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6화 (156/200)

“네, 지금 터미널사업본부도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난리···· 요?”

“네, 과장님 덕분에 터미널사업 본부장님들이 팀장들 불러서 한바탕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저 때문이라고요?”

“그렇다니까요. 터미널사업본부 사람들도 잘 몰랐던 내용을 도대체 어떻게 법무팀에서 알고 일을 터트렸냐고 사업부장님이 크게 한 소리 했다고 하시던데 모르셨어요?”

“······.”

‘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건 좀 미안하긴 하네.

전생에 이 일을 추진했던 사람들은 터미널사업본부 사람들인데 본의 아니게 아이디어를 훔친 모양새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안주랑 소주, 맥주 한 병 나왔습니다.”

포장마차 주인이 우리 테이블 근처로 다가와 접시들을 내려놓았다. 포장마차 주인은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놓더니 우리 얼굴을 힐끔 살폈다.

“이런 젊은 선남선녀가 데이트 장소로 이런 누추한 곳을 찾아주시다니 이거 영광인데요?”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젊은 사장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네? 데이트 아닌데요. 그냥 직장 동료······.”

“하하하. 그런가요? 뭐 그럼 우리끼리는 직장 동료? 뭐 그런 걸로 알고 있기로 하시죠.”

“네?”

젊은 사장이 주변을 한번 슬쩍 둘러보더니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사내 커플이라서 그러신 거죠?”

“네?”

“사내 커플들은 비밀을 지켜야 한다면서요.”

“······.”

“제가 나이는 어려도 이 자리에서 장사만 10년쨉니다. 회사 직장 동료라고 하면서 오고가는 분들은 제가 한두 명 본 게 아니라는 말이죠.”

“······.”

“제가 비밀 유지할 수 있게 도와 드릴 테니 데이트할 때 자주 찾아주십시오.”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 없는 젊은 사장의 말에 권세아 대리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뭐, 뭐야 왜 얼굴이 빨개져?’

나는 권세아 대리가 얼굴을 살짝 붉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마차 주인도 그녀의 얼굴을 살피더니 방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하하. 그럼 직장 동료들끼리 즐거운 시간 보내시라고 응원하는 마음에 제가 특별히 서비스 안주도 하나 드리겠습니다.”

“······.”

한바탕 떠들어 대던 포장마차 주인이 사라지자 권세아 대리는 어느 틈에 수저통에서 꺼낸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 자리 앞에 놓인 앞접시 위에 예쁘게 올려놓았다.

권세아 대리가 말을 이어갔다.

“과장님, 소주?”

“네.”

권세아 대리는 어디서 배운 것인지 소주병을 요란하게 흔들더니 내가 들어 올린 소주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내가 술병을 잡기도 전에 자신의 잔에 벌컥벌컥 소주를 가득 채웠다.

‘왜, 왜 저래?’

권세아 대리가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과장님,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네? 네.”

“제가 이 소주 한 잔 원샷하면 궁금한 거 하나 여쭤봐도 돼요?”

유류 중계기지 건설 프로젝트 (3)

-서울 장보고의 집

전 세계의 항구를 오고 가는 많은 선박에서 승선 생활을 했다.

“푸른색 바다······.”

여러 바다를 경험했지만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는 태평양 서부 미크로네시아에 있는 북마리아나 제도의 푸른 바다.

해안 쪽은 에메랄드빛이지만 수심이 깊은 지역은 유난히 짙은 청색이다. 물속에서도 시력이 보이는 곳까지 시야가 나온다는 청정 지역.

필리핀 동쪽에 위치한 마리아나 제도는 거리상으로는 필리핀해의 바다 근처이지만 그 느낌은 천양지차다.

나는 그 속에서 자유롭게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중이었다.

톡톡!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나의 등 뒤로 누군가 나타났다. 그리고 나의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음? 무슨 상황이지?’

뭔가 비현실적이야··· 꿈이라도 꾸는 건가?

바다 한가운데 나타난 것은 인어였다.

그야말로 동화 속에 나오는 인어공주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인어라니?’

음? 아니 자세히 보니 인어가 아니었다. 그건 요즘 유행하는 프리다이빙을 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누군가를 닮은 모습이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아는 사람인데? 음 그녀는 권세아 대리였다.

뭐?

“으아악!”

나는 소리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으······!”

자연스럽게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 머리야.”

나는 깨질 듯한 두통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어디야 여기?’

집이다.

다행스럽게도 눈을 뜬 곳은 집. 나의 침실이었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4시가 좀 넘은 시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언제 집에 들어온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얼마나 마신 거야 도대체.

이렇게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신 건 정말 오랜만이다.

아니, 현생에서는 그렇게까지 술을 마실 일이 없었다. 조심하기도 했고, 과음하지 않기 위해 자제하기도 했다.

어제는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이 마신 거지?

‘어제 퇴근하고 포장마차에서 권세아 대리와 술을 마셨는데······.’

곰곰이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젯밤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야근을 하던 중에 퇴근을 하고, 권세아 대리와 술을 마시러 포장마차에 간 기억은 나는데······.

권세아 대리가 술을 시켰지.

그래 소주를 마시고, 또 마시고, 또···.

그리고 또 맥주를 섞어 마시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권세아 대리가 뭐를 물어본다고 했던 거 같은데······.’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취한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인데······.’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드문드문 어젯밤에 있었던 기억이 단편적으로 뇌리를 스쳐 가기 시작했다.

“······.”

‘이런 젠장!’

나는 두 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부여잡았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이지만 떠오르는 나의 모습은 제법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아니 꼴사나운 모습이라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얼핏 떠오르는 기억이지만 나는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동안 있었던 무용담을 털어놓았다.

선장실을 점거하고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를 피한 이야기, 해적들과 싸우고 해적 두목을 검거한 이야기 등등······.

드문드문 기억들이 떠오르는 와중에도 나를 바라보는 권세아 대리의 표정은 제법 또렷하게 떠올랐다.

눈앞에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박수를 치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권세아 대리의 아름다운 얼굴.

무용담을 듣는 권세아 대리의 리액션이 너무 좋았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술을 들이켜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권세아 대리도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기억이 하얗게 사라졌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마저도 없었다.

“젠장!”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한 건 아니겠지?

기억이 잘 나지 않으니 불안하다.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얼굴 위로 뒤집어썼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머릿속에서는 권세아 대리의 얼굴이 떠나지 않았다.

* * *

-해신해운 본사 10층 법무팀

며칠 뒤.

본사 10층. 큰 빌딩의 사무실이었지만 키보드 소리만 달칵거리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정재훈 사원이 의자를 빙글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장보고 과장님.”

“음? 왜?”

“아 업무 협조 올라온 거 보셨어요?

“아니, 왜?”

“계약서 검토 건 새로 들어왔던데요.”

“그런데?”

“팀장님이 과장님한테 검토하라고 코멘트 남기셨던데요?”

“음? 그래?”

나는 정재훈 사원의 말을 듣고 해신해운 사내 그룹웨어에 접속하기 위해 사이트에 로그인을 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법무팀을 수신팀으로 지정해서 들어온 업무 협조 서류가 있다는 알림 메시지가 떴다.

해당 화면을 클릭하자 현재형 팀장이 남긴 메시지가 보였다.

-장보고 과장, 본건 계약서 검토 바랍니다.

‘무슨 일이지?’

계약서 검토는 보통 법무팀의 기업법무파트에서 주관하는 업무였다.

갑자기 왜 계약서를 나보고 검토하라고 하신 걸까?

하지만 현재형 법무팀장은 심계가 깊은 사람.

그가 기업법무파트로 배정되어야 하는 일을 나에게 맡긴 것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음, 보자.’

법무팀으로 업무 협조 요청이 들어온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경영기획팀이라···.”

협조 요청을 보낸 팀은 경영기획팀이었다.

‘작성자는··· 리스크매니지먼트파트의 진채호 부장님이네?’

진채호 부장은 경력직으로 채용되어 함께 교육을 받은 입사 동기 중 한 명.

경영기획팀 리스크매니지먼트 파트장이다.

‘음 그렇다면 혹시?’

나는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여 업무 협조 요청서에 첨부되어 있는 파일을 클릭했다.

첨부된 파일의 제목은 이스다 계약서(ISDA Agreement)였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리스크가 높은 계약이 체결될 위험이 있습니다. 리스크를 대비하세요!”

세부 퀘스트 : 파생상품 계약

클리어 조건 : 계약 리스크 제거

제한 시간 : 선박유가 하락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해신해운 재무 구조 악화, 대규모 손실 발생

+

‘역시 예상대로구나.’

업무 협조의 내용은 나의 예상대로였다.

그래 지금 이때쯤 발생한 일이었지.

이스다(ISDA)는 협회의 이름이다.

‘국제 스왑 및 파생상품 협회’

협회의 정확한 명칭은 영어로 “International Swaps and Derivatives Association”.

사람들은 앞 글자를 따서 ISDA(이스다)라고 불렀다.

ISDA 협회에서 만든 장외 파생상품 표준 계약서가 실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ISDA 협회에서 만든 장외 파생상품 계약서를 이스다(ISDA) 계약서라고 불렀다.

장외 파생상품이란 기초 자산 상품으로부터 파생된 상품을 말한다.

거래의 방법에 따라 거래소에 상장되어 거래되는 장내 파생상품과 거래소 없이 일대일 계약으로 거래가 일어나는 장외 파생상품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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