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팀은 재무그룹 산하의 팀이기 때문에 재무그룹 본부장인 권동민 전무는 구매팀장의 직속상관이자 담당 임원.
그의 인사 고과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다. 구매팀장이 권동민 전무의 눈치를 심하게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전무님, 장보고 과장이 젊고 본사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음, 그만.”
“네?”
권동민 전무가 손을 들어 올려 구매팀장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장보고 과장, 서브프라임 모기지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모기지라고 하니 부동산 대출 같은 건가 보군?”
“네, 맞습니다.”
“음, 미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걱정하는 이야기가 있긴 하던데······.”
‘음?’
정확한 내용까진 몰라도 들어본 적은 있나 보네? 그래도 대기업의 재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니 우습게 볼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권동민 전무는 미국 부동산에 이슈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는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누구나 그랬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촉발된 위기가 대한민국의 해운 회사를 파산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최악의 금융 위기.
그게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는 미국의 부동산 버블로부터 시작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미국 최대, 최악의 금융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사건이다.
서브프라임(Subprime)은 은행의 고객 분류 등급 중 비우량 대출자를 뜻하는 말이고, 모기지(Mortgage)는 주택 담보 대출을 말한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 911테러, 아프간/이라크 전쟁 등으로, 미국 경기가 악화된다.
미국은 경기 부양책으로 초저금리 정책을 펼친다.
이에 따라 주택 융자 금리가 인하되었고 그러자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탐욕에 가득 찬 투자 은행은 주택 구입자에게 대출해 줌으로써 묶인 돈을 다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대출된 모기지론 중 가장 등급이 낮은 것들을 모아 한꺼번에 부도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하면서 부채 담보부 증권을 팔아치우기 시작한다.
주택 담보 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대출 금리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주택 가격 때문에 파산하더라도 주택가격 상승으로 금융 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라고 사람들은 이해하기 시작했고, 거래량은 폭증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며 신용 등급이 높은 상품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은 믿을 수 없는 저위험 고수익 상품에 열광했다.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2004년경 미국이 저금리 정책을 종료하고 미국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며 불행의 전조가 시작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금리가 올라갔고 저소득층 대출자들은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기 시작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구매한 금융 기관들은 대출금 회수 불능 사태에 빠져 손실이 발생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거래에서 큰 손실을 본 대형 투자 은행이 파산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그곳은 세계 최대의 대형 투자 은행 중 한 곳이자 미국의 4대 투자 은행 중 한 곳으로 불리던 레이몬드 브라더스 (Raymond Brothers).
미국 자본주의 경제의 상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나에게도.
‘해신해운이 파산에 이른 단초가 바로 이 사건이니까······.’
나는 끔찍했던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초기에 사람들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뭐?
미국 경제는 어차피 저성장에 들어갔다. 중국 시장만 건재하다면 걱정이 없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도 경기 연착륙을 위해 경기 부양을 조절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전 세계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금리가 치솟고, 화물량이 줄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 세계를 오고 가던 배들도 멈추었다.
우리나라의 항구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항구의 정박지에는 공선(비어 있는 배)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해나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기회는 있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나는 권동민 전무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전무님, 미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단순히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음?”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이 불량한 사람들에게 대출해준 상품입니다. 그런데, 이를 이용한 파생 금융 상품이 문제입니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하는 수밖에 없는 파생 금융 상품들이 너무 많이 시장에 풀렸습니다.”
“음······?”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뭔가?”
“이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입니다. 가장 많이 판매한 곳 중 하나가 바로 레이몬드 브라더스입니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권동민 전무. 아니 이 회의실의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항해사 출신인데 금융 분야에 관해서도 전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니?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레이몬드 브라더스는 우리 회사와도 다수의 파생 금융 상품 계약을 체결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
권동민 전무가 깜짝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을 받은 사람은 경영기획팀의 진채호 부장. 파생 금융 상품 계약 체결을 주관하는 부서의 파트장이기 때문이다.
“음, 전무님, 맞습니다.”
진채호 부장이 대답을 이어갔다.
“장보고 과장의 말이 맞습니다. 레이몬드 브라더스와는 유가와 금리, 외화 관련되어 다수의 계약이 체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으음, 그렇군요.”
진채호 부장의 얼굴도 제법 상기된 표정.
최근에 그가 추진한 장외 파생상품 계약도 상대방이 레이몬드 브라더스였다.
레이몬드 브라더스와는 그가 경력직으로 입사하기 이전부터 해신해운과 다수의 계약이 체결된 상태이기도 했지만 미국에서 가장 큰 투자 은행이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거래 상대방이었다.
진채호 부장이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전무님 레이몬드 브라더스는 미국의 4대 투자 은행 중 하나인 거대 금융 그룹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이라는 뜻입니다. 해신해운 보다도 더 큰…….”
“으으흠!”
진채호 부장이 눈치 없는 소리를 하자 옆에 있던 도형준 전무가 헛기침을 하며 제지했다.
레이몬드 브라더스가 해신해운보다 규모가 큰 회사인 것은 사실이지만 오너가의 일원이 있는 이곳에서 굳이 언급할 소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허허. 괜찮습니다.”
권동민 전무가 실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진채호 부장이 말을 이어갔다.
“죄송합니다. 제 말은 레이몬드 브라더스가 미국의 4대 투자 은행에 속하는 큰 은행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레이몬드 브라더스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으음······.”
진채호 부장의 말에 권동민 전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대답을 바라는 표정.
나는 추가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잘하면 넘어올지도 모르겠다.’
권동민 전무가 이 회의에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쐐기를 박아야지.'
결심하자 메시지창이 눈에 떠올랐다.
< 띠링! >
+ 스킬[협상 Lv.20]을 사용합니다. +
- 설득력이 올라갑니다.
- 사람들이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 띠링! >
+ 스킬[사내정치 Lv.6]을 사용합니다. +
- 정치력이 상승합니다.
- 당신에 대한 사내 임직원들의 호감도 상승합니다.
- 해신해운의 오너 일가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나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중저음의 편안한 목소리지만 어딘지 모르게 큰 울림이 있었다.
“사업 구조를 살펴보셔야 합니다. 레이몬드 브라더스는 미국의 4대 투자 은행 중 채권 및 모기지 관련 투자가 많은 곳입니다. 그리고 레버리지(Leverage, 차입 비율)가 다른 은행들에 비해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
사람들은 나의 분석에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경기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경기가 좋지 않을 경우, 재무 구조가 위험해질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큰 구조입니다.”
“으으음!”
“최근 미국 부동산의 가격 하락이 심상치 않습니다. 곧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음······, 그럼 장보고 과장이 하고 싶은 말은 뭔가?”
“곧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로 인해 유가 하락은 불가피합니다. 유가 하락을 염두에 둔 경영 계획이 필요합니다.”
“으으음!”
권동민 전무가 의자 뒤로 몸을 젖히더니 눈을 감았다.
권동민 전무의 태도가 살짝 변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소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거의 다 넘어온 거 같은데······.’
잠시 고민하던 권동민 전무가 말을 이어갔다.
“장보고 과장, 좋은 의견 다 들었네.”
“네.”
“그런데, 처음 듣는 의견이라 아직 판단을 내리기에는 근거가 부족하군.”
“장보고 과장의 의견을 뒷받침할 다른 근거가 있는가?”
“······.”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뭐, 논문이나 경제 기관의 전망 같은 그런 자료들 말이야.”
‘음······.’
아직 부족했나?
권동민 전무가 아직 완전히 넘어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좀 답답하네.
‘뭐, 논문?’
그런 자료가 있으면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겠냐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아졌다.
‘음······. 마지막 한 방이 필요한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있습니다!”
‘음? 갑자기?’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앉자 있던 권세아 대리.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고 대답했다. 그녀는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목소리에는 제법 당당함이 묻어 있었다.
“장보고 과장의 말을 뒷받침할 근거가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
-해신해운 본사 10층 경영기획팀 회의실
의외의 인물이 대화에 참여했다.
사람들은 모두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한 사람은 예외였다.
권동민 전무. 그가 권세아 대리가 대답하는 순간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음······ 저 친구는 누구인가?”
권동민 전무가 구매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나선 사람은 경영기획팀장이었다.
“아, 전무님, 이번에 경영기획팀으로 입사한 권세아 대리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경력 채용으로 입사했습니다.”
“으으음.”
“해외 대학을 졸업하고 컨설팅 업체에서 근무했었다고 합니다.”
권동민 전무가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권··· 세아 대리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네, 전무님.”
권세아 대리가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제가 최근에 조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음? 그래?”
권동민 전무가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관심을 두지 않은 문제에 대해 조사를 했다는 것이 의외였기 때문일 것이다.
“금융권에 있는 지인들을 통해 조회를 좀 했습니다.”
“그런데?”
“대형 투자 은행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일인데, 대형 투자 은행을 찾아와 신용 부도 스와프(CDS)를 만들어가면서 투자를 하는 투자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으음. 그래?”
권동민 전무의 대답은 시큰둥했지만 그 말을 듣고 정작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
바로 나다.
‘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신용 부도 스와프는 ‘Credit Default Swap’. 줄여서 CDS.
신용 부도의 위험을 교환한다는 뜻으로 기업이나 국가의 파산 위험 자체를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파생 상품.
신용 부도 스와프(CDS)의 매수자는 수수료(프리미엄)를 내는 대신 계약이 만료되기 전 회사 등이 파산하면 CDS 매도자로부터 돈을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 자산으로 한 파생 금융 상품은 위험이 낮고 수익이 높다고 알려진 상품이었다.
투자자들은 다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상품 구조에 열광해서 투자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투자를 감행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로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도 익히 잘 아는 이야기였다.
미국의 한 투자가에 대한 이야기.
증권사에서 근무하던 한 펀드 매니저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상품을 분석하던 중 미국 주택 시장의 문제점에 주목한다.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한 파생 금융 상품의 위험을 알아차렸다.
곧 주택 시장이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그는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공매도)를 진행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당시 미국 주택 시장의 모기지 채권 상품에는 보험이나 옵션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직접 대형 투자 은행들을 찾아다니며 없는 상품을 만들어 신용 부도 스와프(CDS) 계약을 체결한다.
그가 투자한 액수는 약 13억 달러, 한국 돈으로 1조 5천억 원에 달하는 큰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