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 면허
신용재 과장이 브라질로 출국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가족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신용재 과장은 아직 미혼이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의 모친이었다.
어머니의 휴대전화에는 ‘아들’이라고 발신자가 표시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 아들의 전화에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전화기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들이 아니었다. 상대방은 한국인이었지만 들려온 목소리는 아들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들의 정체는 브라질 현지에서 아들 신용재 과장을 납치한 납치범이었다.
“해외에서 당신의 아들을 납치했다.”
그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안 그래도 출국 전부터 브라질 현지의 치안이 불안하다는 걱정을 하지 않았던가.
아들은 별일 없을 거라며 씩씩한 표정이었지만 그런 말을 들은 어머니의 마음 한구석에는 걱정이 자리 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전화기 속 목소리는 더욱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납치범들은 신용재 과장의 모친에게 ‘아들을 납치했다’며 돈을 요구했다.
‘해외로 출국한 아들을 납치했다’며,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해라’, ‘지정하는 시간까지 돈을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아들의 생명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용재 과장의 모친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놀란 마음에 전화를 끊었다.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아들이 출국하기 전에 알려준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 번호는 브라질 현지 회사의 전화번호였다.
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해봐도 연락이 닿질 않았다.
그때 다시 걸려온 전화.
납치범들의 목소리가 더욱 살벌하게 변해있었다.
‘한 번만 더 전화를 끊으면 아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아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그들의 협박은 점차 수위가 높아졌다.
겁에 잔뜩 질린 신용재 과장의 모친은 언젠가부터 전화기 속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전액을 인출해서 협박범들이 시키는 대로 돈을 전달한 후에야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신용재 과장의 모친은 해신해운 본사의 대표번호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여러 번 전화를 돌리더니 겨우 아들이 브라질로 가기 전에 근무했던 팀의 사람과 통화할 수 있었다.
신용재 과장이 근무하던 팀은 벌크전용선팀.
회사는 신용재 과장이 납치됐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현지에 연락을 시도했다.
시차 때문에 연락이 쉽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전화를 한 끝에 겨우 현지 직원과 연락이 닿았다.
브라질 현지의 직원은 신용재 과장의 숙소를 급하게 방문했다. 그리고 신용재 과장이 숙소에서 안전하게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모친에게 걸려온 전화는 보이스 피싱이었다.
입출국과 관련된 개인 정보가 어떤 경로로 보이스 피싱 범죄 조직에 넘어갔고, 보이스 피싱 범죄 조직이 이 정보를 활용한 것이다.
휴대전화 발신자 표시 시스템의 허점을 노린 보이스 피싱 기법이었다.
발신 번호 일부를 같은 번호로 조작한 뒤 국제 전화로 피해자에게 전화를 거는 방법. 발신 번호 뒤 8자리만 같으면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같은 번호의 이름으로 발신자가 뜬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보이스 피싱으로 인해 신용재 과장의 가족들은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신용재 과장의 어머니는 그 후로 큰 충격에 빠져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큰 피해를 입은 신용재 과장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해신해운을 떠나게 된다.
좀 더 많은 월급과 인센티브를 약속한 작은 해운 회사로 이직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인지도나 규모를 놓고 볼 때는 해신해운과는 비교할 수 없는 회사였지만 가능성을 보고 회사를 선택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 신용재 과장이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신용재 과장은 겉모습만 보면 순하고 어수룩해 보이는 인상.
하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영업 수완이 남달랐다. 아니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의 진가가 발휘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보이스 피싱의 위험에 처한 해신해운 직원의 가족이 있습니다. 범죄 피해를 예방하세요!”
세부 퀘스트 : 보이스 피싱
클리어 조건 : 위험 제거
제한 시간 : 돈 인출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신용재 과장의 이직, 해신해운 벌크 영업력 약화, 전용선 계약 체결 실패, 물량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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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는 경우 페널티가 이렇게 많아?’
아마도 신용재 과장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겠지.
전생의 기억을 정리한 나는 신용재 과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있었다.
“형, 집 전화번호 좀 주세요.”
“우리 집 전화번호?”
“네, 어머니 전화번호나 집 전화번호.”
“그건 왜?”
“학교 다닐 때 어머니 혼자 사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형 브라질로 가면 혼자 계시는 거 아니에요?”
“어? 맞긴 맞는데 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냐?”
“요즘 갑자기 기억력이 좋아져서요. 허허허.”
신용재 과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하지만 내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어머니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우리 학교 다닐 때 거기 그대로 계시는 거죠?”
“응, 그래.”
“잘됐네요. 우리 집에서도 가깝잖아요. 제가 부산 갈 일 있으면 한 번씩 가볼게요. 자주는 못 가겠지만.”
나의 말에 신용재 과장은 크게 감동받은 표정.
“그리고 어머니한테 제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어머니도 아직 기억하시겠죠?”
“당연하지. 몇 년 전에 소말리아 해적 사건 때 뉴스에 너 나왔다고 전화도 하셨거든.”
“하하하. 그것도 보셨네. 그리고 급한 일이나 무슨 일 생기면 꼭 저한테 전화하시라고 하세요.”
“그래, 보고야 신경 써줘서 고맙다.”
“네, 출국이 언제라고요?”
“집에 가서 며칠 쉬고 바로 출발해야지.”
“네, 어머니한테 안부도 전해주시고요. 출발하기 전에 전화 한번 주세요.”
“그래, 알았다.”
신용재 과장은 나의 손을 몇 번이나 잡고 흔들더니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 * *
-해신해운 본사 10층 법무팀
며칠 뒤.
“장보고 과장!”
“네, 팀장님.”
호출한 현재형 팀장 자리로 걸어갔다.
“지금 별일 없지? 시간 있나?”
“네, 괜찮습니다.”
“그래, 이거 한번 보게.”
“뭔가요?”
“운항팀에서 보낸 보고서야. 한번 자료 검토해보고 의견을 좀 주시게.”
현재형 팀장이 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현재형 팀장에게 전달받은 서류 뭉치를 뒤적거렸다.
보고서에 첨부된 출력된 신문 기사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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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민들, 그물 훼손 사고로 총 10억 원 이상의 손해 발생 조속한 피해 보상 요구”
우리 어민들이 조업하는 공해상에서 억대의 그물이 훼손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해양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20xx년 x월 xx일 오후 3시쯤 경남 진해시에서 약 100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김 모 씨(53) 소유의 정치망을 비롯한 어구 세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날 조업을 하던 74톤급 어선 만덕호 선장 유 모 씨(56)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 국적 선사인 해신해운의 대형 선박인 “가이아”호가 어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변을 운항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그물이 날카로운 물체에 찢겨 나가 일부만 발견됐다고 말했다.
한편, 유 모 씨는 얼마 전에도 이 부근에서 그물이 찢겨 나간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지금까지 모두 10억 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조속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신라일보, 유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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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민들의 어구가 손상됐다는 사고.
나도 기억이 나는 사건이다.
전생에 운항팀에 근무할 당시 경험했던 사건이기 때문에 관련 내용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부산 지사의 운항팀에 근무할 당시 동료가 처리했던 사건이었지만 그 내용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어민들 어구가 훼손된 건가 보네요.”
“그래, 어민들이 어구가 손상됐다고 피해 보상해달라고 하는 사건인데···.”
“우리 회사 선박 때문에 손상됐다는 건가요?”
“응, 그런데 좀 그래.”
“뭐가요?”
“운항팀에서 확인하기로는 본선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는 거야.”
“음, 뭐 본선에서는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요. 어민들이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겠죠.”
“그게 문제야. 증거만 확실하면 우리도 보상해주면 좋지. 그런데 뭐, 딱히 증거도 불충분해 보이고, 어민들 말도 좀 왔다 갔다 하는 거 같기도 하고 말이지.”
“보상도 좀 과하네요. 10억 원이라니.”
“그래, 여론이나 이런저런 거 고려하면 빨리 합의하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그것도 근거가 있어야지.”
“P&I 클럽 때문에요?”
“그래, 우리도 합의하려면 근거가 있어야지. P&I 클럽도 설득해야 하니까 말이지.”
선박 운항 중에 제3자에게 발생한 피해를 배상하는 보험이 바로 P&I 보험이었다.
피해자와 합의를 하더라도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사전에 보험사의 협의를 하는 것이 필수였다.
전생에 이 사건이 합의로 종결되지 못하고 결국 소송까지 이어진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P&I 클럽(선주 상호 보험)은 어민들 주장의 근거가 빈약하다며 합의를 반대했다.
반면에 해신해운은 여론을 고려해 사건을 조기에 종결하기를 원했다. 어민들이 신문사며 방송사 등 여러 곳을 들쑤시며 여론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소송 과정도 쉽진 않았다.
‘법적인 쟁점이 많았지.’
과연 해신해운의 선박 때문에 그물이 끊어진 게 맞는지도 의문이었다.
여러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많았지만 전생에서 소송에 패소한다.
아무리 법원이라고 하더라도 간혹 이성이 아닌 감성이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대기업과 어민들의 싸움. 아무리 냉정한 판사라도 어민들에게 마음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번 생애에도 같은 결론이 날지도 몰라.’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재판이 종결된 이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었다.
해신해운의 선박 때문에 어민들의 어구가 손상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서류를 빠르게 스캔했다. 서류 파일을 덮자 현재형 팀장이 말했다.
“장보고 과장, 그래 어떤가? 해볼 만한가?”
“뭐, 쉽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그래? 내 생각도 그렇긴 하네.”
“네, 일단 아무래도 대기업과 어민들 사이의 재판이면 재판부에서 기업들에게 가급적 배상하라는 압박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오호! 그래, 사실 사람들은 대기업이 재판에 임하면 무조건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 기업이니까 돈 많지 않냐, 보험으로 커버하면 되는 거 아니냐 노골적으로 이렇게 합의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네.”
현재형 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
“팀장님, 뭐, 그래도 여전히 싸워볼 쟁점들이 있어 보입니다.”
“오 그래? 어디 한번 아이디어 좀 들어볼까?”
현재형 팀장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선 과연 해구를 훼손한 선박이 우리 회사의 배가 맞는지 그게 의문입니다.”
“그렇지.”
기본적인 대답.
누구나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현재형 팀장은 큰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이런 뻔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겠지.
“팀장님, 그런데 사고 위치를 보니 중요한 쟁점이 하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형 팀장은 그제야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어떤 내용이지?”
“네, 사고가 발생한 지역 말인데요. 위치가 좀 이상합니다.”
“으음? 그게 무슨 말인가?”
“저도 해기사로 근무하는 동안 이 해역을 수십 번도 더 지나다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사고 지점은 어민들의 어업 면허 구역을 벗어난 지역입니다.”
“······!”
“적어도 500m 이상 이탈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M.V “가이아”호 어장 훼손 사건 (1)
-해신해운 본사 10층 법무팀
현재형 팀장이 나의 말에 눈빛을 반짝였다.
그는 법무팀에서 해기사 출신의 팀원을 뽑는 이유가 바로 이런 해기사들의 경험 때문이지라는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설령 우리 회사의 선박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고 하더라도 만약 어구가 면허 구역 내에 정상적으로 위치했다면 항로 궤적에 비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음! 과연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네. 뭐 판결에서 설령 책임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책임 비율에서는 큰 도움이 될 것 같군.”
현재형 팀장이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보람이 있군.”
“네?”
“내가 이런 이유 때문에 자네를 특별히 법무팀으로 모셔온 거 아닌가.”
“모셔온 거··· 라고요?”
“그래, 내가 자네를 특별히 우리 팀으로 모셔온 거 아닌가.”
“······.”
‘그냥 경영기획팀으로 가게 내버려 두시지!’
뭐, 그다지 내가 원했던 발령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업무를 준비하면서 제법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릴 뿐 입 밖으로 속마음을 드러내는 실례(?)를 저지르진 않았다.
“아, 아무튼 역시 장보고 과장이야! 앞으로도 이런 예리한 의견을 많이 제시해주게.”
“알겠습니다.”
“자네는 사내 법무팀에서 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나?”
현재형 팀장이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음, 글쎄 이런 질문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하하하, 그냥 물어보는 것이니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네.”
“글쎄요. 법무팀이라면 역시 법률 지식 아닐까요?”
“하하하. 틀렸네. 천하의 장보고 과장도 틀릴 때가 있군?”
답을 못 맞혔는데 현재형 팀장은 오히려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게 빠지기 쉬운 착각이라네.”
“네?”
“법무팀이라고 해도 본질은 회사원이야. 나도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변호사이기 이전에 자네와 똑같이 해신해운이 주는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회사원이라네.”
“음,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