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200)

유승아 대리가 말을 이어갔다.

“경영기획팀 권세아 대리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권세아 대리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개받은 권세아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쳤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기본적인 인사말.

짝짝짝!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 없이 깔끔한 자기소개에 짧게 박수로 화답했다.

‘뭐? 궈, 권세아?’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맞구나!

이제야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름을 듣자 그녀가 누군지 단번에 기억해낼 수 있었다.

아직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의 정체는 해신해운 그룹의 총수 권영호 회장이 늦둥이로 낳은 막내딸이었다.

바다의 왕자

권세아. 그 이름을 듣자 떠오르는 전생의 기억이 있다.

그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해신해운을 파산에 이르게 한 갈등에서 한몫을 차지했던 조연이었으니까.

한국 원야 해운업의 시초.

한때 해신해운을 부르던 말이었다.

한때 세계 4위 규모에 이르기까지 했던 국내 최대의 해운 회사.

가장 큰 국적 선사였던 해신해운은 대한민국의 최초 해운 회사였던 한국해운공사를 흡수 합병한 회사였기 때문에 한국 해운사의 역사로 불리던 회사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운 회사로 불리는 한국해운공사는 1940년대 독립 직후에 설립되었다.

40여 년 가까이 존속하면서 성세를 거친 한국해운공사는 1980년대에 흡수 합병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바로 해신해운에 합병된 것이다.

한국 최초 해운사를 인수 합병하면서 해신해운이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대 해운 회사가 되었다. 해운업 일각에서는 해신해운이 한국 해운업의 뿌리를 계승하였다는 평가를 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후 해신해운은 한국 해운업의 역사를 새로 써가기 시작했다.

1992년 국내 최초로 4.0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급 대형 컨테이너 선박 도입하고, 미국 주요 항만에 전용 터미널을 세워 운임 경쟁력을 키웠다.

이어 1990년대에는 국내의 벌크 선사를 인수해 사업 부문을 확장하고,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해운 회사를 인수해 미주 노선뿐만 아니라 유럽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다.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선복량을 보유하기에 이른 해신해운은 국내에서 단연 최대 선사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해신해운의 회장 권영호는 대한민국 해운의 왕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 영광도 오래가진 않았다.

전생에 해신해운의 영광은 권영호 회장이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서서히 시들어갔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해운업계 불황이 찾아왔고, 호황기에 비싼 가격으로 빌린 배의 막대한 용선료(일종의 선박의 사용료나 임대료)와 투자 실패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해신해운을 진정하게 망조가 들게 한 사건.

‘그건 바로 왕자의 난이었지.’

나는 전생에 있었던 경영권 분쟁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한국 해운업의 왕이라고 불렸던 권영호 회장의 두 아들 사이에 벌어진 경영권 다툼. 바다의 왕자들이라고 불렸던 장남과 차남의 경영권 분쟁이었다.

두 상속자들 사이의 다툼으로 인해 최고위 경영진들도 두 패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밑으로 흔히 말하는 ‘라인’이니 뭐니 하면서 임원들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그 싸움에 가담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좋은 기회로 생각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담한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 싸우는 이도 있었다.

경영권 다툼 초기에는 장남의 우세가 점쳐졌다.

장남의 직급은 해신해운의 부사장 겸 컨테이너사업 본부장.

그는 해신해운의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컨테이너사업 본부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해신해운 회사 내부에서의 입지가 탄탄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한다.

세가 불리해진 차남이 외부의 힘을 빌리기 시작한 것이다.

차남의 직급은 해신해운의 전무 겸 재무그룹 본부장.

해신해운 입사 전 금융권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그는 금융 기관을 비롯한 회사 외부의 평가가 높았다.

수세에 몰려 있던 중 차남의 결정적인 조력자가 등장한다.

해신해운 권영호 회장의 친형이 운영하는 해신항공이 장남이 아닌 차남의 경영권 승계를 공개적 지지하며 지원을 약속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해신항공과 해신해운은 상호간 외부 세력의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립을 표방하던 해신항공이 차남의 경영권 승계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장남은 숨겨진 집안의 치부를 공개하기에 이른다.

해신해운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 젊은 여자의 정체가 언론에 등장한다.

바로 권세아. 그녀는 권영호 회장이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숨겨진 막내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 공개되지 않은 이유는 언제나 그렇듯 그의 출생과 관련이 있었다.

권용호 회장이 미인 대회 출신의 여인과 중혼적 사실혼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권세아는 그 여인과의 사이에 낳은 자식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해신해운의 임직원들도 권세아의 정체를 대부분 몰랐다는 거지.’

나도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더 놀랐던 것은 권세아가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오너가의 자제이면서도 티를 내지 않고 묵묵히 회사에서 근무했었다는 평가였기 때문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다의 왕자들 사이에 벌어진 왕자의 난 때문에 결국 정체가 들키게 된다.

장남과 차남 사이의 지분 싸움이 치열해지자 두 사람 모두 권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평소에는 같은 집안의 사람으로 취급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이런 자들이 다급한 순간이 다가오자 모두 권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 * *

-해신해운 본사 소강당

인사팀 유승아 대리의 경력직으로 입사하는 직원들을 위한 간단한 브리핑이 진행되었다.

앞으로의 일정 안내를 마무리하고 자리를 뜨려고 하는 유승아 대리.

나는 빠르게 따라나가 유승아 대리를 쫓아가 불러 세웠다.

“저, 유승아 대리님.”

“네, 장보고 과장님.”

확인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배속될 팀!

‘내가 법무팀이라니!’

아직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본 유승아 대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나의 반응이 재밌다는 그런 얼굴이었다.

“대리님, 인사 발령 말인데요.”

“네.”

“저는 경영기획본부 안에서도 경영기획팀으로 발령이 나서 육상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나의 말에 유승아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보고 과장님, 사실 저도 그런 줄 알고 있었거든요.”

“네? 그럼?”

‘무슨 소리야 이게?’

“그런데 마지막에 발령 나는 팀이 급하게 변경되었다고 저는 전해 들었어요.”

“도대체 왜?”

“장보고 부장님이 경영기획팀으로 가는 것에 대해 심하게 반대하는 분이 있었다고······.”

“누가?”

“그런 저도 잘······.”

나는 유승아 대리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 띠링! >

+ 스킬 [고소고발 Lv.17]을 사용합니다. +

- 상대방의 표정, 심박수를 관찰합니다.

-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경영기획팀으로 가는 것을 반대할 만한 사람이라.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발키리”호 폭발물을 싱가포르에서 하역할 당시 나와 다툼을 벌였던 싱가포르 지점장!

원은재 부장이다. 그는 얼마 전 이루어진 정기 인사 발령 때 경영기획팀으로 발령이 나서 현재 본사에서 근무하는 중이었다.

전생의 기억과도 일치하는 인사 발령이었다.

하지만 전생과 다른 점도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경영기획팀으로 발령 나는 것을 희망했다는 것이다.

전생에는 별다른 인연이 없던 그가 나의 경영기획팀 발령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혹시 원은재 부장입니까?”

“네?”

유승아 대리는 인사팀 직원이다. 원은재 부장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맞다고 대답할 리는 없었다.

< 띠링! >

+ 스킬 [고소고발 Lv.17]을 사용합니다. +

- 상대방의 심박수가 빠르게 뛰기 시작합니다.

- 상대방의 손끝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역시···.’

유승아 대리의 반응으로 보아 나를 방해한 범인은 원은재 부장이 분명해 보였다.

유승아 대리는 살짝 붉어진 표정.

“그런데 왜 법무팀입니까?

“음, 사실은 부산 지사 운항팀으로 발령이 나야 되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거든요.”

“그런데요?”

“그런데, 현재형 팀장님이 인사팀 담당 임원인 상무님한테까지 찾아오셔서 강력하게 요구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음······.”

이 아저씨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같이 승선 근무를 한 사람을 법무팀으로 발령 내다니.

“법무팀장님 말로는 협상에도 능숙하시고, 법률 지식도 굉장히 풍부하시다고 하셨는걸요.”

“······.”

아마도 현재형 법무팀장은 두바이에서 같이 AP사를 상대로 협상했던 일을 말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저는 법학 전공자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닌데요.”

“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희 회사의 분쟁은 대부분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국내 법 지식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실무를 경험하면서 배우면 된다고.”

“······.”

“그래도 제가 승선 근무하던 해기사 출신인데.”

“그것도 걱정하지 마세요. 법무팀에는 이미 해기사 출신이신 분들이 2분이나 계시답니다. 클레임 파트에는 승선 경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해서 2명 정도 TO를 배정해 두거든요.”

“그렇군요······ 이미 최종 결재를 한 사안이죠?”

“네, 전사에 이미 인사 발령이 공고되었으니까요. 호호호.”

“끙······.”

외통수에 몰린 건가?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인사팀에서 발령이 난 사항이니 변경될 가능성도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우선은 주어진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법무팀에서 일을 하면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겠어.’

아니 생각해보니 최악은 아닐지도 모른다.

법무팀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은 옵션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무팀도 회사 업무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신규 사업이나 위험한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는 반드시 법률 리스크 심사도 거치게 되어 있다.

물론 법무팀의 의견대로 모든 일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영업팀 입장에서도 법무팀의 반대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꼭 그렇게 나쁜 자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역할의 한계가 있는 부서였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면 배울 것들이 많을 게 분명했다.

작은 결심을 하자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경력직 직원이 되었습니다. 성공적으로 경력직원 오리엔테이션을 수료하세요.”

세부 퀘스트 : 오리엔테이션

클리어 조건 : 과정 수료

제한 시간 : 오리엔테이션 종료 전까지

보상 : 업무 관련 능력 상승

실패 시 : 사내 평판 감소

+

그리고 연이어 다른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음 이건 또 뭐야?’

< 띠링! >

+

“전직을 축하합니다.”

전직에 따른 효과로 보유한 스킬들을 2차 전직 스킬로 변경하실 수 있습니다.

- 효과 : 보유한 스킬 중 일부 변경 가능한 스킬을 전직한 클래스에 최적화된 스킬로 변경할 수 있음.

- 비고 : 스킬 변경에 따른 레벨이 조정(하향)될 수 있음.

“2차 전직 스킬로 변경하시겠습니까?”

[YES/NO]

+

2차 전직 스킬?

‘전직을 하게 되니 이런 효과도 있었구나.’

애써 익힌 스킬들을 활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쉬웠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스킬의 효력을 톡톡히 본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그나저나 최적화 스킬이라. 육상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스킬로 변경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뜻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지.’

나는 [YES] 버튼을 눌렀다.

< 띠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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