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질문에 마크 윙 대위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으으흠! 그, 뭐 상황에 따라서 추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추적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임검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국제 조약에 따라 외국 선박을 공해에서 만난 군함은 임검권(국제법에 따라, 선박을 포획하기 전에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하여 군함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선박 서류를 검사하는 것을 말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크 윙 대위는 국제 조약의 내용을 들먹였지만 힐끔 나의 표정을 바라보는 것이 그다지 자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군인이다 보니 정확한 법률 검토를 거친 것은 아닌 눈치였다.
“무슨 협약 말하는 겁니까?”
“······.”
“혹시 그 협약이 유엔해양법협약 말하는 거라면 사실과 다른데요.”
“······.”
“유엔해양법협약 제110조에 따르면 군함 등이 갖는 임검권은 해적 행위와 노예 거래같이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할 텐데요.”
“······.”
“본선이 그런 경우에 해당이 됩니까? 본선이 해적 행위에 가담했다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
마크 윙 대위는 나의 질문에 살짝 눈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혐의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또한 임검을 받은 선박이 그 혐의를 입증할 어떠한 행위도 행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선박이 입은 모든 손실이나 피해에 대하여 보상을 하셔야 되는 것도 아시죠?”
“······.”
기선을 제압한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을 이어갔다.
“대위님, 다시 한번 확실히 묻겠습니다. 임검권을 행사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본선에 협조를 구하시는 겁니까?”
나의 질문에 마크 윙 대위가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천상 군인인 사람. 아무리 교육을 받은 장교라 하더라도 이렇게 세세한 법적 판단까지 그가 내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상부의 지시에 따라 현장에 출동한 부대장에 불과했던 것.
‘이제 이 능구렁이 같은 자식이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됐는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미 해군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헬멧과 고글, 그리고 몇몇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하하하!”
마크 윙 대위 뒤쪽으로 서 있던 미 해군 한 명이 웃으며 나의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미스터 장, 오랜만입니다. 역시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군요. 제가 오랜만에 장난을 좀 쳤습니다. 화를 푸시지요.”
‘음 역시!’
그는 내가 기다리고 있던 인물이었다.
테러 무기? (3)
-컨테이너선 M.V “발키리”호의 갑판
미 해군 특수 부대원들 사이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사람의 정체.
그는 다름 아닌 CIA 요원 제임스였다.
‘그대로네.’
그를 만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그의 모습. 두바이에서 그를 만났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위해 나민아세르와 함께 두바이 왕세자를 만나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나민 아세르는 나에게 제임스 요원을 소개시켜줬고, 제임스 요원이 이후 미 해군을 동원해 소말리아 해적 본거지를 기습했다.
샤크 해적단을 비롯한 해적들의 본거지인 푼틀랜드를 소탕했던 공적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했다는 말을 이안 요원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났다.
‘능글맞은 자식이긴 하지만 실력은 확실하니까.’
나는 제임스를 소개해준 이안 요원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공적 욕심이 과한 제임스 요원을 만만히 보지 말라는 이안 요원의 충고.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국제법 절차 따위는 그야말로 개무시할 수 있는 성향의 사람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아마 내가 지적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가려는 속셈이었을 거야.’
제임스 요원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해맑은 표정. 미국인 특유의 능글맞지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도 가식적인 대응이 필요했다. 그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정보기관 CIA 요원이고 실제로 대단한 수완가였다.
“제임스 요원!”
얄밉긴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 가까이서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악수를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내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하하하. 미스터 장 오랜만입니다. 마치 전우를 만난 기분이군요.”
제임스는 내가 내민 손이 무안하게 갑작스럽게 다가와 나를 끌어안으며 등을 세차게 두들겼다.
팡팡팡!
‘끙! 아프다고!’
그나저나 이 정도로 친했던 건 아닌 거 같은데? 너무 친한 척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제임스 요원은 나와는 달리 진심인지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스터 장 주변에는 사건이 항상 끊이질 않는군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네, 그래서 MI6에 이어 CIA에서도 미스터 장을 요주의 인물로 등록했습니다.”
“네? 그게 정말인가요?”
“하하하. 당연히 농담이지요.”
“······.”
이 자식이 누구 놀리나?
하여간 이렇게 된 이상 해운업의 중심 국가인 영국의 정보기관인 MI6와 관계는 잘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까지 나에게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 심정.
제임스 요원이 말을 이어갔다.
“그나저나 아까 질문한 내용 관련해서 말입니다. 물론 협조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의를 받지 않고 막무가내로 일을 처리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퍽이나 그랬겠다!
“뭐, 그리고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이 배를 추적해온 것도 본선에서 요청한 것 때문 아닙니까?”
“······.”
제임스 요원은 내가 이안 요원을 통해서 자신에게 제보한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제임스는 눈을 흘기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귓속말로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미스터 장 이것도 혹시 아십니까?”
“네? 뭐요?”
“최근 미국과 각국에서 테러 위협 무기를 신고하는 사람들에게 거액의 포상금을 걸었다는 소식 말입니다.”
“흐흠!”
나는 제임스 요원의 말에 급하게 헛기침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지만 우리의 대화를 들은 사람은 없었다.
혹시라도 다른 선원들이 오해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선박의 폭발을 막아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목표였는데 포상금 이야기를 들으면 돈 욕심에 내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오해를 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이미 상당한 자산을 형성한 내가 고작 포상금 몇 푼 때문에 이런 일은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사람들에게 구차하게 이런 일까지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제임스 요원은 내가 이안 요원을 통해 선박 승선 검색을 요청해놓고 이제 와서 내가 자신들에게 딴죽을 걸자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내 표정이 재밌다며 실소를 흘리던 제임스 요원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선원들을 한자리에 모여 계시라고 한 것은 안전 때문에 그랬습니다. 폭발물이 있다고 하니 안 보이는 곳에서 무선 장비나 기관을 사용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곧 EOD(폭발물 처리반)을 투입하고 나면 편하게 쉬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선장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해신해운의 선박에 마사일 부품과 폭발물이 실려 있다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임스 요원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로 몰라서 묻는 건지 아니면 의뭉을 떨며 나를 떠보려고 하는 것인가?
나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아주 살짝 떠오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 음흉한 놈!’
제임스 요원에게도 나의 실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MI6나 CIA 같은 정보기관들과 정보력을 비교할 순 없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들이 갖지 못하는 고급 정보가 있다.
바로 미래에 대한 정보.
“제임스 요원, 저도 무슨 일인지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정보원들을 통해서 조사를 해서 파악한 정보는 좀 있습니다.”
“정보원? 정보원이 있습니까?”
항해사인 나에게 정보원들이 있다고 하니 제임스 요원은 사뭇 놀란 표정.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국제 항행을 하다 보니 이곳저곳에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제법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랍니다.”
제임스 요원은 실제로 나의 글로벌 인맥들을 목격한 사람.
일개 항해사에 불과한 내가 AP사의 사장과 친분이 있고, MI6 요원, 두바이의 왕세자 등을 알고 지내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나의 말을 믿고 있었다.
“최근 미 해군이 테러 위협 물품을 운반하는 선박들에 대한 단속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하던데요?”
“음? 그걸 어떻게? 아직 엠바고 전이라 기사도 나지 않았는데···.”
“허허허. 정보원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제임스 요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최근 중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무기들이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으으음! 이거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요. 맞습니다.”
“역시 아프리카 서부 해안으로 근거지를 옮긴 해적들 때문입니까?”
“······!”
제임스 요원은 CIA 요원의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깜짝 놀라 입을 살짝 벌렸다.
“도대체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들은 겁니까?”
“흐흐흐. 이제는 제 정보원들의 실력을 믿으시겠습니까?”
“하하하.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제임스가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최소 10년은 빨라졌구나.’
전생의 기억과 비교하면 빠른 변화였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소말리아 해적들이 극성을 부린다. 참다못한 국제 사회가 공조하여 해적들에 대응을 시작하자 소말리아 해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활동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마치 풍선 한쪽을 누르면 반대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각국의 군함들이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단속을 강화하자 소말리아 해적들이 아프리카 서부로 근거지를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기니만 등 서아프리카 해역의 해적 활동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201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게 되면 전 세계 해적 공격 총 200여 건 중 절반에 가까운 해적 공격이 서아프리카 해역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최근 미 해군이 아프리카 등지로 들어가는 무기 단속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나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제임스 요원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최근 미 해군이 나포한 불법 무기 운반선이 있었습니다. 많은 무기들과 폭약 재료들을 싣고 가는 것을 나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박에서 얻은 정보 중에 중국의 항구에서 출항하는 무기들에 대한 정보도 있었습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정보였지요.”
“이유가 뭡니까?”
“무기의 종류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미사일이군요.”
“그렇습니다.”
제임스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의 방산 비리 업체가 미사일 부품을 빼돌려 이를 아프리카의 해적들에게 판매하려 한 정황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정보만으로는 어느 선박에 실려 있는지 확인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장보고 일항사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지요. 해적들 손에 넘어가지 않아 천만다행입니다. 만약 미사일이 해적들 손에 들어갔으면 해안에 진지를 구축해 함정을 향해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아프리카 해역은 동아프리카 해역보다는 선박들의 통항이 비교적 많지 않아 해적들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바다 위에서 해적들의 위협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폭발 위험이 있는 화물들의 위험성을 우선 확인하는 작업을 하던 EOD 대원이 제임스 요원과 마크 윙 대위에게로 다가왔다.
“위험해 보이는 화물들에 대한 작업을 마쳤습니다. 긴급 조치를 했으니 인근 항으로 들어가서 화물을 전부 하역 조치하는 게 좋겠습니다. 해상에서 화물들을 옮기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습니다.”
“알겠네.”
EOD 대원의 말에 마크 윙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 요원이 말했다.
“그럼 일단 두바이 쪽으로 이동해서 처리하는 것으로 합시다. 두바이 해군의 협조를 미리 구해 놓았습니다. 그럼, 제가 이 선박의 승무원들에게 설명을 하고 협조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임스 요원이 협조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하며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제임스 요원과 눈이 마주친 나는 그를 바라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발키리호가 선박 폭발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보상 :
- 당신의 명성이 급격하게 상승합니다.(명성 + 100)
- 글로벌 명성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 CIA가 당신을 요주의 인물로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
* * *
-두바이 항구.
며칠 후.
해적들과 연관된 미사일과 폭발물이 선박에 잔뜩 실려 있다는 보고를 받자 해신해운의 본사는 발칵 뒤집혔다.
다행히 해신해운은 이 일과 무관한 것으로 알려져 혐의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행정 절차를 위해 관련 당국의 승무원 조사가 길어지자 본사에서는 “발키리”호의 일부 선원들을 두바이에서 교대해서 운항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관련 조사를 위해서 나와 이희영 선장이 두바이에 남게 되었다.
나는 지난 며칠간 실시된 관련 조사를 마치고 곧 우리나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두바이에 온 이상 만날 사람이 있었다.
이곳에는 나의 친구인 AP사의 사장 나민 아세르가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우리나라 최고 명문 대학인 한국대학을 졸업한 친동생 장해진을 두바이 국부 펀드로 취직시켰다.
물론 나민 아세르의 도움이 없었다고는 할 수는 없었지만 똑똑한 동생을 두바이 국부 펀드의 채용 담당자가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전생에도 미국의 유명 투자 은행(IB)에 취직했던 놈이니 실력은 부족함이 없었다.
전생의 기억과 다르지 않다면 머지않아 두바이 펀드는 우리나라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개시한다.
이때를 대비해 나는 유명 미국 투자 은행(IB)의 국내 지사에 취직하겠다는 동생을 설득해 두바이 국부 펀드로 취직을 시켜두었다.
이제 곧 해운업계에 닥쳐올 큰 난관을 타개할 대비책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해운업계의 위기. 국제 해운업계의 질서가 재편되는 미국발 금융 경제 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전직 퀘스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