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200)

권동민 전무실.

권동민 전무는 반짝이는 검은색 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중역용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책상 위로 올리고 있었다.

“감히······.”

권동민 전무는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자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더욱 경직되어 갔다.

권동민 전무는 분을 참지 못한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말할 때마다 콧구멍을 살짝 벌름거렸다.

“어디 쥐뿔도 없는 자식이 감히 사람들 앞에서 말대답을 해!”

“······.”

화가 잔뜩 난 권동민 전무 앞에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자금팀장과 구매팀장. 재무그룹 산하 팀들의 장.

두 사람은 고양이 앞에 쥐처럼 잔뜩 어깨를 움츠렸다.

이럴 때는 그저 권동민 전무의 화가 식기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이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장보고 그 자식은 관리를 잘해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괄괄한 권동민 전무의 목소리에 자금팀장 성민호 상무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권동민 전무의 성정이 불이라면 자금팀장 성민호 상무는 물이다. 성민호 자금팀장이 권동민 전무의 최측근으로 오래 자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재무그룹은 자금팀, 회계팀, 수입분석팀, 구매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재무그룹의 중심은 회사의 돈줄을 쥐고 있는 자금팀이라고 할 수 있다.

“저기······ 전무님.”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구매팀장이 말했다.

구매팀장은 최근에 재무그룹장의 눈에 들어 그의 라인을 타기 시작한 인물.

만년 부장을 넘어 임원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권동민 전무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을 필요가 있었다.

“음? 구매팀장 무슨 의견이 있나?”

“네, 장보고 과장은 큰 신경 안 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뭐?”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던 권동민 전무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게 무슨 뜻인가?”

“장보고 과장 말입니다. 그저 배나 타다가 얼마 전에 육지로 올라온 놈이 아닙니까?”

“······.”

구매팀장은 권동민 전무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말을 이어나갔다.

“아직 소금물도 제대로 빠지지 않은 놈입니다. 전무님이 구태여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

쾅!

권동민 전무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발로 책상을 걷어찼다.

“이··· 미친 새끼가!”

휘릭! 권동민 전무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결재판을 구매팀장을 향해 집어 던졌다.

“아이고!”

구매팀장이 허리를 숙여 가까스로 결재판을 피해내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이봐! 자네 제정신인가?”

“네?”

“당장 꺼져! 이 눈치 없는 새끼!”

“······?”

“다시 한번 그딴 소리를 지껄이면 8층에서 당장 책상을 빼게 해 줄 테니 생각을 하고 이야기하도록!”

“네? 네!”

자금팀장 성민호 상무가 나섰다.

“전무님,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자자, 나가봅시다.”

“네, 네.”

성민호 상무가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구매팀장의 등을 두드렸다. 두 사람은 황급히 권동민 전무의 방을 빠져나왔다.

“장보고라······.”

방에 남아 있는 권동민 전무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경영기획본부장인 도형준 전무의 측근이라고 했었던가?’

자금팀장이 말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골치 아픈 이유도 그 때문이다.

도형준 전무. 임원 중에 아버지 권영호 회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심증을 가늠할 수 있는 인물.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그런 것일까. 도형준 전무도 아직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를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

* * *

-해신해운 본사 10층 법무팀

며칠 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이후 지난 며칠간 평온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과장님.”

옆에 앉아 있던 정재훈 사원이 말을 걸었다.

“이상하게 조용하지 않아요?”

“뭐가?”

“사무실이 조용하니까 이상하지 않아요?”

“그럴 수도 있지.”

“과장님이 우리 팀에 온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거든요.”

“······.”

뭐지? 나를 문제의 원흉으로 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은?

‘근데 이 자식이!’

그때였다.

따르릉!

“헉! 과장님!”

정재훈 사원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나는 정재훈 사원을 향해 주먹을 들어 한차례 경고를 한 후 빠르게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법무팀 장보고 과장입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저는 탱커(Tanker)팀 권도성 차장이라고 합니다.

“네, 차장님 안녕하세요.”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잠시 올라가도 될까요.

“음? 지금이요?”

-네.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이번에 LNG(액화천연가스) 선박 용선 계약 입찰 건이 있는데 조언이 좀 필요해서요.

“저한테 조언을 구하신다고요?”

-네.

이상하네.

탱커팀에서 나에게 연락을 하다니?

‘승선 경험 때문에 조언을 구하려고 하는 건가?’

탱커팀은 유조선이나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인 LNG선 같은 선박들을 운항하고 영업하는 팀으로 벌크사업본부 소속이다.

그런데 그것도 이상하다. 나는 LNG선을 승선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음?’

잠깐, 그런데 LNG(액화천연가스)선이라고?

머릿속에 한 국가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 액화천연가스를 수출하는 곳. 그 나라는 카타르였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업체가 LNG선을 운항할 해운 회사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이 공고될 예정입니다. 반드시 입찰을 따내세요!”

세부 퀘스트 : LNG선 용선 계약 입찰

클리어 조건 : 입찰 성공

제한 시간 : 선정 종료 시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수익성 악화, 글로벌 명성 하락

+

‘잠깐! 역대 최대 규모의 LNG선 입찰이라고?’

머릿속에 대규모 입찰 전쟁이 치러졌던 사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생의 기억보다는 살짝 앞당겨진 시점이라는 점은 차이가 있었다.

그건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 수출국인 카타르가 추진한 SFE(South Field Expansion) 프로젝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용선 입찰 전쟁이다.

SFE 프로젝트는 가스전을 확장하는 국가 전략으로 카타르는 연간 LNG 생산 능력을 현재 7,700만t에서 1억 1,000만t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카타르의 국영 기업인 도하에너지(DohaEnergy)가 있었다.

‘그 프로젝트가 바로 지금이었구나!’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도하에너지가 국내 조선 ‘빅3’ 조선 회사와 중국 조선업체 1곳 등 총 4개의 조선 회사와 체결한 슬롯 협약은 LNG 운반선 총 150척 이상을 건조할 수 있는 물량이었다.

해운 회사가 운항하는 선박 중 가장 비싼 선박인 LNG 운반선이 총 150척.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계약이었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도하에너지는 SFE 프로젝트에 1차로 투입될 LNG 운반선 45척에 대한 신조선 상업 입찰 제안서를 글로벌 주요 해운 회사에 요청한다.

전생에 이 입찰 전쟁에 참여한 회사들 중 경쟁력을 보인 곳은 한국과 일본의 선사들이다. 입찰 경쟁은 한국과 일본의 2파전 양상으로 전개된다.

국내에서는 총 5개의 해운 회사가 입찰에 참여했고, 일본의 경우 일본 3대 선주들이라고 불리는 해운 회사들이 입찰에 참여한다.

아시아 선주 외에는 그리스와 캐나다의 해운 회사들도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이 입찰을 따낼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발주 물량을 따내는 것.

최초로 발주된 물량을 선점하면서 문제없이 운항을 한다면 후속 입찰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전생에 해신해운은 초기 계약을 따내는 데 실패한다.

도하에너지가 최초로 발주한 총 4척의 LNG 운반선의 운항 선사로 입찰된 곳은 아쉽게도 일본의 해운 회사였다.

일본은 과거 LNG 사업과 관련해서 카타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국가. 일본의 해운 회사들은 LNG선 운항에 제법 노하우가 있는 회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놓칠 수 없는 프로젝트인데, 마땅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LNG 운반선에 승선한 경험도 없고, 달리 전생에 이 입찰과 관련해서 일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LNG 운반선 입찰 (2)

-해신해운 본사 6층 벌크사업본부 탱커팀 회의실

나는 벌크사업본부가 있는 본사 6층으로 들어섰다.

자동문이 열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흐. 여기는 오늘도 활기차네!’

완전 경쟁 시장이라고 평가되는 벌크선 영업 시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전사들답게 6층은 언제나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벌크선 시장은 경기가 호전되어 수출입 물량이 증가하면 시장이 활성화되고 반대로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면 벌크선 시장도 침체되는데 일반적인 시장 경기보다 한발 빠르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벌크선 시장은 주식 시장같이 매일 시세가 변동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컨테이너선 사업과 달리 매우 다이내믹하다. 다른 컨테이너사업본부와 비교해서 벌크선사업본부가 유난히 활기차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화물의 종류별로 선종(선박의 종류)을 구분하면, 컨테이너 화물을 운송하는 컨테이너선, 원유 혹은 석유 화학 제품 등을 운송하는 유조선, 곡물이나 철광석 같은 원자재를 운송하는 벌크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해신해운은 벌크사업본부 안에 탱커팀을 두어 유조선과 케미컬 선박을 담당하게 하고 있었다.

‘탱커팀은 저쪽이었지.’

나는 6층의 가장 오른편을 향해 걸어갔다. 탱커팀이 위치한 곳이다. 맨 왼쪽에 벌크기획팀이 위치하고 있고, 그 옆으로 선박의 크기 순서별로 팀이 배치되어 있었다.

유조선과 케미컬선을 담당하는 탱커팀은 다른 일반 벌크선과는 구조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가장 오른쪽에 독립적인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탱커선은 보통 원유를 수송하는 Crude oil Carrier, 원유정제를 거친 석유 제품을 수송하는 Product Carrier, 석유 화학 제품 및 동식물유 등을 수송하는 Chemical Tanker 등으로 구분되는데, 해신해운 탱커팀은 그 외에도 LNG 선박의 운항과 영업도 담당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사용하는 액화 천연가스를 전량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사용하는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는 LNG선을 통해 운송할 수밖에 없었다.

LNG 사업은 대규모 초기 투자 비용이 발생하여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사업.

하지만 이 마켓에 진입하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일단 시장에 진입하면 성공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쉬운 사업이라는 뜻.

“아 장보고 과장님?”

탱커팀이 있는 곳으로 다가서자 나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키는 보통에 날씬한 체구.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똑똑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 탱커팀의 권도성 차장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권도성 차장님?”

“네 맞습니다.”

권도성 차장이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이거 듣던 대로 정말 미남이시네요.”

“아 네, 제가 좀 그렇습니다(?).”

“하하하. 유머 감각까지 있으시고.”

“허허허.”

‘농담이 아닌데?’

그나저나 권도성 차장은 날카로운 인상과 다르게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나를 두고 미남이라고 칭찬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장보고 과장님, 그럼 저쪽 회의실로 먼저 가시겠습니까? 마실 것 좀 챙겨서 오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권도성 차장이 6층 오른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회의실을 가리켰다.

잠시 후 권도성 차장이 종이컵 두 잔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하하. 장보고 과장님 갑자기 연락드려서 놀라셨죠?”

“아 네, 갑자기 연락한 것도 그렇지만 LNG선 관련해서는 사실 제가 아는 게 별로 없는데요.”

“음······.”

권도성 차장이 오른손에 든 종이컵을 조용히 내밀었다.

“드시죠. 제 와이프가 직접 우려낸 헛개수입니다. 몸에 좋다고 해서 회사에서도 커피 대신 마시고 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장 과장님, LNG선 영업에 대해서 좀 아시는 게 있으신가요?”

“잘은 모릅니다.”

뭐, 업계에 있다 보니 당연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긴 했다.

탱커팀의 주된 영업 상대방은 한국에서 독점적으로 천연 액화가스(LNG)를 수입하는 공기업. 독점 기업은 영업 세계에서는 갑 중의 갑이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하는 영업은 매우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네, 뭐······, 영업이라는 게 다 그렇지만 술을 잘 마시면 됩니다.”

“술이요?”

“네, 장 과장님은 술 좀 드십니까?”

“음,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더군요.”

“그래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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