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45/200)

어촌계장은 지금 이 기세를 이용하면 여론을 자기 편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어촌계장이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흥! 자네들도 모두 잘 알고 있지 않나! 비상대책위원횐지 뭔지 만들어서 활동하는 놈들이 사사건건 어촌계의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그게 이번 사건과는 무슨 상관입니까?”

“보상금을 협의해야 되는데 어장을 고의로 훼손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네?”

“보상금이 낮아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음······?”

“그러면, 비상대책위로 활동하는 놈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보상금이 터무니없이 적으니 개발 사업을 하지 말자고 사람들을 선동할 것이 아닌가!”

“그, 그런?”

“설마··· 그렇게까지?”

어촌계장의 말에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촌계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냥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저것 봐라?’

어촌계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리질 못할 정도의 미세한 입술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띠링!>

+스킬 [고소고발 Lv.17]을 사용합니다. +

- 범인을 추적합니다.

- 어촌계장의 심박수가 빠르게 증가합니다.

어촌계장은 여론의 분위기가 자기에게로 넘어온 것을 직감한 것인지 살짝 흥분한 상태였다.

자작극의 주동자로 지목된 유 선장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계장님, 그게 무슨 헛소립니까? 우리가 우리 어장을 왜 훼손합니까? 자기 손으로 손해 볼 짓을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유 선장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흥! 손해는 무슨! 누가 손해를 봤단 말인가?”

“네? 여기 있는 사람들 어장과 어구들이 이렇게 많이 훼손되었는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자네는 해신해운을 상대로 10억 원 손해 배상해 달라고 청구를 했다면서?”

“······!”

“우리끼리 솔직하게 하는 말이지만 그 어장이 훼손되었다고 10억을 청구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소린가? 10억 원 손해배상을 받으면 일도 안 하고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남기는 것이 누구라도 그런 짓을 할 만하지 않은가?”

“그. 그건.”

“일도 안 하고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게 무슨 손해란 말인가!”

어촌계장의 말에 유 선장은 답변을 하지 못하고 묵묵부답했다. 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유 선장이 10억 원을 청구한 이유는 이런저런 손해들을 전부 합산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 금액은 엄밀하게 산정한 내역이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무리하게 확장한 청구 금액이었다.

앞으로 있을 소송을 대비해서 협상 초기에는 청구 금액을 크게 부르는 것이 좋다는 주변의 조언을 그저 별생각 없이 따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 노회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어촌계장은 이런 일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구나!

어촌계장이 눈을 흘기며 유 선장을 바라보았다.

“유 선장, 아무리 돈에 눈이 멀어도 이런 일을 벌여서야 되겠는가? 어부가 바다에 나가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 어장을 직접 훼손하다니 그게 할 짓인가!”

유 선장은 어촌계장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못했다.

평생 바다에서 일만 해오던 사람이다. 권모술수에 능한 어촌계장과 논박을 하는 것은 그에게 무리인 듯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타이밍이 분명했다.

이대로라면 어촌계장이 의도하는 대로 분위기가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계장님,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네요.”

“음?”

나는 어촌계장에게 다가섰다.

어촌계장은 나에게 손을 휙휙 내저었다. 참견하지 말고 자리로 돌아가라는 뜻.

“장보고 과장, 어촌계 내부의 일이니 가만히 있게.”

“해신해운 선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주장이 있으니 저도 상관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음···.”

“유 선장님이 비상대책위로 활동하면서 계장님 일을 방해하고, 해신해운을 상대로 무리한 청구를 한 것도 사실인데요.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질 않습니까?”

“으음?”

“어장을 훼손한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죠.”

“무슨 소린가! 저놈들이 작당한 일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그건 어촌계장님이 주장하시는 내용이죠. 증거가 없질 않습니까? 증거가.”

“······!”

어촌계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밥을 떠다 먹여 줄 것인데 이놈이 왜 나서는 것인가?

“그럼 해신해운 선박이 우리 마을의 어장을 훼손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런 뜻은 당연히 아닙니다. 해신해운 선박이 훼손한 것은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소린가? 그럼 누가 했다는 말인가?”

“글쎄요. 저도 아직 모릅니다.”

“하하하. 이거 참 어이없는 친구로군.”

어촌계장이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그사이 정재훈 사원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한 증인이 이곳에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제 곧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음? 뭘 말인가?”

“증거가 오고 있거든요. 누가 어장을 훼손했는지 그 사실을 밝힐 수 있는 증거 말입니다.”

“뭐?”

그때. 드르륵.

총회의 뒷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총회장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모아졌다.

그는 다름 아닌 횟집을 운영하는 김호영 선장의 아버지였다.

“보, 보고야.”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을 향하자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인 김호영 선장의 아버지가 천천히 총회장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들고 있던 스티로폼 상자를 나에게 건넸다.

“이, 이거.”

“들어있던가요?”

“그래.”

김호영 선장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촌계장의 얼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해갔다.

“도, 도대체 그게 뭔데 이 난린가!”

어촌계장이 다가와 스티로폼 상자에 손을 가져갔다.

나는 그의 손을 막아내며 상자를 몸 뒤로 감췄다.

“계장님, 잠시만 기다리시죠.”

“뭐?”

“상자의 내용을 확인하기 전에 잠시 이곳에 계신 분들에게 설명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뭐?”

나는 상자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총회장에 모인 어촌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 제 손에는 이 마을의 양식장을 훼손한 사람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다.”

“······!”

“잠시만 제 설명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좋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크게 소리치자 어촌계장도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사실 제가 처음 이곳으로 내려왔을 때는 보상 협의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해신해운은 한 푼도 보상할 생각이 없다고 하질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 이곳에 내려와 조사를 해보니 이 마을에 훼손된 양식장이 꽤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점이 이상하더군요.”

“뭐가 말입니까?”

“해신해운 선박이 양식장 근처로 오가는 노선은 1개밖에 없습니다. 많아도 일주일에 2번 정도만 선박이 오고간다는 말이죠.”

“······!”

“그런데, 최근에 훼손되었다고 해경에 신고한 사람만 10여 건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그, 그럼.”

“네, 맞습니다. 해신해운 선박에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뜻입니다.”

“그럼 범인은 누구란 말이오?”

“저도 아직 모릅니다. 지금부터 범인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곳 어촌 마을에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특히 양식장이 있는 곳은 넓은 바다다 보니 도난을 방지할 시스템과 철조망 같은 설치를 할 수 없어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나는 과거에 읽은 신문 기사를 떠올렸다. 그건 프랑스 굴 양식장에서 도둑을 잡은 방법이었다.

프랑스에서는 굴이 고급 요리 재료로 쓰이면서 상당히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그런 까닭에 수확기가 되면 굴 양식장을 싹쓸이하는 도둑이 기승을 부린다.

이를 막기 위한 굴 양식업자의 아이디어였다.

굴을 훔친 도둑들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도매상 등에 굴을 판매해야 한다. 이 점에 착안한 양식업자가 굴 꾸러미에 일종의 추적 장치를 부착했다.

추적 장치는 다름 아닌 쪽지. 양식업자가 굴 껍데기 속에다 쪽지를 적어 넣어 이 굴이 자신의 굴이라는 표시를 해 둔 것.

양식업자는 쪽지에 메시지를 남겼다. 이 굴은 도둑이 훔쳐 간 장물이며 누구든 쪽지를 보고 연락을 주면 포상하겠다고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굴 도둑들의 절도 행위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나의 설명을 들은 어촌 사람들의 입을 크게 벌렸다.

“그, 그럼 그 스티로폼 상자 안에 있는 게 뭡니까?”

“이게 그 추적의 결과물입니다.”

“며칠 전, 이곳에 내려온 저는 다이버들을 동원해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몇몇 양식장에 이 추적 장치를 심어 뒀습니다.”

내가 꺼내 든 추적 장치는 방수 처리를 한 종이쪽지였다.

“이 종이를 양식장 곳곳에 심어두었습니다.”

잠시 소란스러웠던 총회장이 고요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가장 최근에 피해를 당한 분이 누구시죠?”

“접니다.”

나의 말에 한쪽 구석에서 손을 든 사내가 있었다.

여지없이 그는 어촌계장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스티로폼 상자를 꺼내 들었다.

상자 안에는 양식 생선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나는 조용히 생선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생선 입 안에는 내가 심어놓은 종이가 들어있었다.

종이를 꺼내 들어 천천히 펼치기 시작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펼쳐 보여준 종이와 동일했다.

“음, 제가 적어 넣은 종이가 분명합니다.”

나는 김호영 선장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분은 횟집을 운영하시는 분입니다. 이 마을에서 잡힌 고기들을 주로 사용하신 분이죠. 아마 오래 거래하신 분들도 계실 테니 잘 아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나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김호영 선장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판매한 사람이 누굽니까?”

“······!”

“판매한 사람이 이 자리에 있습니까?”

어업 보상금 (2)

-부산 어느 마을 어촌계 총회장

김호영 선장의 아버지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자신에게 훔친 어류를 판매한 사람이 이 자리에 없다는 뜻이었다.

“휴······.”

어떤 사람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다.

“으흐흠!”

별안간 헛기침을 크게 한 사람이 있었다. 어촌계장이었다.

“이, 이것 참 아쉽구만. 판매한 사람이 이 자리에 없다니.”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어촌계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급하게 지금 이 자리를 수습하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아, 아니 다행일세. 판매한 사람이 이 자리에 있다는 뜻은 어장을 훼손한 사람이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뜻이 아닌가?”

“그런 건가?”

“그래 없는 게 다행이지. 그래 다행이야.”

어촌계장의 말에 어민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김호영 선장의 아버지에게 다가섰다.

“아버님, 판매한 사람이 이 자리에 없습니까?”

“그래.”

“혹시 그 사람이 이 마을 사람이 아닌 겁니까?”

나의 질문에 총회장은 다시 삽시간에 침묵만이 감돌았다.

만약 장물을 판 사람이 이곳 어촌 마을의 사람이 아니라면 이 총회장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때 김호영 선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이 자리에 있는 어민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결심한 듯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 어촌 마을의 사람이 아니라 도매상으로부터 샀습니다.”

“······!”

역시! 찾았구나. 나는 물었다.

“그 도매상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바로 문밖에 있습니다. 함께 이 자리에 왔습니다.”

“뭐, 뭐라?”

어촌계장이 그 말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뒷문을 향해 돌렸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방금 전까지 문 앞에 서 있던 탄탄한 근육질의 사내가 문밖에서 안으로 들어섰다.

“빨리 들어가시죠.”

정수호 이사가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 뒤로 한 사내가 총회장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천천히 총회장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

총회장을 가득 채운 어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이 마을 사람들과 거래를 많이 하는 상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도매상과 거래를 가장 많이 하는 마을 사람이 있다.

바로 그는 어촌계장의 오랜 거래처였다.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어촌계장을 힐끔거렸다.

나는 정수호 이사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이분은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오션플래닛이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수중 공사 회사에 종사하시는 분입니다.”

“······?”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

“사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며칠 전부터 양식장을 훼손하고 물건을 훔쳐 가는 범인을 찾기 위해 정수호 이사님에게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설명드린 양식장에 추적 장치를 설치하신 분이 바로 정수호 이사님입니다.”

“······!”

“네, 아마도 장물을 판매한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신 것 같군요.”

나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어촌계장을 바라보았다.

“계장님, 뭐 특별히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어, 없네.”

어촌계장의 눈빛이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 자신감을 상실한 표정은 아니었다. 긴장하지만 마지막 한 수를 남겨둔 그런 표정.

나는 고개를 돌려 정수호 이사에게 물었다.

“이사님, 장물에 대한 추적을 하신 건가요?”

“맞습니다.”

우리는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였지만 정수호 이사는 공적인 자리인 만큼 존댓말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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