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200)

웃음을 터트리던 권도성 과장이 앞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다음부터 할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안 된다는 듯.

“전화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준비하고 있는 입찰이 하나 있습니다.”

권도성 차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아직 업계에 공식적으로 발표가 난 사건이 아니라서요. 소문을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조용히 끄덕였다.

“혹시 우리나라에 LNG 가스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어딘지 아십니까?”

“카타르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카타르에 있는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업체가 있습니다.”

“도하에너지(Doha Energy).”

권도성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도성 차장은 나의 대답에 의외라는 표정.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LNG 쪽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하시더니 빠삭하시네요?”

나는 대답 대신 그저 미소를 살짝 지었다.

“그런데, 도하에너지(Doha Energy)에서 준비 중인 초대형 장기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가 나지는 않았지만 며칠 전에 우리나라로 출장을 온 도하에너지의 담당자를 만났는데 슬쩍 알려주더군요. 준비를 잘하라며.”

“SFE(South Field Expansion) 프로젝트 아닙니까?”

“풉!”

권도성 차장은 나의 말에 깜짝 놀라 홀짝이고 있던 헛개수를 뿜어냈다.

“켁켁! 아! 이거 죄송합니다.”

“허허허. 괜찮습니다.”

“너무 놀라서 이거 실수했습니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음······, 저도 사실 뭐, 중동에 커넥션이 좀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쪽 지역에 알게 된 사람들이 제법 한가락 하는 사람이거든요.”

전생의 기억으로 알게 된 내용이었지만 나는 적당하게 얼버무리며 둘러댔다.

“역시!”

“네?”

뭐지? 권도성 차장이 나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도하에너지 담당자가 저를 불러 따로 이야기를 해주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

“이번 입찰을 준비할 때 장보고 과장의 도움을 꼭 받으라고 하더군요.”

“네? 저를요?”

“네, 입찰에 장보고 과장님을 꼭 참여시키라고 하던데요.”

“······?”

이게 무슨 소리지?

난 도하에너지에는 딱히 아는 바가 없었다.

“음,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그런가요?”

“네.”

권도성 차장의 얼굴에는 살짝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하는 표정.

“담당자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을 텐데···.”

“허허허. 죄송합니다. 저도 무슨 이유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건지는 짐작이 잘 안되네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뭐, 일단 내일 도하에너지 측 담당자가 본사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내일요?”

“네, 내일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참석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나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내일 한번 알아보시죠! 무슨 일인지.”

“하하하. 그것도 좋습니다.”

권도성 차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자신감 있는 나의 모습에서 기대감을 가진 것일지도 몰랐다.

* * *

-해신해운 본사 10층 법무팀

법무팀 자리로 돌아온 나는 빠르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도하에너지라······.’

이상한데? 도하에너지와는 전생에도 별다른 인연이 없었고, 현생에서도 마찬가지.

[도하에너지]

타타닥. 인터넷 검색창에 도하에너지를 입력했다.

국내외 뉴스를 빠르게 검색했지만 특별한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별 내용이 없는데···.”

[카타르]

“어!”

카타르라고 치자 깜짝 놀랄 뉴스 기사가 떠올랐다.

“카타르 ‘제3 왕자’, 대세 왕위 계승자 형을 밀어내고 왕위 계승 1순위로 올라”

‘벌써?’

카타르 왕위 계승이 벌써 이루어진다고?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카타르 왕이 물러난 시기는 2010년대. 아직 몇 년 후의 일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뉴스를 클릭했다.

+

“카타르 ‘제3 왕자’, 대세 왕위 계승자 형을 밀어내고 왕위 계승 1순위로 올라”

카타라의 ‘실세’로 불렸던 카타르 왕실의 제1 왕위 계승자가 물러났다.

카타르 국영 방송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카타르 국왕은 21일(현지 시간) 제3 왕위 계승자인 제3 왕자를 제1 왕위 계승자로 임명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카타르 제3 왕자는 국방 장관의 직을 겸임하게 됐다. 이 같은 칙령은 이날 열린 왕위계승위원회 위원 34명 중 31명의 찬성으로 결정됐다.

그동안 계승 서열 1위로 알려졌던 제1 왕자는 이 칙령과 함께 모든 공적 지위가 박탈됐다. 제1 왕자는 그동안 왕위 계승 순서에서는 앞섰지만 실세인 3왕자와의 권력 싸움에서 지난 몇 년간 서서히 밀려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카타르 국왕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천연가스 개발 등 경제 개발에 집중해 카타르를 부국의 반열에 올려놨다는 평을 받는 인물, 그의 나이가 아직 60대인 점을 고려하면 지금 당장 국왕의 자리를 양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제3 왕자가 카타르 왕정을 지탱하는 군과 에너지 산업을 관장하면서 서열을 뒤집은 만큼 앞으로 카타르의 권력은 제3 왕자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카타르 제3 왕자는 젊은 감각을 내세우며 카타르의 차세대 개혁을 주도할 예정이라고 관측되고 있다, 카타르 최대 국영 에너지 업체인 도하에너지의 기업 공개(IPO) 역시 그가 이끌고 있다.

(중략)

+

‘음, 크게 다른 건 없구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의 기억보다는 조금 빠르지만 크게 변한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왕위 계승에서 완전히 밀려났던 것으로 평가되었던 카타르의 제3 왕자가 그동안 착실히 실권을 회복한 모양.

드디어 그 결실을 맺고 왕위 계승 1순위에 올랐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예상과 달리 조기에 양위 작업이 이루어진다. 얼마 남지 않은 미래에 왕권이 완전하게 넘어갈 것이 분명했다.

‘이 일 때문이었구나!’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

나와 인연이 없던 도하에너지 측에서 나를 지목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카타르에서 추진 중인 SFE 프로젝트에서 입찰을 따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맥으로 다 되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야.’

나도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겸사겸사 오랜만에 인사라도 한번 드려야겠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쁘신 분 아닙니까?”

“······.”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동안 바쁘실까 봐 먼저 연락도 못 드렸습니다.”

반가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너스레를 떨었다.

“의원님, 죄송합니다. 제가 자주 연락드렸어야 하는데요.”

“허허허. 에끼! 이 사람아! 그래 연락 좀 자주 하고 살자고 몇 번을 말했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국회의원 오재민 의원이었다.

“바쁘실까 봐 연락을 못 드렸죠. 요즘 워낙 잘나가시니까요.”

“하하하. 그래 내가 바쁘긴 하지.”

오재민 의원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과거 영도구청장이었던 그는 성공적인 정치인으로 여의도에 자리 잡았다.

재선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내각에 입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인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었다.

LNG 운반선 입찰 (3)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을 지나 국회의사당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인적이 드물고 한적한 분위기.

같은 여의도에 있지만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본사 근처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해신해운 본사가 위치한 곳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증권사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었다.

‘오랜만이네.’

해신해운 본사도 여의도에 위치하고 있으니 멀지는 않다. 하지만 좀처럼 올 일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 해적 사건 이후 국정 감사와 유조선 단일선체 금지법안 관련 기자 회견을 할 때 왔던 이후로 처음이다.

종종 오재민 의원이 한번 들르라는 말을 하곤 했지만 선뜻 방문하기는 어려운 곳이기도 했다.

의원실로 올라 오재민 의원실을 찾았다.

초선 의원일 당시 오재민 의원이 사용하던 방과는 위치가 달랐다.

재선 의원으로 당선이 돼서 그런지 좀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방으로 배정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똑똑!

노크를 하자 방문이 열렸다.

“오! 자네 왔나?”

방 안에서 나를 발견한 오재민 의원이 손을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종종 전화 통화는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얼굴을 보는 것은 몇 년 만이다.

‘음? 뭔가 좀 변한 거 같은데?’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오재민 의원의 얼굴은 예전이랑은 좀처럼 달랐다.

자신감도 넘치고, 온몸에도 기세가 넘쳐흘렀다. 예전에 영도 박수무당 앞에서 전전긍긍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재선 의원의 포스가 아닌데?’

몸 전체에 자신감도 넘치고 얼굴 전체에 살짝 밝은 빛이 들어온 느낌. 이런 게 관복이 있는 그런 얼굴인가?

관상가도 아니고 관상을 볼 줄도 몰랐지만 오재민 의원의 얼굴은 신수가 훤해진 느낌이 들었다.

뉴스에서 자주 보는 당의 중진 의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무게감이 느껴진달까?

‘허허허. 참 사람 일은 알 수가 없구나.’

크게 의도한 일은 아니었다. 전생에 제법 좋은 의원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와 엮인 일이 있어 이런저런 사건에 개입했던 것인데 그의 인생은 크게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오재민 의원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거참! 얼굴 한번 보기가 이렇게 어렵군!”

“허허허, 죄송합니다.”

“그래, 자세한 내용은 방 안으로 들어가서 하지.”

오재민 의원이 자신의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의원님 좋은 소식 들리던데요?”

“음?”

방으로 들어서자 나는 서류 가방 안에 있던 신문을 꺼내 들었다.

+

신라일보,

“해양수산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는 사람들”

대통령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차기 해수부 장관 후보로 오재민 국회의원이 강력한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그 외에는 관료 출신으로 조xx 항만공사 사장, 신xx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학계에서는 김xx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재민 의원은 현역 재선 의원이면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오 의원은 그동안 해양수산부 산업과 관련된 입법 활동에 매진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오 의원이 발의한 유조선 단일선체 금지법안으로 인해 몇 년 전 발생한 서해 H 스피드호 유조선 충돌 사고 당시 큰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입각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오재민 의원(경남 통영시·고성군) 또한 재선 의원으로 XX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행시 XX회 출신으로 부산시 근무를 비롯해 영도구청장을 역임했다. 이후 XX대 국회로 정계에 입문한 오재민 의원은 성실한 의정 활동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했다.

(중략)

유혜영 기자

+

“하하하. 자네도 그 기사를 봤군?”

오재민 의원이 신문 기사의 내용을 확인한 후 크게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국회의원들은 어쩔 수 없는 관심종자들이다.구설수만 아니라면 언론에 오르는 것은 언제나 실보다는 득이 많았다.

좋은 소식에 나도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의원님 축하드립니다. 그럼 이번에 입각하시는 건가요?”

“하하하. 아직 고민 중이라네.”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오재민 의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결심을 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건 좀 의외네.’

오재민 의원은 전생에도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청문회까지 나간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당연히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전생에도 청렴하고 능력도 좋다는 평을 들었던 정치인.

지금과 달리 전생에는 유독 유순한 성향의 사람이라는 평가가 그의 흠이었다.

전생에 오재민 의원은 해양수산부장관 후보자로 청문회에 나서지만 가족 문제가 구설수에 올라 결국 자진 사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배우자가 대한민국의 역대급 사기 사건인 조의칠 다단계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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