플레이도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지.’

나는 전생에 언론 플레이에 소극적으로 나섰던 해신해운의 말로를 목격한 사람이다.

해신해운이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용선 계약을 맺은 채권자들은 갖가지 언론 플레이를 해가며 해신해운을 압박했다.

이례적으로 해신해운이 제시한 조건들까지 낱낱이 공개하는 매너 없는 행동을 보였지만 막다른 궁지에 몰린 해신해운이 채권자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구조 조정에서도 마찬가지.

해신해운의 파산 과정에서 정부, 금융권, 해운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여론전이 펼쳐졌다.

특히, 해신해운과 미래상선 사이에 어느 해운 회사를 살리고, 어느 회사를 파산시킬 것인지 치열한 눈치 싸움이 정부를 상대로 벌어졌다.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결국 미래상선이 살아남고 해신해운이 파산한 것은 정치력에 밀린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앞으로 유혜영 기자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 * *

잠시 후. 지금 시간은 오전 7시 30분.

해신해운 본사 10층은 아직 고요했다. 이제 곧 사람들이 하나둘씩 출근할 시간.

일찍 출근해서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 창가에 서서 커피를 한잔 마신다.

마치 이 사무실 전체를 나 혼자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평범한 직장인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의 시간이다.

창밖에는 일찍 출근하는 금융권 직장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큰 빌딩의 창가에서 밖을 내려다보자 마치 회사의 주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9층에서 밖을 바라보면 어떤 기분일까?’

해신해운의 경영진 사무실은 9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전생에는 생각해본 적 없던 궁금증이 생겨났다.

오전 7시 50분.

“안녕하십니까!”

활기찬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각 팀에서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오! 장 과장 굿모닝!”

“네, 팀장님 일찍 오셨네요.”

“허허허. 오늘도 2등이네. 장 과장이 오기 전에는 내가 매번 1등이었는데 말이지.”

현재형 법무팀장이 실없는 농담을 하며 자신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재형 팀장은 성실한 사람이다. 팀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장 빠르게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다.

시간은 8시 25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해신해운의 공식적인 근로 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다.

하지만 본사의 직원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출근 시간은 8시 30분. 30분가량 일찍 출근해서 서비스(?)로 일을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래서 해신해운 본사 직원들이 가장 많이 출근하는 시간이 바로 8시 20분에서 30분 사이.

시간을 맞춰 출근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저기에서 아침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인사 소리가 들렸다. 신입 사원다운 우렁찬 목소리?

법무팀의 다른 사람들은 한 사람만 빼고 모두 도착한 상태였다.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신입 사원. 정재훈 사원이었다.

“과장님,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흐흐흐.”

“어! 왔나? 굿모닝.”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신입 사원들은 신생아와 다름이 없는 존재다. 걷는 법부터 뛰는 법까지 회사 선배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 중에는 신입 사원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신입 사원들이 입사하게 되면 기라성(?) 같은 선배들로부터 여러 가지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베풀기 위해서 노력한다.

‘신입 사원에게 업무적 역량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신입 사원들의 기를 죽이고, ‘최소 3년은 회사에서 돈을 주면서 교육하는 시간’이라고 하면서 ‘너에게는 일말의 기대감도 없다’는 살벌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배들이 즐겨 하는 잔소리가 있다.

바로 출근 시간에 관한 팁이다.

신입 사원에게는 근태가 첫 번째라며 신입 사원이라면 최소 30분 전에 출근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꼰대 같은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다른 팀 신입 사원들은 다들 일찍 출근 도장을 찍건만 정재훈 사원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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