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를 인멸할 생각이겠지?”
“네?”
“완벽 범죄? 뭐 그런 건가?”
“······.”
“역시 법무팀이군.”
무슨 소리야 이게.
‘이 사람들이 도대체 나를 뭐로 생각하는 건지.’
운항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에 대한 오해를 단단히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팀장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음?”
“그런 거 아닙니다. 완벽 범죄라니요.”
“······.”
“다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큰일 납니다.”
운항팀장이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럼 어망들을 회수해서 뭐 하려고 그러는 건가?”
“어민들이 어망이 훼손됐다고 주장하니 회수한 물건과 일치하는지를 대조해봐야죠.”
“······.”
“뭐, 필요하면 국과수에 의뢰를 한다든지.”
“구, 국과수?”
“네, 해경에서도 연락을 해야죠. 가이아호 스크류에서 만약 그물 같은 것들이 회수되면 해경에 임의 제출해서 국과수 검사를 의뢰할 생각입니다.”
“으으음, 알겠네. 좋은 생각인 것 같군······.”
대답하는 운항팀장의 표정이 오묘했다.
‘너무 평범했나?’
법무팀에서 왔다고 해서 대단한 해결책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정정당당한 해결 방법에 오히려 아쉬워하는 눈치.
이거 왠지 미안한 기분인데.
운항팀장을 바라보며 나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팀장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한 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 *
-해신해운 부산신항 터미널 사업팀의 부두
정재훈 사원과 함께 내가 도착한 곳은 부산신항에 위치한 해신해운 부산신항 터미널.
해신해운이 운영하는 터미널 부두에 들어섰다.
정확히 말하면 터미널 운영사는 해신해운의 100% 자회사인 “해신해운 신항만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터미널이다. 해신해운은 여러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신항을 비롯한 국내외 터미널 운영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해신해운의 선박 M.V. “가이아”호가 접안하고 있는 선석을 향해 다가가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빨간색 대형 크레인이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대형 크레인 측면에는 “Heasin Shipping”이라는 영문 회사명이 크게 흰색 글자로 새겨져 있다.
부산신항에는 여러 개의 터미널 운영사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 해신해운 부산신항 터미널은 해신해운이 국내 최초로 무인 야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
최근 선박 대형화 추세에 맞춰 약 21만 평(68만7,590㎡)의 부지에 접안 수심 18m 이상의 수심을 확보한 상태였다.
현재의 수심으로 입항 가능한 최대 선박은 1만2,000TEU급(1TEU는 길이가 20피트인 컨테이너 1개) 선박으로 동시에 3척에 대한 하역 작업이 가능하다.
해신해운의 부산신항에는 새로운 방식의 갠트리 크레인(Gantry Crane) 12기와 수평 배열의 무인화 야드 크레인(ARMGC) 42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현재 해신해운 신만항에는 해신해운이 가입한 공동 운항 선사들과 국내외 선사들의 총 18개 서비스가 기항 중이고, 현재 200만 TEU에 가까운 물동량을 처리하고 있었다.
정재훈 사원도 새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음? 신항 터미널에 처음 온 거야?”
“아, 아닙니다. 처음은 아니고, 신입 사원 연수 때 와봤습니다. 두 번쨉니다.”
“그런데, 뭐 그렇게 신기하게 보나?”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음······.”
그렇긴 하네.
새삼 감회가 새롭게 느껴진다.
해신해운 신항만은 개장되었을 당시 각종 신기술을 도입해 만든 최신식 터미널이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탠덤(Tandem) 방식의 갠트리 크레인으로 한 번에 40피트 컨테이너 2개 혹은 20피트 컨테이너 4개를 양·하역할 수 있다.
그리고 해신해운 신항의 갠트리 크레인은 강풍 시에도 하역 작업이 가능하도록 설계했고, 컨테이너의 최단 이동 거리를 자동으로 계산하도록 설계해 터미널의 생산성을 극대화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야드 전체에 무인 자동화 설비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박이 접안하지 않은 심야 시간에도 자동화 프로그램에 따라 야드 크레인이 무인 자동으로 야드 내의 컨테이너를 다음 선박 작업에 유리하도록 이적 작업을 수행하는데, RFID(무선 인식) 설비를 통한 실시간 차량 위치 추적 시스템 등 최첨단 기술들이 다양하게 적용되어 있었다.
전생에 터미널이 개장되던 순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개장식은 해신해운의 역량을 보여주기 위한 큰 행사로 치러졌다.
해신해운의 회장을 비롯한 재개 관계자와 해양수산부장관 등 정부 관계자 그리고 국내외 항만 및 물류 관계자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해신해운의 권영호 회장은 “해신해운 신항만 터미널은 최첨단 장비와 무인 자동화 시스템으로 고객에게는 일등 기업의 고품질 서비스 감동을, 터미널을 이용하는 선사들에게는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해 상생하는 터미널을 만들겠다”고 비전을 선포했다.
그만큼 해신해운의 부산신항은 해신해운 직원들의 또 다른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터미널의 또 다른 모습이 마치 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건 바로 해신해운의 파산 선고가 내려진 날 터미널의 모습.
해신해운이 모항으로 사용하던 해신해운은 개장 이래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그런데 10여 년 가까이 바쁘게 움직이던 해신해운 부산신항 터미널의 자동화 크레인이 멈춘 것이다.
해신해운의 선박들은 항만 업체의 작업 거부로 입항과 하역 작업을 할 수 없었다.
24시간 항상 바쁘게 움직이던 터미널에는 고요한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이번에는 막아야지.’
잠시 울적한 회상에 잠겨있는 순간.
나를 깨운 건 정재훈 사원의 걸걸한 목소리였다.
“과장님, 그런데 법무팀이 이런 곳까지 와야 됩니까?”
“음? 무슨 소리야?”
“부산 지사 사람들도 있는데 탐정도 아닌 법무팀 직원이 이렇게 현장까지 와야 되는 건가 싶어서요.”
“허허허.”
내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짓자 정재훈 사원이 나를 바라보았다.
“글쎄, 이런 생각 해봤나? 법무팀에서 일하려면 가장 중요한 능력이 뭔지?”
“네? 능력이요?”
법무팀원의 능력이라. 정재훈 사원은 제법 고민해보는 눈치. 이런 꼰대스러운 질문이라니.
나도 잠시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법무팀의 직원들과도 업무 협력을 할 일이 많았다.
대기업인 해신해운처럼 큰 조직은 업무가 세분화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각 팀의 역할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다.
현업팀은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지만 인사팀은 적절한 인원수를 유지해야 좋은 업무 평가를 받는다.
일선 영업팀에서는 컨테이너를 실을 선박의 슬롯(공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지만 운영팀에서는 가장 최적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수립해 각 지점에 슬롯을 배정한다.
법무팀의 역할은 어떠한가.
영업팀이나 사업팀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때로는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법무팀은 리스크를 파악해 폭주하는 기관차에 제동을 거는 일을 한다.
영업팀은 법무팀이 일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안 된다는 말로 방해를 한다고 불만이고, 법무팀은 영업팀이 장밋빛 미래만 꿈꾸며 리스크 관리에는 관심도 없다고 불만이다.
“뭐, 법무팀이니까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건 법률 지식 아닐까요?”
고민하는 정재훈 사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법률 지식 같은 것들은 솔직히 사내 법무팀보다 외부의 전문가들이 잘하는 일이지. 정 안되면 외부 로펌의 해상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면 되니 어찌 보면 간단한 일이 아닌가?”
“그건 그렇군요.”
“그래서 회사의 사내 법무팀이라면 법리보다도 오히려 실무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발상의 전환이 더 중요한 법이야. 가장 중요한 자질은 실무를 완벽히 이해하고 거기에 법률 지식을 덧붙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음······.”
정재훈 사원이 나의 말에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조언에 상당히 감명받은 표정.
현재형 팀장이 해준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무래도 양심에 찔리는 일. 나는 전생의 경험을 떠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현업팀이 법무팀에 방법을 물어봤는데, 골방 늙은이들처럼 본사에 앉아 서류만 보고 있으면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오겠나.”
“아! 실마리는 현장에 있다 뭐 그런 말씀이신가요?”
정재훈 사원은 어딘가 추리 소설에 본 듯한 대사를 읊으며 스스로의 대답에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그러니까 현업팀에서 법무팀이 판사냐, 방법을 물어봤는데 왜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판단을 하냐는 불만이 생기는 것이지.”
“음, 자고로 법무팀이라면 될 일은 돕고, 안 될 일은 막는 게 역할이라는 말씀이시지요?”
“하하하. 역시 하나만 알려줘도 둘을 알아차리는군!”
“하하하. 과장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십시오. 오늘도 군소리 안 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재훈 사원은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평소 당돌한 행동을 많이 하는 정재훈 사원이었지만 일머리는 확실히 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접안하고 있는 M.V. “가이아”호 근처에 다가서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그 사람은 수중 공사 업체 오션플래닛의 정수호 이사였다.
“보고야!”
“이사님!”
“이제 일항사가 아니라 과장님이라고 불러야겠네?”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해신해운 본사 법무팀 과장님이니 잘 보여야지.”
“허허허 제가 앞으로 신세 질 일이 많아질 것 같은데요 뭐.”
“그나저나 어떻게 됐어요? 회수 작업은 다 끝났나요?”
“응, 방금 투입했던 다이버들 전부 다 올라왔다.”
“작업은 어떻게 됐어요?”
정수호 이사가 들고 있던 가방을 내밀며 말했다.
“그런데 미리 보여준 사진 속 어민들 어구들하고는 전혀 다른 물건 같던데?”
가방 속에 있는 물건은 전생의 기억대로 어민들이 훼손되었다고 주장하는 어망과는 전혀 다른 어망이었다.
M.V “가이아”호 어장 훼손 사건 (3)
-해신해운 부산신항 터미널
정재훈 사원이 나와 정수호 이사 곁으로 다가왔다.
“어, 이게 뭡니까?”
“방금, 가이아호 스크류 등에 걸려있던 그물인데······.”
정재훈 사원이 가방 안에 든 내용물을 뒤적거리며 살피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해?”
“음, 이상하네요. 어민들이 끊어졌다고 주장하면서 들고 온 어망들하고는 다른데요.”
“아무래도 그렇지?”
“네, 그래도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네요. 이런 증거가 있으면 아무래도 도움이 많이 되겠죠?”
“역시 현장을 발로 뛴 보람이 있지?”
“네.”
“잘됐네. 보람이 있다니. 그럼 나는 지금부터 해경에 다녀올 생각이니까. 정재훈 사원은 어촌계를 찾아가서 사고 지역 주변이랑, 어선들 출항하는 항구 주변을 탐문해서 CCTV 같은 게 있는지 한번 확인을 좀 해보게. 그리고 어민들 대상으로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없는지 확인도 좀 해보고.”
“네? 제가요?”
“그럼 누가 하나. 우리 둘밖에 없는데.”
“······.”
나의 말에 정재훈 사원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한 법무팀의 업무와는 어째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표정이 분명했다.
정수호 이사가 정재훈 사원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어떤 기분일지 잘 알고 있다는 표정.
“하하하. 아마 앞으로 고생 좀 할 겁니다.”
“네?”
“장보고랑 같이 일하려면 각오가 필요하거든요. 단단히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입니다.”
“네······?”
그 말을 듣자 울상을 짓는 정재훈 사원.
나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농담이라고 일러주었지만 정재훈 사원은 아무래도 나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 * *
-부산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울상인 정재훈 사원을 토닥거려 보내고 나는 해양경찰의 에이스 차진혁 경감을 만나기 위해 떠났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의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차진혁 경감을 찾을 수 있었다.
주차장 왼쪽 편에 설치된 흡연 구역 벤치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손을 흔드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탄탄한 근육질의 차진혁 경감이었다.
“형님!”
벤치로 달려가며 차진혁 경감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가 다가서자 차진혁 경감이 나를 위아래로 힐끔 살피더니 말했다.
“오! 이제 본사로 출근한다고?”
“네.”
“그래, 본사 출근하는 비즈니스맨답게 정장을 다 입고 있네. 역시 인물이 되니까 잘 어울리네.”
“허허허.”
칭찬하는 차진혁 경감의 말과 달리 그의 표정에는 작은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너처럼 승선 생활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허허허. 뭐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래, 사람 일이 다 그렇지.”
“그리고 이게 말씀드린 물건들입니다.”
나는 차진혁 경감을 만나 M.V. “가이아”호에서 건져 올린 어망을 건넸다.
“어민들이 들고 온 그물하고 같은 어망인지 성분 분석을 맡겨달라는 거지?”
“네, 오션플래닛사에서 작성한 보고서하고, 수중 촬영한 동영상도 있습니다. 혹시 어민들이 다른 수집 경위를 문제 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 역시 준비 잘했네.”
“그나저나, 요즘 이런 일들이 많이 생기네.”
“네?”
차진혁 경감이 가방을 뒤적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어망 훼손 사건 말이야.”
“네.”
“안 그래도 일선 서에서 양식장하고, 어망이 훼손됐다고 신고 들어온 사건들이 좀 많다는 보고가 있어서 같이 조사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오, 그래요?”
“그래, 제법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놈들인 것 같아.”
“왜요?”
“어민들이 자체적으로 잡으려 순찰도 하고 했는데 제법 빠른 고무보트를 타고 나타나서 빠르게 도망쳐서 잡지도 못했다고 하더라고.”
차진혁 경감은 이 사건이 제법 재밌는 모양이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 한쪽이 살짝 올라가 살벌한 표정.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살벌하게 느낄 만한 표정이었는데, 그가 흥미를 가질 때 자기도 모르게 그의 얼굴에 나타나는 사악한 미소였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해신해운 선박이 어민들의 어장을 훼손했다는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실을 밝혀 해신해운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세요!”
세부 퀘스트 : 누명 탈출
클리어 조건 : 범인 검거
제한 시간 : 출장 기간 종료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사내 명성 상승
실패 시 : 어장 손실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
+
차진혁 경감의 말이 끝나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역시 예상대로군.’
해신해운을 상대로 클레임을 제기한 어민들의 어장이 훼손된 것도 이놈들 짓이 분명했다.
전생에는 이 진범을 찾지 못해 소송까지 가서도 패소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