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200)

‘혹시나 해서 알아봐 달라고 했던 건데.’

역시 이 사건이었구나.

과거의 사건들이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 얽혀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전생의 한 사건이 있었다.

* * *

전생에 해신해운 선박이 독일 함부르크 항구에서 현지 경찰의 수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

내가 탑승했던 선박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해신해운 선박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회사 전체가 난리 났던 일이다.

그런 소동이 벌어진 이유는 해신해운의 선박이 불법 수출된 무기와 폭발 물질을 함부르크항에 하역한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해신해운의 선박에서는 중국산 제품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의 핵심 부품들과 폭발물 150t이 발견되었다.

독일 경찰은 중국 항구를 거친 한국 선적의 컨테이너 선박에서 미사일 69기를 조립할 수 있는 부품이 나눠서 운송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항구에서 선박에 대한 수색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때 중국 항구에서 컨테이너를 실어 유럽으로 운송하는 데 이용된 선박이 바로 해신해운의 선박이었던 것이다.

당시 발표된 경찰 자료에 따르면 경찰과 세관은 선박에서 미사일 69기, 피크르산 등 폭발물 약 150t, 프로펠러 작동 장치 등이 발견했다고 밝혔으며, 해당 선박은 독일 함부르크항에서 해당 화물을 하역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선박에 실린 미사일과 폭발물은 최근 미군이 오만해 인근에서 나포한 폭발물 운송 선박과도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미사일 등은 운반 규정에 정해진 컨테이너가 아니라 일반 화물용 컨테이너에 실려 있었으며 미사일은 화물 목록에 폭죽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당시 미사일의 출처와 운반지는 결국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해신해운은 이 일에 전혀 개입된 바가 없다는 것을 소명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 * *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미군은 오만해 인근에서 나포한 선박에서 불법 무기와 폭발 물질의 추가 운송과 관련된 첩보를 입수해 인터폴을 통한 국제 공조를 실시한다.

그리고 그 화물들이 우연히 해신해운 선박에 실려 있었다.

하지만 전생과 다른 점은 재수 없게도 그 불법 무기류 등이 지금 내가 승선해 있는 이 “발키리”호에 실린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나머지 찬스 인터내셔널 컨테이너에 실린 부품들이 무기 부품들일지도 모르겠군.’

문제가 더 커져 버린 상황이다.

전생에 폭발한 “발키리”호에는 폭약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선박에는 폭약과 불법 무기류까지 적재된 상황.

혹시라도 화재나 폭발이 발생하면 전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음? 잠깐만.”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던 중 이 상황을 타개할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잠깐, 그때 함부르크항에서 폭발물을 발견하고 경찰에 미리 신고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부두에서 신고를 했던 사람.

‘그 사람 그때 포상금도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테러 무기? (1)

-컨테이너선 M.V “발키리”호의 선교

‘포상금!’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전생에 함부르크항에서 폭발 물질을 발견해 신고한 항만 하역 근로자가 독일 세관으로부터 포상금을 받았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 이유는 항만도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테러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히 미국이지만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유럽의 항만을 출입할 때는 각별히 보안에 신경을 써야 했다.

특히 유럽의 경우 항만에 도착하면 육로를 이용해 어디로든 갈 수 있기 때문에 유럽의 항만들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국제적인 테러 위협을 대비해 총포류와 같은 무기 등의 테러 위해 물품이 항만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이를 대비해서 유럽의 국가들은 테러 위해 물품이 항만에 유입되는 경우 미리 세관에 신고하면 적발 즉시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해두는 경우가 있었다.

마약 사건과 같이 첩보에 의해서 검거가 대부분 이루어지는 사건의 특성상 테러 관련 물품도 정보 제공을 유인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상금이 도대체 얼마였더라.’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발견된 물품들의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제법 쏠쏠한 금액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외국인 선박 승무원에 의한 총기 밀반입 사례가 항만 입출항 시에 간간이 발생하는 사건인 점을 고려하면 거액을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꿩 먹고 알 먹고. 생명도 지키고 돈도 벌고!’

“흐흐흐.”

최대한 조용히 혼자 히죽거렸지만 바로 옆에 있는 이대성 삼항사가 눈치를 채고 말을 걸었다.

“장보고 일항사님.”

“왜?”

“괜찮으십니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시길래.”

“으흐흠! 내가 그랬나?”

“네, 그건 그렇고 뒤에 이메일이 한 장 더 있습니다.”

“음?”

나는 급하게 서류를 뒤적거렸다.

서류의 맨 뒷장. MI6 요원 이안의 이메일 말고 다른 사람이 보낸 이메일 한 장이 첨부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으음 티알 드레이딩(TR Trading)?’

그건 싱가포르 삼합회 지부장인 샤오 린이 보낸 이메일이었다.

+

미스터 장,

지난번에 부탁한 일과 관련하여 추가 업데이트할 정보가 있었습니다.

중국 내부에서 월드로지스틱스에 대한 추가 정보를 보내왔습니다.

얼마 전에 중국 현지에서 공안이 비밀리에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안의 목표가 다름 아닌 월드 로지스틱스와 그 배후에 있는 운영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공산당 고위 간부가 방산 비리에 연루되어 불법 무기 수출과 관련된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안 내부 정보를 빠르게 입수한 덕분인지 월드로지스틱스의 배후에 있는 흑사회의 실세들은 체포 전에 먼저 미리 잠적해버린 후였다고 합니다.

중요 인물들은 모두 잠적해버렸기 때문에 수사는 지지부진하다는 말이 현지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불법으로 무기와 폭약 재료 등을 빼돌린 자료를 공안이 입수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중략)

-샤오 린

+

‘으음, 역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안 요원과 샤오 린이 보내온 두 곳의 고급 정보를 비교하니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예상이 제대로 맞아떨어져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일단 나머지 컨테이너들을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폭약 말고도 다른 물건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더 흉악한 그런 물건들 말이다.

“선장님!”

“음, 일항사?”

“잠시 갑판으로 가서 컨테이너 안에 있는 물건들을 좀 확인하고 올까 합니다.”

말을 마치고 싱긋 웃어 보였다. 이희영 선장이 나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내용물을 다시 확인하겠다고?”

“네, 기계류가 발견된 컨테이너를 한번 다시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기계류?”

“네, 살펴보면 어떤 물건인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음, 알겠네. 다녀오게.”

“네, 금방 확인하고 다시 올라오겠습니다. 빠르게 다녀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희영 선장이 나를 바라보며 별말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표정이 조금 전과는 달리 미묘하게 밝아졌다는 것을 그도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 * *

-컨테이너선 M.V. “발키리”호의 갑판

‘아마도··· 이 컨테이너 같은데.’

나는 눈앞에 있는 컨테이너의 번호를 확인하고 있었다.

컨테이너 외부는 특이할 것이 없었다. 그저 일반적인 컨테이너들과 다를 것이 없는 모습.

이들 컨테이너들은 그저 전자 장비나 가전 기구로 신고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내부에는 무시무시한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전수 조사한 찬스 인터내셔널의 컨테이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류들이 들어있는 컨테이너들도 다수 발견되었다.

아무리 베테랑 선원들이라고 하여도 분해된 부품만으로 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끼이익!

컨테이너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돌렸다.

컨테이너 안에는 큰 나무 상자들이 있었고, 나무상자 덮개를 치우자 상자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류들이 분해된 채로 실려 있었다.

“음, 이게 그 미사일 부품들이란 말이지.”

긴가민가했지만 미사일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수상해 보이긴 했다.

처음 이 컨테이너를 확인한 선원들은 무슨 기계인지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보고를 올렸다.

아무리 베테랑 선원이라고 해도 사전 정보 없이 이 기계 화물의 정체를 아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물건들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방안이 필요해.’

“발키리”호의 안전도 확보하고 무기들도 안전하게 처리할 방법.

나는 생각이 잠긴 채로 다음 컨테이너를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컨테이너선 M.V. “발키리”호의 선교

잠시 후.

컨테이너 확인 작업을 마치고 선교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발키리호의 항해사들은 항해를 계속할 것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항사 왔나?”

“네, 선장님.”

“그래, 확인하고 싶다고 한 건 어떻게 됐나?”

“기계 부품이 있다고 해서 살펴보고 왔는데요.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던데요?”

“음? 무슨 부품인지 알아보겠던가?”

“네.”

선교에 모인 사람들이 궁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아무래도 미사일 같은 데 쓰는 부품 같던데요.”

“뭐?”

“······!”

이희영 선장과 이 자리에 모인 선원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 미사일이 배에 실렸다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선박을 이용해 불법 무기를 운송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특히, 북한이 선박들을 이용해 무기를 수출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무기 밀수입에는 주로 외국 선적으로 등록된 정체불명의 선박들이 이용되는데, 이런 선박들은 한반도 근처의 해역에 도달하면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북한항으로 입국을 시도하는 방법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희영 선장이 잔뜩 긴장한 표정을 말을 이어갔다.

“불법 무기가 배에 실려 있다는 말인가?”

“네, 선장님. 빨리 본사에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그래.”

이희영 선장이 이대성 삼등 항해사에게 손짓하자 이대성 삼등 항해사가 준비를 위해 달려갔다.

“선장님, 아무래도 항해를 계속하는 건 무리일 듯싶습니다.”

“음?”

“이런 물건들이 배에 실려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앞으로 기항할 유럽의 항구들이 입항을 못 하게 하지 않을까요?”

항구들마다 입항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신고되지 않은 폭발 물질이나 무기들 같은 위험 화물이 있는 경우 입항이 거부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몰래 입항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혹시라도 뒤늦게 무기가 실린 사실을 알면서 사전에 통지하지 않은 것은 여러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음, 그래도 일단 본사 지시는 항해를 계속하라는 것이었으니 일단 본사에 보고를 하고 지시를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지.”

이희영 선장도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상황일 터. 빠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희영 선장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희영 선장은 인근 항구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던 내가 별다른 말이 없자 뭔가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그동안 항행을 중단하고 인근 항구로 가자고 한 이유는 전생에 폭발이 일어난 장소와 시간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지금은 큰 상관이 없었다.

곧 이 선박으로 무지막지한 손님들이 찾아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몇 시간 후.

통신을 준비하던 이대성 삼항사가 달려 나오며 외쳤다.

“선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음?”

“VHF에서 본선을 호출하고 있습니다.”

“뭐? 무슨 일인가?”

“지금 당장 정선하라고 합니다.”

“뭐? 상대 선박이 누군가?”

“미, 미군이라고 합니다.”

“뭐!”

이희영 선장이 깜짝 놀라 소리를 크게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대성 삼등 항해사도 긴장한 표정.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미군! 초계함이라고 합니다.”

“뭐? 미군? 초계함······?”

“네, 미, 미군 초계함인 USS 치누크함이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선교에 모인 사람들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눈만 껌뻑거리기 시작했다.

당혹감이 선교를 휩쓸었지만 유난히 차분한 모습으로 평정심을 유지한 사내가 있었다. 바로 나다.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마시던 커피 잔을 다시 들어 올려 홀짝였다.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은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인 것처럼 말이다.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탓일까.

이런 일이 생기면 조용히 있을 사람이 아닌데 유난히 말이 없는 모습이 더 수상해 보였을까.

선교에 있는 사람들은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 고개를 같은 방향을 향해 조용히 돌렸다.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가 조용히 한곳, 내가 있는 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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