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200)

“······.”

이 양반이!

누가 들으면 내가 사고 치고 다니는 걸로 오해하겠네.

‘그런데 어쩌죠?’

나는 이희영 선장을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은 고민거리가 있었다.

귀신같은 영감이네. 베테랑 선장답게 눈치가 빨랐다.

‘이상하단 말이야.’

월드로지스틱스의 위험 화물들은 전무 싱가포르항에서 선적 거부를 해서 하역한 상황.

선박 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제거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왜 안 보이지?’

아직도 퀘스트를 달성했다는 메시지 창이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아직 폭발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위험 화물이 남아 있다는 뜻일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태창을 열어 퀘스트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시작했다.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선박 폭발의 위험이 있습니다. 폭발 위험을 제거하세요!”

세부 퀘스트 : 선박 폭발

클리어 조건 : 폭발 위험 제거

제한 시간 : 항차 마무리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선박의 대규모 파손, 인명 피해

+

‘역시 그대로야.’

퀘스트 창은 변한 게 없었다.

그때 선교의 유리창을 넘어 갑판 위로 모여 있는 선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음?”

뭐야, 왜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어. 불안하게.

“아! 일항사, 수에즈운하까지 시간이 있으니 내가 갑판장에게 보수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을 좀 하라고 했네.”

“보수요?”

“그래, 저번에 보니 난간 같은 곳에 부식된 부분들이 좀 보여서 말이야. 시간이 있을 때 선박을 전체적으로 체크 좀 해 보라고 했네.”

‘수리라고?’

이희영 선장의 말에 불현듯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생에 “발키리”호는 싱가포르 항구에서 위험 화물을 적재한 상태로 수에즈운하를 향해 출항한다.

그리고 운항 중에 보수 작업을 실시하는데 당시 사건 기록에 따르면 케이블 보호용 파이프와 철제 난간을 보수하는 작업을 실시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교체 작업에는 철제를 절단, 제거하고 새로운 철제 파이프와 난간을 용접하는 작업이 필수라는 것이다.

위험 화물이 실려 있는데 용접이라니! 정말 위험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사건 기록에 따르면, 월드로지스틱스 화물과 용접 장소의 거리는 약 40m 내외.

사건 직후 선박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거리가 멀기 때문에 폭발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조사는 언제나 사고 이후 실시한 조사에 근거한 것이니까. 추정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이희영 선장에게 물었다.

“그렇군요. 뭐라고 하던가요? 보수 작업을 해야 된다고 하던가요?”

“아직 보고를 안 했으니 한번 불러서 확인해 봅세.”

“네,”

지지직!

“갑판장, 브릿집니다.”

“네, 일항사님.”

“브릿지로 잠시 올라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무전을 마치고 갑판장이 선교로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를 가지러 간다던 이희영 선장이 한 손에 서류 뭉치를 들고 나타났다. 서류 뭉치를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장보고 일항사, 이것 좀 보게.”

“음? 이건 뭔가요?”

“한번 보게. 자네 덕분에 내가 오래 살겠군. 허허허.”

“네?”

“선장 경력 30년 동안 본사에서 이렇게 난리 치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라네. 허허허.”

나는 이희영 선장이 건네준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부산 지사의 운항팀부터 본사 영업팀, 그리고 컨테이너가 선박에 실릴 공간을 배정하는 운영팀까지 아주 다양한 곳에서 발송한 이메일을 출력한 서류였다.

그들 중에는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귀여운 협박성 메시지들도 있었다.

‘음?’

그런데 이메일 서류 마지막 장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티알 트레이딩?’

마지막 이메일은 티알 트레이딩의 대표이자 싱가포르 삼합회 지부의 수장 샤오 린이 발송한 것이었다.

이메일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나의 표정은 점점 딱딱하게 굳어 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

미스터 장,

요청하신 월드로지스틱스의 소유자들에 대해 추가로 확인된 정보가 있어서 급하게 이메일을 남겼습니다.

월드로지스틱스의 실소유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확인했습니다. 그 사람은 예상대로 중국의 흑사회와 연관된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다.

월드로지스틱스는 흑사회의 물건을 비롯한 밀수품들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해 만든 회사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월드로지스틱스 외에도 위장 업체가 한 곳 더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업체는 찬스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입니다. 찬스 인터내셔널이라는 업체 또한 이들이 운영하는 위장 업체인 것처럼 보입니다. 찬스 인터내셔널은 중국 내 고위 공직자가 개입되어 있는 방산 업체와도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중략)

업무에 참고하시길.

샤오 린.

+

‘뭐, 뭐야 이거!’

이메일의 내용을 다 읽어 내려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이 메일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몰랐다.

찬스 인터내셔널은 위험 화물 선적을 알리지도 않은 곳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애초에 선적 위치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찬스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가 또 다른 위장 업체라고? 월드로지스틱스하고 같은?’

이건··· 처음 들어 보는 곳인데?

찬스 인터내셔널이라는 상호의 회사는 아무리 떠올려 봐도 “발키리”호 폭발 사고와 관련해서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전생의 기억에는 없는 생소한 이름이 나를 갑자기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숫자가 있었다.

‘100개!’

머릿속으로 싱가포르 지점장 원은재 부장이 싱가포르 항구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건 싱가포르 지점에서 적재한 위험 화물의 숫자였다.

찬스 인터내셔널 (1)

-컨테이너선 M.V “발키리”호의 해도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나도 모르게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것일까?

닭살이 쭈뼛 솟아오르고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불안감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엉클어질 무렵.

< 띠링! >

+스킬 [마도로스의 심장 Lv.13]을 사용합니다. +

-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스킬 [고소고발 Lv.14]을 사용합니다. +

- 추리력이 상승합니다.

- 범인을 추적합니다.

- 기억력이 상승합니다.

‘아, 다행이다.’

스킬이 발동되자 진정되기 시작했다.

사건을 다시 복기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기 시작했다.

폭발한 시간이 언제였더라?

예정 항로를 따라 진침로 260도, 약 23.4노트로 항행하던 “발키리”호는 11시 45분경(현지 시간, UTC+4hr)부터 곽호진 이등 항해사가 항해 당직을 수행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선박의 위치.

‘폭발한 곳까지 가려면 얼마나 남았을까······.’

아마도 그렇게 여유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전생에 확인한 보고서의 내용에 따르면 “발키리”호에서 처음 폭발이 발생한 장소는 예멘국 아덴항 동방 약 140마일 거리인 북위 12도 40분 00초․동경 047도 22분 30초 해상을 지날 때쯤이었다고 했다.

나는 해도실로 빠르게 달려가 해도를 펼쳤다.

‘사건이 발생한 위치가 이쯤이니까······.’

내일쯤인가?

지금 예정대로라면 내일쯤 폭발이 시작된 위치를 지나게 될 예정으로 보였다.

싱가포르 항구에서 실린 화물들의 적부 계획서와 화물에 대한 정보를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찬스 인터내셔널이라······.’

싱가포르 지점에서 선적한 화물 중에 월드로지스틱스의 또 다른 위장 업체가 선적한 화물이 있을지도 몰랐다.

‘으음, 큰일 날 뻔했구나!’

자료를 살펴보는 나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 *

-컨테이너선 M.V “발키리”호의 선교(브릿지)

잠시 후.

선교의 문이 열리고 인사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갑판장이 선교로 들어서며 말했다. 해도실에 있었지만 갑판장과 선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 선장님도 계셨네요.”

갑판장은 이희영 선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일항사는 없네요?”

“일항사는 잠깐 해도실에 들어갔네, 그래 갑판장, 지시한 내용 확인을 좀 해봤나?”

“네 선장님, 일단 전체적으로 한번 쭉 돌아봤습니다.”

“음 그래, 보수가 필요한 부분이 좀 있던가?”

“네, 부식된 곳들이 있더군요.”

“음, 부식이 심하던가?”

“뭐 일단 본선에서 작업을 좀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좌․우 양 현측의 부식된 철제 난간(Handrail)을 부분적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수 측은 34 베이 부근에서 갑판상 난간 및 소화전 교체 작업, 선미 측은 46번 베이 앞부분 좌우현 래싱브릿지(Lashing Bridge, 컨테이너를 수작업이 아닌 자동으로 고정하기 위한 선박의 컨테이너 고장 장치를 말함) 라이트용 케이블 보호용 파이프를 신환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음, 다행이군. 그래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나?”

“뭐, 데이 워크 인원들로 한 2~3일 정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갑판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도 해도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가서며 인사를 하자 갑판장이 손을 들어 올려 인사를 했다.

“갑판장님, 오셨네요.”

“네, 일항사님. 무슨 일 있습니까?”

“다른 건 아니고요. 수리 작업 관련해서 물어볼 것들이 좀 있어서요.”

“아, 네. 수리는 별거 아닙니다. 녹이 좀 생겨서요. 심각한 건 아닙니다. 시간 있을 때 미리 해두려고 하는 거니까요.”

“네, 그런데 수리해야 할 부분이 케이블 보호용 파이프하고 철제 난간이라고요?”

“맞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소화전도 좀 손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식이 제법 진행되고 있어서 이번 기회에 갈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갑판장이 말하는 케이블 보호용 파이프는 거주 구역 좌우현 끝부분과 해치코밍(Hatch Coaming) 좌우 끝부분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벽면(철판)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것을 교체하려면 먼저 내부 케이블을 제거한 후 쇠톱을 사용하여 절단․철거하고, 새로운 파이프를 기관실 공작실에서 제작하여 전기 용접으로 취부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용접 작업에 따른 위험성이 있었지만 작업 자체는 선박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업무들이었다.

한 가지 문제는 아직도 선박 내에 폭발물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

위험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용접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용접 과정에서 사고가 난다거나 폭발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갑판장은 나의 표정을 살피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박에서 이 정도 수리 작업은 늘 있는 일상이나 마찬가지인 일이었기 때문.

“일항사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음, 얼마 전에 폭발물을 하역하지 않았습니까? 용접을 한다고 하니 좀 마음에 걸려서요.”

“하하하. 뭐 별거 아닌 작업입니다. 매일 하는 일인데요.”

“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죠. 용접 작업하려는 위치가 정확하게 어떻게 됩니까?”

“음, 철제 난관은 부분적으로 군데군데 교체를 해야 될 것 같고요. 소화전 교체는 34 베이 부근, 케이블 보호용 파이프는 선미 쪽 46번 베이 앞부분입니다.”

‘46번 베이?’

선미 쪽 46번 베이의 위치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이곳은 월드로지스틱스의 위험 화물이 적재되어 있던 장소와 직선거리로 약 40미터 정도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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