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200)

억울한 일을 두 번 당하지 않으려면 진짜 범인을 내가 잡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음, 형님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음?”

“제게 좋은 계획이 있습니다.”

“좋은 계획?”

나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하게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구심에 가득 차 있던 그의 얼굴이 나의 설명을 들으면서 서서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변해갔다.

“뭐, 재밌네.”

“그렇죠?”

“네 말대로 잘되면 좋은데, 그게 계획대로 잘되려나?”

“뭐, 해봐야 알죠.”

“그래, 아무튼 재밌는 놈이야. 너를 보면 예전에 같이 일하던 친구 생각이 나. 참 꾀가 많은 놈이었는데.”

“음? 그분도 해양경찰인가요?”

“그건 아니고, 멀리 있는 친군데···.”

차진혁 경감은 누군가 그리운 표정을 잠시 짓더니 이내 말을 돌렸다.

“뭐, 이 이야긴 됐고! 그래서 앞으로 내가 도와줄 게 뭐라고?”

‘이 사람이 이런 표정을 지을 때도 다 있네.’

항상 자신감에 차 있고 강인한 모습의 차진혁 경감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일단, 자세한 계획은 저녁에 알려드릴게요.”

“음?”

“작전을 좀 짜야 되니까요. 말씀드린 횟집에서 만나시죠. 오랜만에 식사도 같이하면서.”

“그래, 술도 사는 거지?”

“당연하죠.”

나의 말에 차진혁 경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사무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부산 광안리 인근의 횟집

얼마 후 같은 날 저녁.

광안리 해수욕장의 한쪽 끝.

횟집들이 밀집해 있는 곳을 지나면 한쪽 구석에 허름한 건물이지만 제법 규모가 큰 횟집이 있다. 제법 역사가 있는 곳인지 횟집 안에는 다녀간 여러 유명인들의 사인이 걸려 있다.

그리고 횟집 안 한쪽 구석에 마련된 방.

3명의 남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은 오션플래닛의 정수호 이사와 차진혁 경감.

보물선 사건 당시 대산항 인근에서 거경파 놈들과 대적했던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드르륵!

방문이 열리고 머리가 엉클어진 정재훈 사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녀왔습니다. 일찍 와계셨네요.”

투덜거렸던 것과 달리 제법 열심히 조사를 한 모양인지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

정재훈 사원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방 안에는 나 말고도 험상궂은 사내 둘이 더 있었기 때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까이 접근하기 힘든 포스를 뿜어내는 근육질 사내의 모습에 위압감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정재훈 사원은 그들을 살펴보더니 살짝 긴장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서 들어와.”

“흐흐흐. 제가 뭐 긴장했다고 그러세요.”

정재훈 사원은 긴장한 표정과 달리 지기 싫은 듯 허세를 부렸다.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정수호 이사님은 신항 터미널에 봤고, 이분은 해양경찰인 차진혁 경감님.”

“차진혁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정재훈 사원입니다. 해신해운 법무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네,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네? 왜 다들 같은 소리를···.”

정재훈 사원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차진혁 경감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좀 지나 보면 알게 될 겁니다.”

“······.”

“어휴,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

“네?”

“우리는 그래도 장보고 밑에서 일하는 부하 직원은 아니니까요. 생각만 해도 참···.”

농담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을 것 같은 상남자.

그런 진짜 사나이 차진혁 경감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재훈 사원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하지도 않는 그런 농담을 다 하시네.”

“농담 아닌데?”

“······.”

이 사람들이 진짜!

저런 험악한 성난 근육의 남자가 나를 두렵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정수호 이사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정재훈 사원은 이미 단단히 오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모른 척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부탁한 자료들은 조사를 좀 했어?”

“네, 과장님, CCTV 같은 자료들은 없다고 하고요.”

“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어민들을 수소문해 보니 최근에 어장들이 훼손되는 사건들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확인을 좀 해봤나?”

“네, 이게 그 명단입니다.”

명단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올라 있었다.

“제법 열심히 조사했네?”

“과장님!”

정재훈 사원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빽 질렀다.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제법이 아니고 진짜 열심히 했다니까요.”

“허허허.”

“그래도 부산까지 와서 회도 못 먹고 가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정재훈 사원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바쁘게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르륵! 그때 방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섰다.

“아버님!”

“어, 보고야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네, 형은 잘 지내죠? 요즘 연락한 지 좀 됐네요.”

그 사람은 횟집 사장이자 이제는 선장이 된 김호영 선장의 아버지였다.

‘이제 올 사람들은 다 왔네.’

조연 배우들이 전부 모인 것을 확인했다.

준비한 작전 계획을 천천히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 * *

-부산 어느 마을 어촌계 회의장

며칠 후.

이곳 마을의 어민들이 회의장으로 몰려들었다.

오늘 어촌계 총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벌어지고 있는 어망 훼손 사건들의 보상에 대한 협의가 있을 예정이었다.

사람들이 전부 모이자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좀 전에 인사를 나눈 이곳 어촌계의 계장이었다.

“아아! 다들 모였습니까?”

“네!”

회의장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어촌계장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바쁜데, 툭하면 오라 가라야!”

“그러니까! 계장이면 다야?”

뒤에 앉은 사람들은 불만이 많은 듯 서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내 귀에도 들려왔다.

“과장님, 아무래도 불만이 많은 모양이네요.”

내 옆에 앉은 잘생긴 사내가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옆자리에 앉아 안경을 쓰고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사람은 백경운 변호사였다.

백경운 변호사는 해적 사건과 이대성 삼항사의 아버지 선원법 재해 사건을 처리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

경험이 쌓였기 때문일까?

예전과는 다르게 백경운 변호사에게서는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사이 그는 제법 여러 해상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리고 해운회사 법무팀 사이에서도 제법 명성을 쌓은 모양.

해신해운과는 부산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처리하기 위한 고문 계약을 체결해 해신해운의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진척도를 한번 확인해봐야겠네.’

나는 메시지 창을 열었다. 아직 달성하지 못한 장기 퀘스트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달성하지 못한 퀘스트 목록이 떠올랐다.

< 띠링! >

+해상법 전문 변호사(No. 2) 육성 퀘스트 진척도[75%] +

‘거의 다 끝나가는구나.’

이제 머지않아 이 퀘스트도 문제없이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 기간 진행되고 있는 장기 퀘스트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웅성웅성.

그때 회의장에 한바탕 소란이 일더니 한 젊은 사내가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계장님, 그런데 바쁜데 왜 다 이렇게 모이라고 했습니까?”

“허허허. 최 씨 좀 기다리시게. 다 이유가 있으니 불렀겠지.”

“또 뭐, 개발이니 매립이니 뭐 그딴 소리 하려고 사람들 부른 거 아닙니까?”

“에이! 그게 또 무슨 헛소린가!”

어촌계장은 그의 말에 화가 나는 듯 크게 소리를 질렀다.

어촌계장이 회의장을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찾아냈다.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향해 걸어오며 음흉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M.V “가이아”호 어장 훼손 사건 (4)

-부산 어느 마을 어촌계 총회장

나를 바라보는 어촌계장의 눈빛이 음흉하게 빛났다.

나이는 육십 세 정도 되었을까? 그의 주름진 양쪽 볼에는 욕심이 가득했다.

‘왜 저래?’

어촌계장은 나를 보며 미소를 한 번씩 짓더니 사람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

“다들 최근 발생하고 있는 어장 훼손 사건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네. 우리 어촌계에서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제법 되지.”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려 나를 가리켰다.

“그래서 보상 협의를 위해 해신해운의 법무팀 사람들을 특별히 모셨으니 다들 설명을 들어보자고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네. 해신해운에서 온 사람들이 있으니 일단 보상 협의를 진행하고 나머지 우리 어촌계의 중요한 일들을 의논하도록 합세.”

어촌계장의 말에 총회장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아졌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나와 정재훈 사원, 그리고 백경운 변호사만 정장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회의장 뒤편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인가 보군.”

“그래도 다행이군.”

“저 영감탱이가 도움 되는 일을 할 때도 다 있네?”

“뭐, 일단 얼마를 주겠다는 건지 한번 들어봐야지!”

사람들은 해신해운의 직원들이 이곳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벌써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다들 기대하는 눈친데.’

이거 좀 미안하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오른손을 들어 올려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돌아서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해신해운 법무팀의 장보고 과장입니다.”

가볍게 묵례를 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때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 도대체 보상은 어떻게 할 겁니까!”

“맞습니다! 빨리 좀 처리해주십시오. 다 죽게 생겼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서서 소리쳤다.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그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어이! 유 선장! 진정 좀 하시고 일단 들어 보시게.”

어촌계장이 나서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음? 저 사람은?’

먼저 소리친 사람은 아마도 신라일보에 제보했던 바로 그 유 모 선장이 분명해 보였다.

어촌계장이 말했다.

“해신해운에서 이렇게 보상 협의를 위해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나. 내가 이 자리를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가? 일단 다들 설명을 들어보시게.”

능구렁이 같은 어촌계장이 적당히 자신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타일렀다.

“허허허. 해신해운에서 준비해온 합의안이 있을 것 아닌가. 일단 다들 조용히 들어보고 이야기를 계속합세!”

어촌계장이 고생해서 이 자리가 마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지간히 생색이 내고 싶은 모양이다.

그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자, 장보고 과장 하시던 말씀 계속하시게.”

나는 어촌계장의 말에 앞으로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

“사실 제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보상 협의 때문이 아닙니다.”

“······!”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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