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소리야!”
예상했던 싸늘한 반응. 방금 전보다 더 격앙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야 이! 시발 이거 무슨 소리야!”
“뭐 하는 놈이야 저거!”
“장난치러 온 거야 뭐야?”
거친 바다 사나이. 그들의 걸걸한 욕설이 오랜만에 나의 귓가를 때렸다.
‘허허허. 이런 것도 반갑네.’
나야 이런 상황에 단련된 몸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정재훈 사원을 바라보았다.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내디딘 신입 사원.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대기업 본사에서 시작하는 사회생활은 사실 온실 속 화초와 다르지 않다.
특히,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대기업 사무직에서 시작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작은 규모의 회사원들이 혼자서 다양한 업무를 멀티태스킹하는 데 비해 대기업의 직원들은 큰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한정적인 업무를 취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나와 중소기업으로 이직하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
정재훈 사원은 입사 이래 처음 목격하는 상황이 분명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정재훈 사원은 총회장을 가득 채운 욕설에 깜짝 놀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배워가는 거지.’
나와는 비슷한 나이지만 전생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나와는 경험치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 원양어선을 타면서 상대했던 거친 뱃사람들이 떠올랐다.
“크크크.”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실소에 가까웠다.
나의 웃음소리에 별안간 시끄러웠던 어촌계 총회장의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나도 제법 산전수전을 다 겪은 뱃사람이 아닌가?’
겨우 이 정도에 겁을 먹을 사람이 아니다. 아니 이 상황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바다 위를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거침없는 모습이 반갑게 느껴진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조용해진 장내에 나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해신해운에서는 한 푼도 지급할 생각이 없습니다.”
“······.”
잠시 적막이 흐르고.
“야 이 미친 새끼야!”
“저 새끼 뭐야 누구 약 올리려고 왔나!”
“저 새끼 당장 끌어 내려!”
다시 총회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입에서는 온갖 욕설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음 데시벨은 수인 한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총회장을 가득 채웠다.
그 와중에 나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이 있었다.
바로 백경운 변호사였다.
그는 연민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왜 저러지?’
그냥 들어가세요. 좋은 꼴 못 봅니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려 자리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백경운 변호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앞으로 나와 내 옆으로 섰다. 괜찮다.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표정과 함께.
“선박 운항은 항해사에게, 분쟁 해결은 변호사에게 맡기시죠.”
백경운 변호사가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허허허. 안 될 텐데.’
최근 여러 사건에서 좋은 실적으로 쌓고 있는 백경운 변호사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성난 어민들 앞에 나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법무법인 올림푸스의 대표 변호사 백경운 변호사입니다.”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던 백경운 변호사는 최근 동료 변호사들을 모아 법무법인 올림푸스를 설립했다.
미남이지만 어딘가 냉철해 보이는 인상의 백경운 변호사가 말을 시작하자 소란스러웠던 총회장의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았다.
“제가 잠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
“장보고 과장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양식장이나 어망이 훼손된 것이 해신해운 선박의 책임이라는 점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증거나 근거가 없으면 보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내용인데요······.”
‘음, 글쎄······.’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 아닌가?
나의 예상대로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변호사가 왜 나서!”
거친 뱃사람들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저, 잠시 제 말을······.”
백경운 변호사가 손을 들어 올려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은 흥분해 있었다.
“변호사 말고 경찰 불러 경찰!”
“제가 설명을 좀······.”
“누가 변호사 불렀어! 당장 내려가요! 당신이 왜 나서!”
“저, 저기······.”
“당장 해신해운 사장 내려오라고 해!”
사람들은 변호사가 나섰다는 말에 더 화가 난 듯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변호사라는 놈이 기업 편이나 들고 말이야!”
“어디서 온 놈이야 저거!”
법정에서도 당당하게 변론을 잘해나가던 백경운 변호사가 땀을 삐질삐질 흘려댔다.
‘흐흐흐. 저렇게 당황한 건 또 처음 보네.’
이미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백경운 변호사의 등장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흐흐흐. 쉽지 않지요?’
나를 바라보는 백경운 변호사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위로를 표했다.
논리적으로 법에 대해서 설명하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역시 내가 나서야겠군.’
나는 백경운 변호사의 어깨를 한차례 두들긴 후 앞으로 나섰다.
< 띠링! >
+스킬[협상 Lv.18]을 사용합니다. +
- 설득력이 올라갑니다.
+스킬[고소고발Lv.17]을 사용합니다. +
- 범인을 추적합니다.
+스킬 [기업가의 정신 Lv.5]을 사용합니다. +
- 최상의 이익을 도출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나는 정재훈 사원의 의자 옆에 놓여 있던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물을 꺼내 높이 치켜들었다.
오늘 오후 M.V. “가이아”호 선저(선박의 바닥)에서 수집한 그물이었다.
“제 손에 있는 이 물건이 뭔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내가 크게 소리치자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물 아니오!”
“네, 이건 오늘 해신해운 가이아호 스크류에 걸려 있던 그물입니다.”
“음?”
어민들이 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그럼 해신해운이 어망을 훼손했다는 증거가 아니오?”
“글쎄요.”
나는 고개를 돌려 해신해운을 상대로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유 모 선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어구가 선장님 어구가 맞습니까?”
유 선장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앞으로 걸어 나와 그물을 살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 봐도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던 것.
하지만 아직 포기할 수는 없었다.
유 선장이 말했다.
“그래도 이 그물이 가이아호에서 수집한 거라는 걸 어떻게 믿소?”
“맞습니다! 그런 증거가 있습니까?”
“해신해운이 수집한 것인데 어떻게 믿습니까!”
몇몇 어민들이 동조하며 소리쳤다.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뒷문에 서 있는 사내를 가리켰다.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상남자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 해신해운에서 직접 수거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수중 공사 업체인 오션플래닛에 수거 업무를 위탁했습니다. 이 물건을 수거한 곳은 다른 회사입니다.”
“음···.”
“······.”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뒷문에 서 있는 정수호 이사를 바라보았다. 그의 포스에 눌린 것인지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실제로 수중에서 작업하는 동영상을 찍어서 해양경찰에 이미 제출했으니 경찰에 연락해 보시면 관련 자료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
사람들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기세를 타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유 선장님 말고 다른 분들도 피해를 보신 분들이 많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그물을 한번 확인해 보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피해를 보신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나의 말에 사람들이 쭈뼛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약 10여 명이 약간 넘는 수.
그중에는 유 모 선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유 모 선장을 포함해 어장 피해를 본 어민들의 위치.
이들은 이 넓은 총회장 한쪽 구석에 다닥다닥 모여서 앉아 있었다.
“음?”
나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사람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
“그것참 이상하네요. 저쪽에 모여 있는 분들만 저렇게 피해를 보셨다니?”
“그러게.”
“왜 저렇게 다 모여 있어?”
“이상하네, 그런데 저 사람들은 그거 아니야?”
나의 말을 듣고 피해자들의 면면을 확인한 어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이들도 쉽게 알아차린 것이다.
피해자들의 정체.
이들은 바로 가장 오래 기간 이 어촌계에 가입되어 있던 사람들로, 현재 어촌계장의 비위 사실을 문제 삼으며 어촌계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는 어민들이었다.
“허허허!”
갑자기 소름 끼치는 걸걸한 웃음소리가 나의 등 뒤에서 터져 나왔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촌계장이었다. 그는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놈들이 이런 짓을 할 줄 알았다. 나를 어촌계장 자리에서 끄집어 내리려고 그렇게 소란을 피우더니 결국 뜻대로 안 되니 이놈들이 모여서 이런 일을 작당했구나!”
어업 보상금 (1)
-부산 어느 마을 어촌계 총회장
어촌계장의 느닷없는 고성에 총회장은 잠시 적막감이 감돌았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표정으로 어촌계장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안 그래도 그는 최근 어촌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잡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이 나이를 먹고도 이렇게 어촌계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나를 몰라준다. 내가 그동안 어촌계를 위해 한 일이 얼만데. 어촌계장은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잡음의 원인은 역시 돈이다.
조용했던 이곳 어촌 마을을 뒤흔드는 문제가 발생했다.
마을 사람들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곳 어업 마을의 바로 인근에 곧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조용했던 어촌 마을은 두 패로 나뉘기 시작했다.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 막대한 어업 보상금이 지급될 것이니 개발에 찬성하자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조상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개발 사업에 따른 어업 보상금이 조용했던 어촌 마을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것 봐라?’
나는 유심히 어촌계장을 바라보았다.
노회한 그의 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을 오래 살아도 버릴 수 없는 욕심이었다.
‘제법 연기력이 좋으니 무슨 수작인지 지켜볼까?’
어촌계장이 열연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잠시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이곳 어업 마을 인근의 대규모 개발 사업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강행된다.
하지만 개발 사업이 끝나도 어촌 마을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암투는 끝날 줄을 몰랐다.
보상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두고 어촌 마을의 주민들 간에 편이 갈려 몇 년째 법정 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고소 고발과 각종 민사 소송으로 이어진 송사(訟事) 때문에 수백 년 동안 이웃사촌처럼 살아 온 평화로운 어업의 공동체가 무너질 지경이었다.
그때.
어촌계장이 다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아무리 내가 추진하는 일을 반대한다고 해도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는 양식장이 훼손되었다고 주장하는 유 선장과 그 주변에 있는 무리들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개발 사업만 잘 진행되면 못해도 우리 마을에 지급될 보상금이 수백억 원이 넘는다는데 도대체 그게 왜 그리 불만인가!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런 자작극을 펼친단 말인가!”
술렁. 어촌계장의 말에 장내의 사람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어촌계장의 말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어장 훼손 사건의 범인이 이 어촌 마을 내부인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어촌 마을 사람들은 아직 개발 사업과 관련해서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상태였다.
총회장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젊은 청년이 물었다. 그는 개발 사업과 관련해서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한 마을 사람이었다.
“계장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작극이라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