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느낌, 불안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전생이나 과거에 직접적인 인연이 없다면 사건 사고 때문에 들어본 기억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사이 준비를 마친 발키리호는 도선사의 도선에 따라 출항을 시작했다.
출항을 당시에는 시정이 좋았으나 갑자기 안개가 끼면서 시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선사는 부두를 이안한 이후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항로를 따라 속력 약 15노트로 도선구를 벗어나기 위해 조선하고 있었다.
“도선사님, 속도가 좀 빠르네요.”
내 말에 도선사가 힐끗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허허허. 일항사, 걱정 마시게. 이곳은 내 손바닥 안이니까.”
도선사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도선사가 그런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가 있다.
도선사들은 해당 도선구를 수도 없이 오고 가는 사람들. 눈을 감고도 해도를 그린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사고는 항상 그런 순간에 발생하는 법이다.
“장보고 일항사!”
그때 해도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희영 선장의 목소리였다.
“네, 선장님.”
“해도실로 잠시 들어오게.”
‘음 지금?’
출항을 하는 시점에 선장과 당직 항해사인 일등 항해사가 해도실로 모두 들어가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네, 선장님. 부르셨습니까?”
“음, 육상으로 전송할 출항 보고 전문을 아직 다 준비 못 했네. 빨리 초안을 준비해주게.”
“지금요?”
“그래.”
선장의 말에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도선사가 도선 중이라고 해도 선장이나 항해사들이 조선할 책임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다. 도선사에게 선박의 조선을 온전히 맡기지 않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평소의 이희영 선장의 업무 스타일도 아니었다.
이희영 선장과 함께 일한 지도 몇 년이 흘렀으니 그동안 업무 스타일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이번 항차에 일이 많아 특별히 일이 밀린 것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평소 깐깐하기로 유명한 이희영 선장답지 않은 업무 지시였다.
이번 항차에서는 큰 사고가 발생할 예정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음, 선장님. 죄송하지만 일단, 아직 도선구도 벗어나지 않았으니 조선에 좀 더 집중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음?”
내 말에 이희영 선장이 하던 일은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허허허, 걱정 말게 지금 탄 저 도선사가 내 동기야. 선장도 오래 한 베테랑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네.”
‘이희영 선장님답지 않아.’
평소답지 않은 이희영 선장의 행동에 나는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이 이례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계속해서 묘한 기시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평소와 다른 일련의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큰 사고로 이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 띠링! >
+ 경고: 선박 충돌의 위험이 있습니다! +
‘컥! 뭐라고?’
선박 충돌? 지금? 갑자기 떠오른 경고 메시지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또다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 띠링! >
+
<돌발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돌발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선박 충돌의 위험이 있습니다! 바로 대비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세부 퀘스트 : 선박 충돌
클리어 조건 : 충돌 회피
제한 시간 : 광양항 도선구를 벗어나기 전까지
보상 : 명성 + 100
실패 시 : 환경 오염, 명성 감소, 막대한 재정적 손실, ???
+
선박 충돌? 지금?
전생에 발키리호를 승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여부를 알지 못했다.
갑자기 발생한 돌발 상황에 당황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의 모습을 이상하게 지켜본 이희영 선장이 물었다.
“장보고 일항사 왜 그러나?”
“저 선장님, 잠깐 선교로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음? 갑자기 무슨 일인가?”
대답도 생략하고 나는 빠르게 해도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좌주 vs 충돌?
-자동차 전용선 “오리엔탈 그린”호의 선교.
같은 시간.
발키리호가 있는 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광양항 인근 해상.
자동차 전용선 “오리엔탈 그린”호가 광양항으로 입항하기 위해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오리엔탈 그린”호는 파나마(Panama)에 선적을 둔 총톤수 21,376.00톤, 길이 161.00미터, 너비 23.05미터, 깊이 15.03미터의 자동차 전용선(Car Carrier)이다.
일반적으로 컨테이너 화물이나 벌크 화물 등 상업용 선박이 운송하는 다른 화물과 비교하면, 자동차는 차지하는 부피에 비해 가볍다 보니 자동차 운반선들은 바닷물에 잠기는 부분이 다른 상선에 비해 아주 적은 특징이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선박의 상부 면적이 넓다 보니 바람의 영향도 많이 받아서 배를 운항하는 항해사의 입장에서는 조선에 좋은 구조의 선박은 아니었다.
인천항, 광양항, 인도네시아, 싱가폴, 미얀마, 방글라데시 순으로 1항차 약 50일이 소요되는 정기선 항로에 투입된 “오리엔탈 그린”호는 현재도 자동차를 적재하여 운송하는 중이었다.
“오리엔탈 그린”호의 선장은 오늘 새벽 광양항으로 입항하기 위한 양묘(닻을 감아올린다는 뜻)를 시작하였다. 같은 날 안개로 시계가 제한된 상태에서 양묘를 완료하여 운항을 시작. 선박은 통항로를 향하여 속력 약 5노트를 유지하며 항해하고 있었다.
“오리엔탈 그린”호의 선교 분위기는 평온했다.
선교에서 선장은 커피잔을 들고 조타수와 대화를 나누며 여유 있게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차례 이 항구에 입항해본 경험이 있었다.
익숙했기 때문에 레이더를 주시하지 않은 채로 육안으로만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지직! 지지직!
한편 한쪽 구석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리엔탈 그린호! 여기는 발키리호입니다!”
-······.
“오리엔탈 그린호! 여기는 발키리호입니다!”
-······.
장보고의 목소리가 “오리엔탈 그린”호의 VHF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오리엔탈 그린”호의 선장과 조타수는 이야기를 나누며 육안으로 전방 경계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같은 시간 장보고는 발키리호에서 “오리엔탈 그린”호가 선수방위를 좌현 변침한 것을 레이더로 확인하고 VHF로 “오리엔탈 그린”호를 수차례 호출하고 있었다.
연이은 호출에도 불구하고 장보고는 “오리엔탈 그린”호로부터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했다.
“오리엔탈 그린”호의 선장은 조타수와 대화를 나누며 광양항 인근 해역에 있는 씨부이를 통과하고 변침하여 정침할 때까지 여전히 레이더로 주변 상황을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육안에 의한 경계만을 실시하여 전방에 안개가 끼어 시정이 제한된 상황을 알지 못한 상황.
장보고의 연락을 받은 광양항해상교통관제센터에서 “오리엔탈 그린”호를 수차례 VHF로 호출하였음에도 대화를 나누느라 선교의 누구도 이를 듣지 못했다.
“오리엔탈 그린”호는 광양항으로 입항하기 위해 통항로를 향해 속력을 올리며 “발키리”호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약 16노트의 속력으로 계속 항해하였다.
* * *
-해신해운 컨테이너선 M.V. “발키리”호의 선교
출항 당시에는 시정이 좋았다. 하지만 출항하자 바다 사정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좋았던 시정이 바다로 나오자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큰일이네.’
나는 선교 앞을 바라보며 레이더를 주시하고 있었다. 바다의 수면 위로 안개가 뿌옇게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도선사는 육안으로만 전방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레이더를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선장님!”
나는 해도실에 있던 이희영 선장을 큰 소리로 불렀다.
“음?”
“선장님, 빨리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레이더를 좀 보셔야 될 것 같아요!”
이희영 선장이 나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눈치를 챘는지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나의 손이 가리킨 레이더를 본 이희영 선장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아무리 도선사가 승선해서 선박을 도선하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최종 운항 책임자는 여전히 선장이다.
도선사의 도선 중에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선장을 비롯한 항해사들이 책임을 면책받는 것은 아니다.
큰일이구나! 이희영 선장이 평소답지 않게 도선사에게 선박의 운항을 전적으로 맡긴 실수를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장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통항로로 들어오는 선박입니다. 연속적으로 좌변침을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본선의 항로와 너무 가까워질 것 같습니다.”
“장보고 일항사! 일단 호출을 해보게! 빨리!”
“네, 선장님.”
나는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VHF(초단파 무선 통신장치) 채널을 이용해 상대 선박을 호출하기 시작했다.
지지직! 지지직!
“오리엔탈 그린호! 여기는 발키리호입니다!”
-······.
“오리엔탈 그린호! 여기는 발키리호입니다!”
-······.
연이은 호출에도 불구하고 “오리엔탈 그린”호로부터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내가 이희영 선장에게 다가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제야 심상치 않은 우리의 분위기를 감지한 도선사가 느릿느릿 여유로운 걸음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항로 근처로 다가오는 선박이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매우 근접하게 될 것 같습니다.”
“뭐?”
도선사가 나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레이더를 살피기 시작했다.
“으으음!”
레이더를 확인한 도선사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근접한 거리에 선박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대로 쭉 항행을 계속한다면 두 선박이 충돌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말을 이어갔다.
“도선사님, 제가 상대 선박에 여러 차례 호출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상대 선박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으으음!”
“아마도 상대 선박에서도 지금 상황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도선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 광양항 해상교통관제센터에 연락을 해봐야겠습니다.”
“그, 그래 좋은 생각이네.”
나는 통화를 마친 후 다가왔다.
“선장님, 도선사님, 관제사 말이 관제센터의 호출에도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
“······!”
선장과 도선사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상대 선박에서 응답이 없으니 우리라도 빨리 우현으로 변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말에 도선사가 대답했다.
“음, 상대선이 피항선(두 선박이 충돌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먼저 피해야 하는 우선순위를 가진 선박을 말함) 아닌가?”
“네, 우리가 유지선(본래의 침로를 유지하는 선박) 위치에 있는 것은 맞지만 지금 해무(바다 안개)가 심하니 제한 시계(안개 · 연기 · 눈 · 비 · 모래 · 바람 등으로 인하여 시계가 제한되고 있는 상태를 말함)의 상황으로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음······.”
도선사가 고개를 들어 선교 밖을 견시했지만 육안으로는 시정이 좋지 않아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한 시계라면 일반적인 규칙에 따라 피항선에게 요구되는 피항 의무를 그대로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유지선의 위치에 있는 선박도 충돌을 피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도선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타수 근처로 달려갔다.
그리고 도선사가 조타수 조셉에게 우리의 항로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자동차 운반선 “오리엔탈 그린”호를 피하기 위해 우전타를 지시했다.
그리고 도선사가 동시에 속력을 미속(Slow)으로 감속하도록 조치하는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발키리호는 상대방에게 경고를 가하기 위해 무중 신호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음?”
도선사의 지시 사항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그건 본선 발키리호가 변침하고 있는 각도였다.
‘왜 대각도로 변침하지 않는 거지?’
지금은 다급한 상황이다.
선박은 자동차와 달리 급제동이나 급격한 회피가 불가능하다. 아무리 큰 각도로 변침한다고 하더라도 속도나 파도 등의 사정 때문에 회피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렇게 충돌을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최대한 큰 각도로 변침을 시도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도선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본선의 각도를 크게 변침하지 않고 있었다.
조타수 조셉에게 지시를 하고 있는 도선사의 옆으로 다가갔다.
“도선사님, 우현으로 좀 더 크게 변침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나의 질문에 도선사가 경직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좀 문제가 있네.”
“네?”
“여기서 좀 더 오른쪽으로 가게 되면 수심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해도상으로 수심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많이 여유가 있진 않지만 물이 빠지는 시간이라도 수심이 문제 되는 정도는 아닌데······.”
항만에 대형 선박이 입항하기 위해서는 깊은 수심이 필요하다. 최근 선박들이 급격히 대형화되어 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입출항하는 선박들의 안전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긴 했다.
나의 질문에 도선사가 주저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음, 그게 최근에 광양항 통항로에 준설(물의 깊이를 깊게 하여 배가 잘 드나들 수 있도록 하천이나 항만 등의 바닥에 쌓인 모래나 암석을 파내는 일을 말함) 작업을 했다네.”
“네? 준설 작업을 하면 수심이 더 깊어지는 것 아닙니까?”
“음, 그런데 준설 작업에 문제가 좀 있었다네. 파낸 해저의 모래를 육지로 빼내지 않고 통항로 주변에 쌓아뒀다는 말이 있다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아! 바로 이거였구나.