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 린이 환한 표정으로 나에게 걸어오며 말을 이어갔다.
“미스터 장,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샤오 린이 손을 내밀자 나도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그가 내민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이야기하기가 그러니 좀 이동하시죠.”
샤오 린과 나는 사람들이 없는 갑판의 한쪽 구석으로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샤오 린, 좀 알아낸 것이 있습니까?”
“네, 그렇긴 한데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음?”
“폭죽 같은 화물을 운송하는 운송 주선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맞습니다.”
나의 말에 샤오 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마도 위장 업체인 것 같습니다.”
발키리호 폭발 사고 (2)
-싱가포르항 정박지, 컨테이너선 “발키리”호의 갑판
“네? 월드로지스틱스가 위장 업체라고요?”
삼합회 싱가포르 지부의 수장이자 티알 트레이딩(TR Trading)의 대표인 샤오 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건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미스터 장도 몰랐습니까?”
“네, 그저 영세한 포워딩 업체인 줄 알았는데....”
“하하하. 우리는 뒷조사를 해달라고 하기에 이미 수상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일을 맡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발키리”호에서 폭발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해신해운에 맡긴 회사는 월드로지스틱스(World Logistics).
딱히 이 회사의 정체를 의심했던 것은 아니다. 삼합회에 조사를 의뢰한 것은 정체를 확인하려는 것보다는 향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손해 배상을 하기 위함이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월드로지스틱스는 영세한 규모의 포워딩 회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건 이후에 들은 소문일 뿐이지.’
작은 포워딩 회사가 대형 사고가 발생하자 뒷수습을 하지 못해 야반도주했다는 소문.
하지만 전생에는 내가 이 사건에 직접 관련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 회사 사람들에게 들은 정보이고, 직접 확인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는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영세한 포워딩 업체가 사고 이후 도망친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구나.’
흔히 업계에서 말하는 포워딩(freight forwarder) 회사는 컨테이너 화물의 운행을 대행하는 업체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운송 주선인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다소 복잡해진 컨테이너 화물의 국제 운송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는 회사를 뜻한다.
최근 3자 물류 시장이 커져 가면서 성장하고 있는 업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생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적인 물류회사라고 할 수 있는 해운 회사보다도 매출이 큰 회사들도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업계의 대부분은 영세한 규모의 회사들이다.
나의 심각한 표정을 바라보고 있던 샤오 린이 말을 이어갔다.
“미스터 장, 그래도 포워딩 회사라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네?”
“외형상으로는 운송을 대행하는 업무를 처리하긴 하니까요.”
“그런데 왜 위장 업체라고 하신 겁니까?”
“표면적인 영업일 뿐 월드로지스틱스가 실제로 수익을 내는 사업은 따로 있었습니다.”
“다른 사업이라고요?”
“네, 회사의 실체는 중국에서 정상적으로 수출하기가 힘든 물건들의 운송을 대신 처리해주는 업체였습니다.”
“정상적으로 수출하기 힘든 물건이라면 마약 같은 것들인가요?”
샤오 린이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약같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출하지 못하는 물건들이나 흑사회 같은 조직들이 해외로 몰래 반출하려는 밀수품들을 컨테이너에 몰래 끼워서 운송하기도 하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음!”
이건 전생에서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사건의 배후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다.
샤오 린이 말을 마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근처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미스터 장, 그리고 첩보가 있었습니다.”
“첩보요?”
“네, 혹시 모르니 미스터 장도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무슨 일입니까?”
“예전에 창고에서 함께 싸운 흑룡회 놈들을 기억하십니까?”
“네, 그때 마약을 취급하는 일 때문에 삼합회와 다툼이 있었던 놈들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때 듣기로는 삼합회 덕분에 싱가포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고 들었는데요?”
“하하하. 맞습니다.”
“그런데 흑룡회 놈들이 이제 와서 왜?”
“중국 내부로 도망갔던 흑룡회의 중국계 간부 몇 명이 최근 싱가포르에 입국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음? 그런데 흑룡회 사람들이 이제 와서 저에게 무슨 해코지를 하겠습니까?”
“하하하. 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놈들이 이곳에서 새롭게 무슨 일을 해보려고 작당한 것인지 이번에 흑룡회 놈들과 인연이 있는 한국의 조직원들과 얼마 전에 싱가포르로 입국했다는 말이 있더군요.”
“네? 한국의 범죄 조직원들이 싱가포르에 들어왔다고요?”
“예전에 흑룡회가 한국의 조직들에게 마약을 공급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흑룡회와 연계되어 있는 자들이 아닐까 추측하고 하고 있습니다.”
“음....”
한국의 범죄 조직원들이 싱가포르로 들어왔다는 말이 이상하게 나의 신경을 쓰이게 했다.
‘혹시 거경파 놈들일까?’
나는 예전에 씨그랜호 사건 당시 차진혁 경감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거경파에 마약을 공급하던 해외 조직이 세력을 잃어서 러시아 선박을 통한 마약 유입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샤오 린, 혹시 그놈들이 어느 조직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습니까?”
“아직 정확한 정보는 확인 중에 있습니다. 아직은 흑룡회 놈들과 함께 이곳 뒷골목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정도의 정보만 확인한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좀 더 알아보고 있으니 추가 정보가 있으면 연락하겠습니다.”
나는 샤오 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그를 배웅했다.
샤오 린이 전해 준 정보는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차진혁 경감에게 연락을 해서 거경파 놈들의 동태도 한번 알아봐야겠어.’
혹시 거경파 놈들이 이 일에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흑룡회와 거경파. 어찌 되었든 나와는 악연인 놈들이 아닌가?
< 띠링! >
+
<메인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선박 폭발의 위험이 있습니다. 폭발 위험을 제거하세요!”
세부 퀘스트 : 선박 폭발
클리어 조건 : 폭발 위험 제거
제한 시간 : 항차 마무리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글로벌 명성 상승
실패 시 : 선박의 대규모 파손, 인명 피해
+
* * *
-M.V. “발키리”호의 선교.
정박지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선박들이 하나둘 작업을 마치고 항구를 떠나기 시작했다.
발키리호도 곧 입항해 하역 작업을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폭발도 문젠데 그놈들 때문에 더 긴장되네.’
화물을 위탁한 월드로지스틱스가 중국 내 흑사회의 물건을 국외로 반출하는 일을 하는 놈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욱 찝찝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흑룡회 놈들까지 싱가포르에 나타났다고 하니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제법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폭발 사고를 막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지.
‘그나저나 폭발이 어디서 일어났더라.’
일단 위험 화물과 적재 장소를 체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화물 적재 계획을 꼼꼼하게 챙길 필요가 있었다.
나는 선교에서 선박 대리점을 통해 미리 전달받은 컨테이너 화물 적부 계획도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일항사님! 아직도 일하십니까?”
그때 선교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곽호진 이등 항해사였다.
“줄리엣”호 해적 피랍 사건 당시 함께 승선했던 곽호진 이등 항해사를 이 선박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항사 무슨 일이야 좀 쉬지?”
“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요.”
“그래? 나도 뭐 심심해서 이번에 싱가포르 항구에서 실릴 화물들 좀 살펴보고 있었지.”
“화물들이요?”
“그래.”
곽호진 이등 항해사에게 손에 들고 있던 적부 계획서를 건네주었다.
컨테이너를 항구에서 선박에 적재하기 위해서는 육상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적부 계획도를 작성하여 본선에 자료를 제출하면 본선의 하역 책임자가 그 내용을 점검하게 된다.
보통 선박에서 화물의 하역 책임자는 일등 항해사이기 때문에 본선에서 화물의 적재 계획은 나의 소관 업무였다.
하지만 컨테이너 화물은 컨테이너에 적재된 상태로 본선에 선적되기 때문에 벌크선에 비해 화물에 대한 취급이 비교적 쉬운 선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곽호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 특이 사항이 있습니까?”
“중국에서 온 위험 화물들이 이번 항구에서 환적 화물로 좀 실릴 예정이라서 말이야.”
“위험 화물이요?”
“음, 연화류(폭죽) 같은 것들이 좀 있네.”
“뭐, 화주들이 제대로 실었으면 큰 문제 있겠어요?”
곽호진 이등 항해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허허허. 글쎄....”
나는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이번 항차에 발생하는 폭발 사고로 인해 인명 피해를 입은 사람은 두 명이다.
바로 이희영 선장과 폭발 사고 당시 선교에서 당직 근무를 하던 당직 이등 항해사였다.
“그나저나 장보고 일등 항해사님은 워낙 유능해서 척척 일을 다 해내시는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준비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곽진호 이등 항해사가 나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선원이라고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운송되고 있는 수많은 화물들의 특성을 전부 외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런 대형 선박에서는 수천, 수만 개의 화물이 적재되기 때문에 이 화물의 특성을 전부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따라서 이번 항차에서는 어느 때보다 위험 화물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격리 구분 등이 국제 기준에 적합하게 되었는지 확인한 후 적재하고, 항해 중에는 적재된 컨테이너에 대한 점검을 매일 실시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보시는 건 또 뭐예요?”
곽호진 이등 항해사가 책상 위에 놓인 파일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내가 살펴보고 있던 절차서와 각종 검사 증서였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모든 화물들에 대한 정보를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선박에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다양한 업무 절차서과 각종 증서들이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참고하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거? 위험화물운송적합증서를 보고 있었거든.”
“선급에서 발급한 거요?”
“그래.”
나는 증서를 곽호진 이등 항해사에게 건넸다. 곽호진 이항사는 별 이상한 짓을 다 하는구나라는 표정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화물 적재에 앞서 이런 증서까지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발키리”호는 대한선급에 입급(入級)한 선박.
곽호진 이등 항해사가 대한선급에서 발행한 ‘위험화물운송적합증서’를 꺼내 들어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지만 큰 관심은 없는 듯 대충 훑어보기 시작했다.
대한선급이 발행한 “위험화물운송적합증서”에 따르면 위험 화물을 화물창에 선적할 경우, 즉 갑판 아래에 선적할 경우에는 제2번 화물창에만 선적 가능하며 화물이 밀폐형 컨테이너에 수납된 경우에만 한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갑판 위에 적재하는 경우에는 기관 구역으로부터 적어도 3미터 이상 떨어져서 선적하여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제한은 없었다.
“뭐, 특별한 내용은 없네요.”
“이항사, 그럼 이것도 한번 보게. 곧 일항사가 될 예정이니 화물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지.”
곽호진 이등 항해사는 큰 관심은 없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일등 항해사가 되기 위해서는 화물 처리 능력이 필수였기 때문에 그는 마지못해 내가 건넨 절차를 펼쳐서 살피기 시작했다.
“네, 그런데 폭죽이면 IMDG 코드상 1급인 위험 화물인가요?”
“그렇지.”
위험 화물은 국제해사기구에서 분류한 기준(국제해상위험물규칙: IMDG Code라고 함)에 따르면 제1급에서 제9급으로 구분된다.
이 중 가장 위험한 등급인 제1급은 화약류(Explosives)로 폭발물을 말하는데, 폭발 특성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물질 및 제품은 제1급으로 분류된다.
폭죽(연화: Fireworks)의 경우 제품의 위험성 정도에 따라 1등급 안에서도 4가지 세부 등급(1.1, 1.2, 1.3 및 1.4)으로 분류되는데, 전생에 발생한 “발키리”호 폭발 사고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연화류(폭죽)는 등급 1.3G 오락용 연화류에 해당하는 등급의 위험 화물이었다.
국제해사기구에서 분류한 위험물의 등급에 따르면 1.3 등급에 해당하는 위험 화물은 화재 위험성이 있으며 또한 약간의 폭발 위험성(Blast Hazard)이 있는 물질을 말한다.
대폭발 위험성은 없는 물질을 말하지만 상당한 양의 복사열을 발생시키고 연달아 연소하며 약간의 폭발 효과를 발생시키는 위험한 물질이라는 설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폭죽이 이렇게 위험한 건 줄 몰랐네요. 그래도 뭐 잘못된다고 해도 선박 전체가 대폭발하고 그런 건 아니겠죠?”
곽호진 이항사가 겁이 난다는 표정으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글쎄, 그래도 1등급 위험 화물이니 주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폭발하는 위치도 중요할 테고....”
‘폭발하는 위치라....’
나는 곽호진 이등 항해사와 대화를 하면서 전생의 기억을 다시 한번 자세하게 떠올리기 시작했다.
발키리호 폭발 사고 (3)
-“발키리”호 폭발 사고에 대한 보고서
전생에 읽은 “발키리”호 폭발 사고에 대한 보고서의 내용이 마치 사진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발키리”호는 예정 항로를 따라 진침로 260도, 약 23.4노트로 항행하던 중이었다.
오전 11시 45분경 본선의 이등 항해사가 항해 당직을 수행하는 가운데 속항하던 중 예멘국 아덴항 동방 약 140마일 거리인 북위 12도 40분 00초․동경 047도 22분 30초 해상에 위치하고 있었다.
펑!
갑자기 큰 폭발음이 울렸다.
배에 승선하고 있던 사람들은 마치 폭탄이 터지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고 한다.
휘청.
연화(폭죽류)가 담긴 컨테이너가 폭발하면서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선체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펑펑펑! 큰 폭발음이 들린 이후 연이어 크고 작은 폭발이 2~3차례 계속되었다.
이 폭발로 인해 본선의 선미갑판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였다.
문제는 단순히 화재가 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그 폭발력이었다.
불이 붙은 컨테이너 1개가 선교를 넘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늘로 떠오른 컨테이너는 선교 위에도 떨어지고, 선교를 넘어 42번 베이에도 추락했다.
선교와 선수 쪽에서도 큰 화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선교로 달려오는 이희영 선장의 눈에 불타고 있는 선교(브릿지)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펑! 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