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 (161/200)

이 사람의 기행은 금융권에서도 금방 이슈가 되었다.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간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계약 체결을 너무 서둘렀던 것일까. 예상과 달리 시장이 폭락되기까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그 기간 동안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 펀드를 운영하던 그는 내외부의 심한 압박을 받게 된다.

하지만 결국 파산의 순간이 도래했다.

2007년 4월경 모기지론을 거래하던 업계의 대형 회사가 무너진다.

대출 신청 접수를 정지한다는 발표를 하고 뉴욕 증권 거래소에서 거래가 정지되었다. 영국의 은행이 9억 달러에 달하는 모기지 대출 상환을 요구했으나 모기지 업체가 가진 현금은 6천만 달러에 불과했다.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고. 하락에 베팅한 펀드 매니저는 약 26억 달러의 수익을 얻게 된다.

전생을 기억을 떠올리자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그런데 권세아 대리는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나는 흥미로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권세아 대리는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권동민 전무의 시선이 매서웠기 때문이다.

권동민 전무가 말했다.

“신용 부도 스와프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뭐, 대형 투자 은행들이 CDS(신용 부도 스와프)를 체결하는 게 대수인가?”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CDS라면 그다지 특별할 이유가 없습니다.”

“음? 그런데?”

“한 헤지 펀드가 대형 투자 은행과 신용 부도 스와프를 체결했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하락에 베팅하는 거래를 했다고 합니다.”

“······!”

권동민 전무는 이해를 제대로 하는 것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스크매니지먼트 파트장 진채호 부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서브프라임 상품 관련해서는 보험이나 옵션이 그동안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권세아 대리가 말을 이어갔다.

“네, 그 헤지 펀드에서 미국 주택 시장이 곧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막대한 금액을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거래를 했다고 합니다.”

“금액이 얼마나 되나?”

“추정이지만 13억 달러 상당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1조 5천억 원 상당입니다.”

“뭐? 1조 5천억?”

“네, 그렇습니다.”

“허허허,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군!”

권동민 전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큰 웃음을 터트렸다.

하락을 예측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도박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정확한 분석을 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런 거액을 베팅하다니? 해운 회사의 자금 집행을 담당하는 권동민 전무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평소 헤지 펀드나 투자 은행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권동민 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음, 그런데 결론은 결국 미국의 헤지 펀드 한 곳이 그런 계약을 투자 은행과 체결했다는 말이 아닌가?”

“네? 네, 맞습니다.”

권세아 대리가 권동민 전문의 질문에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말을 이어가는 권동민 전무의 시선은 권세아 대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권동민 전무의 눈빛은 어딘가 탐탁지 않았다.

‘뭐? 아직도 안 넘어왔단 말이야?’

권동민 전무. 제법 고집이 있는 놈이었다.

주관이 뚜렷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부하 직원들의 충언을 들을 줄도 모르는 똥고집인가?

안절부절못하는 권세아 대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권동민 전무와 얽히고 싶지 않았을 텐데. 이번 회의에 굳이 나서서 나를 도운 그녀였다.

권동민 전무가 말을 이어갔다.

“음, 그래도 무엇인가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드는군.”

“······!”

“그리고 유가가 하락하면 우리 회사 비용 구조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닌가?”

권동민 전무가 구매팀장에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그래··· 안 그래도 신조선 인수 비용과 용선료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유가라도 하락한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권동민 전무가 혼자 중얼거렸다.

현재 해신해운의 재무그룹의 최대 고민은 바로 신조선 인수 비용이었다.

용선료와 연료유 구매 비용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주관 부서가 재무그룹 소속이 아니다.

컨테이너선의 용선 비용은 선대기획팀, 벌크선의 용선 비용은 각 벌크선 영업팀들이 주관하는 업무. 하지만 신조선 인수 비용은 다르다.

선박 금융 계약을 체결하는 주관 부서가 바로 자금팀. 재무그룹의 중추인 팀이다.

그리고 최근 컨테이너 선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탓에 신조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조달 비용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재무그룹에서는 고민이 커지고 있었다.

고민이 깊었던 탓에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권동민 전무.

나는 그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바라보았다. 신조선 인수 문제도 곧 처리해야 할 문제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생각을 마친 권동민 전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장보고 과장 의견은 무엇인가?”

“일단 AP사와는 연료유 구매 계약에서 최소 구매 수량을 제외하는 조건을 협의 중에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보다 좋은 조건은 없겠지.”

“네, 그렇습니다.”

“AP사가 동의할 것 같은가?”

“그래서, 부산신항에서 발표한 유류 중계기지 건설 프로젝트에 합작 투자하자는 의견을 조율 중에 있습니다.”

권동민 전무도 터미널개발팀을 통해 보고받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유가가 하락한다고 예측하면 유류 중계기지가 사업성이 있겠는가?”

“유류 중계기지는 지금 개발에 착수해도 최소 몇 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본격적으로 운영할 시점이 되면 상당 부분 유가가 회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음···.”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적 선사들과 인접한 국가의 해운 회사들 선박만 고객으로 유치해도 제법 큰 시장입니다. 유가가 하락한다고 해도 여전히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

권동민 전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무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경영기획본부장인 도형준 전무에게 의견을 물었다.

“위험을 대비하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경영기획본부에서는 장보고 과장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그렇군요.”

권동민 전무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법무팀은 경영기획본부 소속. 도형준 전무의 말을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재무그룹에서도 여러 측면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보라고 지시하겠습니다.”

“네, 저희도 꼼꼼하게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권동민 전무가 고개를 돌려 권세아 대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감정이 섞여 있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권세아 대리!”

“네? 네. 전무님.”

“보고서를 하나 준비해서 상신하도록 하게. 나도 결재 라인에 포함해서.”

“보고서요?”

“그래, 유가 동향과 관련한 회사 대응책을 마련해서 올리도록. 최종 결재자는 회장님으로 하고.”

“회, 회장님이요?”

“그래.”

“네, 네, 알겠습니다.”

권세아 대리의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

말을 마친 권동민 전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도형준 전무를 향해 묵례했다.

“그럼, 전무님 저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네, 살펴 가십시오.”

권동민 전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급하게 의자에서 일어섰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리스크가 높은 계약을 체결할 위험을 벗어났습니다. 해신해운의 재무 구조가 개선됩니다.”

보상 :

- 당신의 사내 명성이 상승합니다.

- 글로벌 명성이 상승합니다.

- 고위험 파생 금융 상품 계약 체결이 무산되었습니다.

- 해신해운 오너 일가의 관심을 받기 시작합니다.

- 스킬 [재무회계 Lv.1]을 습득했습니다.

+

* * *

- 해신해운 본사 10층 복도

회의를 마치고 나온 나는 앞서 걷고 있는 권세아 대리에게로 다가섰다.

“저, 대리님!”

권세아 대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살짝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평소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던 이복형제와 한바탕 설전을 벌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버지이지만 평생 거리를 두고 살아왔던 권영호 회장에게 보고할 생각에 긴장을 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네, 장보고 과장님.”

“대리님,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네?”

“그 헤지 펀드 투자자 이야기요. 신용 부도 스와프 체결했다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수집하시게 된 거예요?”

나의 말에 권세아 대리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저, 과장님···.”

“네.”

“기억 안 나세요?”

LNG 운반선 입찰 (1)

-해신해운 본사 10층 복도

권세아 대리의 살짝 벌어진 입에서 작은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뭐, 뭐야?’

무슨 표정이야. 알쏭달쏭한 그녀의 표정.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장보고 과장님?”

“네?”

“정말 기억 안 나요? 그날 있었던 일?”

“그, 그날이요?”

“네.”

권세아 대리가 몸을 바짝 다가세우더니 조용히 귓속말을 하듯 속삭였다.

“그날이요. 우리 같이 술 마신 날.”

그녀가 가까이 다가서자 좋은 향수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살짝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

“네, 사실 그날 기억이 없습니다. 필름이 끊겨버렸어요.”

“네?”

나의 대답에 권세아 대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요?”

“네? 네······.”

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등 뒤로 땀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눈빛이 나를 향하자 나는 변명하듯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허허허. 사실 저도 어디 가서 술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진 않습니다······.”

“음······.”

나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

“네, 제가 술이 약하다기보다는 권세아 대리님이 보기와 다르게 술을 잘 드시는 거죠.”

“음, 글쎄요···.”

어쩐지 말끝을 흐리는 권세아 대리의 표정이 오묘했다.

실망이라도 한 걸까? 그녀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권세아 대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이야기도 그날 해주신 건데······.”

“네? 제가요? 이야기?”

“네, 무슨 소설인가 영화 시나리오에서 본 이야기라고 하면서··· 대형 투자 은행들과 신용 부도 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요.”

“제가 그 이야기를 권세아 대리한테 해줬다고요?”

“네, 그래서 제가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 좀 알아봤어요.”

“······!”

“미국 투자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수소문하니 그 일을 아는 사람이 진짜로 있던데요?”

“······.”

‘아! 내가 술에 만취해서 전생의 이야기를 떠들었구나!’

미래의 이야기를 자랑인 양 떠들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범인이 나였구나!

‘그래도 제법인걸!’

나는 권세아 대리를 슬쩍 바라보았다.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꼼꼼할 줄이야.

술에 만취한 사람이 떠들어 대는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고 확인하다니. 권세아 대리의 철두철미한 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그저 잠시 경력을 쌓기 위해서 혹은 고속 승진을 하기 전에 잠시 하위 직급을 체험하는 다른 오너가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에서 보던 재벌가들의 모습과는 어딘가 달랐다.

그의 이복형제들과도···.

* * *

-해신해운 8층 재무그룹 본부장실

쾅!

권동민 전무의 사무실 안에서 큰 소음 소리가 들려왔다.

“또 시작이네······.”

전무실 문 바로 앞에 앉아 있는 권동민 전무의 비서는 그 소리에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그녀는 조용히 서랍에서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권동민 전무에 대해서는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이 주류의 평가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냉철하기보다는 지기를 싫어하는 승부욕이 있고 열정적인 성향의 사람. 합리적이라기보다는 즉흥적인 성격이었다.

하지만 권동민 전무는 요즘 본성을 최대한 억누르며 지내고 있었다.

평판을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인데, 곧 있을 형과의 경영권 다툼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특히 사내 직원들의 평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해신해운의 지분 구조상 우리 사주 조합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 높기 때문에 사내 직원들의 평판도 제법 중요했다.

하지만, 재벌가 망나니의 특성이 어딜 가겠는가? 참는다고 참아지면 망나니라고 할 자격이 없었다.

가끔씩 그의 측근들 앞에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표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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