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200)

자기 마음에 든다고? 무슨 소리야 이게?

그럼 나를 사위라도 삼겠다는 그런 소린가?

이 순간 갑자기 눈앞으로 떠오른 퀘스트 창.

< 띠링! >

‘······!’

퀘스트 창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

<돌발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돌발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당신을 사위로 삼으려는 거부가 있습니다. 거절하세요!”

세부 퀘스트 : 결혼

클리어 조건 : 거절

제한 시간 : 상대방이 마음을 단념할 때까지.

보상 : 싱글 라이프, 자유, 해방감, 자아실현, 여유, 휴식

실패 시 : 결혼

+

“······.”

뭐냐 이거.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창.

나는 눈을 끔뻑거리며 그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뚫어져라 쳐다보고 손을 휙휙 저어보았지만 변하는 내용은 없었다.

‘음, 이거 정말 진심인가 본데?’

제대로 부여된 퀘스트가 분명해 보였다.

‘그나저나 이런 퀘스트라면······ 도저히 거절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보상과 실패 시 얻게 되는 실패 페널티의 밸런스가 너무 차이 나는 거 아니야?

역시 결혼이라는 건 이렇게 위험한 것이었어!

너무 오래된 전생의 기억이라 나도 그동안 잊고 있었다.

일단 거절은 하는 게 당연하다.

어떤 방법으로 나민 아세르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잘 거절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자칫하면 나민 아세르의 마음을 상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

힘들게 쌓은 그와의 친분이 사라지는 것은 나도 제법 겁나는 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의 앞으로의 계획에도 큰 차질이 생길지도 몰랐다.

나는 고개를 돌려 친동생 장해진을 바라보았다.

나를 닮아 잘생긴 동생의 얼굴은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형 파이팅! 두 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동생은 나민 아세르의 사돈 집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잔뜩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자식이 헛된 꿈을 꾸고 있네?’

매너 있는 적당한 거절 방법이 필요했다.

결심한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민 아세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저는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이······.”

그 순간.

“없습니다!”

눈치 빠른 동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장님, 흐흐흐. 없습니다. 저희 형은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말에 나민 아세르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만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

동생을 노려보자 이놈은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 맞잖아. 없잖아 만나는 사람.”

“······.”

끙. 말은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뭐라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퀘스트를 실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실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

“뭐?”

나민 아세르보다 더 크게 놀라 소리친 사람은 동생이었다.

“형 그게 정말이야?”

“······.”

‘이 눈치 없는 새끼.’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나민 아세르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그는 오히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그렇군요.”

“역시······?”

“인도네시아의 마헨 수비아토 장관에게 들었습니다.”

“네?”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었나 보군요.”

“······?”

나민 아세르는 아쉽다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이내 호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웃을 수 없었다.

‘뭐, 뭐야?’

나민 아세르는 시원하게 마음을 접은 표정이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안 뜨냐고!

퀘스트 달성 메시지는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 * *

-부산 중앙동, 해신해운 부산 지사

며칠 후.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며칠간 휴식을 취한 후 해신해운의 부산 지사를 찾았다.

해신해운도 부산에 소재하는 해운, 무역, 선박 회사들이 주로 위치하고 있는 중앙동에 지사를 두고 있었다.

바다 쪽을 향해 건물 꼭대기 외벽에 크게 회사의 간판이 달려있다.

“해신해운 Heasin Shipping”

부산 중앙동에 있는 건물 중에 가장 높은 빌딩인 해신해운 빌딩은 국내 1등 해운 회사라는 자부심만큼 당당한 모습이었다.

부산 지사를 찾은 이유는 육상직으로 전직하는 것 때문이다. 오전에 해사인사팀으로 잠시 들어오라는 해상인사팀장의 연락을 받았다.

전생에서는 육상직 근무를 하고 부산 지사의 운항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본사로 발령을 내달라는 요청을 미리 해둔 상황이었다. 곧 얼마 전에 본사에서 채용한 경력 직원들의 인사이동이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타이밍이 딱 들어맞았다.

해상 인사팀으로 들어서자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전생과 현생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는 직원들.

해신해운의 부산 지사에는 운항팀, 해상인사팀 등 선박과 선원들을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조직이 많이 있기 때문에 승선 생활을 경험한 직원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해운의 중심 도시인 부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답게 다들 활달한 표정으로 시끌벅적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몇 년째 이어지는 해운 호황기 때문인지 회사의 분위기가 밝았다.

‘이제 얼마 안 남았지.’

유례없는 해운업계의 불황이 곧 닥칠 예정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다. 나도 전생에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장보고 일항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해사인사팀장이 내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왼손을 높이 흔들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전화기가 들려 있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 해사인사팀장의 자리로 다가섰다.

“예, 전무님. 알겠습니다. 본인 의사를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네 들어가십시오.”

수화기를 내려놓은 해사인사팀장이 손을 들어 올려 회의실을 가리켰다.

“조용하게 회의실로 가서 이야기하지.”

“네, 팀장님.”

“그나저나 이번에도 큰 사고 쳤다면서?”

“제가요?”

“그래 선원들 사이에서 이제 장보고 일항사 타는지 미리 물어보는 선원들이 있을 지경이라니까.”

“음? 제가 타는 선박인지를 왜 미리 확인하는 거죠?”

“글쎄, 같이 타겠다는 건지 아니면 사건이 생긴다고 불길해서 피하겠다는 건지······.”

“······!”

“뭐, 이제는 배 안 타니까 다행이지. 하하하.”

“······.”

회의실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자 해사인사팀장이 웃으며 내 표정을 천천히 살폈다.

“장보고 일항사, 육상직으로 전직하는 거 말인데.”

“네, 팀장님.”

“육상직으로 전직하는 건 좋은데 말이야. 때도 됐고.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장보고 일항사를 두고 말들이 좀 많아.”

“네? 말들이 많다고요?”

“그래, 나는 장보고 일항사가 그동안 보여준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 보거든. 해사본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그래서 부산 지사 운항팀에서 근무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거든. 승선하는 해기사 후배들도 자네를 많이 따르고 하니 제일 적합한 자리라는 생각이야.”

‘운항팀이라.’

전생의 기억과 일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산을 거쳐 본사로 가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내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자 해사인사팀장이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래, 장보고 일항사는 본사로 가고 싶다고 했지?”

“네.”

“음, 그래, 그래서 본사 인사팀에 문의를 했더니 방금 연락이 왔다네.”

“네, 본사 인사팀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하필 얼마 전에 경력직 채용을 마친 터라 경력이 없는 해상 직원을 바로 발령 낼 적당한 보직이 없다는 거야.”

“음······.”

“하하하. 낙담하지는 말게.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니.”

“네, 그럼?”

“장보고 일항사가 온다고 하니 기획본부장님이 기획본부 아래에 자리를 하나 만들겠다고 했다는 거야.”

‘기획본부장이라면 도형준 전무?’

동남아지역본부장과 경영기획팀장을 거친 도형준 전무는 회사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해 최근 전무로 승진하면서 기획본부장으로 영전한 상태였다.

“뭐, 자네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그 자리가 좋은 자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네? 저는 좋습니다.”

“아무리 자네라고 하더라도 갑자기 기획실에서 근무하는 건 힘들지 않겠나?”

해상에서 승선 생활을 하던 해기사들이 육상 직원으로 전직하는 경우는 해운 회사에 자주 있는 일. 본사를 비롯한 육상직에서도 승선 경력이 뒷받침되면 유리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종종 해기사들의 육상직 전환 발령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바로 하선한 해기사들이 발령받는 부서는 대부분 업무적 관련성이 높은 부서들이었다. 운항팀과 같은 승선 경험을 업무에 발휘할 수 있는 부서로 발령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사였다.

간혹 본사로 바로 발령이 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해사인사팀장이 걱정하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승선 생활을 했던 선배가 후배들의 커리어를 걱정해서 하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정반대였다.

‘기획본부라니.’

기획본부는 가장 선호하는 부서였다.

곧 발생할 금융 위기. 금융 위기가 촉발하는 해운업계의 불황은 모두의 예상을 초월하는 역대급 불황으로 장기간 지속된다.

이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해신해운 전사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불황의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올바른 비전이 반드시 요구된다. 그건 기획본부의 역할이다.

전생에는 최고 경영진의 잘못된 오판이 거듭되어 결국 회사가 파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기획본부의 실책도 많았다.

기획본부는 어느샌가 엉망이 되어버려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했다.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전생에는 도형준 전무가 경영권 다툼의 희생양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도 주된 이유였다.

< 띠링! >

+

<상태창>

이름 : 장보고

나이 : 27세

클래스 : 항해사

세부 클래스 : 일등 항해사

직업 레벨 : Lv.26

명성 : + 4535

스킬 : [항해술 Lv.25], [기관술 Lv.9], [태권도 Lv.10], [고무고무킥 Lv.12], [인명구조 Lv.13], [고소고발 Lv.17], [협상 Lv.18], [잠입 Lv.6]. [마도로스의 심장 Lv.15], [명사수 Lv.5]

칭호 : [수성의 달인], [인도네시아를 구한 영웅], [인도네시아의 국민 사위], [구조의 달인], [부산사나이], [용감한 시민], [최연소 이등항해사], [항로계획의 달인], [응급처치의 달인], [해신해운의 핵심인재], [바다를 사랑하는 젊은 청년], [국감스타], [용감한 선원]. [최연소 일등항해사], [화물의 달인], [바다의 수호자]

Remark : 전직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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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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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전직을 위한 경험치가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전직 퀘스트를 진행하시겠습니까?”

- 클래스 : 항해사

- 세부 클래스: 일등 항해사

- 전직 클래스 : 해운 회사 육상 직원

- 세부 클래스 : 해신해운 본사 기획본부 과장

- 참고 : 해상 직원에 비해 월급이 짭니다.

연봉이 대폭 삭감되는 점을 주의.

[선택 : YES / NO]

선택을 누르면 전직이 완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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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사인사팀장이 물었다.

“그래 장보고 일항사, 어떻게 할 생각인가?”

본사 출근

-해신해운 부산 지사 해사인사팀

나는 떠오른 퀘스트 창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메시지 내용 중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바로 직급이다.

‘음? 세부 클래스가 본사의 과장이라고 되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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