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컥!”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낀 나는 헛기침을 하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음? 뭐 어쩌라고?’
왜 이럴 때만 나를 보는 건데!
나를 바라보는 이희영 선장의 눈빛.
‘이제 독심술도 할 수 있게 된 건가? 왜 이 사람들이 속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듣게 된 거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이희영 선장은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있진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크게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또랑또랑한 눈빛의 조셉.
미군의 초계함이라니? 장보고 일항사님의 이 미친 글로벌 인맥! 나를 향한 조셉의 깊은 존경심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희영 선장이 말했다.
“이, 일항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네?”
무슨 깊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미군 함정이 왜 우리한테 오고 있냐 그 말일세.”
“글쎄요······.”
이희영 선장은 여전히 믿지 않는 눈치.
“선장님, 일단 그래도 미군 함정이 정선하라고 하니까 말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으으음.”
“배에 불법 무기도 실려 있는 상황인데 정선하라는 말 안 듣고 계속 가다가는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허허허.”
이희영 선장이 나의 갑자기 실소를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간다는 그런 표정?
나는 쌍안경을 들고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기, 저기 보이네요. 시간은 제법 걸리겠는데요. 여기까지 오려면.”
멀리서 “발키리”호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미군 함정의 모습이 아주 작게 보이기 시작했다.
* * *
-컨테이너선 M.V. “발키리”호의 갑판
잠시 후.
두두두! 두두두! 하늘에서 큰 소음이 들려왔다.
‘헬기 소리?’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소음이 들려왔다. 바로 군용 헬기 소리였다.
곧이어 상공 위로 미군의 군용 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편 선교에서는 VHF 상선 검색망으로 “발키리”호를 호출하기 시작했다.
호출하는 상대방은 근처에 모습을 드러낸 미 해군의 함정이 분명했다.
“발키리호의 승무원 여러분. 잠시 후 미국 해군이 귀선으로 승선을 시도할 것입니다. 즉시 정선하시고, 미군의 수색에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미 해군의 함정은 경고 방송을 두 차례 더 실시했다.
그리고 주변 상공에 떠서 정찰하던 미 해군의 헬기가 “발키리”호가 있는 방향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테러 무기? (2)
-컨테이너선 M.V “발키리”호
하늘에 떠 있는 헬기가 선박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하자 소음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두두두! 두두두!
미 해군의 함정에서 이륙한 헬기는 VHF 상선 검색망에서 울려 퍼진 경고 방송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헬기가 다가올수록 소음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선교와 갑판에 있던 선원들이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쩌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는 이희영 선장에게 다가갔다.
“선장님,”
“으, 음?”
“미 해군이 오고 있다고 하니 선박을 정선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음, 그런데 도대체 미군이 왜 우리 선박에 오는 건가?”
“글쎄요. 뭐, 사람들이 올라오면 이유를 알려주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미군이라도 남의 나라 상선을 이런 식으로 검색한다는 게······.”
“뭐, 그래도 협조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도망치듯 정선하지 않고 항행을 계속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음, 그건 그렇지만······.”
잠시 고민하던 이희영 선장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셉, 엔진 스탑!”
“엔진 스탑 써!”
조타수 조셉은 선장의 지시에 따라 “발키리”호를 정선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발키리”호의 속력이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 * *
-컨테이너선 M.V “발키리”호의 갑판
어느새 “발키리”호의 갑판 바로 위에 미 해군의 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촤라락!
헬기에서 하강 로프 두 개가 갑판으로 떨어져 내렸다.
헬기에서 두 명의 사내가 로프를 타고 빠르게 하강을 시작했다.
갑판에 내려선 사람들은 미 해군들이 입는 것으로 보이는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총 6명의 부대원들이 연이어 하강을 이어갔다.
이들의 포스가 심상치 않았다. 아마도 미 해군의 특수 부대원들이 분명해 보였다.
번개같이 빠르게 갑판 위로 내려선 사내들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중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다부진 체격의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
그는 진지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우리는 미 해군 소속 군인들입니다. 이 선박의 책임자는 어디 계십니까?”
선원들 뒤편에 서 있던 이희영 선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가 이 배의 선장 이희영입니다.”
“네, 저희는 미 해군 소속 부대원들입니다.”
“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선원들이 있습니까?”
“음, 기관실에 기관부원 일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타수, 이등 항해사가 선교에 있습니다.”
“네, 선박을 지금 즉시 정선하고, 선박의 선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갑판으로 모아주십시오.”
“네? 네.”
“지금 당장 실시하십시오.”
미 해군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의 목소리와 어조가 지나치게 건조하게 느껴졌다.
‘음, 이거 너무 삭막한 분위기로 만드는 거 아니야?’
마치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는 모습. 불법 무기를 몰래 운반하는 그런 선박으로 생각하는 건가?
살짝 빈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입을 쭈뼛거렸다.
덥썩! 한마디 하고 싶어 움찍거리는 나의 손을 조용히 낚아채는 손이 있었다.
‘음?’
이희영 선장이었다. 이희영 선장이 왼손으로 나의 오른손을 잡은 채로 지그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
이희영 선장을 봐서 일단 한 번 참기로 했다.
이희영 선장이 고개를 돌렸다. 갑판장을 향해 눈짓하자 갑판장이 선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선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발키리”호의 선원들이 모두 갑판에 모였다.
“음, 아마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저는 미 해군 소속 마크 윙 대위입니다.”
마크 윙 대위라고 본인을 밝힌 미 해군의 지휘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 선박에 대한 첩보가 있어 부득이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검색을 마칠 때까지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검색을 마칠 때까지 승무원분들은 모두 이동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무슨 첩보입니까?”
내가 손을 들어 질문하자 마크 윙 대위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린 후 대답을 이어갔다.
“기밀입니다.”
“네?”
“CIA를 통해 알게 된 정보가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밀 사항입니다.”
“······.”
황당한 놈들이네.
선박을 검색하고, 선원들을 이동까지 못 하게 하면서 기밀이라니?
이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짐작 가능했지만 이놈들의 고압적인 태도가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무리 미군이라도 이건 지나친 월권이었기 때문이다.
이희영 선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사고라도 칠까 봐 걱정하시는 건가? 허허허.’
아무리 승선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한들 이렇게 미군들에게 선박이 억류당하는 것은 좀처럼 경험해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희영 선장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물며 CIA라니? 그런 건 영화 속에서나 듣던 이야기였다.
이희영 선장을 비롯한 “발키리”호의 선원들은 모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크 윙 대위가 말을 이어갔다.
“자세한 내용은 곧 알려드리겠습니다. 책임자가 아직 도착을 안 했습니다.”
미 해군의 지휘관이 손을 들어 올려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
미 해군 초계함 ‘USS 치누크’함이 있는 방향에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고속 단정 두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고속 단정에 이 작전의 책임자가 승선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
* * *
-컨테이너선 M.V. “발키리”호의 갑판
미 해군들이 모두 승선하고 여전히 심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자 긴장한 표정의 이대성 삼항사가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장보고 일항사님.”
“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뭐가?”
“미군들이 우리 선박에 올라와서 검색을 하는 이유가 뭐냔 말이죠.”
이대성 삼등 항해사의 질문에 나는 가슴 한구석이 괜스레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원인.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이안 요원에게 보면 첩보 때문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안 요원에게 미국 CIA 요원 제임스에게 정보를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본사에서 계속 항행할 것을 지시한 이상 배를 회항시켜 위험 화물을 하역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첩보의 내용은 당연히 이 선박에 불법 무기와 폭약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선적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 선박에 승선한 미군들이 이렇게 고압적으로 마치 우리를 범죄자 대하듯 무례하게 행동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대성 삼등 항해사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장보고 일항사님, 그런데 아무리 미군이라도 이렇게 남의 나라 선박을 함부로 점거해도 되는 겁니까?”
“음, 삼항사가 생각해봐도 좀 그렇지?”
“네, 제가 가서 한마디 할까요?”
“······삼항사가?”
“하하하. 저는 좀 그렇죠? 아무래도 이런 일은 일항사님이 나서 주시는 게······ 좋겠죠?”
“······.”
음, 역시 내가 나서야 하나?
나도 슬슬 인내심이 바닥에 다다르고 있었다.
고속 단정이 도착하고 미 해군들이 모두 갑판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나는 마크 윙이라고 본인을 밝힌 지휘관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아무리 미군이라도 해도 이렇게 공해상에서 다른 나라 선박을 함부로 나포하거나 검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은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미 해군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발키리”호를 검색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의논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물러서!”
내가 근처로 다가서자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미 해군 부대원 한 명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내 가슴에 손바닥을 올려놓으며 내가 앞으로 가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로 상대방을 한차례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아 천천히 손목을 천천히 꺾기 시작했다.
“훗! ···어? 어어!”
나를 막아선 미 해군 특수 부대원은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목이 계속 꺾여가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으으으!”
그는 손목이 기괴한 형태로 꺾이자 신음 소리를 살짝 흘렸다. 내가 그의 팔을 계속 돌리자 그는 털썩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시는 내 몸에 손대지 마십시오.”
나는 그의 손을 놓아주고 걸음을 다시 옮겼다.
“나는 이 선박의 일등 항해사입니다. 작전의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일으킨 작은 소란을 목격한 마크 윙 대위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무릎을 살짝 꿇은 채로 손목을 어루만지고 있는 부대원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음? 무슨 일입니까?”
“저는 이 선박의 일등 항해사입니다.”
“그런데요?”
“책임자가 도착하면 당신들이 이 선박에 올라온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음··· 좋습니다. 이 선박에 불법 밀수출된 무기들과 폭약이 선적되어 있다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나는 마크 윙 대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대답으로는 부족했다.
“그런데, 당신들은 본선을 꽤 멀리서부터 추적해 오지 않았습니까?”
“네?”
“제가 알기로는 외국 선박에 대한 추적권은 연안국의 권한이 있는 당국이 아닌 경우에는 할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