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을 들고 조용히 대답을 이어갔다.
“그건···. 바로 해운업종이 불황과 호황을 오가는 경기 민감 업종이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흔히 말하는 해운 사이클 때문이죠.”
“으으흠! 역시 장보고 일항사, 아니 과장님답게 잘 알고 계시네요.”
원은재 부장이 헛기침을 하며 빠르게 설명을 이어갔다.
해운업을 설명하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사이클이다.
10~20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극단적으로 오간다. 해운업만큼 경제의 여러 산업 가운데 극단적인 경기 민감형 산업도 드물다.
하지만 반대로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바로 이런 사이클을 잘 전망한다면 개인도 ‘선박왕’으로 등극할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가 바로 그 예이다.
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선박왕 오나시스가 되기를 꿈꾼다.
메가 사이클
-해신해운 소강당
선박왕 오나시스.
역사적으로 선박왕으로 불렸던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오나시스만큼 유명한 사람은 없다. 오나시스라는 이름은 선박왕을 지칭하는 말이나 다름없이 여겨진다.
하지만 오나시스도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였던 것은 아니다.
선박왕 오나시스는 그리 부유하지 않은 그리스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무역업과 해운업으로 돈을 모으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 해운 물동량이 급감해 업계가 위기에 빠져있던 시기가 드디어 도래했다.
오나시스는 직감적으로 기회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해운업계에 닥친 불황을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1척당 200만 달러에 달하던 대형 화물선들을 아주 헐값에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해운업의 사이클이 다시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헐값에 사들였던 선박들의 가격이 다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오나시스는 해운업의 불황기를 이용해 선박을 싸게 매수하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선박왕’의 자리에 올랐다.
해운업의 사이클만 잘 이용하면 선박왕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산업. 그게 바로 해운업이다.
사람들은 선박 시장을 라스베이거스보다 더한 도박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해운업이 사이클을 타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운업이 극단적으로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이유는 경제학의 기본적인 원리로도 설명할 수 있다.
바로 공급과 수요가 비탄력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선박의 공급.
해운회사나 선주들이 선박을 조선소에 발주하고 실제로 인도받기까지 통상 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조선소의 사정이나 선박의 종류에 따라 3~4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선박이라는 대형 제품을 구매하는 과정이 길고 만드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선박의 수요도 비탄력적이다.
해운사에 ‘일감’을 맡기는 화주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수인이나 고객의 요청에 따라 정해진 기간에 반드시 물건을 운송해야 한다.
운임이 비싸더라도 해운사에 제품 운송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급과 수요가 모두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해운업은 경기 사이클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업계의 종사자들은 설명한다.
나의 의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현재의 해운 시장은 초호황기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중국 경제의 급성장에 따라 해상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 세계의 석탄, 원유, 철광석 등 각종 자원들이 벌크선에 실려 세계의 공장 중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중국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다시 컨테이너선에 실려 전 세계로 배송되고 있다.
해운업은 중국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2000년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컨테이너와 벌크선 운임이 폭등해 BDI(발틱 운임 지수) 지수는 5배 가까이 성장했다.
중국에서 넘쳐나는 화물을 운반할 배가 모자라다 보니 자연히 운임 비용이 급증한 것이다. 1970년대 이래 사상 최고 호황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문제는 그 잔치의 끝.
사람들은 유례없는 호황기라고 말하면서도 불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까지고 그 호황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유례없는 호황은 끝을 알 수 없는 장기 불황으로 이어졌다.
BDI(Baltic Dry Index: 발틱 운임 지수, 발틱 해운 거래소에서 사용하는 건화물 운임 지수)가 역사상 최고점을 기록하지만 불과 1년 뒤에 20분의 1 수준으로 수직 낙하하는 일이 곧 발생했다.
시장은 그야말로 패닉.
전 세계의 해운, 선박 시장은 패닉 상태를 직면한다.
한국 해운 시장도 마찬가지. 불황의 파도를 넘지 못한다.
2008년에만 총 4개, 2011년에 2개, 2013년에 2개 그리고 2016년에는 해신해운이 파산에 이르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자 나도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해운업이 사이클을 탄다는 사실을 알면서 왜 호황기에 불황기를 대비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건 해운업에 경력이 많은 사람이든, 아니면 이제 갓 해운업에 들어온 사람이든 마찬가지였다.
지금 강의를 하는 원은재 부장과 같은 해신해운의 배테랑도 마찬가지.
해운업의 사이클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지만 그조차 언제 이 호황기가 끝날 것인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곧 닥쳐올 끝을 알 수 없는 추락.
지금 해운업은 종전의 일반적인 사이클과 달랐다.
전생의 사람들은 이를 ‘메가 사이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호황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위험한 순간이다.
안타깝게도 이 거대한 기업인 해신해운에도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언제 끝나는 건데?’
지금 이어지고 있는 해운업의 호황기. 그 끝이 언제냐는 것이다. 어떻게 대비해서 살아남을 것인가 그게 문제다.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음? 자, 장보고 과장님 뭐 질문이라도 있습니까?”
“네, 부장님.”
“뭔가요?”
“사이클 말인데요. 지금 유례없는 호황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언젠가 불황이 찾아온다는 말인데요. 경영기획팀에서는 그게 언제라고 예측하고 있습니까?”
“네?”
나의 질문에 원은재 부장이 당황한 듯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 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호황기를 누리기에 바빴다.
원은재 부장이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장보고 과장님이 잘 모르셔서 그러나 본데, 지금은 제가 해신해운에 입사한 이래 가장 호황기입니다.”
“네, 그런데 해운업은 사이클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기획팀에서는 지금 이어지는 호황기가 언제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건가요?”
“네?”
원은재 부장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런 예상을 구체적으로 한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
“사이클이 있는 산업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호황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중국의 고도 경제 성장률 때문이 아닙니까.”
“마, 맞습니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성 때문이죠. 그만큼 중국 시장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답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연 10% 이상을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맞는 말이다. 해운업의 호황기는 중국과 함께 시작되었고,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 이후 경기 부양을 조절하자 불황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미국발 금융 위기는 시장에 직격탄을 가한다.
나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중국이 무리하게 경기를 부양하고 있다는 말도 있던데요. 베이징 올림픽 이후를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도 심심찮게 보이고요.”
“······?”
원은재 부장은 나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마 전까지 일등 항해사로 근무한 사람의 식견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놀라웠기 때문이겠지.
경영기획팀에 있다고 해서 세계 경제 전문가는 아니다. 원은재 부장이라고 해서 세계 경제의 전망을 꿰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리고 미국과 유로 경제권이 문제입니다.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고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제 보고서가 경고하고 있는 내용이 아닙니까.”
“······.”
“해신해운도 뭔가 대비를 해야 되는 게 아닐까요?”
원은재 부장의 나의 말에 깜짝 놀란 듯 입을 크게 벌렸다.
“······.”
당황한 탓일까? 원은재 부장은 한참을 침묵을 이어갔다.
원은재 부장은 잠시 후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갔다.
“어, 어! 장보고 과장님이 그동안 공부를 많이 해오셨군. 하하하. 사실 저희 기획팀에서도 이런저런 상황을 대비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건 차차 알려드리기로 하고 일단은 강의안 중심으로 강의를 해야 하니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
“······.”
‘뭐, 오늘은 이쯤 해둘까.’
원은재 부장의 대답은 영양가라고는 전혀 없는 내용이었지만 그를 계속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앞으로 닥칠 불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경영기획팀을 상대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랄까.
그리고 잠시 후.
원은재 부장의 강의는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고 짧게 마무리되었다.
* * *
-해신해운 본사 소강당
같은 날 오후.
“다들 교육받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인사팀 유승아 대리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일하시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인사팀으로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배속될 팀에서 모시고 갈 사람을 보내주기로 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다들 큰 소리로 대답한 후 서로 인사를 나눴다.
다들 본사에 근무할 예정.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왠지 헤어지는 기분이 드는지 사람들은 아쉬움을 나눴다.
가장 연장자인 진채호 부장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가장 연장자인 진채호 부장이 입사 동기회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각자 팀으로 가서도 다들 적응 잘하시고요.”
“네, 부장님도요.”
“그리고 다음 금요일에 회식하기로 한 것도 잊지 마시고!”
“네!”
사람들이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하는 사이 소강당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섰다.
“장보고 과장님!”
인사팀 유승아 대리가 나를 불렀다.
“네?”
“법무팀에서 가장 빨리 오셨네요.”
소강당 앞, 문 앞에 젊은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짐을 빠르게 챙겨 문 앞으로 나섰다.
기다리고 있던 젊은 사내가 나를 보자 고개를 꾸뻑 숙이며 묵례했다.
“장보고 과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정재훈 사원입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장보고입니다.”
‘나랑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네?’
정재훈 사원은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짐 좀 들어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이게 답니다.”
“네, 그럼 엘리베이터로 가시죠. 법무팀은 10층에 있습니다.”
“네, 가시죠.”
‘법무팀에 이런 사람이 있었던가?’
나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지만 정재훈이라는 이름은 딱히 기억나지 않았다.
해신해운은 국내 해운 회사 중에서는 가장 큰 법무팀을 꾸리고 있다. 총인원은 20명에서 30명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그때그때의 인사이동에 따라 인원수는 변동이 있었다.
1개 팀 인원으로는 제법 많은 숫자였기 때문에 전생에 다른 팀에서 일했던 내가 법무팀원들 전부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전생이라면 나는 승선 생활을 마치고 부산 지사에서 운항팀원으로 근무하던 시점.
업무상 주로 연락할 필요가 있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본사 사람들과 특별히 교류할 일이 없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어색한 분위기도 풀 겸 정재훈 사원에게 말을 걸었다.
“정재훈 사원님은 법무팀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아! 그냥 정재훈 사원이라고 하시거나 그냥 이름만 부르셔도 됩니다.”
“그래도···.”
“흐흐흐. 제가 법무팀에서 막내거든요. 올해 대학 졸업하고 대졸 공채로 얼마 전에 입사했습니다.”
“그럼 차차 시간이 좀 지나면 그렇게 하죠.”
“네, 알겠습니다. 과장님, 편한 대로 하시면 됩니다.”
정재훈 사원은 쿨한 성격인 듯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대학을 올해 졸업했으면 26살이거나 27살쯤 되었겠군.’
남자들이 군대를 마치고 휴학 없이 대학을 졸업하면 26살, 그리고 1~2년 휴학한 후 27~28살에 입사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나와는 큰 나이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신해운은 해기사들이 육상 직원으로 전환하는 경우 해상 근무 경력을 연차로 반영해주기 때문에 나이는 비슷해도 직급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정재훈 사원이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당돌한 건지 똘기 어린 것인지 제법 도발적인 눈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과장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물어봐도 됩니까?”
“네, 그러시죠.”
“그런데, 왜 법무팀으로 오시겠다고 한 겁니까?”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