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8화 (148/200)

“여보세요?”

-장보고 전화 맞나요?

“네, 어머니! 맞습니다.”

-그래 보고야, 용재 엄마다.

“잘 지내셨죠?”

-그래, 그래.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으음 그게···.

‘보이스 피싱 협박범들에게 전화가 왔구나.’

전화가 온 이유를 직감할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으응?

“혹시, 용재 형이 납치됐다는 전화가 오지 않았나요?”

-어? 그, 그걸 어떻게 알았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제가 지금 집으로 갈 테니 그때까지 전화를 받지 마세요. 아시겠죠?”

-지, 지금 바로?

“네, 제가 마침 부산 영도 집에 있거든요. 제가 지금 바로 집으로 갈 테니까 전화 받지 말고 기다리세요. 아시겠죠?”

-그, 그래 알았다.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

나는 전화기를 끊고 빠르게 옷을 챙겨 입었다.

방문을 열고 후다닥 달려 나가자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어머니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보고야!”

“네?”

“어디 가니?”

“네!”

“밥 먹고 가! 아침밥 준비 다 됐는데!”

“저 잠시 나갔다 와야 돼요. 금방 돌아올게요.”

“어?”

나는 대답도 생략한 채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용재 형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은 다행히도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 * *

-부산 영도 신용재 과장의 본가

똑똑똑.

끼이익! 철문으로 된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마당에 혼자 서성이고 있는 초조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의 정체는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

가까이 다가서자 그녀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창백해진 상태였다.

“보, 보고야.”

내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을 본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걱정 많이 하셨죠?”

“그, 그래.”

“제가 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고맙구나. 정말···.”

나는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를 모시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 협박범들한테서 전화가 왔나요?”

“응, 계속 오고 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단다.”

“오! 잘하셨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용, 용재를···.”

전생의 기억 그대로였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

나는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말을 이어갔다.

“협박범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용재 형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하던가요?”

“그, 그래. 어떻게 알았니?”

“뻔한 수작이죠.”

“브라질이 그렇게 위험한 곳이니?”

“네. 위험한 곳입니다.”

“······!”

“하하하. 그래도 형은 무사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음?”

“달려오는 길에 제가 이미 브라질 현지에 연락을 했거든요. 지금 자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네.”

“정말 다행이구나!”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쪽 눈에 어린 눈물을 살며시 닦았다.

“그럼 용재는 납치된 게 아닌 거니?”

“네, 용재 형은 지금 숙소에서 잘 자고 있답니다. 제가 오는 길에 통화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곧 형한테서 전화가 올 겁니다.”

“아···.”

이제야 가슴을 진정시킨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보고야, 그럼 이 협박범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용재를 지급 납치해서 데리고 있다고 하던데?”

“거짓말하는 거죠.”

“뭐?”

“보이스 피싱이라고 들어보셨죠?”

“보이스 피싱?”

“네, 사기꾼들이 전화로 겁을 준 다음 돈을 편취하는 사기 수법인데요. 요즘 출국하는 사람들 정보를 가지고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이놈들이 용재 형 출국 기록을 입수해서 집으로 전화를 한 것 같습니다.”

“······! 어떻게 그런 일이.”

“정말 못된 놈들인데요. 무서운 놈들입니다. 깜빡 속을 수밖에 없으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 정말 무서운 일이구나.”

실제로 전생에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는 협박범들에게 노후 자금으로 모아둔 예금을 전부 잃지 않았던가?

남들이 사기당한 이야기를 들으면 이렇게 한심해 보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사리 분별이 정확한 사람들도 사기꾼들의 전화를 받으면 무엇인가에 홀린 듯 사기를 당하게 된다.

사람들은 주먹은 법보다 빠르다. 하지만 사기꾼들은 주먹보다 빠르다. 시대를 따라서 진화해 가는 사기꾼들의 수법은 언제나 가장 빨랐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지.’

사기꾼보다도 빠른 남자가 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신용재 과장은 다행히 보이스 피싱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 사건을 여기서 그대로 둘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사건에 가담하는 ‘보이스 피싱 수거책’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보이스 피싱 범죄의 문제는 핵심 조직원들이 잡히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 범죄 조직의 핵심 조직원들은 국내의 수사망을 피해 중국 등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은데, 조선족들이라는 말도 있고 국내의 범죄 조직이 주축인 경우도 있다.

이들은 해외에 대규모 사무실을 마련해 마치 콜센터와 같은 작업장을 만들어 보이스 피싱 작업을 전개한다.

보이스 피싱 초기에는 조선족을 고용해 보이스 피싱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억양 등의 문제로 효율이 높지 않자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은 국내에서 알음알음 사람들을 구해 해외로 데리고 가서 일을 시키는 방법으로 보이스 피싱을 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전화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외국에 있지만 돈을 수거하는 수거책들은 국내에 있다.

이들이 보이스 피싱에 속은 사람들을 찾아가 현금을 받아 오거나 피해자들이 입금한 대포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 다시 송금하는 역할을 한다.

간혹 뉴스 등에서 보이스 피싱 범죄자들을 검거했다는 뉴스는 보이스 피싱 범죄 조직의 수뇌부들인 경우는 드물고 주로 이 수거책을 검거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수거책들도 보이스 피싱 범죄 조직에 속아서 이 일에 가담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간혹 경찰에 검거된 수거책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뉴스에 전해지기도 했다.

캐피탈 회사 등의 현금 수거 아르바이트라는 등의 거짓말에 속아 이 일에 가담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 일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수사 기관이나 법원은 모르는 상태에서 보이스 피싱 수거책으로 일했다는 변명을 믿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들도 법의 심판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

나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 사건에 가담한 현금 수거책들은 이 사건 이후 경찰의 수사 덕분에 검거된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들 배후에 있는 보이스 피싱 조직의 핵심 조직원들은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전생에 협박범들에게 속은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는 협박범들이 일러주는 대포 통장으로 예금을 이체한다.

그리고 현금 수거책들은 그 즉시 대포 통장에서 여러 계좌로 돈을 이체해 현금으로 수거한다.

경찰은 대포 통장의 명의인과 금융 기관의 CCTV를 수사해 현금 수거책들의 인적 사항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수거책들이 이곳 영도의 어린 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 구인 공고를 보고 용돈을 벌기 위해 했던 일이 바로 이 보이스 피싱 범죄의 수거책이었던 것이다.

그중에는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어린 학생도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정의의 사도는 아니지만 알고도 어린 학생들이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따르릉!

‘깜짝이야!’

거실에 놓여 있는 집 전화기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따르릉!

조용한 집에 전화벨 소리만 크게 울리고 있었다.

“전화 올 데가 있나요?”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상했던 대로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를 건 놈들은 협박범. 보이스 피싱 조직원이 분명했다.

가까스로 안정을 찾았던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는 전화벨 소리에 다시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아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아도 이런 협박범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수화기 위에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어머니, 전화를 받아야 합니다.”

“음······?”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지금부터 제가 하라고 말하는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보이스 피싱 (2)

-부산 영도 신용재 과장의 집

전화기의 스피커폰을 켜자 전화기 너머 걸걸한 협박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투리를 쓰지 않고 억양도 특별한 특징은 없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인가 보군.’

보이스 피싱 조직이 외국에 둥지를 둔 경우에도 한국인들을 데려와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전화기 속 목소리는 화가 난 듯 소리를 크게 질렀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는 겁니까! 이거 아들이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까?

신재용 과장의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휴대폰으로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가 대답할 내용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는 심호흡을 길게 내쉰 후 대답을 이어갔다.

“죄송해요······. 돈을 찾아오느라 늦었어요.”

-음, 앞으로 시키는 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신용재 과장의 생사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네. 알겠어요.”

-좀 전에 말한 대로 현금은 전부 준비했습니까?

“네, 현금으로 예금을 찾아왔습니다.”

-말한 금액 그대로 찾아왔습니까?

“네, 2억 원 전부 현금으로 찾아왔어요.”

-잘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네.”

-십 분 뒤에 돈을 수거하러 사람이 갈 겁니다. 그 사람에게 돈을 전달하십시오.

“네.”

-그리고 돈을 전달할 때까지 전화를 끊지 마십시오.

“네······.”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가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곧 여기로 온다는데 돈은 어떻게 할 생각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준비해 뒀습니다.”

나는 내 옆에 놓인 종이 가방을 꺼내 들었다.

가방 속에는 현금 뭉치가 잔뜩 들어 있었다. 물론 현금 뭉치 중 아주 일부만 진짜 현금인 가짜 돈 뭉치였지만 말이다.

십 분 후.

텅텅텅!

마당 너머로 대문 근처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대문을 두들기기 시작한 것이다.

‘수거책이 왔나 보군!’

우리는 대문 근처로 다가섰다.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가 문을 열기 위해 다가서며 물었다.

“누구세요?”

“제이엘(JL) 머니에서 나왔습니다.”

“제이엘(JL) 머니요?”

“네, 오늘 밀린 돈을 변제하기로 하셨다고 하시던데요?”

제이엘(JL) 머니는 최근 광고를 공격적으로 하는 대부업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는 상호였다.

끼이익!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가 대문을 열었다.

대문 앞에서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정장이 어색한 듯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리고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화려한 넥타이를 매고 있는 모습이 왠지 어색해 보였다. 회사에 처음 입사한 신입 사원들처럼 정장이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내가 위아래를 자세히 훑어보자 긴장한 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제이엘(JL) 머니에서 왔다고요?”

“네, 맞습니다.”

“혹시 사원증 같은 걸 볼 수 있을까요?”

“어, 네? 사원증이요?”

“네.”

나의 말에 당황한 듯 그는 다급하게 핸드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보이스 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지시를 받기 위해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잠시 핸드폰을 쥐고 두들기더니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 저희는 아직 정직원으로 채용된 것이 아니고 대금 독촉 및 수거 직군으로 위촉된 것이라서 사원증은 발급이 안 된다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자 안심한 듯 긴장한 표정을 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단순한 수거책인 것 같아.’

이런 현금 수거책들은 본인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줄 알고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보이스 피싱에 가담하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다고 하더라도 범죄 조직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거의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보이스 피싱에 속은 사람들의 돈을 찾으러 온 게 아닐까 하는 의심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보이스 피싱 조직을 잡기 위해서는 이들보다 윗선에 있는 사람들을 잡아야 했다.

‘뒤를 쫓아봐야겠어.’

나는 돈을 건네준 후 그 뒤를 쫓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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