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화 (146/200)

“그럼 장물을 도매상에게 물건을 판매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입니까?”

“네, 이 사람이 횟집에 판매한 어류에서 우리가 숨겨놓은 추적 장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의 대화에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정수호 이사가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혼자 한 일이라고 자백하고 있습니다.”

“······!”

그 말에 사람들이 놀라 수군거렸다.

“뭐?”

“저 도매상이 양식장에서 물건을 훔쳐 갔다고?”

다들 그 말을 믿기 힘들어하는 눈치였고, 나도 마찬가지.

‘의리를 지키시겠다?’

하지만 도매상이 끝까지 공범을 털어놓지 않는다면 공범은 영영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도매상에게 다가갔다. 도매상을 실토시키기 위해 당근을 던졌다.

“본인이 한 일을 자백한 이상 법정에 서는 것을 면할 수는 없을 겁니다.”

“······!”

그는 당황한 듯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양형 사유가 피해자들과 합의하는 것이죠. 앞으로 법정에서 선처라도 받고 싶다면 피해자들이 모두 모여 있는 이 자리에서 본인의 입으로 직접 자백을 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좋을 겁니다.”

“······.”

법정에서 선처받을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까지 제공해줬건만 이놈은 아직 마음을 바꾸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도매상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혼자 한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눈치를 심하게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말 답답한 놈이네?’

나의 추측대로라면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은 어촌계장이 분명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

유일하게 그 사실을 밝혀줄 수 있는 도매상이 아무래도 어촌계장이 무서워 이를 밝히기를 꺼려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촌계장의 권력이 이 마을에서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쯧쯧, 그건 썩은 동아줄이라고!’

도매상이 살고 싶다면 빨리 버려야 할 썩은 줄이다.

어촌계장도 마찬가지. 그도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뭐니 뭐니 해도 그는 이 마을의 유지로 이 지역의 관할 국회의원 등과도 제법 인연이 깊은 사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흥, 그 자신감이 언제까지 가나 보자.’

이제 올 때가 됐는데.

나는 차진혁 경감이 등장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의 첩보를 받고 현재 중요한 범인을 검거하러 간 상황이었기 때문.

어촌계장과 관련되어 있는 추가 범죄를 밝혀줄 핵심 증인이었다.

전생에 이 어촌 마을 사람들 사이에 어업 보상금과 관련해서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당시, 어촌계장의 승소가 점쳐지던 시기.

어촌계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찾아낸다.

어촌계장이 과거에 저지른 비리를 발견했다. 그 사건이 어업 보상금 사건의 결론을 바꿔놓은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그건 바로 어촌계장이 어촌계의 자산인 배상금을 무자격 양식업자에게 몰래 준 뒤 뒷돈을 받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어촌계장은 검찰에 의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관할 지검은 이 어촌 마을의 어촌계장 김 모 씨를 업무상 횡령 및 배임수재 혐의로 전격 구속했다. 그리고 김 씨에게 돈을 건넨 양식업자 김 모 씨는 업무상 횡령과 배임증재 혐의로 함께 구속된다.

당시 전생에 검찰이 밝힌 범죄 사실은 다음과 같다.

20xx년 A 어촌계는 인근 지역의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 물질 때문에 어장의 피해가 심각하다며 정부를 상대로 어업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는데, A 어촌계는 총 15억여 원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문제는 어촌계장 김 씨가 배상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이다.

배상금 15억 원 가운데 4억 5,000만 원을 어촌계 총회를 거치지 않고 양식업자인 김 씨에게 주고 대가로 2억 원을 받아 챙긴 것이다.

그리고 양식업자인 김 씨는 이 어촌 마을의 어촌계원이 아니어서 어장 임대 자격이 없는데도 어촌계장에 의해 어장 3곳을 불법 임대한 사실도 확인된다.

바로 어촌계장의 불법으로 면허를 어촌계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임대해 손해를 입은 어촌계원의 아들이 어촌계장을 고소하면서 이 모든 사실이 밝혀진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나는 어촌계장을 바라보았다.

‘일단 어촌계장의 기를 꺾어놔야겠군.’

아직 어촌계장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은 도매상이 어촌계장이 공범자인 사실을 밝힐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어촌계장에 대한 그의 신뢰를 꺾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어촌계장에게 물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전부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계장님, 그런데 좀 전에 말씀하신 비상 대책 위원회니 개발 보상금이니 하는 말들이 다 뭡니까?”

“음? 그건 자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네. 우리 어촌계의 일이니 외부인이 관여할 일이 아닐세.”

어촌계장은 내가 어촌계의 일에 관심을 보이는 듯하자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아마도 내가 나타난 이후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자 나에 대한 경계심이 늘어난 것이 분명했다.

“이곳은 아니지만 어촌계에서 종종 보상금을 둘러싸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 같더군요.”

“우리 어촌계에서는 그런 일이 없네!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분란을 키우지 말게!”

어촌계장은 진심으로 화가 난 듯 보였다.

“해신해운에서 보상금 협의를 할 생각이 없다면 그만 떠나주시게!”

“네?”

“저기 뭐 하는가!”

어촌계장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어촌계 총회장이니 어촌계원이 아닌 사람들을 전부 퇴장시키지 않고!”

어촌계장의 말에 사람들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촌계장의 말에 따라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계장님! 마을 보상금 협의하는 것이니 어촌계원이 아닌 사람도 같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총회장의 한쪽 구석에 있는 사람이 소리쳤다. 그는 어촌계에 가입하지 않은 어촌 마을의 사람으로 보였다.

“해신해운에서 보상금 협의는 없다고 했으니 그 일은 나중에 협의하도록 하지.”

“······.”

“그리고 일단 해신해운 사람들은 이제 관련이 없으니 그만 나가주시게.”

어촌계장의 말에 정재훈 사원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 앉은 백경운 변호사.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때 백경운 변호사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하하하. 이제 제가 나설 때군요?”

“왔습니까?”

“네, 사무장이 겨우 찾아냈다고 하네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경운 변호사도 좀 전과는 달리 제법 자신감 있는 표정.

백경운 변호사가 앞으로 나섰다.

“계장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해신해운 사람들은 그만 나가라고 하는 말을 못 들었소?”

“하하하. 저는 변호사입니다. 해신해운 소속 직원이 아닙니다.”

“변호사도 어촌계원은 아니지 않소? 말장난 그만하시고 이제 그만 나가주시오.”

“글쎄요······.”

그때 백경운 변호사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걸 한번 봐주시죠.”

“그게 뭐요?”

어촌계장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수작질인가?

“위임장입니다.”

“뭐?”

“위임장이요. 어촌계원의 총회 참석 권한을 위임받은 위임장입니다.”

“뭐라?”

어촌계장은 백경운 변호사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그는 노안으로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듯 잔뜩 인상을 쓰며 핸드폰 안에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백경운 변호사가 방금 전달받은 문자. 그의 사무실 직원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 첨부된 사진이 있었다. 그건 이곳 어촌계에 속한 계원의 명의로 작성한 위임장 사본이었다.

“이, 이게 무슨?”

“어촌계원으로부터 총회 참석을 위임받았습니다. 위임장 내용 잘 보이시죠?”

“······.”

“그럼, 대리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니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백경운 변호사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 저는 어촌계 관련해서 꼭 아셔야 할 내용이 있어서 발언권 요청을 드렸습니다.”

“······?”

이제는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백경운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어촌계와 관련해서는 꼭 이해하셔야 하는 법리가 있습니다.”

“법리? 그게 뭐요?”

“음, 법률 이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법리는 바로 소유의 형태입니다.”

“소유?”

“그렇습니다. 법인 아닌 어촌계가 취득한 어업권은 계원의 소유가 아닌 어촌계의 총유(總有)에 속합니다. 총유라는 말을 다들 들어보셨죠?”

“들어는 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맞습니다. 법적으로는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해하셔야 하는 내용은 간단합니다. 어업권은 총유이고, 어업권에 따라 발생하는 보상금도 어촌계의 총유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총유물인 손실 보상금의 처분은 원칙적으로 계원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이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백경운 변호사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좀 더 쉬운 설명이 필요했다.

눈치챈 백경운 변호사가 말했다.

“보상금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어촌계 결의에 의하지 않고 처리하는 경우에는 범죄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범죄?”

효과가 있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란 표정.

“그렇습니다. 어촌계의 돈을 함부로 빼돌리면 업무상 횡령이나 업무상 배임죄가 될 수 있다는 뜻이죠.”

백경운 변호사의 한쪽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런데 어촌 마을에도 얼마 전에 오염 물질 때문에 배상금을 받은 사실이 있지 않았습니까?”

어업 보상금 (3)

-부산 어느 마을 어촌계 총회장

배상금? 백경운 변호사의 말에 사람들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마도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 표정.

그래, 마을 사람들은 그 일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취급했을지도 모른다.

어촌계가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서 소송을 진행했고 배상금을 배분했다.

자세한 내막은 어촌계의 집행부가 아니라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 사안이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최소한 한 명은 반골 기질을 가진 사람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있습니다.”

역시, 백경운 변호사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오염 물질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해서 배상금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마을은 어촌계장에 반대하는 반골 세력이 제법 공고했다. 그는 마을의 비상 대책 위원회의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백경운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배상금 배분 문제는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음, 글쎄요. 그때 어촌계 집행부에서 알아서 잘 처리했다고 듣긴 했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상금을 분배해 자기 주머니로 목돈 얼마가 들어오면 그것으로 만족했을 것이 분명했다.

백경운 변호사도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는 표정.

“네, 다들 그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불과 몇 년 전에 이곳 어촌 마을이 오염 물질로 손해를 입은 사건 말입니다.”

“으음,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사람들도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배상금으로 지급된 돈을 배분하는 과정에 문제는 없었나요?”

“······?”

“배상금을 받지 못했다거나 제대로 배상을 받지 못한 분은 없었나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할 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는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골이라고 해도 요즘은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시대는 아니니까.

“제 의뢰인은 이곳 어촌 마을에서 대대로 김 양식장을 운영해오던 어촌계원입니다. 아마도 누군지 잘 아실 겁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없는 김 양식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짐작 가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대대로 운영해오던 양식장의 규모가 최근 많이 줄었습니다. 그 이유를 혹시 들어보신 분이 계신가요?”

“······?”

사람들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매일 전쟁터같이 바쁘고 힘들게 지내는 어민들이었기 때문에 남들의 사정에 무심한 듯 보였다.

“의뢰인의 주장은 어촌계장이 어촌계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어업 면허를 불법으로 임대했고, 그런 임대 과정으로 인해 의뢰인의 양식장 면적도 부당하게 축소돼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

사람들은 그제서야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그런 일이?”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비상 대책 위원회의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이제 어촌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대답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흥! 그건···!”

“아, 계장님, 압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압니다.”

“······?”

백경운 변호사의 말에 어촌계장이 발끈했다. 하지만 백경운 변호사는 그에게 반론을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백경운 변호사가 말을 이어갔다. 사람들이 의혹에 찬 표정으로 어촌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좀 더 공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계장님은 아마 어촌계 정관에 따라 이뤄진 적법한 조치라고 항변하시는 거겠죠?”

“으음··· 맞네. 정관에 따라 일을 처리한 것이고 어떤 잘못도 없었네.”

어촌계장이 대답했다.

그는 잔뜩 화가 난 표정.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어갔다.

“백 변호사, 이런 식으로 아무런 증거도 없이 나를 모함할 생각인가?”

“네?”

“계속 이런 짓을 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네. 변호사이니 무고죄가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 잘 알겠지?”

“음, 법에 대해서 잘 아시나 보네요.”

“흥! 어촌계장으로 일하다 보면 이런저런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다반사이네. 내가 그 정도 협박에 굴복할 것 같은가?”

어촌계장의 자신감 있는 어조.

겁이 없는 것인지 무식한 것인지. 변호사를 상대하면서 법을 들먹이고 있었다.

백경운 변호사가 말을 이어갔다.

“무고죄라··· 뭐, 일단 고소하거나 고발장을 제출한 것은 아니니까요. 무고죄는 아마 성립되기 어려울 것 같군요.”

“으흐흠! 그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음, 이제는 명예훼손이다 뭐 이런 주장을 하시는 건가요?”

백경운 변호사는 서류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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